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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미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우연히 물에 빠졌다가 한 남자의 도움으로 뭍으로 올라오게 된 해류. 차가운 강물에 온 몸이 얼어붙을 것 같았던 그 날, 누군가 빠지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던 듯 온 몸에 강물 냄새를 풍기며 해류를 구해주었던 그 남자. 인적이 드문 강기슭에 해류를 내려놓고 다시 그 차가운 물 속으로 들어갔던 남자. 그 남자의 귀 뒤쪽으로 호 모양의 홈이 붉게 패인 것을, 그 호 모양의 홈이 숨을 쉬듯 살짝 벌어지는 것을 본 해류. 거기에 섬세한 그물 무늬를 가진 비늘처럼 빛나 보였던 살결까지 보았던 해류. 그 남자의 이름은 '곤'이었다.
"편하게 해줄게."
곤은 처음부터 곤은 아니었다. 먹고살기 힘든 와중에 아내는 집을 나가고, 입성을 가다듬고 찾아간 사장에게 사정을 늘어놓자 이런 저런 변명을 늘어놓다 옆에 끼고 있는 아이라도 앵벌이로 팔아 먹고 살라는 말에 신경줄이 툭 끊어짐과 동시에 돌이킬 수 없는 일마저 저질러 버렸던 그의 아버지는 절망의 끝에서 아이와 함께 호수에 뛰어든다. 아버지는 목숨을 잃었지만 아이는 아가미를 얻게 되고, 그런 아이를 호수에서 건져낸 강하와 강하의 할아버지의 손에 두번째 삶을 의탁하게 된다.
역시 어미에게 버려지듯 외할아버지의 손에 맡겨진 강하는 세상을 보는 시선이 비뚤다. 처음으로 갖게 된 동생이면서 친구이기도 한 그 아이에게 곤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도 역시 강하이다. 그렇지만 강하는 곤을 사랑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더구나 처음 아가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머리로 가리게 하면 그뿐이었지만, 조금씩 자라나면서 온 몸에 빛을 받으면 반짝이는 비늘을 갖게 된 이 물고기도 사람도 아닌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생물체를 온전히 동생으로, 친구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조용히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가 문득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물을 찾아 떠나는 곤이 어느 순간 떠나가 버릴까봐,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버리고 가버린 자신의 어미처럼 곤도 물을 찾아 떠나가버릴까봐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강하는 곤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다. 짐짓 거칠게 대하기만 한다.
그렇게 숨어살 듯 소리내지 않고 살아가던 강하네 세 식구 앞에 강하의 어머니 이녕이 나타난다. 마약에 찌든 채 십수 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이녕은 곤의 비늘을 보고 환각을 경험하게 되고, 식구들 간의 갈등은 극에 달한다. 갈등 끝에 곤은 강하의 집을 떠나고,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는 강하의 말에 조용히 강가를 떠돌며 강하의 핸드폰에 자신이 찍은 강의 모습을 전송하는 것으로 자신의 안녕을 알린다.
죽음의 문턱에서 아가미를 가진 인간, 온 몸에 비늘이 돋아 있는 생명체. 물을 그리워하여 물 속을 한참 헤엄치고 돌아오면 파드득 생생함이 돋는 남자. 그런 남자가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간다.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아가미를 위한 소설. 그것이 비단 아가미가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꿈 혹은 잃어버린 자유에 대한 이야기일런지도 모른다. 세상이 원하는 대로, 세상이 요구하는 것만을 좇아 살아가는 동안 잃어버린 우리의 순수에 대한 이야기일런지도 모른다.
너무나 큰 각기 다른 상처들을 안고 살아가는 주인공들을 통해 세상에서 숨쉬고 살아가고 있는 것만이 인간의 정상적인 삶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가끔 너무나 고된 현실살이 속에서 숨쉬기가 곤란할만큼 힘든 때, 혹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아가미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 그런 이야기. 비현실적인 설정이지만 몽롱하면서도 나른한 느낌 속에서 폭풍처럼 몰아치는 이야기의 힘이 있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