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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33 - 세상을 울린 칠레 광부 33인의 위대한 희망
조나단 프랭클린 지음, 이원경 옮김, 유영만 해설 / 월드김영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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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잃을만큼 큰 사건이 있을때면 항상 가슴을 울리는 주인공들이 있게 마련이다. 누구보다 착했던 딸, 누구보다 가정적이었던 남편, 누구보다 살가웠던 아들. 거기에 있지 않았어도 되었을 사람들, 남을 대신해서 그 자리에 있다 봉변을 당한 사람들 등등. 목숨을 잃었다면 그 누구든 슬픔의 대상이 아니겠는가마는 꼭 그렇게 더 마음을 울리는 주인공들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죽었고, 그들의 이야기는 조금씩 더 미화되기도 하고 포장되기도 할 것이다.
2010년 8월 5일. 칠레의 한 광산이 무너졌다. 지하 700m에 33인의 광부가 갇혔고, 그로부터 69일만에 전원이 극적으로 구조되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미화되거나 포장될 사이도 없이 세상에 드러났지만 그래서 더 인간적이고, 그런 인간적인 어려움과 고통을 모두 이겨내고 건강한 모습으로 구조될 때까지의 시간을 버텨냈다는 것이 오히려 더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칠레의 광산에서 사고율은 300%에 달한다고 한다. 300%라니.. 그렇다면 사고가 더 많다는 뜻인데, 그런 위험한 일을 두고 사람들은 돈과 저울질하지만 결국은 돈이 이기게 되고, 위험을 무릎쓰고라도 광산으로 다시 출근하게 되는 것이다. 칠레의 피네라 대통령은 대통령이 된지 얼마되지 않아 벌어진 이 심각한 사태에 총력을 기울일 것을 다짐하고, 광부들이 살아올 확률 2%에 모든 것을 걸고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매몰광부 33인을 모두 구조해내는 쾌거를 이룩했다.
매몰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광부들은 구조가 될 수 있을 것인지, 구조가 된다면 언제 될 것인지, 과연 구조가 가능하긴 할런지에 대해 생각했다. 혹시 된다한들 몹시도 오래 걸릴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기에 그들은 그들에게 남은 식량을 조절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적은 인원도 아닌 33명이나 되는 인원이 가장 극한 상황에서 민주적으로 의사를 결정하여 실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광산이 매몰되던 날 근무조의 책임자였던 십장 루이스 우르수아는 십장으로서 대우를 해주면서도 동시에 유머와 카리스마가 넘치는 마리오 세풀베다를 리더로 인정하고 식량은 두 사람이 관리하도록 했다. 힘든 광부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하루에 참치 한 숟갈을 먹으며 견뎌낼 수 있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삶에 대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인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차를 타고 이동할 수도 있을만큼 넓은 광도덕에 조금씩 이견이 있거나 트러블이 있을 때는 떨어져 있어도 좋을만큼의 공간이 확보될 수 있었고, 구조에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조금씩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며 서로에게 위안이 되었다는 것도 전원구조에 힘을 실어주었다. 누군가는 의사노릇을, 누군가는 함께 기도하며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절망 대신 용기를 가지고 하나된 힘으로 모아 서로에게 서로가 힘이 되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인간은 약하기 그지없는 존재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삶이 끝날 수 있습니다. 현재를 살고 즐기세요. 지금, 바로 이 순간 말입니다. 너무 많은 계획을 세우지 마세요. 우리가 겪은 일에 비하면 여러분의 문제들은 너무나 사소합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남을 돕는 능력을 키우세요."
-33인의 광부 중 사무엘 아발로스
많이 배운 사람들도 아니고 남을 위해 베풀며 살아가던 사람들도 아니었다. 하물며 하루하루 뼈빠지게 위험을 감수하고 들어갔던 댓가로 받은 돈을 흥청망청 술과, 여자, 마약으로 날리며 살아가던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하루 한 번, 참치 한 숟가락, 복숭아 캔을 나눠먹으며 69일을 살아냈다. 어차피 죽을 거 그냥 한 번에 다 먹어버리겠다고 억지를 부리거나 싸우지 않고 모두가 삶에 대한 의지로 민주주의를 선택하고 실천했다는 것이 그들을 살려낸 기적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죽음에의 공포를 이겨낸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현재 내가 안고 있는 고민들이나 어려움들은 죽음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라고.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지나간 일들을 생각할 필요도, 다가오지 않을 일에 대한 괜한 걱정도 덜어버리고 다만 오늘을 충실히 살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되 조금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한 발 물러서서 오늘의 나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