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계단
루이스 베이어드 지음, 이성은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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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 이후 가업을 이어 평범하게 살아가던 24세의 학생 카르팡티에는 살해 당한 어떤 남자의 주머니에 그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쪽지가 들어 있다는 이유로 비도크라는 경찰과 동행하게 된다. 사실 비도크가 찾는 카르팡티에 박사님은 조용하기 그지 없었던 학생 카르팡티에의 아버지였고, 그제야 카르팡티에는 그의 아버지에 대해 사실은 하나도 모르고 있다는 것에 의아함과 함께 의심까지도 품게 된다. 살해된 남자가 남긴 단서를 좇던 비도크와 카르팡티에는 그 단서의 끝에 루이 샤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1785년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태어나 노르망디 공작으로 책봉되었으나, 프랑스 혁명 발발 직전 4살 터울의 형인 왕세자 도팽 루이 조제프가 죽자 왕세자인 도팽의 작위를 책봉받았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자 루이 샤를은 부모와 함께 도피하려다 파리의 민중에 의해 체포되에 튈르리 궁전이 갇혔다. 1792년 국민 공회에서 왕정을 폐지하고 제1 공화국이 선포되자 루이 샤를은 귀족들과 같이 파리의 탕플 감옥에 수감되었다. 다음 해인 19\793년 부왕인 루이 16세가 콩코드 광장에서 단두대로 처형되자 샤를은 외국으로 도피한 프랑스의 귀족들에 의해 루이 17세로 명목상 왕의 자리에 올랐다. 그 당시 루이 17세는 프랑스 정부와 외가인 오스트리아 사이의 협상에서 중요한 인질이 되었다. 1793년 여름, 루이 17세는 모후인 마리 앙투아네트의 곁을 떠나 프랑스 혁명정부에 의해 강제적으로 난폭한 구두 수선공 앙투안 시몽에게 맡겨졌다. 시몽은 루이 17세를 왕으로 받들기는 커녕, 구타하고 강제로 중노동을 시키는 등 루이를 무척이나 구박하였다. 1793년 10월, 당시 공안위원회 위원장 로베스피에르에 의해 어머니 앙투아네트마저 처형당하고 다시 탕플 감옥에 수감된 루이 샤를은 힘든 감옥생활과 부모의 죽음에 대한 충격, 시몽에 의한 심한 구박 등으로 건강이 나빠져 1795년 6월 8일 임파선 결핵으로 10살 어린 나이에 사망하였다.

 

이것이 루이 샤를에 대해 역사가 말하고 있는 짧은 생애이다. 그러나 실제로 루이 17세가 죽기 몇달 전의 기록이 거의 없기 때문에 탕플 감옥에서 탈옥하였다, 독살당하였다, 죽은 소년은 실제로 루이 17세가 아니라 대역이었다는 소문들이 무성하였고 이를 뒷받침 하듯 루이 17세 사후 수십 년 동안 루이 17세를 주장한 사람이 30명이 넘었다고 전해진다. <검은 계단>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또한 실제 인물인 프랑수아 비도크(1775.7.24~1857.5.11)를 사건을 맡은 경찰로 등장시켜 루이 17세의 마지막을 상상하게 하는 역사소설이다.

 

탕플에서의 수많은 기록들이 파기되어서 실제로 루이 샤를이 어두운 방에서 마치 야생동물처럼 가혹한 환경에 처해져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풀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극심한 환경의 변화를 겪으며 아버지와 어머니, 고모까지 단두대에 의해 처형당하는 처참한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던 점. 또한 어머니에 대한 모함을 강요당하면서 겪었을 정신적 고통이 10살도 되지 않은 어린 아이가 견디기에는 너무나 가혹하고도 힘든 일이었을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내가 아침인사를 건네도 죄수는 인사가 없었다. 질문에도 묵묵부답. 이스트 가루가 덮인 입술 사이로 희미한 숨소리만 들릴 뿐. 커다란 검은색 거미가 목을 따라 기어오른다. 죄수의 머리칼을 갉아 먹고 있는 쥐를 간신히 떼어냈다. 그러자 죄수가 처음으로 입을 열어 감사하다고 했다.
나는 죄수를 간이침대로 옮긴 뒤, 다음날 오전 치료를 시작하러 다시 오겠다 약속했다. 이 말을 들은 죄수는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제발 귀찮게 그러지 말라고 사정했다. 죄수는 죽는 게 제일 큰 소원이라 했다. 하느님이 허락하시는 한 가능한 빨리.- p.15

 

프랑스의 역사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 나라에도 수없이 많은 독살과 음모, 정치적 다툼 속에서 죽어간 영혼들이 얼마나 많이 있던가. 문종의 아들로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죽음을 강요당해야 했던 단종. 인조의 장자이자 효종의 형이었으며, 아우 봉림대군과 함께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가 수많은 고초를 겪었으나 세계적인 정세를 읽는 눈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인조의 냉대를 받던 중 의심스러운 급사를 한 소현세자. 선조의 14왕자 중 막내로 태어났으나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고  난 뒤 정치적 반목에 의해 8살 어린 나이에 역모 연루죄로 서인으로 강등당한 뒤 강화부사에서 정항의 손에 증살 당한 영창대군. 증살이 무엇인가. 증살에 비하면 차라리 단두대는 너무나 인간적이다. 8살 어린 아이를 방안에 가두어 놓고 아궁이에 뜨겁게 불을 때서 쪄죽인다는 것이 증살이다. 차마 입에 담기도 소름끼치는 죽음이 아닐 수 없다.

 

사치와 향락, 낭비의 대명사이자 고국인 오스트리아를 위해 스파이 노릇을 한 프랑스의 배신자, 아들과 근친상간을 한 모든 악의 근원으로 불리우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아들로 태어나 모든 것을 손에 쥔 왕자였다는 것이 죄라면 죄였을 루이 샤를의 석연치 않은 죽음이 루이스 베이어드의 손에 의해 가슴 두근거리는 추리 소설로 다시 태어났다. 실제로 있었던 어떠한 사실에 소설적 허구를 결합시켰다는 의미의 Faction은 읽는 이로 하여금 어디서부터가 역사이고 진실이며, 어디서부터가 소설이고 거짓인지를 판단하기 어려울 만큼 헛갈리게 하는데 그 묘미가 있다.

 

프랑스 혁명이 끝난 뒤 파리의 뒷골목, 단두대와 비밀감옥 그리고 탐정. 읽는 이의 마음을 조급하게 하는 스토리의 힘과 함께 생동감 넘치는 묘사가 뛰어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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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다이어트 - 17일 투자로 평생 날씬하게 살기
마이크 모레노 지음, 정윤미 옮김, 최남순 감수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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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며칠 전, 탤런트 오현경이 10년간 저녁을 굶어왔다는 이야기가 기사로 나왔다. 노출의 계절 여름인만큼 온통 기사는 다이어트에 관한 이야기이고, 주변에도 물론 나부터도 다이어트에 관한 정보와 식품을 공유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오늘의 기사는 가수 유이가 건강한 다이어트를 위해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다는 내용이었고, 그녀의 도시락이 사진으로 올라와 있었으며 그녀가 싸 온 도시락의 칼로리는 세 끼 모두 해서 천 칼로리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허닭 열풍을 일으킨바 있는 다이어트의 최강식품 닭가슴살!! 옥동자로 더 잘 알려진 못생기고 뚱뚱한 개그맨이었던 정종철은 피나는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몸짱 정종철로 거듭났고 그가 판매하는 닭가슴살은 옥동자몰에서 하룻동안 1억원어치가 팔릴만큼 대단한 인기를 얻었다고 하니 요즘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가장 핫한 키워드는 아무래도 '다이어트'가 아닌가 싶다.

 

일단, 본인도 다이어트라는 것을 삶의 동반자로 생각하고 있는지라...다이어트와 더불어 타이레놀이 인생의 동반자라니 참으로 슬프기 그지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의 몸무게가 결혼해서 임신을 하고 막달이었을 때의 몸무게보다 더 무거웠던 나로써는 다이어트는 필수과목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 들어가기 직전까지 약 3개월여동안 에어로빅 두 타임, 밥은 하루 한 끼를 먹으면서 10kg을 뺐다. 그 후 맛있는 건 '다이어트 때문에 먹지 않는다'보다 '나는 그 음식을 싫어한다'는 말로 알리고 못 본 척 애써 피해왔다. 피하지 못한 것은 술 뿐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적당한 몸무게를 유지하다가 아이 낳고 동네 아줌마들과의 사회생활 도중 조금씩 조금씩 먹던 간식이 살이 되어 다시 다이어트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느끼기 시작했고, 불행히도 나의 체질을 닮은 아이가 하늘 높은 것보다는 땅이 넓은 것을 더 잘 캐치하는 몸으로 태어나 요번 방학을 통해 모자간에 함께 필살의 다이어트에 돌입하면서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에 나온 다이어트는 쉬운 편이다. 한 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덴마크식 다이어트는 한국에서 구하기도 힘든 재료들로 식단이 짜여져 있어서 비슷한 것으로 대체해 먹고 하며 마쳤는데 살은 하나도 빠지지 않아 실의에 빠졌던 기억이 있다. 요즘 유행하는 건강 다이어트와 비슷한데, 기본은 이거다. 칼로리를 줄이고, 단백질 섭취를 강화하며, 신선한 채소를 충분히 섭취하고 탄수화물의 섭취를 제한한다. 당분이 높은 과일도 섭취제한의 대상이며 하루 여덟 잔의 물과 녹차, 블랙커피로 몸 속 지방을 확실히 태우라는 것이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에 나온 식단과 비슷한(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똑같이 실행하기 어려웠다) 식단으로 다이어트를 한 초등학교 4학년인 내 아이는 10일만에 2kg이 빠졌다. 아주 동일한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식단으로 17일동안 7kg가 빠진다, 아니다를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몸무게와 더불어 쉐이프가 눈에 띄게 달라진 효과도 보았다. 우리나라 식단의 문제점 중의 하나가 탄수화물이 너무 많고, 염분을 너무 많이 섭취한다는 것에 있다고 한다. 닭가슴살과 최소한의 드레싱을 사용한 샐러드를 먹으면서 국과 김치, 찌개 그리고 맵고 짠 볶음류와 기름진 음식들을 식단에서 완전히 빼고 나니 사실 배가 그리 고프지는 않지만 헛헛한 속을 달랠 길이 없긴 하다. 하지만 여름에 쉽게 잘 붓고 월경주기에는 특히나 전신이 많이 붓고 몸이 무거운 걸 느끼는 편인데  그런게 덜하다. 살찌는 체질인 사람들은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고 호소한다. 실제로 나도 제일 잘 할 수 있는게 잘 먹고 잘 자면서 살찌우는 것이라고 늘 말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평생 다이어트는 정말 괴로운 일인데, 그런 다이어트를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는 책임에 틀림없고, 그러면서 동시에 건강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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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무덤 모중석 스릴러 클럽 15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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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디버스러운 느낌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링컨라임 시리즈의 색깔은 조금 빠진듯한 느낌의 작품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10명의 농아들과 선생님 일행을 인질로 잡고 도살장으로 들어간 탈옥한 인질범과 최소한의 사상자를 기대함과 동시에 인질범들을 잡아내려는 협상가와의 숨막히는 12시간을 그려낸 작품이다.

 

탈옥한 세 명의 인질범 중 대장노릇을 하는 루 핸디와 협상에 있어서는 역전의 노장인 아더 포터. 인질범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차를 타고 가던 운전자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그 옆을 지나던 농아들의 스쿨버스를 납치해 근처 밀밭에 버려진 도살장으로 끌고 간다. 수화를 사용하는 농아들이므로 그들 몰래 무언가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설정되어 있다는 것이 극적 묘미 중 하나이다. 농아들의 선생님인 멜라니는 어렸을 때 청력을 잃어버리기 시작하여 오빠와 함께 간 음악회에서 들었던(들었다고 생각하는)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어 메이든스 그레이브(소녀의 무덤)'이라고 생각하고 오빠에게 다시 듣고 싶다고 한다. 사실은 이미 청력을 많이 상실하여 '어메이징 그레이스'라고 발음하는 입술을 '어 메이든스 그레이브'라고 잘못 읽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의 개인적 이야기, 도살장이라는 배경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사건들에서 제목이 설정된 것 같다.

 

교도소를 탈출하고, 어린 소녀들을 납치하고, 아무렇지 않게 자기가 가는 길을 방해하는 모든 것들을 제거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인질범들의 잔혹함, 그리고 그런 긴박한 와중에서도 잃지 않는 침착함은 정상인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과의 협상이라는 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정상적이지 못하다. 조금만 그들의 비위를 거슬려도 그들은 자신이 무척이나 진지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아무렇지 않게 또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완급을 조절해가며 조금이라도 자기가 가진 패보다 더 나는 패를 쥔 것처럼 보이려고 하는 두뇌싸움. 조금이라도 사상자를 줄이고 자기가 원하는 고지를 점령하고자 하는 인질범과 협상가의 싸움은 루 핸디를 협상으로 자수하도록 만들었다는 앤지라는 여자 경찰에 의해 맥없이 해결된다. 그러나 사건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늘 범인을 밝히는데 있어 사람 애간장을 태우게 하고 뜻하지 않은 인물을 범인으로 지목하여 반전의 묘미를 느끼게 하는 디버다웠다. 나처럼 속독을 하면서 가끔 놓치는 것이 많은 어설픈 독자들은 어쩌면 잠깐 놓쳤다가 다시 돌아갈 수도 있는 반전이 있다. 마이클 코넬리와 더불어 언제나 기본은 한다는 믿음을 주는 제프리 디버의 초기작을 이제야 접하고 보니, 역시 디버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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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내가 죽던 날
로렌 올리버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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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만사 킹스턴은 다름 없이 하루를 시작한다. 귀찮게 구는 동생을 떼어내고 살을 에일듯이 춥지만 예쁘고 늘씬해 보이는 옷을 입고, 먹지 않을 걸 뻔히 알지만 아침을 먹겠느냐는 엄마의 물음에 성의없이 대답하고, 식탁에 앉아 있는 아빠를 그냥 모른 척 지나쳐 둘도 없는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는 차로 달려드는 것. 차 안에는 베이글이 있고, 맛있는 커피가 있고, 자신의 학교 생활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하지만 별로 다를 것도 없던 이 날의 끝에 사만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다른 내일이 아니라 바로 죽음이었다.

 

이 친구들의 무리는 7공주 정도 된다고 할까. 예쁘고 멋지고, 그에 어울리는 남친들을 가졌고 이미 그들과 멋진 '섹스'도 했다. 사만사는 학교 킹카인 남친을 두었지만 아직이다. 파티가 끝나고 집으로 함께 가자는 말을 들었을 때, 드디어 '아직'이라는 단어를 뗄 수 있는 날이겠거니 기대도 했었다. 멋지도 당당하고 매력적인 그녀들이라면 당연히 늘 웃는 얼굴에 찌질한 과거따윈 없어야 한다. 그래서 나를 너무 많이 아는 과거의 친구들은 묻어두는 것이 좋다. 어떻게? 화장실에 낙서를 해서라도 말이다.

 

파티를 끝내고 돌아가던 사만사와 친구들 일행은 자동차 사고를 당한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평소에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친구가 떠오르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고 느낀 순간, 다시 아침이다. 동생은 학교에 늦겠다며 사만사를 깨우고 사만사는 어리둥절하다. 이 아침은 무언가...어젯밤 그것이 모두 꿈이었나 싶지만 어제와 똑같이 되풀이 되는 현실앞에 두려운 생각마저 든다. 그렇게 다시 살아난 하루는 여지 없이 흘러가버리고 그녀는 또 한 번의 죽음을 맞이한다. 기묘하게 되풀이 되는 그녀의 죽음과 되풀이 되는 하루. 한 번이 지나가고 두 번째가 되자 그녀는 그녀의 진짜 마음과 친구들의 마음, 그리고 그녀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예전에 린지와 함께 옛날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거기서 주인공은 마지막으로 섹스를 했을 때 그게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는 사실이 아주 슬프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난 첫 번째 섹스조차 해 보지 못했으니 딱히 전문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인생에서 대부분의 것들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지막 키스, 마지막 웃음, 마지막 커피 한 잔, 마지막 일몰, 마지막으로 스프링클러 사이를 뛰어다닌 일이나 아이스크림을 먹은 것, 혀를 내밀고 눈송이를 받아먹은 것. 그게 마지막이라는 걸 절대로 모를 것이다.
하지만 실은 그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이라는 걸 알면 절대로 그냥 포기할 수 없을 테니까.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안다는 건 절벽에서 뛰어내리라는 명령을 받는 것과 같다. 그럴 때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릎을 꿇고서 단단한 땅바닥에 키스하고, 냄새를 맡고, 그저 붙잡는 것뿐이겠지.
작별인사라는 건 항상 그런 것 같다.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것. 최악의 부분은 뛰어내리려고 결심하는 부분이다. 한번 허공으로 발을 내딛으면 그 다음에는 되돌릴 수 없으니까.
(/ 본문 중에서)


 

현실을 바꿔보려고 애를 써보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진심을 털어놔보기도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사만사는 어떻게 해도 죽음이라는 것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다른 하루를 살아보려고 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으로 하루를 마감하려고 노력하는 아직 어린 아가씨의 마지막은 슬프다. 늘 귀찮기만 하던 여동생, 그녀의 눈부신 성장과 미래를 볼 수 없다는 것에 목이 메인다. 한 번도 다정하게 '사랑한다'는 말을 건네지 못한 부모님.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친구이므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그녀 옆의 친구들. 그저 외면하고 모른 척하고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찌질이 취급하느라 볼 수 없었던 주변 사람들의 진심과 그들만의 장점들. 이제 겨우 알 것 같은데, 이제서야 겨우 제대로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녀의 운명은 그녀를 잡고 놔주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런 그녀가 내린 마지막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고딩'들의 이야기라서 그런가 참으로 발칙하다. 특히나 미국의 고딩이니 여기보다 더하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말하니 우리나라 고딩들도 이제 아주 다르지도 않다고 말한다. 나같이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사람에게는 정말 충격이랄 수 밖에 없다. 난무하는 욕과 섹스에 대한 관심. 조금 불편하기까지 했다. 죽음을 6번쯤이나 경험해야만 정신을 차리고 모든 것을 제대로 볼 수 있을만큼 그녀들의 삶은 뒤틀려 있었을까? 어쩌면 많이 슬픈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단순히 그녀의 죽음이, 그녀가 선택한 길 뿐만이 아니라 그녀가 죽음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계속 살았을 그녀 원래의 삶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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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 1
캐서린 스토켓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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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느끼는 건데 참 젊은 여자 작가가 많다. 내가 어렸을 때는 다들 '작가'라고 하면 나이 지긋한 아저씨나 할아버지 정도를 생각했었는데 요즘은 젊고 게다가 예쁜 여자 작가가 참 많다는 걸 이 책을 접하고도 새삼 또 느꼈다. 하긴 이 작품의 작가는 우리 나이로 마흔 셋이니 책 읽는 내가 나이가 든거지, 작가가 젊은 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튼, 이 작품은 그녀의 어린 시절과 그녀가 살았던 고향 미시시피의 기억을 더듬어 만들어 낸 작품이다. 그녀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부모님의 기억도 들어있을 수 있겠다.

 

1960년대 초, 미국의 미시시피 주 잭슨. 남북전쟁은 끝이 나고 노예는 해방되었지만 아직도 잭슨에는 노골적인 인종 차별이 횡행하고 있다. 사실 노예로 살아가던 흑인이 가진 것 아무 것도 없이 해방이 되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다시 백인이 운영하는 농장, 공장에 노동자가 되거나 백인 가정의 가정부 밖에는 먹고 살 방법이 없다. 이 작품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은 이렇게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는 세 명의 여성이다.  하나 없에 없는 아들을 가슴에 묻고 백인 가정의 가정부로 일하면서 작고 아직 흑인과 백인은 다르다는 차별의식을 가지지 않은 순수한 백인 아이들을 키우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는 50대 흑인 가정부 아이빌린. 역시 흑인 가정부로 하고 싶은 말은 하고야 마는 직선적인 성격이지만, 남편의 폭력과 자신을 도둑으로 몰아 일자리를 얻지 못하게 하는 백인 여자들의 등쌀에 시달리는 30대 미니.  20대 초반이면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흑인 가정부를 부리며 친구들끼리 모여 앉아 차를 마시고 카드 놀이나 하는 것이 보통이던 시대에 대학을 마치고 작가가 되기를 꿈꾸는 진취적인 스물 셋의 백인 여성 스키터.  

 

스키터는 공부를 마치고 고향 잭슨으로 돌아온다. 돌아오면 자신을 키워주고 늘 따뜻이 대해주었던 가정부 콘스탄틴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만 콘스탄틴은 집에 없다. 콘스탄틴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어도 엄마는 대답을 회피하기만 하고, 아버지는 자세히 알고 있지도 못한 것 같다. 친구인 미스 리폴트의 집에 가서 다과를 하던 중 만난 그 집의 가정부 아이빌린은 콘스탄틴이 어디 있는지, 왜 갑작스럽게 자기에게 아무 말도 없이 집을 나갔는지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입을 다문다.

 

아이빌린은 미스 리폴트의 어린 딸 메이 모블리를 사랑한다. 미스 리폴트는 한 번도 자기의 딸을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봐주지 않는다. 자기가 키운 다른 백인 아이들도 지금의 메이 모블리처럼 온전히 자신만을 바라보고 심지어 엄마라고까지 불렀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다른 백인들처럼 흑인은 병을 옮기고 더럽다고, 멍청해서 공부를 할 수도 없는 인종이라고 생각하게 되는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메이 모블리도 그렇게 될까봐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메이 모블리를 끌어 안고 메이 모블리가 착하고 똑똑하고 소중한 아이라는 것을 수도 없이 말해준다.

 

미니는 지혜롭고 마음이 따뜻한 아이빌린과 둘도 없이 친하다. 음식 솜씨라면 따라올 사람이 없지만 맘에 담은 이야기를 직선적으로 하는 통에 일하는 곳에서 잘 쫓겨난다. 마을 여자들의 실세라 할 수 있는 미스 힐리가 미니에게 앙심을 품고 도둑이라는 누명을 씌우는 바람에 잭슨에서 일자리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미니는 미스 힐리에게 '말할 수 없이 끔찍한 일'로 복수를 해버렸다. 그 와중에 일하는 것을 비밀로 해달라는 미스 셀리아의 집에서 더 많은 돈을 받고 일하게 되지만, 여러가지로 사정이 복잡해서 마음이 편칠 않다.

 

스키터는 어느 날 콘스탄틴의 안부를 묻다가 아이빌린에게 말한다. "현실을 바꾸고 싶다는.....생각, 해본 적 있어요?"라고. 또 스키터를 만나게 되면 그 이야기를 이어가야 할 것만 같아서 자꾸만 그녀를 피한다. 하지만 아이빌린은 그 질문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스키터는 지역신문인 <잭슨 저널>에서 살림살이에 관한 칼럼을 쓰는 일을 맡게 되는데, 살림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던 그녀는 아이빌린에게 도움을 청하고 조금씩 가까워진다. 스키터는 당연하게 여겼던 흑인 가정부들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이 가정부 본인의 입장과는 많이 다를 것이라는 생각에 그녀들을 인터뷰하고 싶어하지만 자신의 주인에 대해 말하고 겪게 될 끔찍한 일들에 대한 불안으로 저마다 입을 닫는다. 스키터는 이 인터뷰를 성사시키고 책을 출판할 수 있을까?

 

백인 가정에는 화장실이 두 개씩 있다. 하지만 바깥 창고 가까운 곳에 흑인용 화장실을 따로 짓는다. 흑인이 옮기는 병에 백인은 면역이 없기 때문이라나. 잔디를 깎아주는 일을 하던 흑인 청년이 모르고 백인용 화장실을 썼다가 무참히 구타를 당해 두 눈이 멀 수도 있던 시절. 유색인의 지위를 향상시켜야 한다는 말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집에 불이 붙고,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던 시절. 지독하게 더운 날에도 맨 살을 내 놓고 차를 낼 수는 없다며 흰색 스타킹을 신기던 시절. 그런 시절에 자기 자식들을 대학까지 보내고 먹여 살릴 수 있는 직장의 상사인 백인에 대해 주절주절 떠든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며 목숨을 거는 일이기까지 하다.

 

소근소근, 밤을 틈타 인터뷰를 하는 스키터와 흑인 가정부들. 학대당하고 거짓 모함에 몰리는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가장 잔인하고, 사람이 사람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지만 그래도 사람의 마음을 열고, 그 사람을 다시 사랑하게 하는 해답은 또 결국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흑백이 분명하게 존재하던 시절에도 사람과 사람사이의 우정이라는 것, 믿음이라는 것이 존재했고 그랬기에 또 살아갈 수 있었던게 아닐까. 그런 믿음을 믿었던, 그리고 용기가 있었던, 세상이 만들어 놓은 거짓된 벽을 허물려는 힘을 모아 스키터와 아이빌린, 그리고 미니는 겨우 벽돌 한 장만큼을 움직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들의 벽돌 한 장은 또 다른 어느 곳에서 또 한 장이 되어 결국은 벽을 허물고 변화시키는 시작이 되었을 것이다.

 

그녀들이 몰래 벌이는 일들이 스릴러 못지 않게 긴장감 넘친다. 그리고 그녀들의 우정이 눈물겹다. 짜잔~ 하고 왕자님이 나타나듯, 아니면 급작스럽게 모든게 해결되는 일일연속극처럼 극적인 해결은 없지만, 마치 스칼렛 오하라가 석양을 바라보며 혼자서 중얼거린 그 말.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뜨겠지"하는 그 말처럼 내일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스키터와 아이빌린, 미나가 있었기에 오늘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가슴 뭉클하고 멋진 감동과 함께 재미까지 선사하는 이 작품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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