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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계단
루이스 베이어드 지음, 이성은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프랑스 혁명 이후 가업을 이어 평범하게 살아가던 24세의 학생 카르팡티에는 살해 당한 어떤 남자의 주머니에 그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쪽지가 들어 있다는 이유로 비도크라는 경찰과 동행하게 된다. 사실 비도크가 찾는 카르팡티에 박사님은 조용하기 그지 없었던 학생 카르팡티에의 아버지였고, 그제야 카르팡티에는 그의 아버지에 대해 사실은 하나도 모르고 있다는 것에 의아함과 함께 의심까지도 품게 된다. 살해된 남자가 남긴 단서를 좇던 비도크와 카르팡티에는 그 단서의 끝에 루이 샤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1785년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태어나 노르망디 공작으로 책봉되었으나, 프랑스 혁명 발발 직전 4살 터울의 형인 왕세자 도팽 루이 조제프가 죽자 왕세자인 도팽의 작위를 책봉받았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자 루이 샤를은 부모와 함께 도피하려다 파리의 민중에 의해 체포되에 튈르리 궁전이 갇혔다. 1792년 국민 공회에서 왕정을 폐지하고 제1 공화국이 선포되자 루이 샤를은 귀족들과 같이 파리의 탕플 감옥에 수감되었다. 다음 해인 19\793년 부왕인 루이 16세가 콩코드 광장에서 단두대로 처형되자 샤를은 외국으로 도피한 프랑스의 귀족들에 의해 루이 17세로 명목상 왕의 자리에 올랐다. 그 당시 루이 17세는 프랑스 정부와 외가인 오스트리아 사이의 협상에서 중요한 인질이 되었다. 1793년 여름, 루이 17세는 모후인 마리 앙투아네트의 곁을 떠나 프랑스 혁명정부에 의해 강제적으로 난폭한 구두 수선공 앙투안 시몽에게 맡겨졌다. 시몽은 루이 17세를 왕으로 받들기는 커녕, 구타하고 강제로 중노동을 시키는 등 루이를 무척이나 구박하였다. 1793년 10월, 당시 공안위원회 위원장 로베스피에르에 의해 어머니 앙투아네트마저 처형당하고 다시 탕플 감옥에 수감된 루이 샤를은 힘든 감옥생활과 부모의 죽음에 대한 충격, 시몽에 의한 심한 구박 등으로 건강이 나빠져 1795년 6월 8일 임파선 결핵으로 10살 어린 나이에 사망하였다.
이것이 루이 샤를에 대해 역사가 말하고 있는 짧은 생애이다. 그러나 실제로 루이 17세가 죽기 몇달 전의 기록이 거의 없기 때문에 탕플 감옥에서 탈옥하였다, 독살당하였다, 죽은 소년은 실제로 루이 17세가 아니라 대역이었다는 소문들이 무성하였고 이를 뒷받침 하듯 루이 17세 사후 수십 년 동안 루이 17세를 주장한 사람이 30명이 넘었다고 전해진다. <검은 계단>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또한 실제 인물인 프랑수아 비도크(1775.7.24~1857.5.11)를 사건을 맡은 경찰로 등장시켜 루이 17세의 마지막을 상상하게 하는 역사소설이다.
탕플에서의 수많은 기록들이 파기되어서 실제로 루이 샤를이 어두운 방에서 마치 야생동물처럼 가혹한 환경에 처해져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풀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극심한 환경의 변화를 겪으며 아버지와 어머니, 고모까지 단두대에 의해 처형당하는 처참한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던 점. 또한 어머니에 대한 모함을 강요당하면서 겪었을 정신적 고통이 10살도 되지 않은 어린 아이가 견디기에는 너무나 가혹하고도 힘든 일이었을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내가 아침인사를 건네도 죄수는 인사가 없었다. 질문에도 묵묵부답. 이스트 가루가 덮인 입술 사이로 희미한 숨소리만 들릴 뿐. 커다란 검은색 거미가 목을 따라 기어오른다. 죄수의 머리칼을 갉아 먹고 있는 쥐를 간신히 떼어냈다. 그러자 죄수가 처음으로 입을 열어 감사하다고 했다.
나는 죄수를 간이침대로 옮긴 뒤, 다음날 오전 치료를 시작하러 다시 오겠다 약속했다. 이 말을 들은 죄수는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제발 귀찮게 그러지 말라고 사정했다. 죄수는 죽는 게 제일 큰 소원이라 했다. 하느님이 허락하시는 한 가능한 빨리.- p.15
프랑스의 역사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 나라에도 수없이 많은 독살과 음모, 정치적 다툼 속에서 죽어간 영혼들이 얼마나 많이 있던가. 문종의 아들로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죽음을 강요당해야 했던 단종. 인조의 장자이자 효종의 형이었으며, 아우 봉림대군과 함께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가 수많은 고초를 겪었으나 세계적인 정세를 읽는 눈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인조의 냉대를 받던 중 의심스러운 급사를 한 소현세자. 선조의 14왕자 중 막내로 태어났으나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고 난 뒤 정치적 반목에 의해 8살 어린 나이에 역모 연루죄로 서인으로 강등당한 뒤 강화부사에서 정항의 손에 증살 당한 영창대군. 증살이 무엇인가. 증살에 비하면 차라리 단두대는 너무나 인간적이다. 8살 어린 아이를 방안에 가두어 놓고 아궁이에 뜨겁게 불을 때서 쪄죽인다는 것이 증살이다. 차마 입에 담기도 소름끼치는 죽음이 아닐 수 없다.
사치와 향락, 낭비의 대명사이자 고국인 오스트리아를 위해 스파이 노릇을 한 프랑스의 배신자, 아들과 근친상간을 한 모든 악의 근원으로 불리우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아들로 태어나 모든 것을 손에 쥔 왕자였다는 것이 죄라면 죄였을 루이 샤를의 석연치 않은 죽음이 루이스 베이어드의 손에 의해 가슴 두근거리는 추리 소설로 다시 태어났다. 실제로 있었던 어떠한 사실에 소설적 허구를 결합시켰다는 의미의 Faction은 읽는 이로 하여금 어디서부터가 역사이고 진실이며, 어디서부터가 소설이고 거짓인지를 판단하기 어려울 만큼 헛갈리게 하는데 그 묘미가 있다.
프랑스 혁명이 끝난 뒤 파리의 뒷골목, 단두대와 비밀감옥 그리고 탐정. 읽는 이의 마음을 조급하게 하는 스토리의 힘과 함께 생동감 넘치는 묘사가 뛰어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