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프 1
캐서린 스토켓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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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느끼는 건데 참 젊은 여자 작가가 많다. 내가 어렸을 때는 다들 '작가'라고 하면 나이 지긋한 아저씨나 할아버지 정도를 생각했었는데 요즘은 젊고 게다가 예쁜 여자 작가가 참 많다는 걸 이 책을 접하고도 새삼 또 느꼈다. 하긴 이 작품의 작가는 우리 나이로 마흔 셋이니 책 읽는 내가 나이가 든거지, 작가가 젊은 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튼, 이 작품은 그녀의 어린 시절과 그녀가 살았던 고향 미시시피의 기억을 더듬어 만들어 낸 작품이다. 그녀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부모님의 기억도 들어있을 수 있겠다.

 

1960년대 초, 미국의 미시시피 주 잭슨. 남북전쟁은 끝이 나고 노예는 해방되었지만 아직도 잭슨에는 노골적인 인종 차별이 횡행하고 있다. 사실 노예로 살아가던 흑인이 가진 것 아무 것도 없이 해방이 되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다시 백인이 운영하는 농장, 공장에 노동자가 되거나 백인 가정의 가정부 밖에는 먹고 살 방법이 없다. 이 작품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은 이렇게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는 세 명의 여성이다.  하나 없에 없는 아들을 가슴에 묻고 백인 가정의 가정부로 일하면서 작고 아직 흑인과 백인은 다르다는 차별의식을 가지지 않은 순수한 백인 아이들을 키우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는 50대 흑인 가정부 아이빌린. 역시 흑인 가정부로 하고 싶은 말은 하고야 마는 직선적인 성격이지만, 남편의 폭력과 자신을 도둑으로 몰아 일자리를 얻지 못하게 하는 백인 여자들의 등쌀에 시달리는 30대 미니.  20대 초반이면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흑인 가정부를 부리며 친구들끼리 모여 앉아 차를 마시고 카드 놀이나 하는 것이 보통이던 시대에 대학을 마치고 작가가 되기를 꿈꾸는 진취적인 스물 셋의 백인 여성 스키터.  

 

스키터는 공부를 마치고 고향 잭슨으로 돌아온다. 돌아오면 자신을 키워주고 늘 따뜻이 대해주었던 가정부 콘스탄틴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만 콘스탄틴은 집에 없다. 콘스탄틴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어도 엄마는 대답을 회피하기만 하고, 아버지는 자세히 알고 있지도 못한 것 같다. 친구인 미스 리폴트의 집에 가서 다과를 하던 중 만난 그 집의 가정부 아이빌린은 콘스탄틴이 어디 있는지, 왜 갑작스럽게 자기에게 아무 말도 없이 집을 나갔는지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입을 다문다.

 

아이빌린은 미스 리폴트의 어린 딸 메이 모블리를 사랑한다. 미스 리폴트는 한 번도 자기의 딸을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봐주지 않는다. 자기가 키운 다른 백인 아이들도 지금의 메이 모블리처럼 온전히 자신만을 바라보고 심지어 엄마라고까지 불렀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다른 백인들처럼 흑인은 병을 옮기고 더럽다고, 멍청해서 공부를 할 수도 없는 인종이라고 생각하게 되는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메이 모블리도 그렇게 될까봐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메이 모블리를 끌어 안고 메이 모블리가 착하고 똑똑하고 소중한 아이라는 것을 수도 없이 말해준다.

 

미니는 지혜롭고 마음이 따뜻한 아이빌린과 둘도 없이 친하다. 음식 솜씨라면 따라올 사람이 없지만 맘에 담은 이야기를 직선적으로 하는 통에 일하는 곳에서 잘 쫓겨난다. 마을 여자들의 실세라 할 수 있는 미스 힐리가 미니에게 앙심을 품고 도둑이라는 누명을 씌우는 바람에 잭슨에서 일자리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미니는 미스 힐리에게 '말할 수 없이 끔찍한 일'로 복수를 해버렸다. 그 와중에 일하는 것을 비밀로 해달라는 미스 셀리아의 집에서 더 많은 돈을 받고 일하게 되지만, 여러가지로 사정이 복잡해서 마음이 편칠 않다.

 

스키터는 어느 날 콘스탄틴의 안부를 묻다가 아이빌린에게 말한다. "현실을 바꾸고 싶다는.....생각, 해본 적 있어요?"라고. 또 스키터를 만나게 되면 그 이야기를 이어가야 할 것만 같아서 자꾸만 그녀를 피한다. 하지만 아이빌린은 그 질문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스키터는 지역신문인 <잭슨 저널>에서 살림살이에 관한 칼럼을 쓰는 일을 맡게 되는데, 살림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던 그녀는 아이빌린에게 도움을 청하고 조금씩 가까워진다. 스키터는 당연하게 여겼던 흑인 가정부들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이 가정부 본인의 입장과는 많이 다를 것이라는 생각에 그녀들을 인터뷰하고 싶어하지만 자신의 주인에 대해 말하고 겪게 될 끔찍한 일들에 대한 불안으로 저마다 입을 닫는다. 스키터는 이 인터뷰를 성사시키고 책을 출판할 수 있을까?

 

백인 가정에는 화장실이 두 개씩 있다. 하지만 바깥 창고 가까운 곳에 흑인용 화장실을 따로 짓는다. 흑인이 옮기는 병에 백인은 면역이 없기 때문이라나. 잔디를 깎아주는 일을 하던 흑인 청년이 모르고 백인용 화장실을 썼다가 무참히 구타를 당해 두 눈이 멀 수도 있던 시절. 유색인의 지위를 향상시켜야 한다는 말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집에 불이 붙고,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던 시절. 지독하게 더운 날에도 맨 살을 내 놓고 차를 낼 수는 없다며 흰색 스타킹을 신기던 시절. 그런 시절에 자기 자식들을 대학까지 보내고 먹여 살릴 수 있는 직장의 상사인 백인에 대해 주절주절 떠든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며 목숨을 거는 일이기까지 하다.

 

소근소근, 밤을 틈타 인터뷰를 하는 스키터와 흑인 가정부들. 학대당하고 거짓 모함에 몰리는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가장 잔인하고, 사람이 사람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지만 그래도 사람의 마음을 열고, 그 사람을 다시 사랑하게 하는 해답은 또 결국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흑백이 분명하게 존재하던 시절에도 사람과 사람사이의 우정이라는 것, 믿음이라는 것이 존재했고 그랬기에 또 살아갈 수 있었던게 아닐까. 그런 믿음을 믿었던, 그리고 용기가 있었던, 세상이 만들어 놓은 거짓된 벽을 허물려는 힘을 모아 스키터와 아이빌린, 그리고 미니는 겨우 벽돌 한 장만큼을 움직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들의 벽돌 한 장은 또 다른 어느 곳에서 또 한 장이 되어 결국은 벽을 허물고 변화시키는 시작이 되었을 것이다.

 

그녀들이 몰래 벌이는 일들이 스릴러 못지 않게 긴장감 넘친다. 그리고 그녀들의 우정이 눈물겹다. 짜잔~ 하고 왕자님이 나타나듯, 아니면 급작스럽게 모든게 해결되는 일일연속극처럼 극적인 해결은 없지만, 마치 스칼렛 오하라가 석양을 바라보며 혼자서 중얼거린 그 말.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뜨겠지"하는 그 말처럼 내일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스키터와 아이빌린, 미나가 있었기에 오늘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가슴 뭉클하고 멋진 감동과 함께 재미까지 선사하는 이 작품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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