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곱 번째 내가 죽던 날
로렌 올리버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사만사 킹스턴은 다름 없이 하루를 시작한다. 귀찮게 구는 동생을 떼어내고 살을 에일듯이 춥지만 예쁘고 늘씬해 보이는 옷을 입고, 먹지 않을 걸 뻔히 알지만 아침을 먹겠느냐는 엄마의 물음에 성의없이 대답하고, 식탁에 앉아 있는 아빠를 그냥 모른 척 지나쳐 둘도 없는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는 차로 달려드는 것. 차 안에는 베이글이 있고, 맛있는 커피가 있고, 자신의 학교 생활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하지만 별로 다를 것도 없던 이 날의 끝에 사만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다른 내일이 아니라 바로 죽음이었다.
이 친구들의 무리는 7공주 정도 된다고 할까. 예쁘고 멋지고, 그에 어울리는 남친들을 가졌고 이미 그들과 멋진 '섹스'도 했다. 사만사는 학교 킹카인 남친을 두었지만 아직이다. 파티가 끝나고 집으로 함께 가자는 말을 들었을 때, 드디어 '아직'이라는 단어를 뗄 수 있는 날이겠거니 기대도 했었다. 멋지도 당당하고 매력적인 그녀들이라면 당연히 늘 웃는 얼굴에 찌질한 과거따윈 없어야 한다. 그래서 나를 너무 많이 아는 과거의 친구들은 묻어두는 것이 좋다. 어떻게? 화장실에 낙서를 해서라도 말이다.
파티를 끝내고 돌아가던 사만사와 친구들 일행은 자동차 사고를 당한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평소에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친구가 떠오르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고 느낀 순간, 다시 아침이다. 동생은 학교에 늦겠다며 사만사를 깨우고 사만사는 어리둥절하다. 이 아침은 무언가...어젯밤 그것이 모두 꿈이었나 싶지만 어제와 똑같이 되풀이 되는 현실앞에 두려운 생각마저 든다. 그렇게 다시 살아난 하루는 여지 없이 흘러가버리고 그녀는 또 한 번의 죽음을 맞이한다. 기묘하게 되풀이 되는 그녀의 죽음과 되풀이 되는 하루. 한 번이 지나가고 두 번째가 되자 그녀는 그녀의 진짜 마음과 친구들의 마음, 그리고 그녀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예전에 린지와 함께 옛날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거기서 주인공은 마지막으로 섹스를 했을 때 그게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는 사실이 아주 슬프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난 첫 번째 섹스조차 해 보지 못했으니 딱히 전문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인생에서 대부분의 것들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지막 키스, 마지막 웃음, 마지막 커피 한 잔, 마지막 일몰, 마지막으로 스프링클러 사이를 뛰어다닌 일이나 아이스크림을 먹은 것, 혀를 내밀고 눈송이를 받아먹은 것. 그게 마지막이라는 걸 절대로 모를 것이다.
하지만 실은 그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이라는 걸 알면 절대로 그냥 포기할 수 없을 테니까.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안다는 건 절벽에서 뛰어내리라는 명령을 받는 것과 같다. 그럴 때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릎을 꿇고서 단단한 땅바닥에 키스하고, 냄새를 맡고, 그저 붙잡는 것뿐이겠지.
작별인사라는 건 항상 그런 것 같다.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것. 최악의 부분은 뛰어내리려고 결심하는 부분이다. 한번 허공으로 발을 내딛으면 그 다음에는 되돌릴 수 없으니까.
(/ 본문 중에서)
현실을 바꿔보려고 애를 써보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진심을 털어놔보기도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사만사는 어떻게 해도 죽음이라는 것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다른 하루를 살아보려고 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으로 하루를 마감하려고 노력하는 아직 어린 아가씨의 마지막은 슬프다. 늘 귀찮기만 하던 여동생, 그녀의 눈부신 성장과 미래를 볼 수 없다는 것에 목이 메인다. 한 번도 다정하게 '사랑한다'는 말을 건네지 못한 부모님.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친구이므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그녀 옆의 친구들. 그저 외면하고 모른 척하고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찌질이 취급하느라 볼 수 없었던 주변 사람들의 진심과 그들만의 장점들. 이제 겨우 알 것 같은데, 이제서야 겨우 제대로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녀의 운명은 그녀를 잡고 놔주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런 그녀가 내린 마지막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고딩'들의 이야기라서 그런가 참으로 발칙하다. 특히나 미국의 고딩이니 여기보다 더하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말하니 우리나라 고딩들도 이제 아주 다르지도 않다고 말한다. 나같이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사람에게는 정말 충격이랄 수 밖에 없다. 난무하는 욕과 섹스에 대한 관심. 조금 불편하기까지 했다. 죽음을 6번쯤이나 경험해야만 정신을 차리고 모든 것을 제대로 볼 수 있을만큼 그녀들의 삶은 뒤틀려 있었을까? 어쩌면 많이 슬픈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단순히 그녀의 죽음이, 그녀가 선택한 길 뿐만이 아니라 그녀가 죽음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계속 살았을 그녀 원래의 삶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