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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순 할매 쫓아내기 ㅣ 살림어린이 나무 동화 (살림 3.4학년 창작 동화) 2
이은재 지음, 윤희동 그림 / 살림어린이 / 2010년 8월
평점 :
"태범이 니는 세상에서 가장 맛난 반찬이 뭔 줄 아냐?"
"햄, 참치 통조림, 돈까스, 자장면, 치킨......"
"그만해라, 이눔아! 세상에서 제일 맛난 반찬은 사람 반찬이다."
"사람 반찬? 할매, 식인종이야?"
"이눔아, 할매 말은 식구들끼리 한데 둘러앉아서 서로 얼굴 쳐다보고 먹는 밥이 제일로 맛나다는 말이다. 그런데 니놈은 집에서도 아빠 엄마 대신 찌그러진 식인종 할매 얼굴이나 반찬 삼고 있으니 불쌍하지 않냐!" (88~89쪽)
자칭 친환경 에코할매인 모양순 할매는 전직 교사출신으로 태범이 엄마 아빠의 큰 지지를 받으며 당당히 태범이네로 입성한다.
능력있는 커리어우먼인 태범이 엄마는 할매를 '선생님'이라 치켜 부르며 집안일과 태범이 교육을 할매에게 전적으로 맡긴다.
아빠 또한 그동안 자신의 몫이었던 일들을 할매가 대신 해주니 좋기만하다.
하지만 태범이는 괴롭다.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잔소리해대고, 매일 한시간씩 공부시키고, 벌점수첩에 점수를 적고, 그 점수만큼 알알이(청국장과 다시마, 멸치를 가루 내어 빚어서 만든 알갱이)를 먹이는 할매가 끔찍히도 싫다.
참다 참다 폭발한 태범이는 모양순 할매를 쫓아내기로 결심한다. 엄마가 회사에서 상으로 받은 모형구두를 실수로 깨뜨려 놓고 할매가 그랬다고 하고, 아빠가 애지중지하는 야생화를 일부러 뽑아놓고 할매에게 덮어씌우기도 한다.
태범이가 그렇게 싫다고 할때는 눈도 깜짝 안하던 엄마 아빠가 자신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던 것들이 망가진 후에는 할매를 다시 보게 된다. '선생님'이라 부르던 엄마는 어느 순간 '할매'라고 은근슬쩍 호칭을 바꾸고, 아빠는 혹시 할매에게 치매기가 있는건 아닌지 하는 의심을 한다.
작전대로 잘 되어가건만 태범의 마음에 변화가 생긴다. 할매가 새벽에 자신의 방에 들어와 이불을 추스려주고 얼굴을 부드럽게 쓸어내려주는 손길이 싫지가 않다. 할매가 아침준비를 하는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지고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도 한다.
태범이의 '모양순 할매 쫓아내기' 작전은 어떻게 될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말이고 또 그렇게 된다.
하지만 이 찜찜함은 뭘까?
모양순 할매는 자주 태범에게 불쌍하다고 말한다. 태범이는 자기가 왜 불쌍하다는 건지 이해를 못한다.
한창 부모의 사랑과 관심속에 자라야 할 나이인데 혼자 밥 먹고, 혼자 컴퓨터 하고, 친구 하나 없이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태범이면서도 자신이 왜 불쌍한지 조차도 모른다. 늘 그래왔으니까.
엄마, 아빠는 또 뭔가.
모양순 할매에게 모든 것을 맡겨놓고 자신들이 해야 할 의무를 마치 다한 양 태범에게 당당한 모습하며,
'선생님, 선생님...', '할매, 할매...'하며 따르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얼굴을 바꾸는 모습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양순 할매의 미래도 짐작하기 어렵다.
지금은 태범이가 나서서 할매를 못나가게 하지만 점점 더 병이 깊어져서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어찌 될까.
친부모도 아닌 모양순 할매와 태범의 부모는 과연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을까.
태범이를 믿어보는 수 밖에...
집에서만 큰 소리 땅땅치던 마당장군이었던 태범이를 진짜 자기이름처럼 '커다란 호랑이'로 변신시켜 준 모양순 할매를 호랑이가 된 태범이가 끝까지 지켜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