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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슨 일 하며 살아야 할까? ㅣ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 1
이철수 외 지음 / 철수와영희 / 2011년 5월
평점 :
책과 차와 음악과 우정이 있는 문화놀이터, 길담서원(종로구 옥인동)에는 '책여세'(책 읽기 모임), '책마음샘'(음악 모임), '콩글리시반'(영어원서강독 모임), '청소년인문학교실', '어른들을 위한 인문학교실', '한뼘미술관', '프랑스어문교실', '철학공방' 등 다양한 모임들이 있다.
『나는 무슨 일 하며 살아야 할까?』는 '일'을 주제로 길담서원에서 진행된 '청소년인문학교실' 강좌의 첫 강연집이다.
미기록 직업을 발견하는 첫 번째 사람이 되면 행복하지 않을까요? 라고 묻는 이철수 판화가, 경품의 여왕이 되려면 계속 응모를 해야 한다는(진정으로 열망하라는) 박현희 사회 선생님, 문학 작품 속에서 노동의 변화를 발견하는 송승훈 국어 선생님, 청소년이 자신의 권리를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하다는 배경내 인권 활동가, 노동 운동을 통해 교육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하종강 노동 운동가의 강연 내용을 담고 있다.
최근에 읽은 몇 권의 책으로 인해 청소년을 다시 보게 됐다. 나는 마치 그들을 다 이해하고 받아주는 척 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말로만 청소년 인권 운운하며 아이들 편에 서 있었지, 정작 우리집 청소년의 인권조차도 무시하기 일쑤였다.
『나는 무슨 일 하며 살아야 할까?』를 읽으면서 창피함에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고, 마음이 아파 눈물이 나오기도 하고, 왜 우리나라는... 하면서 울분을 삼키기도 했다.
한편, 억울하기도 했다. 이미 기성세대인 나 또한 잘못된 교육의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L로 시작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단어는 무엇일까요?"
<닫힌 교문을 열며> 라는 영화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질문한다.
Love, Liberty, Lady...등 다양한 단어가 나왔지만 선생님은 칠판에 'LABOR' 라고 쓰며 이렇게 말한다.
"노동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노동이 없다면 사랑과 자유도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노동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단어다."
부끄럽게도 이 나이 먹도록 '노동'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나 또한 직장생활을 했었지만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억울한 지 몰랐고, 불평등한 대우를 받았어도 그냥 원래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었다.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귀찮기도 하거니와 남들 눈에 별나게 튀어 보이는 것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으며 나의 무지함에 혀를 내두를 즈음, 이 책은 나를 가만히 위로한다. 네 탓이 아니라고. 개인의 탓이 아니라고.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우리의 역사 탓이라고.
그동안 일부러 안 보고 안 들으려 했던 세상 이야기들이 자꾸 내 눈에 들어오고 내 귀에 들려온다. 물론 이 한 권의 책을 읽었다고해서 행동하지 않는 내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그 전 같지는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58년 개띠 (서정홍)
58년 개띠 해
오월 오일에 태어났다, 나는
양력으로는 어린이날
음력으로는 단옷날
마을 어른신들
너는 좋은 날 태어났으니
잘 살 거라고 출세할 거라고 했다
말이 씨가 되어
나는 지금 '출세'하여
잘 살고 있다
이 세상 황금을 다 준다 해도
맞바꿀 수 없는
노동자가 되어
땀흘리며 살고 있다
갑근세 주민세
한 푼 깎거나
날짜 하루 어긴 일 없고
공짜 술 얻어 먹거나
돈 떼어 먹은 일 한번 없고
바가지 씌워 배부르게 살지 않았으니
나는 지금 '출세'하여 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