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와 염소 새끼 우리시 그림책 15
권정생 시, 김병하 그림 / 창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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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뱅이 언덕

                                     권정생

 

 

 

하늘이 좋아라

노을이 좋아라

 

 

 

해거름 잔솔밭 산허리에

기욱이네 송아지 울음소리

 

 

 

찔레 덩굴에 하얀 꽃도

떡갈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하늘이 좋아라

해 질 녘이면 더욱 좋아라

 

 

『강아지와 염소 새끼』의 김병하 그림작가는 그림이 잘 풀리지 않아 힘들 때마다 권정생 선생님의 시「빌뱅이 언덕」을 떠올리며 심기일전 했다고 합니다. 삼 년의 시간을 들여 만든 이 그림책이 부디 권정생 선생님께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착한 심성이 이 그림책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 같습니다.

 

「강아지와 염소 새끼」는 한국 전쟁 직후, 권정생선생님이 열다섯 살 즈음에 쓴 시로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다가 선생님이 세상을 떠난 후 발표됐다고 합니다. 열다섯 살에 이런 멋진 시를 지었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이 그림책을 처음 읽었을 때, 어쩌면 강아지와 염소 새끼가 분단된 남과 북을 의미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잣대로 보기에는 이 그림책이 너무도 사랑스러웠습니다. 시를 분석해야만 했던 중·고등학교시절의 버릇이 나오는 것 같아 혼자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런데 김병하 작가의 『강아지와 염소 새끼』작업 일지를 읽어보니 김병하 작가도 처음에는 강아지와 염소를 남과 북으로 상징하여 서로 다투고 갈라진 우리 역사와 현실을 드러내 보려고 했답니다. 결국에는 시를 처음 만났을 때의 깨끗하고 즐거운 인상을 살리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 강아지와 염소의 움직임과 놀이에 집중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고 합니다.

 

 

 

 

 

권정생 선생님이 사셨던 안동의 조탑리 마을이 이 그림책의 배경입니다. 강아지와 염소를 돌보고 있는 권정생 선생님의 모습이 보입니다. 처음에는 그림의 배경에 권정생 선생님의 집을 찾아와 함께 앉아 있는 이오덕 선생님을 그려 넣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을 배경이 드러나면서 두 동물의 노는 모습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서 욕심을 버렸다고 합니다. 만약에 두 분을 모두 그림에 담았다면 아마도 강아지와 염소보다 두 분의 모습이 훨씬 더 주의를 끌었을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독자입장에서는 조금 아쉽긴 합니다. 권정생 선생님과 이오덕 선생님이 나란히 앉아계신 모습이라니!

 

다 읽고 책을 덮을 때 왜 내가  전보다 좀 더 착해진 듯한 착각에 빠지는 걸까요. 아무래도 책을 읽으면서 강아지와 염소랑 함께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엎치락 뒤치락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바탕 실컷 놀고 난 뒤 느끼는 평온한 기분이랄까요. 이 그림책의 주조색인 하늘색처럼, 비온 뒤 개인 맑은 하늘처럼, 제 마음이 말끔하게 닦아진 기분입니다.

 

『고라니 텃밭』에서도 느꼈지만 김병하 작가의 세상을 보는 눈이 정말 마음에 듭니다.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드는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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