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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 이해인 산문집
이해인 지음, 황규백 그림 / 샘터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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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게도 이해인 수녀님의 책을 처음 읽었다.
왠지 나와는 너무 먼 거리에 계신 분인 것 같아 지레 어렵게 생각했었다. 
책을 읽으면서 수녀님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절에 가서 공양을 할 때 실수로 국을 쏟지는 않을까, 너무 빨리 먹은 건 아닐까, 또 많이 먹은 건 아닐까 하며 긴장하는 모습 속에서 수녀님도 결국은 '나와 같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내 고민중 하나가 바로 먹는 습관이다.
똑같이 밥을 먹어도 난 항상 일등으로 밥을 먹는다.
게다가 요즘은 잘 흘리기까지 한다.
한번도 아니고 두 세번씩 흘리고 나면 내 자신이 막 싫어지면서 주변사람들을 살피게 된다.
혹시라도 나를 게걸스럽게 밥먹는 사람으로 기억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아무리 절제를 기본으로 해야 하는 수행자라도 밥만은 아주 복스럽고 맛있게 먹어야 보기가 좋고 옆에서도 부담을 덜 느낄 것이다. 밥상에서는 너무 드러나지 않게, 남이 눈치채지 않게 아주 조금씩 절식하는 노력이 더 아름답다고 본다.(20쪽) 

너무 드러나지 않게, 남이 눈치채지 않게 아주 조금씩 절식하는 노력...(깊이 새겨야겠다) 

이해인 수녀님은 나와 비슷한 사람이면서 또 나와 확실히 다른 사람이기도 하다.
수녀님의 시 <잎사귀 명상>을 읽으면서 세상 모든 이를 편견없이 있는 그대로 끌어 안을 수 있는 그 넓은 마음에 감탄했다. 

꽃이 지고 나면
비로소 잎사귀가 보인다
잎 가장자리 모양도
잎맥의 모양도
꽃보다 아름다운
시가 되어 살아온다 

둥글게 길쭉하게
뾰족하게 넓적하게 

내가 사귄 사람들의
서로 다른 얼굴이
나무 위에서 웃고 있다 

마주나기잎 어긋나기잎
돌려나기잎 무리지어나기잎 

내가 사랑한 사람들의
서로 다른 운명이
삶의 나무 위에 무성하다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나'라는 꽃이 지고 나면 어떤 잎사귀가 보일까? 둥근? 길쭉한? 뾰족한?
둥근 잎사귀에 마주나기잎이면 좋겠다. 어긋나기잎은 왠지 삐딱해 보이고, 돌려나기잎은 너무 빡빡해 보이고, 무리지어나기잎은 존재감이 없어 보인다. 꽃이 지는 그 순간까지도 나는 욕심꾸러기인 모양이다.

나는 요즘 이 책을 한 장 한 장 아껴가며 읽고 있다.
수녀님이 언급한 사람, 책, 노래 등 어느 하나 그냥 흘려듣지않고 노트에 적고 찾아보고 들어본다.
수녀님의 시 또한 소리내어 읽어보고 또 읽어본다.
본디 시를 즐길줄 모르는 나인데 수녀님의 시는 자꾸 읽게 된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 이런 것이었구나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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