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감옥 올 에이지 클래식
미하엘 엔데 지음, 이병서 옮김 / 보물창고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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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엔데의 단편집. 특유의 상상력을 마구 자극하는 환상적인 분위기가 책을 단숨에 내달리게 한다. 특히나 첫 번째 단편인 '긴 여행의 목표'는, 그 안에 등장하는 이상한 회화의 이미지처럼 소설 자체가 진행되는데 기괴하면서도 아주 매력적이다.

요새 철학에 대한 책을 조금 읽다보니 그의 소설들이 철학의 여러 개념에서 모티브를 그대로 가져왔음을 알아볼 수가 있다. '미스라임의 동굴'은 플라톤의 동굴 우화를 소설로 형상화한 그것이다. '자유의 감옥'은 신 안에서 악과 자유의지가 가능한지를 탐색하는 논리소설(?), '길잡이의 전설'은 아마 기적에 대한 흄의 논의와 이에 대한 반박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한편 '보로메오 콜미의 통로' '교외의 집' '조금 작지만 좋아' 에서는 근대적인 공간 개념 - 균질하는 불변의 공간 - 을 벗어나 새로운 공간 개념 속에서 작가의 무한 상상력이 펼쳐진다. 그 외에도 군데군데 보이는 철학적 모티프.

이렇게 써놓으니 엔데의 소설이 마치 소피의 세계나, 하여간 철학을 소설로 풀어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소설의 핵심을 설명할 수 있는 형용사는 '철학적인'이 아니라 '환상적인' '신비스러운' 등이다. 끝없는 이야기나 모모처럼 긴 호흡으로 차분하게 쓴 작품들은 아니지만, 짧은 분량 안에 극대화된 심상을 (아름답고, 두근거리는) 불러일으킨다. 단편에 이 이상 기대할 건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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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들과의 인터뷰
로버트 K. 레슬러 지음, 손명희 외 옮김 / 바다출판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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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FBI 수사관이자 잘나가는 프로파일링 전문가가 쓴 연쇄살인범들 이야기이다. (중학교 때 FBI 수사관이 쓴 심리분석에 대한 책을 본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 그 책이 재출간된 것이었다) 이 책은 저자가 직접 백 명이 넘는 범죄자들과 면담하고 수많은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루며 얻은 지식과 경험의 산물이다. 

프로파일링은 양들의 침묵이나 카피캣 등등 연쇄 살인을 다룬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에 자주 등장하면서 유명해진 수사기법이다. 오랜 경험과 심리학, 행동과학 등을 적용하여 범죄 현장이나 진행상황 등을 분석하여 범인의 인적사항 - 신체 특징, 나이, 직업, 사회계층, 교육 정도, 성격, 정신병력, 주거행태, 다음 범죄 등등 - 을 유추해내는 기법이다. 영화나 일본만화 같은 걸 보면 프로파일러가 거의 점쟁이 수준으로 나오는데, (저자에 따르면) 100% 그렇게 정확히 맞출 수는 없고 전적으로 신뢰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낯선 사람으로부터 어떤 합리적인(?) 이유도 살해당한 피해자가 있을 때, 게다가 목격자조차 없다면, 범인을 찾아내는 건 그야말로 모래사장에서 바늘찾기 같은 일이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가장 흔한 형태의 살인,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살인은 보통 면식범에 의한 살인 - 원한이나 금전적인 이유 등에 의해 - 이다. 이러한 경우는 피해자 주변을 조사함으로써 범인을 찾아낼 수 (혹은 그런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거의 살인 그 자체를 통해서만 자신을 알리는 살인범이라면? 프로파일링은 용의자를 추려내고 수사의 촛점을 효과적으로 모으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프로파일링 기법은 1960, 70년대 '낯선 사람에 의한 살인'이 급증하면서 미국 내에서 주목받고 연구, 발전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직까지 우리나라가 그렇듯 그 이전까지만해도 미국내 살인은 면식범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강도살인은 예외겠지만) 영화 카피캣에서 수잔 서랜든이 맡은 범죄심리분석가는 "미국에는 언제나 평균 35명의 연쇄 살인범이 활동하고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보면 미국에 연쇄살인범이 엄청나게 많은 건 사실이다.

(이런 식으로 구분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연쇄 살인은 살인 그 자체에 필요와 목적이 있다는 면에서 외적인 필요(돈, 원한 등)에 의한 살인과 구별되는 것 같다. 사실, 나와 상관없는 사람을 몇 명씩때로 몇 십명씩 죽이는 건 살인 그 자체에 목적이 있고 살인을 향한 계속되는 강한 동기가 있지 않으면 불가능할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연쇄 살인을 보통 조직적 살인과 비조직적 살인으로 구분한다고 한다. 자세한 건 책을 읽어보면 나오고, 하여간 양쪽 모두의 공통점은 미친 놈(!)들이라는 거다.  

평범한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연쇄살인범이 되는 경우는 없다. 살인의 씨앗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싹튼다. 가족 등의 공동체 내에서 다른 사람과 애정을 주고 받으며 관계를 맺는 법을 보통은 배우는 시절, 있어야 할 것들 (아버지, 어머니, 형제나 친구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보살핌, 사회화가 진행될 안정된 환경 등)의 결핍과 육체적-정신적-성적인 학대 등을 통해 그는 정상적인 관계맺기를 경험하지 못한채 홀로 증오와 파괴의 (성적인) 환상을 키우기 시작한다. 사춘기를 겪으며 환상은 더욱 증폭되고 정교해진다. 조직적 연쇄살인범의 경우 이때쯤 크고 작은 병적인 폭력 사건을 일으킨다. 그는 한번쯤 소년원이나 정신병원에 들어갔다 나오기도 한다. 그의 파괴적인 성적 환상은 점점 거대해져서 스스로도 이를 실행에 옮기지 않고 견디지 못할 때 즈음 첫 살인이 수행된다. 처음에는 어설프다. 환상을 현실화함으로써 그의 환상은 더욱 갈급해지고, 더욱 완벽한 환상-실현을 꿈꾸게 된다. 제2, 제3의 살인이 수행된다... 쓰다보니 다시 책에서 묘사된 끔찍한 장면들이 떠오른다. 자세한 건 적기도 싫고 생각하기조차 싫다.  

올해 우리나라에서도 처음으로 연쇄살인으로 분류되는 유형의 살인사건들이 터졌다. 다행히 범인은 잡혔지만, 이것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어도 될지 그저 시작에 불과한 건지 알 수 없다. 그들은 분명 용서받지 못할 나쁜놈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범죄의 씨앗을 처음 틔워서 키우는 과정을 보면, 사회가 그토록 파편화되고 물신화되어 가는 것과 떼어놓고 바라보기 힘들다. 자본주의의 폐해가 가장 심각한 미국에서 연쇄살인-대량살인이 가장 흔한 것이 그저 우연일까. 또한 연쇄살인범들의 절대 다수가 남자, 그것도 백인인 것 역시 심각하게 생각해봐야할 부분이다. (이 책이 쓰여진 당시까지 알려진 여성 연쇄살인범은 단 한명, 영화 몬스터의 주인공인 바로 그 사람이다) 연쇄살인이 한결같이 지배-가학의 성적인 환상을 구체화하는 과정이라는 점과 그 구현자가 남자라는 점... 

재미있긴 하나 정신적으로 너무 타격을 주는 책이다. FBI의 범죄심리분석관들이 하나같이 스트레스로 인한 병에 시달린다는 게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그런 일을 하면서 제정신을 유지한다면 그게 오히려 신기한 일일 게다. 슬프다. 그런 괴물들을 만들어내고 그 뒷처리를 하며 힘겹게 굴러가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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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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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법이라는 단어만 들어가도 외면하고, 당연히 재미없을 거라고 나와 별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보통 사람이다. 와하하, 보통 사람들은 많이들 이럴 것이라고 단정해버렸다. 섣부른 단정인가? 실은 상관없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중요하다는 것도 알지만 자꾸 외면하게 되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학교 도서관에서 근로학생별로 정리를 맡은 구역이 있다. 내가 맡은 구역은 2층의 J부터 PL초반까지이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뜻인지 모를테니...에헴. 정치학, 행정학, 법학, 교육학, 언어학, 어학, 음악, 러시아 및 동유럽 문학, 일본 문학 등이다. 딱 봐도 아시겠지만, 일본 문학 부분을 제외하고는 정리할 게 거의 없다. 읽는 사람이 없으니까. 러시아 및 동유럽 문학은 책장 한 줄만큼도 차지하지 않으니 역시나 정리할 게 없다. 번역되어 도서관에 들어온 것의 절대 다수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소수의 프쉬킨과 고리끼 정도이다. (물론 조금은 더 있지만..) 정치, 행정, 법 이런거 읽는 사람은 이곳에, 특히나 인문사회과학 계열 전공자가 없는 이곳엔 거의 없다.

 출간된지 이삼십년은 더 되어 보이는 전집류 법전들은 양장에 한자로 제목이 박혀 있어 나처럼 벼락치기 한자시험 공부 밖에 안 했던 학생에게는 전혀 관심 밖이다. 몇 주가 지나서 가봐도 그 자리에 그대로있다. 우리같은 사람들에게 법은 그런 존재이다. 도서관의 분류 K에 처박혀 있는 오래되고 안 섹시하고 엄숙한 책 같은 것.  

[헌법의 풍경]은 법학류 K에서도 잡서, 혹은 '보통 사람'들의 교양으로 읽을 만한 책들인 제일 마지막 분류 KPA에 속해있는,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3류 변호사, 3류 법학 교수가 쓴" 에세이이다. 그렇다면 '3류'가 아닌 법조계 인물들은 어디에 있을까. 양장과 한자를 두르고 보통 사람들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킨 채 고고하게 그들만의 성채를 짓고, 유지하고, 또 그리로 진입하게 되는 과정은 저자의 목소리를 빌어 리얼하게 묘사된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돕기 위해 법대에 가고 사법 시험을 준비한다는 예비 법조인들은, 대학 시절 내내 조사 빼고 전부 한자인 교과서와 독일어, 일본어를 지역해서 만들어진 '법률용어'의 홍수에 익숙해지며 'Legal Mind'를 습득한다. (리갈 마인드란, '잘 훈련된 법률가의 지적, 법률적 능력 또는 입장'이라고 정의되는 어떤 것, 혹은 법률가가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는 과정에서 작동하는 '그 어떤 것'이라고 한다.) 예비 법조인들은 공부하고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리갈 마인드를 습득한다고 세뇌하면서, 자신들의 가치관과 상식에 준거한 판단을 법률가의 객관적인 그것으로 합리화할 준비를 마친다. 그리하여 드디어 법조계에 안착한 그들은 사회적 논쟁과 합의를 거쳐 결정되어야 할 문제에까지 리갈 마인드의 보도를 휘두르는 판관이 된다. 사법 연수원이나 군법무관 후보생 훈련처럼, 그들 선택받은 이들은 모여서 자신들의 우정과 파워를 확인하며 특권의식을 더욱 갈고 닦는다.   

그런 판관들이 고소하고, 변호하고, 판결하는 법의 세계에서 시민들의 기본권은 우스워진다. 국가기구가 구성원들을 억압하기 위해 존재하느냐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느냐는 논란이 많은 문제이긴 하나, 일단 '존재'한다면 국가기구는 구성원들의 기본권을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다는 데에는 크게 이견이 없을 것이다. 특히나 헌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의 (말할)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는 볼테르 이후 근대정신의 가장 가시적인 구현이다. 그러나 헌법에 의해 철저하게 보장되어야 할 시민의 기본권은 법의 구현자들에 의해 오히려 앞장서서 파괴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은, 아주 엄격한 조건 하에서만 제한될 수 있고 이는 철저하게 법률에 의거한 제한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법률에 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기본권이 무시되고, 시민들의 무지와 힘없음을 볼모로 무시된다. 

읽으면서 쇼킹했던 부분 중 하나는 진술 거부권에 대한 이야기였다. 무죄추정의 원칙, 미란다 원칙 같은 상식은 법의 구현자들이 휘두르는 폭력 앞에 공염불이 되기 일쑤이다. 진술 거부권의 행사는 논리적으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와 한몸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검찰이 '수사에 방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어 변호인의 참여를 제한하는 일'이 당연하다는 듯이 발생하곤 한다. (수사에 방해를 받으라고 변호인을 참여시키는 것인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헷갈리기까지 한다. 송두율 교수 사건에서 다시 한번 그런 일이 생겼다. 다행히도, 대법원에서 진술거부권과 그에 따른 변호인 참여의 권리가 헌법에 보장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는 "잠자고 있던 권리인 진술 거부권을 되살려낸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당연한 권리가 얼마나 무시되고 있었는지를 역설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단 대법원의 결정 중 "피의자 신문을 방해하거나 수사기밀을 누설하는 등 염려가 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변호사의 참여 제한 가능"의 언급은, 아직까지도 법률에 의거하지 않은 기본권 제한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점을 상기시켜준다. 

마지막 장인 "잃어버린 헌법,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서는, 공법의 제한을 받지 않는 사적 영역에서 시민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지켜지지 않는 경우를 어떻게 규제할 수 있을지를 미국의 시민권법 (Civil Rights Act of 1964)을  통해 모색해보고 있다. 기울어져감에도 불구하고 건재하는 미국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다. 최고의 대학과 석학들 엘리트 교육, 외국 유학생들을 끌어들여 자국의 힘으로 만드는 melting pot - 주로 유학다녀온 교수님들, 탄탄한 제조업과 높은 생산성 - 산업공학과 교수님들, 20이 80을 혹은 5가 95를 먹여살리는 고부가가치 산업 - 조중동 신문들... 개똥철학을 하나 보태는 건지도 모르지만, 내 생각에 시민권법은 아직까지 건재하는 미국의 저력이 무엇에 기초하는지 보여준다. 흑인민권 운동과 여성운동을 비롯한 시민권 운동의 감동적인 투쟁의 결과물인 시민권법 제정에는 희극적인 일화가 숨겨져있다. 원래 성별에 의한 차별은 포함되지 않았는데, 입법에 불만이 있던 모 하원의원이 성별에 의한 차별을 포함시키면 남성의원들의 반대를 이끌어내 법안 자체를 폐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단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이 조항이 그대로 통과됨으로써 성별에 의한 차별을 막는데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고 하니...

시민권법의 좀더 자세한 내용을 쓰고 싶지만, 여기까지 쓰는데도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그만 매듭짓고 이제 본업으로 돌아가야지.. 

갈길이 멀다. 갈길을 가려면, 이런 책도 많이 나오고, 읽고 생각도 좀더 해보고, 관심도 더 갖고, X같은 검사나 판사들의 행동에 욕도 해주고 해야겠지만, 늘 그렇듯 '의식개혁'만으로는 갈길은 가지지 않는다. 작은 직접행동 혹은 직접 안행동이 우리가 갈길의 구체적인 한보을 내딛게 해준다. 말하지 않을 나의 권리를 인식하고 말 안하기, 나의 권리가 무시되었을 때 항의하고 소송걸기, 권리의 확대를 위해 성채에서 내려온 법률전문가들의 소중한 서비스. 이런 것들이 더 많아져야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찬성표 백만개를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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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무명 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
전시륜 지음 / 명상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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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는 무명 철학자였을지 모르나 죽고 나서는 남긴 단 한 권의 책 때문에 저자는 이제 꽤 유명세를 탔다. 그가 살아있으면 정말 좋았을 것을. 팬레터라도 한번 보냈을 거다. 그래, 인생은 이렇게 담담하고 유쾌하게 사는 거다. 어차피 태어난 인생, 살다가 그 이유라든가 목적이라든가 뭐 그런 거창한 거 찾아도 좋지만 설령 그렇지 못하더라도 재미나게 살다갈 일이다. 어쩌면 이유나 목적을 찾겠다는 발상 자체가 인과론적인 서양식 발상인지도 모른다. 그저 존재 자체로 우리는 내 옆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 집에서 기르는 개 고양이 나무, 사회, 자연 거창하게는 우주와 얽히게 된 거고, 그 얽힘을 충실하게 살아내면 되는 건지도 모른다.

처음 이 책을 집었을 때 전시륜이라는 저자의 이름도 이름이거니와 외국책을 번역한 듯한 제목, 게다가 문체까지, 이 책은 번역된, 중국인의 책이라는 확고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알고보니, 오랜 외국 생활 끝에 한국어를 까먹은 저자가 영어로 생각하고 쓴 것을 번역해서 책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글솜씨는 왠만한 좋은 번역서는 물론이거니와 모국어 저작의 글발을 능가한다. 어쩌면 전시륜 아저씨는 속세에서 도를 닦는 도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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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패러독스 - 존 롤스를 통해 본 정치와 분배정의
김만권 지음 / 개마고원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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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가 말하듯이 이 책은 존 롤스의 주장에 기대어 사회정의나 평등과 같은 가치를 어떻게 옹호할지에 대해 제시한 책이다. 존 롤스라는 사람이 알고보니 참 유명한 사람이었다. 하버마스나 한나 아렌트와 함께 현대 정치학의 흐름을 주도한 학자 중 하나란다. 저자는(한국사람이다) 존 롤스를 읽으며 자유주의도 평등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했다는데, 나에게 있어서도 비슷한 영감을 안겨준 책이다. 자유주의가 공화주의와 다르다는 걸 책을 읽으며 처음 알았고, 자유주의 내부의 다양한 흐름과 그 차이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되었다. 현실 체제를 도외시한 순진한 하바드 교수의 발상이라는 생각은 지울 수 없지만, 적어도 다원주의적 관점을 취할 수 밖에 없는 현대에서 어떻게 공공선에 의거한 평등, 인권, 사회질서를 합의할 수 있을지에 대해 유용한 논리를 제공해준다. 역시 정치학은 재미있는 분야라는 생각을 확인시켜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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