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들과의 인터뷰
로버트 K. 레슬러 지음, 손명희 외 옮김 / 바다출판사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전직 FBI 수사관이자 잘나가는 프로파일링 전문가가 쓴 연쇄살인범들 이야기이다. (중학교 때 FBI 수사관이 쓴 심리분석에 대한 책을 본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 그 책이 재출간된 것이었다) 이 책은 저자가 직접 백 명이 넘는 범죄자들과 면담하고 수많은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루며 얻은 지식과 경험의 산물이다. 

프로파일링은 양들의 침묵이나 카피캣 등등 연쇄 살인을 다룬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에 자주 등장하면서 유명해진 수사기법이다. 오랜 경험과 심리학, 행동과학 등을 적용하여 범죄 현장이나 진행상황 등을 분석하여 범인의 인적사항 - 신체 특징, 나이, 직업, 사회계층, 교육 정도, 성격, 정신병력, 주거행태, 다음 범죄 등등 - 을 유추해내는 기법이다. 영화나 일본만화 같은 걸 보면 프로파일러가 거의 점쟁이 수준으로 나오는데, (저자에 따르면) 100% 그렇게 정확히 맞출 수는 없고 전적으로 신뢰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낯선 사람으로부터 어떤 합리적인(?) 이유도 살해당한 피해자가 있을 때, 게다가 목격자조차 없다면, 범인을 찾아내는 건 그야말로 모래사장에서 바늘찾기 같은 일이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가장 흔한 형태의 살인,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살인은 보통 면식범에 의한 살인 - 원한이나 금전적인 이유 등에 의해 - 이다. 이러한 경우는 피해자 주변을 조사함으로써 범인을 찾아낼 수 (혹은 그런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거의 살인 그 자체를 통해서만 자신을 알리는 살인범이라면? 프로파일링은 용의자를 추려내고 수사의 촛점을 효과적으로 모으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프로파일링 기법은 1960, 70년대 '낯선 사람에 의한 살인'이 급증하면서 미국 내에서 주목받고 연구, 발전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직까지 우리나라가 그렇듯 그 이전까지만해도 미국내 살인은 면식범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강도살인은 예외겠지만) 영화 카피캣에서 수잔 서랜든이 맡은 범죄심리분석가는 "미국에는 언제나 평균 35명의 연쇄 살인범이 활동하고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보면 미국에 연쇄살인범이 엄청나게 많은 건 사실이다.

(이런 식으로 구분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연쇄 살인은 살인 그 자체에 필요와 목적이 있다는 면에서 외적인 필요(돈, 원한 등)에 의한 살인과 구별되는 것 같다. 사실, 나와 상관없는 사람을 몇 명씩때로 몇 십명씩 죽이는 건 살인 그 자체에 목적이 있고 살인을 향한 계속되는 강한 동기가 있지 않으면 불가능할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연쇄 살인을 보통 조직적 살인과 비조직적 살인으로 구분한다고 한다. 자세한 건 책을 읽어보면 나오고, 하여간 양쪽 모두의 공통점은 미친 놈(!)들이라는 거다.  

평범한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연쇄살인범이 되는 경우는 없다. 살인의 씨앗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싹튼다. 가족 등의 공동체 내에서 다른 사람과 애정을 주고 받으며 관계를 맺는 법을 보통은 배우는 시절, 있어야 할 것들 (아버지, 어머니, 형제나 친구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보살핌, 사회화가 진행될 안정된 환경 등)의 결핍과 육체적-정신적-성적인 학대 등을 통해 그는 정상적인 관계맺기를 경험하지 못한채 홀로 증오와 파괴의 (성적인) 환상을 키우기 시작한다. 사춘기를 겪으며 환상은 더욱 증폭되고 정교해진다. 조직적 연쇄살인범의 경우 이때쯤 크고 작은 병적인 폭력 사건을 일으킨다. 그는 한번쯤 소년원이나 정신병원에 들어갔다 나오기도 한다. 그의 파괴적인 성적 환상은 점점 거대해져서 스스로도 이를 실행에 옮기지 않고 견디지 못할 때 즈음 첫 살인이 수행된다. 처음에는 어설프다. 환상을 현실화함으로써 그의 환상은 더욱 갈급해지고, 더욱 완벽한 환상-실현을 꿈꾸게 된다. 제2, 제3의 살인이 수행된다... 쓰다보니 다시 책에서 묘사된 끔찍한 장면들이 떠오른다. 자세한 건 적기도 싫고 생각하기조차 싫다.  

올해 우리나라에서도 처음으로 연쇄살인으로 분류되는 유형의 살인사건들이 터졌다. 다행히 범인은 잡혔지만, 이것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어도 될지 그저 시작에 불과한 건지 알 수 없다. 그들은 분명 용서받지 못할 나쁜놈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범죄의 씨앗을 처음 틔워서 키우는 과정을 보면, 사회가 그토록 파편화되고 물신화되어 가는 것과 떼어놓고 바라보기 힘들다. 자본주의의 폐해가 가장 심각한 미국에서 연쇄살인-대량살인이 가장 흔한 것이 그저 우연일까. 또한 연쇄살인범들의 절대 다수가 남자, 그것도 백인인 것 역시 심각하게 생각해봐야할 부분이다. (이 책이 쓰여진 당시까지 알려진 여성 연쇄살인범은 단 한명, 영화 몬스터의 주인공인 바로 그 사람이다) 연쇄살인이 한결같이 지배-가학의 성적인 환상을 구체화하는 과정이라는 점과 그 구현자가 남자라는 점... 

재미있긴 하나 정신적으로 너무 타격을 주는 책이다. FBI의 범죄심리분석관들이 하나같이 스트레스로 인한 병에 시달린다는 게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그런 일을 하면서 제정신을 유지한다면 그게 오히려 신기한 일일 게다. 슬프다. 그런 괴물들을 만들어내고 그 뒷처리를 하며 힘겹게 굴러가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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