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에 관하여

- 누구나 읽어야 할 면역에 대한 모든 것


#8 우리는 모두 오염된 존재


19세기에 천연두는 오물의 질병이라고 널리 여겨졌는데, 그것은 곧 대체로 가난한 사람들의 질병으로 이해되었다는 뜻이다. 오물 이론은 배설물이나 썩은 물질 때문에 불결해진 나쁜 공기가 수많은 감염성 질병을 일으킨다고 주장했다. 중산층은 도시 빈민의 위생 상태에서 위협을 느꼈고, 창을 굳게 닫아서 빈민가로부터 불어오는 공기를 막았다. 오물은 질병뿐 아니라 부도덕의 원인으로도 간주되었다. <더러워! 더러워!> 『드라큘라』의 여주인공은 뱀파이어에게 물린 걸 알고 이렇게 한탄하는데, 이때 그녀의 절망은 제 몸의 운명에 대한 것 못지않게 영혼의 운명에 대한 것이었다.



오물 이론은 결국 감염의 속성을 더 잘 설명하는 이론인 세균론으로 교체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물 이론이 깡그리 틀렸거나 쓸모없는 건 아니었다. 비록 천연두는 그런 종류가 아니지만,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흐르는 하수는 분명 질병을 퍼뜨린다. 그리고 오물 이론에 영향받아 이뤄진 위생 개혁은 콜레라, 발진 티푸스, 흑사병 발병을 극적으로 줄였다. 깨끗한 식수는 개혁이 가져온 제일 중요한 변화였다. 일례로 시카고 강으로 투기되는 하수가 도시의 식수원인 미시간 호로 직접 들어가지 않도록 강의 흐름을 바꿨던 공사는 시카고 시민들에게 몇몇 뚜렷한 이득을 안겼다.



시카고 강 물살 변경으로부터 긴 시간이 흐른 오늘날, 내가 미시간 호 호숫가에서 만나는 어머니들은 오물은 크게 염려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흙이 아이들에게 좋다고 믿는다. 반면에 공원 잔디는 혹시 독성 화학 물질로 처리되었을지 몰라서 경계하는 어머니들이 있다. 오물이나 세균이 아니라 독소가 대부분의 질병의 근본 원인이라는 생각은 나 같은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진 질병 이론이다. 우리를 걱정시키는 독소는 농약 잔류물에서 고과당 시럽까지 다양하고, 특히나 수상한 물질로는 깡통 안쪽에 코팅된 비스페놀 A, 샴푸에 든 프탈레이트, 소파나 매트리스에 처리된 염소계 인산염이 있다.


나는 임신하기 전에도 곧잘 직관적 독성학을 실시했지만, 아들이 태어난 뒤에는 아예 푹 빠졌다. 생각해 보니 아이가 젖만 먹는 한, 아직 농장이나 공장의 불순물과 교류하지 않은 몸이라는 닫힌 계의 환상을 즐길 수 있었다. 더럽혀지지 않은 몸의 낭만에 매료된 나머지,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물을 마셨을 때 괴로워했던 게 기억난다. <더러워! 더러워!> 내 마음은 외쳤다.

「아이는 너무 순수했어요.」 볼티모어의 한 어머니는 영아 때 백혈병에 걸린 아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그 어머니는 아들의 병을 백신 속 오염 물질 탓으로 비난했고, 아들에게 백신을 맞힌 자신을 비난했다. 백신 속 포름알데히드가 암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미량의 물질에 대한 공포라는 점에서, 즉 사람들이 해당 물질의 다른 흔한 공급원들을 통해 접하는 양보다 상당히 더 작은 양을 두고 형성된 공포라는 점에서 수은이나 알루미늄에 대한 공포와 비슷하다. 포름알데히드는 자동차 배기가스와 담배 연기에 들어 있을뿐더러 종이 가방과 종이 타월에도 들어 있고, 가스 난로나 벽난로에서도 나온다. 많은 백신에 바이러스를 불활성화하는 데 쓰이는 포름알데히드가 미량 들어 있는데, 포름알데히드를 유리병에 담긴 죽은 개구리와 결부시켜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경각심을 느낄 법도 하다. 고농도라면 정말 유독하지만, 포름알데히드는 인체가 만들어 내는 물질인 데다가 대사 활동에도 꼭 필요한 물질이다. 게다가 애초에 우리 몸에서 순환하고 있는 포름알데히드의 양은 백신 접종으로 얻는 양보다 상당히 더 많다.



수은으로 말하자면, 아이가 백신 접종보다 주변 환경에서 접하는 수은이 더 많다는 게 거의 늘 확실하다. 백신의 면역 반응을 강화하는 증강제로 자주 쓰이는 알루미늄도 마찬가지다. 알루미늄은 과일과 곡물을 비롯한 많은 것에 들어 있고 물론 모유에도 들어 있다. 알고 보니 모유는 전반적인 주변 환경만큼 오염되어 있는 물질이었다. 모유를 분석한 실험실들은 그 속에서 페인트 희석제, 드라이클리닝 용액, 내연제, 농약, 심지어 로켓 연료를 검출해 냈다. 저널리스트 플로렌스 윌리엄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화학 물질들은 대개 극미량만 들어 있지만, 그래도 만일 사람의 젖이 동네 피글리위글리 슈퍼에서 팔린다면 일부 제품은 DDT나 PCB(폴리염화바이페닐) 잔류량에 대한 연방 식품 안전 기준에 걸릴 것이다.>




_ 『면역에 관하여』 출간 전 연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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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별투 2016-11-23 12: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염된 환경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에 대한 엄마로서의 두려움...아빠가 얼마나 알 수 있겠습니까마는 그래도 공부를 게을리할 수 없겠네요.

고귀한 수영이 2016-11-23 1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청결하게 한다고 해도 대기중에 날아다니는 오염과 세균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요즘같이 더욱 환경오염이 극심한 이때 더욱 많은 생각을 하게한 이번 연재같아요. 으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ICE-9 2016-11-23 2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셀 푸코도 비슷한 얘기를 했던 것 같군요. 근대 이후에 확립된 위생 정책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국가 통치 권력에 더 복종하도록 만들었다고. 국가가 주도하여 위생과 불결을 분리하고, 그것의 정당성을 국민들에게 주입하여 국가의 권위를 더욱 따르게 만든 것이라고 말이죠. 하지만 자연적 오염의 가능에서 벗어나려 노력한 것들이 오히려 사람의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군요. 무엇이든 일단 의학적 치료에 기대고 보는 습관을 이번 글로 돌이켜보게 되네요.

열린책들 2016-12-02 11:19   좋아요 0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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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minclee 2016-11-26 1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내용이고 현재의 상황에 알맞는 내용이라 기대되네요

Nabisch_T 2016-11-28 14: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체에서 포름알데히드를 생성하다니. 처음 알게 된 사실이네요. 읽을 수록 다른 내용들이 더 궁금해지는 연재였습니다 :)

https://www.facebook.com/hanabi.tschoe/posts/1869547189998645

열린책들 2016-12-02 11:19   좋아요 0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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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carpe diem 2016-11-29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게 모르게 주입되는 가치가 사람을 병들게 하고 있어요. 그렇게 된 후, 사실을 알게 되어도 인정하기가 쉽지 않아요

열린책들 2016-12-02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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