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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이레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에서 소로우가 말하는 큰 주제는 네 개의 핵심 단어로 압축할 수 있다. 자연, 개인, 친구, 독서. 이 네 개의 핵심 단어로부터 소로우가 이끌어내는 삶의 진리(소로우에게만 해당되는 삶의 진리)는 절제, 지성, 진실이다.
19세기 미국은 정치적으로는 독립했지만 영국과 유럽의 제국에 정신적으로 종속되어 있었고, 증기 기관의 빠른 이동 수단 개발로 산업화가 가속화되었으며, 미국원주민을 몰아내고 차지한 넓디넓은 목초지에서 다수의 소를 비롯한 가축을 키우며 목축 산업이 양적으로 팽창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미국은 산업화의 영향으로 천연자원은 고갈되어 가고 기계화된 분업화로 인간의 존업성이 훼손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산업화를 주도하는 국가와 공장주들을 비롯한 자본가들과 그에 빌어먹고 사는 사람들은 산업화로 인한 풍족함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 믿었다. 미국의 초절주의는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유럽의 낭만주의에 그 뿌리를 둔 초절주의는 이성보다는 감성과 직관, 사회보다는 개인, 전통과 관습보다는 자연 속에서의 개척자적인 삶을 추구한 사상이다. 소로우는 이 초절주의의 한계를 일정 수준 넘어섰다고 할 수 있다. 소로우는 그의 문체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것처럼 감성과 직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이성을 끈을 놓지 않고 있으며, 고독을 즐기면서 사회 제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시민의 불복종》).
소로우는 이런 다각적인 지성의 형성이 독서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독서 중에서도 고전을 한 문장 한 문장 “책이 쓰여 졌을 때처럼 의도적으로 그리고 신중히 읽혀져야 한다”고 말한다. 거기에 “심심풀이로 하는 독서” 이른바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며 읽는 계몽적인 경구와 아포리즘이 가득한 책이나 생각의 끈을 놓고 멍하니 미용실에 앉아서 ‘보는’ 잡지를 읽는 것은 “우리의 지적 기능들을 잠재우는 독서”라고 일갈한다. 독서를 통해 형성된 지성과 “정말 중요한 언어”의 결합이 궁극적인 지성의 완성이라고 본 소로우는 “어떠한 관찰 방법과 훈련도 항상 주의 깊게 살피는 자세를 대신해주지는 못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독서를 통한 이론적 성숙함과 일상생활에서의 주의 깊은 관찰의 결합을 의미한다.
독서와 주의 깊은 관찰을 통한 지성을 형성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눈을 감아버리거나 졸거나 또는 허식적인 것에 속아 넘어가기로 동의함으로써 자신들의 인습적인 일상생활을 확립시키는” 삶이 아닌 주체적이고 자립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소로우가 살던 시대를 예로 들자면 산업화와 자본의 팽창이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을 버리는 것이 진실을 보고 주체적, 자립적인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로우의 재평가”는 우리에게 재앙의 신호라고 볼 수 있다. 한정된 천연 자원은 고갈되어 가고 있으며 이제 소로우가 살았던 월든 호수가 있는 숲도 그가 살던 때보다 오염되었을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이런 오염은 마찬가지의 상황이다. 해마다 휴가철이 되면 그나마 오염이 덜 된 산과 바다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각종 오염물질로 찌든 도시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기 위한 모습이 안쓰럽고, 지속적인 경제 성장에 눈이 멀어 자연과 인간의 몇 개 안 남은 존엄성의 앙상한 가지마저 쳐내려는 사람들의 폭주가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