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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님이 웃었어 ㅣ 사계절 그림책
기쿠치 치키 지음, 황진희 옮김 / 사계절 / 2022년 7월
평점 :
책을 받아들며 쨍한 빛깔에 우선 매료되고 여기저기 공들인 만듦새에 다시 감탄한다. 내가 좋아하는 파랑과 노랑만으로 표현된, 웃는 아이는 액자에 그대로 넣어 흰 벽에 걸어두고 싶다. 벌써 충만하다. 겉싸개를 벗겨내니 와아아~ 날아오르려는 무당벌레 하나, 이제부터 함께 가자고 말하는 길잡이 같다. 두근두근 또 와아아~~ 노랑노랑 면지가 두둥둥 들뜨게 한다. 판화로, 투박한 선으로 어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담아낼까 계속 놀라워하며 페이지를 넘긴다.
기쿠치 치키 ZOOM 강연을 신청했다. 신청 폼에 사전 질문을 적는 문항에 “마음이 어떨 때 그리시나요? 그리면서 마음이 달라지나요? 마음이 어떨 때 읽으면 더 좋을까요?”를 썼다가 지웠다. 그리고 “글자 없는 그림책으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요? 시와 같은 글도 좋지만 그림이 압도적이라 글이 방해가 된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라고 써서 제출했다.
왜 그런 질문들이 떠올랐을까. 나는 대부분 책을 마음의 문제로 읽는다. 책 안에 흐르는 마음, 내게 닿는 마음, 요즘 머릿속을 떠도는 문제가 투영된 마음……. 이번에는 작가의 마음이 궁금했다. 무척이나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음 상태로 행복하게 작업했을 것 같기도 하고, 정반대로 어지럽고 고단한 마음을 씻어내듯 작업했을 것 같기도 하고. 알 수 없는 그 마음이 듣고 싶어졌다. 그러다 너무 뜬구름같은 질문인가 싶어 좀 더 또렷한, 그러면서 조금 도발적인 감상 질문으로 바꿨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그림이 너무 좋았다. 글만 별도로 읽어도 마음이 동글동글 순해지는 시처럼 좋았다. 그럼에도 판화로 작업한 한 장면 한 장면이 너무 압도적으로 좋아 글자가 거슬렸다. 글자를 걷어내고 그림만 보고 싶었다. 글자 없는 그림책으로도 충분히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두었다가 다시 읽으니 글과 그림이 한데 어울린다. 꽉 맞춰 채운 아름다움, 원작자와 번역가의 문장에 대한 고마움이 뒤늦게 든다.
손잡은 평화, 자연과 인간의 공존, 살아있는 것들의 화합, 그러한 원대한 메시지의 그림책으로도 읽힌다. 그리고 그 어울림을 신이 기뻐하나니라 종교적인 울림마저 느껴진다. 그런 면에서 제목이 탁월하다. 내 안의 신, 저 하늘의 신이 다 해님이다. 이 책은 볼 때마다 높고도 먼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
사족.
띠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거추장스럽고 불필요한 낭비 같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지인은 띠지마저 소중히 여기며 어떤 책의 띠지가 구기고 찢겨져 와서 교환요청을 했다고도 하여 놀랐던 적이 있다. 이 책의 띠지는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이수지 작가와 최혜진 작가의 추천사가 있다. 역시나 주옥같은 말씀이다. 그렇다 해도 이 말씀이 책 안에 포함, 마지막 페이지를 떡하니 차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니 띠지에 담을 수밖에 없긴 하겠다. 그런데 읽기 전 먼저 만나게 되는 띠지 특성상, 내가 먼저 나대로 오롯이 느끼기 전에 스포 당한 기분이 들었다. 내 수준에 맞게 문제를 풀기 전에 경시대회 참가자의 위용을 접한 기분처럼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주관적으로 느끼는 옥의 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