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놀이가 끝나면 사계절 그림책
황선미 지음, 김동성 그림 / 사계절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꿈을 꾸는 것 같다. 요즘 아이들이 꾸는 꿈은 아니고 중년 이후 어른이 어린 시절로 돌아간 꿈. 아련하게 떠오르는 장면 장면들이 웃음 짓게 하고 가슴 저리게 하는 꿈이다.

지오는 무지개다.
비가 억수같이 오는 날은 만날 수 없는 무지개, 잡힐 듯하다 끝내 놓칠 수밖에 없는 무지개, 애틋한 첫사랑 같은 무지개. 그 무지개가 지오로 왔다.

언니의 소꿉놀이는 끝났다.
어른들을 다 믿지 말라고 하며 요정과 마법의 왕자를 믿던 언니는 이제 꿈과 진짜를 착각하는 어린애가 아니다. 연지도 언젠가 지오를 까마득히 잊게 되겠지.

그렇게 어릴 적 소꿉놀이 추억을 잊고 살다 한참 만에 꿈을 꾼다. 그 꿈을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으로 이 책이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진짜가 만드는 균열로 소꿉놀이는 끝나버린다. 실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 더이상 지속될 수 없는 세계,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맴도는 노래의 정서다. 그림만 보기도 하고 글만 따로 소리 내어 읽어도 본다. 이 책이 무지개 같다. 아름다운데 그 형체가 분명하게 와닿지 않는다. 이리 꿈을 쫓듯이 읽는 것이 맞나. 필사해보기도 한다. 고와서 담고 싶은 문장들이 이름을 알게 된 풀꽃 같다. 또 그림만으로 가득 채운 면들을 다시 찾아본다. 연지, 지오, 고양이, 개, 새끼쥐, 인형이 다 같은 몸 크기로 소꿉 만찬을 즐기는 장면,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종이비행기를 들고 줄지어 다 두 발로 뛰어가는 장면, 연지와 지오가 팔짱을 끼고 그늘나무 한 바퀴를 도는 장면이 다 꿈처럼, 아니 꿈 그대로 아름답다. 물고기의 생명을 느끼곤 톱날이 있는 칼을 들고 놀라는 연지와 지오는 각각 다른 세계에 갇힌다. 꿈이 깨지는 순간, 소꿉놀이가 끝나는 순간이다. 영영 지오를 만날 수 없을 것만 같다. 책을 덮기가 머뭇거려진다. 깨고 싶지 않은 꿈, 놓치기 싫은 순간이 사라질까 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가 올까? 사계절 저학년문고 70
이반디 지음, 김혜원 그림 / 사계절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림책은 아니지만 그림으로 먼저 만난다. 몽글몽글 기분 좋아지는 표지다. 살짝 뒤돌아 웃는 아이 옆 동글동글한 고양이, 여우, 너구리가 무장 해제시킨다. 그래서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꽃나무 아래 ‘누가 올까?’라는 물음에 ‘내가 갈까?’ 설레발 대답을 하고 싶어진다. 뒷표지는 또 어떤가. 분홍 솜사탕으로 얼굴을 다 가린 노란 아이가 그네를 타고 있다. 읽기 전부터 뭔가 행복한 기운이 전해진다.

세 편의 이야기 중 ‘여우 목도리’부터 차례로 읽는다. 타자와 관계 맺음으로 인해 아무렇지 않게 했던 일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알게 되는 이야기로, 책 속의 관계가 책 밖 관계로 영향력을 갖길 바란다. 여우를 죽이는 현실을 여우 꼬리를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는 환상으로 슬쩍 버무리며 에둘러 비판하고 있다. 부끄러운 어른들을 답습하지 않을 아이들을 길러내는 동화의 힘을 본다.

두 번째 ‘고양이의 수프’, 저학년 대상 동화라지만 탄탄한 구성에 긴장하며 읽었다. 대접하는 귀한 마음을 헤아리자니 정말 난처한 상황에서 주인공은 용기를 내고, 뜻밖에도 다행히도 동화다운 맛을 구현한다. 고양이 선생님은 “우리는 언제나 최선을 다해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하지요.”라고 말한다. 길고양이들이 어렵게 먹이를 구하고 추운 겨울을 나는 현실을 짚으면서 진정한 배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한다. 진학, 취직을 위한 수단으로 간접적 도움만 주는 공부가 아닌 살아가는 데 직접적 도움을 주는 공부가 진짜 공부인데 말이다. 끝 장면 나무라는 엄마 말에 어쩔 수 없이 수긍하고 속상해하는 아이가 아닌 “재수 없지도 않고, 모두 힘껏 열심히 살고 있던 걸!” 똑똑하고 야무지게 할 말 하는 아이가 통쾌하다. 고양이는 고양이일 수도 있지만, 다른 사회적 약자들을 대체해 읽어낼 수도 있겠다.

거칠게 요약해 은혜 갚은 너구리 이야기인, ‘봄 손님’은 잔잔한 여운이 남는다.

누가 올까? 기대하고 기다리며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이 사는 일이다. 여기 고운 동화 세 편은 누구든 반기고 어울릴 수 있는 마음의 길을 열어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 밖의 어른 책 속의 아이 바깥바람 11
최윤정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이 쿵! 책 밖에서 어른 노릇을 하다 지칠 때면 책 속에 숨어들어 내 안의 아이와 논다. 어른들 사이에서는 아이처럼 굴기도 하는데 아이들 앞에서는 어른 행세를 한다. 이 책에서는 내 안의 아이, 내 앞의 아이를 두루 다룬다. 밑줄 치고 끄덕대며 읽었다.

내 안의 아이: 많은 어른이 어린이책으로 분류되는 도서들을 놓을 수 없음은 ‘저마다 성장하느라 잘 떠나보내지 못하고 눌러둔 아이 시대의 감정을 차분히 음미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들에게 건네는 심심한 위로의 선물’이 고프기 때문이었구나. 나이테처럼 내 안의 아이를 켜켜이 품고 영영 살다가 깊숙이 그 아이를 깨우는 책을 만나 쓰담쓰담 늦은 포옹을 하는 거구나 생각된다. 이 책을 읽으며 어린이책도 책이지만 책을 왜 읽는가 자문해봤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다. 묵묵히 헤아려주고 다독여주며 길을 터주는 친구,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을 수 있는 친구가 늘 가까운 자리에 한결같이 곁에 있다. 그 든든함 때문에 책 속에 오래 머물게 된다.

내 앞의 아이: ‘제 머릿속에서 어디로 어떻게 길을 틔워가면서 성숙해갈지 모르는 아이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은 아주 적은 것이 아닐까’에 공감하면서 ‘학교는 아이들이 책을 읽도록 지시만 할 뿐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신랄한 비판에는 당장 불쾌하다. ‘아무것도’는 아닌데 아니라 반박하기 위해 내놓을 내용물이 빈약하다는 사실에 한참 쓰라리다.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생각은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일을 방해한다’, 방해라도 하지 말아야겠다. ‘보호해줄 때보다 존중해줄 때에 아이들은 훨씬 크게 자란다’는 말을 새긴다. 가르친다는 것은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고, 그 움직인 마음이 생각을 키우는 것임을 잊지 않고 내 할 일을 찾아야겠다.

구판이 나온 게 1997년, 개정판이 2018년이다. 지금은 2021년. 그 시간 간격만큼 저자의 비판, 지원이 반영된 어린이문학은 양적, 질적으로 많이 발전해왔기에 다행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물론 여전히 해결되지 못해 답답한 현실 상황도 있다. 홍수처럼 넘쳐대는 어린이문학 도서들을 접하며 내가 제대로 읽고 있나,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러던 차에 만난 길잡이 책이라 반갑고 고맙다. 이 책에 언급된 책들을 도서관에서 찾아보며 공부하듯 읽기도 했다. 부록으로 언급된 도서 목록이 있으면 좋으련만 없어서 일일이 메모해야 했다. 이 정도 수고로움은 공부의 한 부분이라 생각된다. ‘푸른 개’, ‘엉뚱이 소피의 못 말리는 패션’, ‘나의 산에서’ 등 새로 알게 된 책도 있고 ‘알도’, ‘강아지똥’, ‘내 짝꿍 최영대’ 등 다시 보게 되는 책도 있었다. 절판되거나 오래되어 구하기 힘든 책들이 있어 이 책을 진작 만나지 못했음이 안타깝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치유에서 중요한 건 우리가 원하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거야. 이야기도 마찬가지."
- P2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어나서 싱크대에 차를 부어 버리니, 빙빙 도는 그 갈색 물이 짜릿하다. 아무것도 개의치 않는 것 같고 낭비하는 것 같은데, 기분이 좋다.
- P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