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모자 이야기 돌개바람 53
김혜진 지음, 천은실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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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일주일의 학교’를 재미있게 읽은 터라 신작 ‘일곱 모자 이야기’는 또 어떤 이야기일까 기대되었다. 삼 형제, 세 번의 시험 등 옛이야기의 중요한 숫자 3만큼 김혜진 작가의 숫자 7은 상상의 고리다. 다양한 변주에 능한 작가의 다음 7이 또 기대된다. 현실에 발 붙이고 있으면서도 폴짝폴짝 현실을 넘는 상상력 맛집의 다음 메뉴가 궁금하다.
빨간 모자, 동굴, 마녀, 잡화점, 웃음과 눈물로 치르는 물건값, 무한히 뻗는 덩굴, 이상한 가게, 모자 장수 등 어디선가 들어봤던 것 같고 읽어본 것 같은 이야기 소재들을 특제 상상 소스로 버무려 감쪽같이 짜깁기해 친숙하고도 어디서도 들어보고 읽어보지 않은 특별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작가는 뜬구름 잡는 상상을 손에 잡히는 이야기로 오밀조밀 촘촘히 직조하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다. 작가는 말도 셈도 잘하는 어린이였을 것 같다. 전작 ‘일주일의 학교’에서는 외자 이름으로 성별을 가렸는데 여기 아이들은 아예 이름이 없다. 초반에는 우리, 누군가, 한 아이로 지칭되다가 각자 모자를 쓰게 되면서 색깔별 모자로 칭해진다. ‘~습니다’, ‘~어요’보다 성큼 가까이 다가오는 어미 ‘~어’를 쓰는 화법도 그렇고 1인칭, 관찰자, 전지적 시점을 교묘히 오가는 것도 다 공감을 이끄는 효과적 장치로 보인다. 노란 모자처럼 믿을 수 없다고 했다가 믿게 되고 더 믿고 응원하는 독자로 조련한다.
모자는 가림막, 방어기제, 이내 바뀔 수 있는 개성, 지난 추억 같은 것일까. 그저 읽다가 막판 노랑 모자의 추적 분투, 모자 장수의 회수에 한 방 맞은 느낌이다. 아이들 주변 조연으로 등장하는 부모 어른들의 언행, 생활 형태, 마음도 전면으로 등장하지 않지만 가랑비 옷 젖듯 스며들며 생각거리를 준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정작 대상이 되는 아이들이 다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글자 크기만 커졌을 뿐 담은 내용이 만만찮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우일 것이다. 바람의 아이들 바깥바람 시리즈 중 ‘책 밖의 작가’에 “작가의 역할은 우리 모두가 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말을 하는 것이다.”라는 아나이스 닌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 맥락으로 수지 모건스턴은 열 살 정도 된 아이들을 위한 글에서는 표현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고 하며, 아이들이 모든 낱말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말들 속에 들어있는 힘을 믿고 아이들을 낮게 보거나 무조건 베풀려는 태도를 취하면 절대 안된다고 했다. 어쩌면 아이들은 더 깊이 더 넓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알 수 없는데 괜한 잘난 척이었는지 모르겠다. 동등한 눈높이로 고쳐 앉아 열 살 이상 아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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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잃는다‘는 것은 교회가 말하는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온갖 욕정 속에서 자신을 잃고 미망에 빠져 숲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같은 장소를 빙빙 도는 것처럼 자기애의 좁은 원 안에서 빙빙 도는 것을 뜻한다.
〈톨스토이ㅡ인생독본 2, 1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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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갈의 눈 Dear 그림책
아르투르 스크리아빈 지음,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최혜진 옮김 / 사계절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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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럴싸한데 모르겠는... 내게 요안나 콘세이요는 벌거벗은 임금님의 옷같다.

잃어버린 영혼도 만만치 않았는데 갈수록 더 어려워진다. 보고 또 보며, 눈으로 읽고 소리 내 읽으며, 어떻게든 알고 싶은데 쉬 해석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동봉된, 옮긴이 최혜진의 감상을 위해 묻는 편지에 기대본다.

 

질문 하나, ‘세네갈의 눈을 읽고 난 뒤의 감상으로 하나의 형용사를 고른다면 어떤 형용사로 이 책을 표현하시겠어요?

아름다운, 쓸쓸한, 스산한, 아련한, 서글픈... 그런 형용사들이 떠오른다. 이 중 굳이 하나를 고르라면 쓸쓸한. 일곱 살 어머니의 노래를 들은, 지금도 듣고 있는 아이의 마음도, 그 시절 기억 속 어머니도 쓸쓸하다. 국어사전에서 쓸쓸하다: 외롭고 적적하다.”로 확인된다. 내가 곁에 있는데 외로운 엄마가 불안하고 어찌할 수 없어 또 불안하다. 엄마는 내가 있어도 외롭고 적적하여 쓸쓸하다. 동어반복이지만 그렇게밖에 형용할 수 없는, 깊은 감정이다.

 

세 번째 질문, 이 작품은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녀의 목소리로 쓰였습니다. 책 속 화자는 팔월에 내리는 눈의 이미지로 엄마의 기억을 풀어냅니다. 여러분의 어머니는 몇 월의 느낌에 가까운 분인가요?

우리 엄마는... 내게 절대적 사랑을 주시는 전형적인, 헌신적인 엄마다. 나의 어머니... 몇 월의 느낌일까? 사월의 벚꽃.. 봄에 태어난 어머니는 봄꽃을 아이처럼 좋아하신다. 그러나 막 화사하고 아름답고 그렇지는 않으시다. 고생 많고 눌린 삶에 어울리는 달이 없다. 이월? 짧다.. 춥다.. 그래도 봄을 기다린다.. 우리 엄마한테 이월밖에 줄 수 없어 안타깝고 죄송하다.

 

마지막 질문, 책 속에서 이라는 단어는 무엇을 상징하는 걸까요? 자유롭게 자기만의 의미를 덧대어 본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설명하고 싶나요?

.. 팔월의 눈, 헛된 희망, 환상, 이곳이 아닌 다른 곳, 다른 것을 향한 기대, , 벗어나고 싶은 욕망, 현재의 정지, 일탈, 해방... 처음에는 그렇게 다가왔다. 그런데 다시 읽으면 추억, 화양연화, 수용, 포용, 받아들임 등 다른 빛깔로 비친다.

 

자꾸 읽으니 쓸쓸함에 매몰되지 않은, 슬프지 않은 용감한 엄마가 보인다. 노래를 부르고 울고 있는 엄마가 너무 명징해 그 뒤의 글들이 흘려졌나 보다. 다시 보니 그제야 보인다. 엄마는, 사람은 그런 존재다. 강인하기만, 여리기만 할 수 없는 존재다. 엄마가 그렇고 내가 그렇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가 엄마의 다일 수도 없다. 끝 장면 파랑새가, 노래를 부르고 울던 엄마가 바라보던 그 방향으로 향해 있다. 엄마는 체념하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는 내내 간직했을 것이다. 가장 가까이 있지만 그래서 누구보다 섣불리 안다고 단정하면 안되는 사람, 엄마다. 무한히 내 안에 울리는 엄마의 노래, 울음을 계속 들을 것이다.

 

그리고 미뤄둔 두 번째 질문, 열대 지방인 세네갈이 내린다는 표현처럼 이 책에는 얼핏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가 나란히 놓여 자주 등장합니다. 단어-단어의 조합뿐 아니라 단어-그림, 그림-그림의 조합도 찬찬히 눈여겨보세요.

게으른 독자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정답을 못 맞출까봐, 엉뚱한 답을 말해 우스워질까봐 걱정이 앞선다. 그만 외치고 싶다. “모르겠어요. 답지를 보여주세요!” 그러나 그런 해답지가 있을 리 없다. 느린 독자는 한 번에 찾을 수 없어 오래오래 찾아봐야 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같이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겠다. 각자의 엄마를 소환하며 각자의 그림책을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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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곁에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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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편을 들어준다는 것은
그가 옳다, 멋지다, 뛰어나다, 아름답다는 편견을 갖는 거라던 
지인의 그럴듯한 농담이 생각난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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