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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꼭 장소인 것 같다니까요. 그 기분과 그 느낌이 종묘라는 생각이 들어요. 갈 수도 있고 머무를 수도 있고 볼 수도 있고 그래서 묘사할수도 있는 곳."
이도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고 감정이 장소인 것 같다는 서유성의 말을 곱씹었다. 감정이 장소다. 감정이 장소다.  - P264

정말 칠십 편쯤은 썼으면 좋겠다. 그때까지는 왜 쓰지, 뭐쓰지, 어떻게 쓰지 고민하지 않고 열심히 쓸 생각.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사람이 되는 거야? 인생은 그런 게 아니야.‘ 맞다. 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 나도 안 믿고 싫어하는데, 나는 내가 그런 소설가가 되었으면 한다.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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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의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완성한 이 글이 엉망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겁니다. 둘째는 이걸 다시 쓰면 나아질 수있다는 것을 믿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 실제로 다시 쓰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고치고 다른 단어로 바꾸는 것이죠. - P230

죽으면 고인의 휴대폰에 저장된 모든 연락처로 부고를 보낸다고 하더구나. 난 생각했지. 그런 문자를 보내게 할 순 없다고. 그래서 전화번호를 다 삭제했어. 그거 하나 지웠을 뿐인데 가벼워지더라. 미련도 없고. 구속하는 것도 없고, 할일도 없고.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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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료시카 Dear 그림책
유은실 지음, 김지현 그림 / 사계절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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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이 생생하게 각각의 얼굴을 가지고, 겹겹이 쌓여 있는 것 같다.
내 안의 아이와 청소년을 잘 품어야, 내 밖의 아이와 청소년을 품는 작품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크고 넉넉한 품으로, 내 밖의 어리고 여린 존재들을 품고 싶다.”

유은실 작가님의 그림책이 나왔다. 유은실 이름만으로, 벅차오르는 팬심으로 격하게 반기고 당연히 맞았다. 그런데 첫인상은 어렵고 어두워 당황스러웠다. 봄결 같은 사람에게 찬 바람을 느꼈다고 할까. 위에 옮겨 적은 작가님 말을 새기니 찬 바람 들던 창이 닫힌다. 그리고 처음부터 찬찬히 다시 보니 온기 가득 유은실 그대로다.

마트료시카, 이국 인형의 생경한 이름을 발음하며 외웠을 때부터, 인형 속의 인형, 또 그 인형 속의 인형 그 신기함을 알았을 때부터 붙들려 있었다. 유은실 작가님도 그렇게 매혹되어 이런 시를 쓰셨을까. 품는다는 말로 어쩜 이런 숨결을 불어 넣을 수 있을까.

작가는 첫째에게 ~~ 주었습니다. 첫 문장의 작가는 엄마인가. 신일까.
“하나이면서 일곱이네.” 많은 피붙이가 나로 엉기고, 내 다중인격이 펼쳐졌다 오므려졌다 한다.
어둠에서 품고 빛에서 바라보다…… 아, 소설가님이 시를 쓰셨다. 엉엉 울고 싶은 싯구다.
다시 품은 입 없는 아이, 너는 누구니? 책을 덮어도 오래 골몰하게 하는 존재, 내 한가운데 있는 일곱째는 무엇일까.

내가 품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속이 텅 빈 것 같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 나를 품고 있는 존재들에 의지해 살아가고만 있는 건 아닌지 부끄럽다. 첫째지만 아직 영영 첫째가 못 될 것 같다. 나는 지금 어디쯤인가. 뒷모습이 쓸쓸한 넷째, 먼 하늘빛 보는 셋째 그쯤일까.

흩날리는 감상으로 서평을 채우자니 또 부끄럽다. 온기만으로는 부족한 내 안의 쓸쓸함 탓이다.

+
유은실 작가님 글만큼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주신 김지현 작가님께도 인사를 챙기고 싶다.
시리게 아름다운 그림 그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전쟁은 없고 자연 추위만 있는 시베리아 어딘가로 가만히 고요히 데려다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얀 눈밭에 모든 계절의 꽃이 다 어울려 펼쳐지는 상상을 보여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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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 한 장 그림책 사계절 그림책
이억배 지음 / 사계절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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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가죽공예 체험을 했다. 한 땀 한 땀 두꺼운 가죽에 구멍을 내고 바늘을 집어넣고 빼내느라 온정성을 기울였다. 그렇게 만든 세상 하나뿐인 내 지갑은 뿌듯함 그 자체였다. 이 책 제목 ‘한 장 한 장’이 지난주 ‘한 땀 한 땀’ 체험과 겹쳐진다. 이억배 작가님의 한 장 한 장 공들인 그림은 쉬 다음 장을 넘길 수 없이 한 장 한 장에 오래오래 머물게 한다. 한 장 한 장에 어마어마한 우주가 담겨 있다. 실제 표지 제목이 적힌 까만 네모가 흑판 같기도 하지만 더는 무한 우주로 열린 창문 같다.

온갖 동물, 책, 이야기가 어지러이 널려 있다. 아니다. 가만 보면 그 안에 엄연한 질서가 있다. 계절이 있고 방위가 있고 연결된 서사가 있다. 오른쪽 한 장 한 장 작품인 그림만 감상해도 넘치는 책이다. 실제 N차가 거듭될수록 글자는 떼고 그림만 보게 된다. 내 이야기를 짓는 것이다. 그래도 처음엔 글자를 따라가며 읽는 것이 좋다. 그림의 구심점을 찾아 숨은 그림 찾기 하며 노는 기분이다. 재미난 왼쪽 글이 훌륭한 도슨트가 되어주기에 구석구석 놓치지 않고 읽을 수 있다. 일례로 무시무시한 호랑이가 도끼로 나무를 찍어내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 그림에서 시작해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를 돌아보며 낄낄댔다. 그러다 왼쪽 글을 흘끔 다시 보니 가방 노리는 다람쥐, 고구마를 독차지한 아기 도깨비, 사과 다 먹고 배가 통통해진 애벌레가 있단다. 어? 나 못 봤는데? 그게 어딨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다시 꼼꼼히 되짚어봐도 없다. 그러다 한가운데 동그라미 안에서 다 찾는다. 등잔 밑이 어두운 것처럼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답을 두곤 헤맨 셈이다. 볼 게 너무 많아 길을 잃을 수 있다. 그러면 어떤가. 그대로 즐거우니 그만 아닌가. 그리고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되는걸.

읽을 때마다 읽는 시간이 늘어난다. 지난번 읽을 때보다 더 보이고 더 읽힌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 책은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 읽어내는 것만으로 뿌듯함 그 자체다. 다 헤아릴 수는 없어도 하염없이 내내 살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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