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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생활 월령기 (2017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 12가지 주제로 펼치는 교사의 한해살이
경기교육연구소 지음 / 에듀니티 / 2017년 3월
평점 :
훌륭한 멘토를 만났다. 교직의 이모저모를 사려 깊게 살펴 이야기해주는 데 무척 든든하다. 그저 관행이니 묻지 말고 하라는 암묵적 분위기 속에 ‘이걸 왜 해야 하지?’ ‘아이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지?’ 등등의 물음은 점점 사라져 나도 어느새 누군가의 그런 물음에 낯설고 불편함을 느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 눌려 있던 의구심이 다 사라진 건 아니어서 멘토를 만나 오랜 체증이 해소되며 새로운 희망을 꿈꾸고픈 마음이 퐁퐁 생겨난다. 막연히 답답하고 두려웠던 것의 실체를 온전히 직시할 만한 용기를 얻었다.
학교는 표준화된 준거에 의해 학생들을 관리하고 통제하고 변별하는 곳이 아니라 학생들을 교육적으로 성장하게 도와주는 곳이다. 패러다임은 그렇게 바뀌어 가는데 머리로는 수긍하고 동의하면서도 실천이 참 어렵다. 아마 나 스스로 교육철학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이리 흔들 저리 흔들... 경력이 쌓여도 위태로운 마음이 그대로였던 이유다.
새로운 교육 방법의 유입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이 주입식 교육 방법을 완전히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학생을 통제하고 장악하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악이 한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성찰한다면 ‘강압-통제-암기-평가’ 구조가 만든 주입식 교육방법을 계속 고집할 수는 없다. 더욱이 사회가 네트워크화하면서 타인과의 협력(사회성)과 문제를 설정하는 능력(창의성)이 중요해졌다. 미래 역량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학습의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 상황과 환경에 적응해서 새로운 질문과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인간의 역할이 될 것이다. 강압과 통제에 눌린 교실은 학생들에게 지배와 복종을 ‘평안하고’ ‘무감각하게’ 받아들이게 할 위험성이 크다. 기계나 인공지능이 커버할 수 없는 분야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통해 공감과 표현, 창조 능력 등 인간 고유의 영역을 살리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새로운 상상력과 교사 개개인의 명확한 교육철학이 필요하다. 교육은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질문을 던지는 것이어야 한다. 어떤 세상이 좀 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인지를 묻고 인간이 해야 할 일과 해서 안 되는 일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교육이다. 먼저 교사 스스로도 질문하고 고민하는 철학적 인간으로 성장해나가야 한다.
따뜻한 인격적 관계성이 학교교육의 본질이 되어야 한다. 교육이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다. 사람다운 사람이 사람답게 가르쳐야 사람다운 사람이 길러질 것이다. 교사의 세심한 관찰력과 너그러운 아량이 필요하다. 학생(뿐 아니라 어떤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의 전체적 면모를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몇 가지 특정한 모습으로 평가하여 낙인찍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학교가 잠재적 교육과정을 통해 가르치는 차별과 낙인, 여기서 비롯하는 열등감과 소외감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 길러지는 특권 의식이 우리 사회의 발전과 통합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거라는 사실은 분명하지 않은가. 매순간 우리가 행하는 언행이 우리가 추구하는 교육의 본질에 부합하는 일인지 돌아보고 돌아볼 일이다. 미래를 살아갈 학생들에게 어른들의 편견으로 무의미한 일에 집착하도록 하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순간순간 내가 그럴지도 모른다는 것을 섬뜩하게 느끼는 그 감각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교사로 지내면서 이런저런 일로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열린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가 그 마음을 물들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행복이 교사에게 있다는 것을 고맙게 받아들여야 한다.
평등과 협력의 철학으로 주목받은 핀란드교육 개혁의 산파 에르끼 아호는 ‘학교는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한 교양을 쌓는 과정이며 경쟁은 좋은 시민이 되고 난 다음의 일이다. 학교는 경기장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교사는 자신의 교실에서 지나치게 경쟁을 부추기지 않을 수 있고 협력의 가치를 몸소 체감할 수 있도록 교육활동을 펼칠 수 있다. 그렇게 적어도 작은 방파제 역할을 해줄 수는 있는 것이다.
교육은 왜 필요한가? 아이가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해 현실적으로 제 밥벌이를 할 수 있어야 하고, 주체적으로 사람답게 살 수 있어야 하며, 나아가 공동체에 기여하는 모습을 갖추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렇기에 교육의 중요한 본분이 바로 진로교육이겠다. 진로 교육에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시간’이다. 배움과 경험을 내면화할 시간, 역량을 쌓기 위해 노력할 시간,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내 길을 선택할 시간을 충분히 주어야 한다.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살도록 하려면 여유롭게 두는 것이 가장 좋다. 혼자 공상 하고 또래들과 흥겹게 수다를 떨고, 어른의 눈으로 보면 비생산적인 것처럼 보이는 ‘여유’를 주어야 한다. 창의력과 도전 의욕은 여유와 심심함을 통해 발동되는 것이니 말이다. 꿈은 밖에서 찾거나 고르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통찰을 통해 안에서 길러지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주체적 자아의 든든한 바탕 위에 세상에는 다양한 길이 있다는 것을 꿰뚫어보는 통찰력과 길이 없으면 내가 새로운 길을 낼 수도 있다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품 박람회와 같은 형태로 전개되는 진로 박람회는 오늘날 진로 교육이 결국 쇼핑 논리 아래 전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거짓과 형식을 조장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이 된다. 보여주기 식 체험활동을 강조하는 것보다 수업 자체를 내실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직업을 위한 보편적 역량은 협동능력, 문제해결능력, 의사소통능력이다. 체험활동은 충실한 수업과 결합할 때 의미가 있다.
우리 진로교육의 또 다른 문제는 노동의 부재이다. 사회는 노동에 의해 움직이며 어떠한 일도 힘들고 지루한 노동의 과정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자리 미스 매칭 현상이 심화된 데는 노동을 뺀 채 비현실적인 기대감만 부추기는 절름발이 진로 교육이 일조하지 않았는지 진지하게 점검해보아야 한다. 모 예능프로그램에서 한 어린이가 아이돌이 꿈인데 연습을 많이 하는 건 싫다고 한 대목에 마냥 웃을 수만 없었다. 힘들고 지루한 나의 노동이 곧 다른 이들을 돕는 것이라는 것, 그 대가로 수입을 얻어서 생활을 영위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세상을 만들어가는 ‘노동의 가치’를 내면화시킬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좋은 사회가 되도록 교사 이전에 시민으로서 열심히 살아야겠다.
국가가 일방적으로 만들어 주어지는 교육과정의 틀에서 벗어나 교육을 실천하는 학교에서 다양하게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으로의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요구이다. 변화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 교사의 의지와 노력이 변화의 동력이다. 교사들의 자발적인 연구, 학습 공동체를 중심으로 집단 지성을 발휘하여 서로의 전문성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이 교육에 희망을 만들어내는 충분조건일 것이다. 열두 달 내내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분주히 살아야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