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맨 The SandMan 1 - 서곡과 야상곡 시공그래픽노블
닐 게이먼 외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만화)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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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사이 쏟아져 나오는 미국 그래픽 노블들의 한국어판을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감개무량하다. 프랭크 밀러, 알란 무어, 알렉스 로스 같은 이들의 이름을 외화 좀 쓰시는 분들의 글을 통해서만 듣고 또 일러스트 한두 장씩 훔쳐보면서 침을 꼴딱꼴딱 삼키던 때도 있었는데, 어느새 그래픽 노블 역사에 길이 남는(다는) 걸작들을 한국어로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씬 시티(Sin City)] 한국어판이 나올 때만 해도 ‘거 출판사 참 용기 있네’하는 생각이 들었고(이즈음에는 나도 가끔씩 부모님의 힘을 통해 아마존에서 그래픽 노블 한두 권쯤 본 터라 감동하진 않았다), 이후 몇 편의 (덜 유명한) 작품들이 여러 출판사를 통해서 한꺼번에 나오자 ‘이렇게 모두들 바람 들려 나오다가 또 조만간 사업 다 접고 들어가 버리는 거 아닌가’하는 걱정이 밀려왔는데, 이 시장이 생각보다 오래 버티면서 설마 볼 수 있으랴 싶었던 작품들까지 나오니 이제는 정말로 그냥 기쁘게 환영하고 싶다. 특히 알란 무어의 [왓치맨(Watchmen)]은 워낙 마음에 들어서 한국어판을 사서 다 읽고는 원서를 또 샀고, 그림 좋고 강렬하기는 하지만 그냥 폼 잡는 마초맨 아닌가 싶었던 프랭크 밀러도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Batman: The Dark Knight Returns)]과 [배트맨: 이어 원(Batman: Year One)]까지 보고 나니 수퍼히어로 장르 안에 리얼리즘을 끌어들이고자 했던 그의 시도와 결과에 감탄하게 되었다. 이 작품들은 정말이지 몇 번이고 다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샌드맨 1. 서곡과 야상곡]의 첫 번째 에피소드를 읽고는 정말 할 말을 잃어버렸다. 닐 게이먼이 아니라 알란 무어와 프랭크 밀러의 팬으로서 말하련다. 알란 무어와 프랭크 밀러는 [샌드맨] 앞에서는 입 다물고 엎드려야 한다. 이건 아예… 다른 차원에 놓인 작품이 아닌가. 작가 닐 게이먼의 작품으로서도 그러하다. 팬터지 소설에 익숙한 이라면 잘 알겠지만 닐 게이먼은 우리나라에 꽤 여러 작품이 소개된 작가다. 테리 프래쳇과 공저한 멋진 코미디 소설 [멋진 징조들(Good Omens)], 영화판과 발맞추어 나온 [스타더스트(Stardust)], [스타더스트] 출간한 김에 함께 나온 듯한 [네버웨어(Neverwhere)], 조만간 애니메이션이 나온다는 [코랄린(Coraline)], 동화책 [금붕어 2마리와 아빠를 바꾼 날(The Day, Swapped My Dad for 2 Goldfish)], 그리고 최근에 번역된 [신들의 전쟁(American Gods)]까지. 그가 시나리오를 쓴 영화 [베오울프(Beowulf, 2007)]와 [미러마스크(Mirrormask, 2005)]도 극장 개봉하거나 DVD가 나왔고. 그리고 먼 옛날, 대한민국이 아직 미국산 그래픽 노블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던 시절, 역시 그가 작가로 참여한 그래픽 노블 [흑란(Black Orchid)]이 출간된 적도 있다(물론 그래픽 노블에 목말라 하던 나는 그걸 냉큼 샀다. 시대를 너무 앞서 나가셨던 당시의 출판 관계자 분들께 심심한 감사와 위로의 뜻을 전하는 바이다). 몇몇 단편집에 그가 쓴 단편이 실리기도 했고. 이 모든 작품들을 전부 일별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웬만큼은 보았다고 생각하는데, 아, 그러나 [샌드맨] 만큼 경이감에 도취되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먼 옛날 DC 코믹스의 역사 속에 잠시 존재했던 수퍼히어로 캐릭터 샌드맨에서 출발한 아이디어는 여기서 닐 게이먼을 통해 그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진짜 샌드맨, 즉 서구 설화 속 잠과 꿈의 요정, 더 나아가 꿈의 세계를 관장하는 신에 관한 이야기로 탄생한다. 1권 [서곡과 야상곡]은 샌드맨이 흑마술사들에 의해 유폐 당했다가 자유를 되찾은 뒤 잃어버린 자신의 힘을 되찾기 위해 길을 떠나며 겪게 되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흔한 이야기라고? 그러나 보라! 마이크 미뇰라의 [헬보이(Hellboy)]를 연상시키는 선정적인 오컬트(절대 부정적인 의미로 쓴 표현이 아니다)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성경과 그리스 로마 신화, 셰익스피어와 단테, 밀튼 등 지난 수백 수천 년 동안 서구 문화 속 상상의 세계를 다룬 온갖 요소들을 경유하면서 자신을 살찌운다. 어디 그뿐인가. 닐 게이먼은 [샌드맨]을 가능케 한 DC 코믹스에게 윙크를 보내는 듯 이 세계의 수퍼히어로들과 악당들을 인용하고, 그들을 플롯의 중심으로 삼기도 한다. 게다가 때로는 스티븐 킹과 맞먹으려 드는 “현대 미국 소도시 타블로이드 스타일 공포”까지 마음껏 펼쳐낸다. 다시 한 번 정말 미안하고 죄송하고 송구스럽지만 여기서 닐 게이먼이 펼쳐내는 공포의 강렬함에 비하면 [왓치맨]에 알란 무어가 이야기 속 이야기로 넣은 해적선 이야기 쯤은 그냥 습작 수준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물론 소재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펼쳐내는 솜씨 또한 대단히 인상적인데, 운명의 세 여신과 대화하는 장면에서 컷마다 여신들의 위치가 바뀐달지, 아니면 예전에는 루시퍼가 독재하고 있던 지옥이 요즘은 파리대왕 벨제붑과 아자젤까지 가세하여 삼두체제로 운영되고 있다는 식의 자잘한 디테일들에서 시작하여 전체 줄거리를 풀어나가는 방식까지 모두 상상력이 물씬 묻어난다. 신과 악마급의 존재들이 나와서 갈등을 벌인다 하여 우당탕쿵탕 스테일 큰 “액션”으로 때려 부수고 그런 단순하고 손쉬운 전개는 없다. 등장인물들이 그냥 좀 “쎈 놈”들이 아니라 세상을 구성하는 추상적인 개념의 화신인 만큼 어디까지나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권능의 특질에 따라 행동하고 겨룬다. 특히 샌드맨이 자신의 힘을 되찾기 위해 지옥의 악마와 지옥의 논리, 꿈의 논리를 이용하여 겨루는 “지옥의 희망” 에피소드나, 마지막 에피소드 “그녀의 날개소리”는 이 작품이 초월적인 존재들을 다루는 방식을 가슴 절절히 담아낸 명편이다. 


 어디 이야기만 좋은가. 연출도 끝장이다. 딱 부러진 직사각형 컷에 얽매이지 않고 화면 구성을 자유자재로 하는 것이야 이 작품만의 특질은 아니지만 특히 여기서는 한 페이지, 혹은 두 페이지의 컷들이 물결치듯 이어지고, 또 컷이 없는 공간에도 그림들이 들어차면서 전체가 하나의 큰 그림을 그리는 쾌감을 맛볼 수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 “깊은 잠”의 두 번째 페이지에서부터 그러한 정조가 엿보이는데, 그래도 “깊은 잠”의 경우는 비교적 “평범한” 형태의 연출을 따라가는 편이다. 허나 샌드맨이 힘을 되찾은 다음부터는 연출이 본격적으로 과격해지면서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것을 그려내는 방식에 있어서도 꿈과 환상의 세계(라고 하니 무슨 에버랜드 광고 같지만)를 나아간다는 느낌을 물씬 전해준다. 예컨대 “승객들” 에피소드에서 인간들의 꿈을 타고 자리를 옮겨 가는 샌드맨의 모습을 단 한 페이지로 뇌리 속에 박아 넣는 부분은 로저 젤라즈니의 [앰버 연대기(The Chronicles of Amber)]와, “지옥의 희망” 에피소드에서 지옥의 악마들이 집결한 모습을 두 페이지 한 컷으로 펼쳐낸 부분은 미우라 켄타로의 [베르세르크(ベルセルク)]와 맞먹으려 들면서 동작의 분절로 액션을 전달하는 대신 하나의 순간으로 이야기를 담아내는 그래픽 노블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또 그렇게 박력 넘치던 연출이 스티븐 킹 식 타이블로이드 공포를 제공하는 에피소드 “24시간”에 이르면 다시 비교적 딱딱하고 침착한 직사각형의 컷 안에서 이야기를 전개하기도 하고, 1권을 마무리하는 편안한 에피소드 “그녀의 날개소리”에서는 컷의 테두리를 지우거나 넓게 잡아 샌드맨의 권태와 한가로움, 그 누나 죽음(Death)의 유쾌명랑발랄상큼따뜻아름다운 동생 사랑이 배어나오게 식으로 계속 형태를 달리하는 것을 보면 어떠한 이야기를 어떠한 표현 속에 담아낼까 하는 문제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권 단위, 에피소드 단위, 장면 단위로 능수능란하게 바뀌는 연출이 닐 게이먼의 환상적인 상상력과 결합하면서 정말 굉장한 예술품을 접하고 있다는 포만감과 희열을 제공한다.
 

 지금 내가 너무 미사여구를 많이 써서 마치 책 팔아먹자고 난리치는 것 같은 느낌마저 줄까봐 걱정스러운데, 그래, 격한 흥분 상태에서 이 글을 쓴 건 사실이다. 하지만 ① 솔직히 이런 경지에 이른 예술품은 많이들 좀 사 봐서 창작자들에게 보답해줬으면 좋겠다는 심정이고(평소 잘 안 쓰는 인터넷 서점 리뷰를 써서라도 그렇게 되도록 하고 싶단 말이다!), ② 아무런 알맹이도 없는 주례사 평 안 쓰려고 구체적인 예도 들어가며 느낀대로 말했으니 떳떳하고, ③ 내가 아무리 둔한 혀를 놀려 별 소리를 다 했어도 직접 보고 나면 이런 수준의 표현은 [샌드맨]이 해낸 일의 반의반에도 못 미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훌륭한 그래픽 노블뿐만 아니라 훌륭한 팬터지, 훌륭한 이야기를 맛보고 싶으시며 우리의 꿈과 환상이 밥 먹고 사는 데에는 아무 짝에도 도움 되지 않는 쓸데없는 망상이 아니라 매일의 생활을 풍요롭게 만드는 지고의 가치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덧 하나. 번역자 이수현 님은 1권은 좀 산만한 편이라고 우려 섞인 말씀을 하시던데… 아니 다소간 우려해야 할 수준의 작품이 이 정도라면 대체 다음 권들은 어떻다는 것인가. 앞으로 열 권이 더 남았는데, 그걸 다 소화할 수 있을지 내 정신이 무척 걱정스럽다.
 

 덧 둘. 한국어판임을 알아차리기 힘든 저 표지는 DC 코믹스 측의 요구사항이라고 한다. 책 내용을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그대로 전달하길 바란 모양인지 맨 뒷장에는 국내 출간 여부는 확실하지 않은 다른 책들의 광고까지 모두 번역되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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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shot 2009-02-13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벗님께 알라딘에서도 뽐뿌를 받고 가네요-_-
글 잘 읽었습니다. 책은 보관함으로~
 

부끄러운 일이지만 내가 비소설류를 읽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해서, 이 리스트는 아직 부실하기 짝이 없다. (다른 리스트는 부실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면 달리 할 말은 없지만.) 허나 그건 거꾸로 말하면 나처럼 비소설류 읽기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책들의 목록이라는 말도 될 듯하여 이렇게 리스트를 만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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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의 세계 1
유재원 지음 / 현대문학북스 / 1998년 5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03년 09월 28일에 저장
절판
우리나라에서 그리스 신화하면 이윤기 씨를 가장 먼저 떠올리며, 확실히 그 분의 책은 그런 대접을 받을만하다. 그러나 그리스 신화를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데에는 유재원 교수의 이 책이 더 낫다고 본다. 개개의 신화를 통해 그리스 신화를 제시하는 일반 서적들과 달리 나름의 체계를 통해 그리스 신화에 접근하기 때문에 그리스 신화 전반에 대한 이해가 쉽다. 1권은 '올림포스 신들', 2권은 '영웅 이야기'.
멍청한 백인들
마이클 무어 지음, 김현후 옮김 / 나무와숲 / 2003년 4월
9,500원 → 8,550원(10%할인) / 마일리지 470원(5% 적립)
2003년 09월 28일에 저장
품절

아직 2003년은 다 가지 않았지만, 내게 2003년에 읽은 비소설 중 가장 좋았던 책을 꼽으라면 바로 이 책을 꼽을 것이다. 사회 고발 다큐멘터리 『로저와 나』,『볼링 포 콜럼바인』의 감독 마이클 무어의, 마찬가지로 사회 고발적인 책. 단지 사회 부조리를 씹는 걸로 그치지 않고 그에 맞서 무식할 정도의 행동력을 보여주는 그의 모습은 진짜 '지식인'답다.
전작주의자의 꿈- 어느 헌책수집가의 세상 건너는 법
조희봉 지음 / 함께읽는책 / 2003년 1월
9,000원 → 8,100원(10%할인) / 마일리지 450원(5% 적립)
2003년 09월 28일에 저장
절판

꼭 책에 미친 인간들이 있다. 지나가는 사람이 책을 들고 있으면 무슨 책인지 궁금해하고 처음보는 서점은 들어가봐야 직성이 풀리는. 이 책은 그런 미친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책에 미친 사람은 책에 대한 사소한 이야기도 그저 재미있기만 하다. 나는 조희봉 씨의 '전작주의'를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의 책에 대한 애정을 보는 것이 재미있어서 이 책을 좋아한다. 서울시 소재 헌책방들에 대한 정보는 덤.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부사령관 마르코스 지음, 주제 사라마구 서문, 후아나 폰세 데 레온 엮음, 윤길순 옮김 / 해냄 / 2002년 3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2003년 09월 28일에 저장
품절

당신은 라틴 아메리카에 대해 얼마나 아는가? '라틴 아메리카 문학과 사회'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알게 된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는 우리의 지난 날을 절로 떠올리게끔 한다. 그리고 아직도 그 땅 위에서 대륙을 좀먹는 전세계적 신자유주의에 대한 투쟁을 하고 있는 사내,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 부사령관 마르코스. 그의 글은 말로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투쟁이며, 동시에 읽는 이의 마음을 뒤흔드는 감수성 짙은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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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말해두지만, 나는 이 출판사 관계자가 절대, 결코 아니다. (관계자를 보고 싶으면 happysf 님 서재로 가시라) 다만 한 사람의 SF 독자로서 이 출판사에게 무한한 경의를 표할 뿐. 총서의 모든 작품에 대해 리뷰를 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 자세한 작품 소개는 마이리뷰를 참조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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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르부르의 저주- 귀족 탐정 다아시 경 1
랜달 개릿 지음, 강수백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3년 8월
8,900원 → 8,010원(10%할인) / 마일리지 440원(5% 적립)
2003년 09월 28일에 저장
절판
스타십 트루퍼스
로버트 하인라인 지음, 강수백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3년 6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2003년 09월 28일에 저장
품절
신들의 사회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6년 4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2003년 09월 28일에 저장
절판
불사판매 주식회사
로버트 셰클리 지음, 송경아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3년 4월
8,900원 → 8,010원(10%할인) / 마일리지 440원(5% 적립)
2003년 09월 28일에 저장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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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넘쳐나는 장르 팬터지들을 제외한 것은 의도적인 거다. 다 아는 작품을 소개하여 무엇하랴? 일반인들이 팬터지로 인식하지 못하는, 좀 더 넓은 범주의 환상 소설을 소개하는 것이 본 리스트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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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버 연대기 1- 앰버의 아홉 왕자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 / 예문 / 1999년 2월
7,500원 → 6,750원(10%할인) / 마일리지 370원(5% 적립)
2003년 08월 19일에 저장
절판
로저 젤라즈니를 '개폼잡는 마초맨'이라고 한다면 나는 반박할 수 없다. 그러나 개폼도 개폼나름, 마초도 마초나름. 현란하고 수려하며 상징성 짙은 이 하드보일드 궁정암투극을 어찌 비웃을 수 있으랴!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마르셀 에메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3월
13,800원 → 12,420원(10%할인) / 마일리지 69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03년 08월 19일에 저장

기발한 상상력을 토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안정되게 이야기를 끌어내는 데에 당해낼 자가 없는 마르셀 에메의 단편집. 작품들의 수준도 만만찮을 뿐더러 이세욱 씨의 번역과 해설 또한 매우 만족스럽다.
윈드 드리머
방지나 외 지음 / 명상 / 2000년 5월
7,500원 → 6,750원(10%할인) / 마일리지 370원(5% 적립)
2003년 08월 19일에 저장
절판
국내 환상 소설 작가들이 모여 만든 환상 소설 단편집. 국내 환상 소설의 단편이 소개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거니와, 그에 더하여 작품들이 모두 일정 이상의 수준은 된다는 사실은 독자를 기쁘게 하기에 충분하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중국의 달」을 추천한다.
향수 (양장)-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12,800원 → 11,520원(10%할인) / 마일리지 640원(5% 적립)
2003년 08월 19일에 저장
구판절판
어떤 수를 써서라도 지상 최고의 향수를 만들고 싶어하는, 그리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는 한 천재의 암울한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안정적이면서도 발랄한 말솜씨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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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그리고 두려움 1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코넬 울리치 지음, 프랜시스 네빈스 편집, 하현길 옮김 / 시공사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예상 밖의 일이지만, 열두 편의 단편을 통해 코넬 울리치를 만난 다음 떠오른 이미지는 알프레드 히치콕이라기보다는 박찬욱이나 윌리엄 셰익스피어였다. 물론 (아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그의 작품일) [환상의 여인(Phantom Lady)]의 '윌리엄 아이리시'를 통해 구축한 서스펜스 대가로서의 이미지는 이 탄생 100주년 기념 단편집인 [밤 그리고 두려움]을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나긴 하지만, 그 서스펜스는 기교나 문장, 혹은 촉박한 시간에만 의존하고 있지 않다. 이 단편집에서 코넬 울리치가 훌륭한 작품을 이끌어 낼 때는 언제나 도덕적 선택의 문제가 깔려있고, 그 위를 숙명적인 세계관이 덮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코넬 울리치와 알프레드 히치콕이 만나 만들어낸 최고의 영화가 다름 아닌 [이창(Rear Window, 1954)]이라는 점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밤 그리고 두려움]에는 전적으로 시간과 공간 설정으로 인해 빚어지는 긴장감에 의지하는 작품도 있다. 단편집의 서두를 장식하는 [담배(Cigarette)]와 [동시상영(Double Feature)], [횡재(The Heavy Sugar)]는 그런 서스펜스의 전형을 보여준다. 독이 든 담배가 누군가의 입에 물리기는 것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 것은 시간과의 다툼이고, 동시상영극장을 무대로 인질범과 대치하는 경찰의 모습이나 우연히 장물 다이아몬드를 손에 넣은 거렁뱅이의 하룻밤을 담은 것은 공간에 의한 다툼이다. 이 단편집에서 가장 수준이 떨어지는 펄프 액션물인 [요시와라에서의 죽음(Death in the Yoshiwara)]도 어느 정도는 공간에 의지하는 서스펜스를 보여준다.

 한편 [색다른 사건_재즈 살인사건(The case of the Killer-Diller_A Swing-Murder Mystery)]이나 [유리 눈알을 추적하다(Through a Dead Man's Eye)], [죽음의 장미(The Death Rose)] 같은 경우는 좀 더 전형적인 서스펜스를 제공한다. 인물만 다를 뿐 구조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는 [색다른 사건_재즈 살인사건]과 [죽음의 장미]는 연쇄살인범을 미끼로 낚으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흔한 서스펜스를 다루고 있고 [유리 눈알을 추적하다]의 경우는 소년을 화자로 내세워 꽤 뻔한 수준의 추리를 토대로 아동 액션 모험극을 만들어 낸다.

 1930년대 중반에서 40년대 초반 사이에 발표된 이런 단편들은 대부분 그 설정 자체는 대단히 뻔해서, 그렇고 그런 할리우드 액션 영화에서도 이미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것들이다. 하지만 히치콕이 탄생한지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이창]은 IMDB 인기순위 14위에 올라와 있고 [싸이코(Psycho, 1960)]는 공포영화의 '살아있는' 교과서이듯, 코넬 울리치의 단편들이 제공하는 서스펜스 역시 조금도 그 힘을 잃지 않는다. 서스펜스에서 중요한 것은 설정보다는 말하는 방식이고, 코넬 울리치의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빠른 전개는 거장으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 단편집에서 좀 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것은 다른 단편들, [용기의 대가(Blue is for Bravery)], [목숨을 걸어라(You Bet Your Life)], [엔디코트의 딸(Endicott's Girl)], [죽음을 부르는 무대(The Fatal Footlights)], [하나를 위한 세 건(Three Kills for One)} 같은 단편들이다. 대게 경찰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이 단편들은 필름 누아르 혹은 하드보일드 탐정 장르의 정수를 꿰뚫고 있는 작품들이다. 여기서 주인공들은 환경에 의해 도덕적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특히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작가의 시각도 점점 변화해 갔는지 [용기의 대가]에서는 주인공이 단 한 번의 도덕적 선택을 한 다음부터는 시간과 다투는 액션 스릴러로 전개되던 것이 [목숨을 걸어라]에서는 주인공이 거의 끝까지 방관자의 입장에서 불의를 두고 갈등을 하는 것으로 바뀌고 [엔디코트의 딸]에 이르러서는 아예 주인공마저 독자가 심판할 대상으로 만드는 등, 울리치가 그려내는 세계가 점점 더 구원받기 힘든 음울한 세계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무척 흥미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넬 울리치의 단편이 표면적으로는 주인공이 승리하고 범인은 잡히는 해피엔딩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것은 생각해볼만한 일이다. 이는 고전기 할리우드 영화가 선택한 형식적인 해피엔딩이 종종 작품의 씁쓸함을 더해주었던 것을 연상시키는데, 특히 [윌리엄 브라운 형사(Detective William Brown)]의 결말은 이런 느낌을 확인하게 해주는 명작이라고 할만하다. (역시 오늘날의 시각으로는 도식적인) 둔하지만 청렴한 형사 조 그릴리와 재빠르지만 부패한 형사 윌리엄 브라운의 일대기를 다루는 이 작품에서, 윌리엄 브라운의 몰락은 이 작품 전체에 드리운 음울함을 걷어내지 못한다. 조 그릴리가 목격해온 그의 죄에 비해 속죄 의식은 너무 빠르고 가벼우며, 그 속죄는 죄의 희생자들을 보상해주지도 못한다.

 이런 암울함은 [죽음을 부르는 무대]나 [하나를 위한 세 건]에서 더욱 짙게 드러나는데, 이 작품들에서 사실상 서스펜스 액션의 명쾌함은 완전히 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범인을 잡기 위핸 형사들의 집요한 추적과 술책은 범인들과 마찬가지로 악랄하고 무자비하며, 결국 독자에게 엔딩에 대한 의구심마저 불러일으킬 정도다. [죽음을 부르는 무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형사의 수사 기법에 대한 부서장의 논평을 보자. "그 수사 기법은, 습관적으로 자주 사용하라고 권장할 만한 것은 아니로구만. (…) 하지만 이번에는 훌륭한 수사 결과를 이끌어냈고, 그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거야." 그러나 독자에게는 분명 이 말은 정반대로 읽힌다. 결과가 좋다면 다 좋은 것인가? (재밌는 일이지만, 이 물음은 불꽃같은 전개에 비해 결말은 다소 싱거운─물론 그것이 결함이라고 하긴 힘들다─울리치의 순수 서스펜스 작품들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불의 앞에서 선택을 강요당하는 주인공을 그려내던 울리치는 이 시점에서 불의를 응징하기로 선택한 주인공은 또 다른 불의가 아닌지 판단해보게 만든다.

 이 정도만 해도 [밤 그리고 두려움]의 가치는 충분하다. 하지만 "밤은 젊고 그도 젊었다."([환상의 여인]의 첫 문장)로 얘기되는 코넬 울리치의 문장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물론 위의 단편들이 문장력이 떨어지는 작품들은 아니지만 문장력이 서스펜스나 도덕적 갈등에 눌리는 것도 사실이다. 적어도 재즈 시대의 대가 F. 스콧 피츠제럴드를 언급하며 격찬할 수준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다행히, 작품이 하나 더 있다. 3~40년대 작품으로만 엮인 이 단편집에서 유일하게 1970년에 발표된 작품, [뉴욕 블루스(New York Blues)]. 극단적으로 말해서, [밤 그리고 두려움]이 지닌 미덕의 절반 이상이 이 한 작품에 담겨 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호텔방 안에서 찾아오고야 말 뭔가(혹은 누군가)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코넬 울리치 작품에서 기대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특징들을 포함하고 있다. 시적인 문장, 우울하고 숙명적인 분위기, 치밀한 묘사에서 우러나오는 서스펜스. 가히 잘 쓰여진 문장이 인간의 내면을 어디까지 파고들고 독자를 얼마나 끌고 들어갈 수 있는 가에 관한 명답이라고 할만하다.

 국내에 소개된 몇몇 장편을 통해서만 알려진 채 전설의 거장처럼 불려왔던 코넬 울리치의 작품들이 열두 편이나 쏟아진 것은 실로 축하할만한 일이다. 물론 여기 실린 열두 편의 작품 중 열한 편이 비교적 작가 활동의 전반부에 쓰여진 작품들인지라 이것만으로 코넬 울리치의 정수를 맛보았다고 하기는 힘들다. 코넬 울리치 스스로가 최초의 범죄 소설이라고 칭한 [검은 옷의 신부(The Bride Wore Black)]이 1940년에 발표된 것을 생각해보면 이 단편집은 대가의 정수를 눌러 담았다기보다는 오히려 대가의 탄생을 엿볼 수 있는 단편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히치콕의 미국 시절 영화가 있다고 해서 영국 시절 영화를 버릴 필요가 없듯이, 이 작품들에 만족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게다가 편집자 프랜시스 네빈스가 쓴 단편 하나 분량의 풍족한 서문이 곁들여졌으니 더욱. (참고로 출판사 측에서는 "단편의 내용이 서문에 언급되기도 하고 글 자체가 워낙 작가, 작품에 대한 상세하고도 넓은 시각을 제공하기에, 만약 울리치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각 단편을 모두 읽고 서문을 읽어도 좋을 듯하다"는 이유로 서문을 책의 맨 뒤에 배치했다. 옳은 말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이런 책을 앞에 둔 독자가 할 일은 읽고, 즐기고, 고민하고, 코넬 울리치 작품을 더 소개하고 싶다는 역자 하현길 씨의 바람이 이뤄지기를 기원하면서 주변에 추천하는 일 뿐이다.



 덧 하나. 코넬 울리치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들을 감독한 감독들의 이름은 언제 봐도 흥미롭다. 서스펜스의 대가 알프레드 히치콕이나 필름 누아르의 달인 로버트 시오드막, 혹은 필름 누아르 스타일을 통한 공포를 창출한 제작자 발 루튼 사단의 기수 자크 투르네 감독이 있는 것은 그리 놀랍지 않다. 하지만 프랑수아 트뤼포가 코넬 울리치 영화를 두 편이나 만들었다는 것은 누벨바그 감독들의 필름 누아르 애호 기질을 떠올려 봐도 꽤 재밌는 일. 거기다가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이름까지 더해지면 새삼 울리치의 세계가 품을(제공할) 수 있는 영역이 얼마나 넓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덧 둘. 독자에 따라서는 순수 서스펜스 소설을 최고로 치고 경찰물은 힘이 떨어지며 [뉴욕 블루스]를 최악으로 꼽기도 하는 모양이다. 취향차라고 해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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