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십 미래의 문학 5
스티븐 백스터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먼저 : 나는 허버트 조지 웰스가 현대 독자들에게 쉬이 먹힐 만한 SF 작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 혹시 "현대 독자"라는 표현이 지나치게 과감하고 모호하다면 다음과 같이 바꿔 말할 수도 있겠다. 나는 내 또래의 지인들에게 SF 소설을 곧잘 권해보는 편이지만, 웰스의 소설을 권하면 즐겁게 읽어주리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내가 좀처럼 즐겁게 읽질 못했기 때문이다.

 

 SF 팬으로서 의무감을 느끼며 웰스의 책을 억지로 집어들었던 것도 아니다. 내게는 정말이지 그토록 위대하다는 그의 작품을 반갑게 맞이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SF는 물론 좋아하고, 19세기 영국 소설도 좋아하고, 웰스의 작품을 토대로 한 이후의 유산들 주로 영화 도 좋아하니까. 하지만 그의 화자들이 내뱉는 19세기 영국 지성인스러운 '통찰''경악'의 언어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곰팡내는 어쩐지 견디기 어려웠다. 차라리 낭만에 푹 젖은 채 호들갑을 떠는 목소리였다면 즐길 수 있었으련만. 냉정하면서도 인간다운 품성을 지닌 이상적인 관찰자를 자처하면서도 예상에서 조금만 벗어난 사태가 벌어지면 경악을 금치 못하며, 충격과 당황에서 우러나온 무분별한 행동을 인간다운 감정의 발현이라며 포장하는가 하면, 섣부른 가설을 늘어놓으며 자신의 발견에 의기양양해하는 태도에는 거부감이 들었다. 물론 나는 아직도 이것이 내 불성실한 독서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웰스를 (한때는 지루하다고 여겼으나 지금은 더없이 좋아하는 H.P. 러브크래프트처럼)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으로서는 웰스 SF의 매력을 말하라고 한다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기에 스티븐 백스터의 타임십을 열렬히 추천하기란 다소 난처한 일이다. 이 책은 웰스의 타임머신에 대한 속편이다. 그것도 느슨한 속편이 아니라 전편과 딱 달라붙어 있는 속편이다. 이야기는 웰스의 타임머신마지막 장면을 이어받아 시작하며, 주인공 시간여행자는 종종 전편에 등장했던 주요 사건이나 인물을 자세한 설명 없이 환기한다. 관련 사항에 관한 주석도 없다. , 이 책은 웰스의 타임머신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는 추천할 수 없는 책이다. 어떻게든 읽히고 싶다면 타임머신까지 함께 권하며 읽는 순서를 알려줘야 할 판이다. 게다가 속편이란, 특히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을 이어받아 다른 작가가 쓴 속편이란, 흔히 열등한 복제물 취급을 받는 경향도 있지 않던가? 더구나 타임십한국어판의 분량은 7백 쪽을 넘어간다. 편집이 헐겁지도 않다. 정리하자면고전 명작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기는 하지만 나 자신은 별반 매력을 느끼지 못할뿐더러 내심 고리타분하다는 생각마저 품고 있는 19세기 SF를 바탕으로 하여 100년 후에 원작자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다른 작가가 쓴 7백 쪽이 넘는 속편을 권한다는 게 말이 되나?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라도, 이 책을 추천해야만 한다. 정확히 위와 같은 어려움 탓에 타임십을 꺼리는 잠재 독자가 나 말고 또 있을 게 아닌가. 그런 독자들에게 말하노니, 타임십에는 굳이 타임머신부터 찾아 읽고 사전지식을 쌓은 다음 책장을 펴는 수고로움을 감수하고서라도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충분하다 못해 넘쳐 흐른다. 하나의 기술을 토대로 사고를 확장하고 확장하고 확장하고 확장한 끝에 한 사람의 인생과 그가 사는 세계와 우주와 존재 자체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뒤바뀌는 고전적 SF의 장대함(감히 SF의 정수라고까지 단정하고 싶어지는)이 전편을 아우르는 거대 서사를 책임진다. 그 아래로는 웰스 이후 100년 동안 쌓인 숱한 SF의 소재며 하위 장르가 무리 없이 섞여들며 디테일을 빼곡하게 채워넣는다. 외계지성체와의 근접조우, 다중 우주, 대체 역사, 스팀펑크, 공룡 SF, 사이버펑크, 핵전쟁 이후의 디스토피아, 아서 C. 클라크 스타일의 종 변화와 우주 확장 등이 여기에 다 있다. 어느 하나 건성으로 다뤄지지 않으면서도 또 어느 하나에 지나치게 매달리다가 전체 흐름을 말아먹는 무리수도 두지 않는다. 그야말로 균형 잡힌 종합선물세트다.

 

 『타임머신을 읽을 때는 영 거북스러웠던 시간여행자의 목소리도 여기서는 별 불편 없이 받아들일 만하다. 백스터가 웰스를 무시한 채 함부로 시간여행자의 성격을 바꾸었기 때문은 아니다. 역자 해설에서는 "무엇보다 독자들이 가장 큰 위화감을 느낄 만한 부분은 시간여행자의 성격일 것이다. 웰스가 그려냈던 19세기의 논리적인 전인은 온데간데없고, 나이와 탈모를 고민하며 자존심과 편견에 얽매여 자신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슬픈 딜레탕트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라면서 "그저 관찰자일 뿐이었던 타임머신의 시간여행자""실수투성이이기는 하지만 계속해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고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수정하려 노력"하는 인물로 바뀌었다고 지적하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타임머신에서부터 시간여행자는 미래 사회에 대해 성급한 가설을 세우기도 하고, 성격과 외모와 주거 환경을 근거로 엘로이들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한편, 몰록에게 노골적인 혐오감을 드러내며 폭력을 행사하고 거기에서 내심 쾌감까지 느끼는 '19세기 영국 지성인'이 아니었던가. 웰스의 문체와 백스터의 문체를 비교할 자료나 역량은 없지만, 적어도 성격을 두고 보면 백스터가 묘사한 시간여행자 역시 (과연 이 작품을 공식 속편으로 인정해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웰스의 인물 조성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시간여행자가 타임머신을 읽을 때보다 훨씬 견딜 만한 인물이 되었다면, 그것은 타임십이 펼쳐내는 사건의 규모와 과격함이 한결 장대한 덕분이다. 이 작품에서 시간여행자가 맞닥뜨리는 세계의 변화는 정신이 한 시대에 묶여 있는 사람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파격적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기존의 생각을 수정하고 새로운 가치관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파괴적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주관적인 여행 시간도 최소한 타임머신의 수백 배에 달한다. (작가가 정신만 차리고 있다면야)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수정하고 변화하는 인물로 거듭나지 않는 편이 이상하다. 그리하여 그는 최후의 최후에 이르러서도 19세기 영국인이라는 뿌리를 망각하지는 않으나, 또한 무한한 우주를 본 존재로서 자신이 영원한 이방인임을 이해하고 스스로 미래를 향해 발을 딛는 사람으로 변모한다. 지금 선 자리를 돌아보되 가변적인 세상을 직시한다. 흡사 우주와 변화를 다루는 SF 안에 선 인간의 자리를 대변하는 듯하지 않은지. 그는 인류의 끝을 보고 돌아온 다음에도 시선이 동시대에 묶여 있는 것처럼 보였던 (그래서 당대 사회에 대한 비판의 알레고리로만 소모될 위험도 갖추고 있던) 웰스의 시간여행자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사람이다. 실로 거인의 어깨를 타고 올라 청출어람을 이룬 속편이라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숱한 명장면 중에서도 시간여행자와 네보깁펠이 새로운 미래의 인류를 향해 도약하는 장면을 거론하고 싶다. 타임머신 안에 탄 관찰자가 타임머신 밖에서 빠른 속도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변화하는 세상을 바라보는 대목이다. 이와 같은 장면은 타임머신에도 있었다. 다만 그때 웰스는 시간의 풍화 작용 속에서 재빨리 인류 문명의 흔적을 지운 다음 자연이나 지구, 인류라는 종의 최종 단계를 묘사하는 데에 주력했다. 그는 인류 이후 우주와 시간의 끝을 향해 나아가는 대신, 인류가 맞이하게 될 세계의 디스토피아적 황량함을 통해 지금의 인류를 돌아보도록 이끄는 쪽에 가까웠다. 반면 백스터의 눈은 (100년 동안 쌓인 과학 소설의 전통에 의지하면서) 좀 더 오랫동안 인류 문명의 풍경 변화에 머문다. 도시가 커지고, 융성하고, 확장되고, 원래의 자리는 허물어진다. 마찬가지로 인류는 지구 위를 뒤덮고, 우주로 나아가는 발판을 만든다. 아서 C. 클라크의 비전을 받들어 궤도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궤도 식민지를 건설하고, 인류가 하늘로 올라가고, 식민지 수가 늘어나고, 지구는 점차 메말라가고, 하늘로 올라간 인류는 급기야…….

 

 어마어마한 세월 동안 천천히 쌓일 변화를 타임머신의 빨리감기 기능을 통해 바라보는 이 대목에 이르러, 문득 이것이야말로 나를 SF로 끌어들인 즐거움이었음을 자각했다. 아름다운 문장이 아니다. 섬세한 감정 묘사가 아니다. 캐릭터의 개성도 아니고 동시대에 대한 알레고리도 아니고 도덕적 교훈도 아니다. 오직 전제, 추론, 확장, 객관적 사실의 단계적 나열뿐. 그 사고의 명징함이 발 딛고 사는 세계의 변화를 가져다준다. 그 변화는 단지 추상적인 관념으로서가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실체로 다가온다.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이 바뀌고 관점이 바뀐다. 불현듯, 관점이 달라졌다는 말은 인류가 달라졌다는 의미임을 실감한다. 독자인 나조차 인류 구성원의 하나로서 그 순간만큼은 마치 다른 존재로 변이한 듯한 기분마저 느낀다. 그렇게, 타임십은 나를 SF를 읽기 시작한 순간으로 돌려보내주었다. 기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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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누아노 2017-12-08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이렇게 글을 잘 쓸까요..
저 같은 글재주, 어휘력이 부족한 사람은, 작품을 보고선 여운을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어서 답답하곤 하는데, 남에게 기대더라도 제 속이 다 시원하네요. ㅎㅎ;
혹시 다른 멋진 SF 소설 추천해주실만한 게 없을까요..?
현재 별의 계승자와, 유년기의 끝은 가지고 있어요.


oldies 2017-12-08 13:27   좋아요 0 | URL
4년 전에 쓴 글이고 이제는 감상문 안 쓴 지도 꽤 됐는데 댓글이 달려서 부끄럽네요.

좋은 SF 소설은 세상에 지나치게 많고, 요즘은 한국 출판 시장에도 너무 많아서 막연하네요. 그래도 [타임십], [별의 계승자]와 같은 맥락에서라면 로버트 J. 소여의 [공룡과 춤을]은 어떠실지요.

미누아노 2017-12-08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소개를 보니깐, 재밌을것 같네요~@@
추천 정말 감사드려요. 꼭 보도록 할게요.
그리고 앞으로 가끔씩이라도 계속 리뷰해주셨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