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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의 탄생
니겔 로스펠스 지음, 이한중 옮김 / 지호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저 사실을 알고도 동물원에서 맘편히 '코끼리 아저씨'에게 과자를 던져줄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거짓말 아니냐고? 이 책을 읽어보라.
동물원은 아이들에게 자연학습의 장이 되어줄 뿐 아니라, 가족의 화목한 이미지를 떠올릴 때면 늘 등장할만큼 사랑과 평화의 장소였다. 그런데, 그것은 인간만의 평화였을 뿐, 동물로서는 알렉스 헤일리의 걸작 '뿌리'에 다름 아닌 것이다. 자유로운 평원에서 배고픔을 채울 때 외에는 한번도 불필요한 사냥을 하지않고 평화와 공존을 유지하며 살아왔던 위대한 생명체들은 제 몸 약한 것을 보완하려고, 얍삽하게 불 뿜는 총을 발명해낸 인간에게 사로잡혀 평생을 갇혀 살아가게 된다. 또한 어미는 통제가 쉽지 않기에 사냥꾼은 새끼를 사로잡으려 하는데, 새끼 한마리를 잡기 위해 평균 60여 마리의 어미를 사살했다고 하니 그 사실을 알고난 지금부터는 차마 동물원에 김밥을 싸들고 갈 수가 없다. 지금의 동물원 동물들은 모두 그들의 후손이거나 아니면 아직도 유사한 방법으로 사냥꾼에게 '채집'된 표본 그 자체이므로.
혹자는 말한다. 야생에서 포획자에게 잡혀 먹거나 기근에 굶어 죽느니 동물원의 쾌적한 환경에서 평생 음식을 제공받으며 안전하게 살아가는 게 무엇이 나쁘냐고. 만일 당신에게 똑같은 선택이 주어진다면 당신은 아니 우리는 어느 쪽을 택하게 될까. 제 몸의 2배 남짓 되는 공간에서 인간의 운영 편리를 위해 방부제로 가공된 물기 없는 사료로 평생을 배부를 것인가, 너른 초원에서 자신의 지혜로 무리를 이끌고 자신의 의지로 배우자를 선택하며 자연의 변화에 도전하거나 혹은 그 경이로움에 취해 평화롭게 살아 갈 것인가.
동물 이야기라 공감이 가지 않는다면 여기 더 그럴 듯한 예시가 있다. 동물원의 탄생을 가져온 하겐베크 동물원에서는 한 때, 동물 장사가 시들해지자 이국적 풍치를 관람객에게 선사하기 위해 북극의 에스키모, 아프리카 원주민 더 나아가 소인증, 안면비대증 등 희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전시했었고, 이는 오늘 날 서커스의 전신이 되었다.
이 책은 이처럼 철저히 은폐되어온 야만의 역사를 낱낱이 파헤친 어느 장 하나도 충격적이지 않은 곳이 없지만, 거대한 체구의 현명한 어미 코끼리가 총을 맞고 쓰러져 피의 강을 이루는, 그리고 그 옆에서 새끼 코끼리가 겪는 충격과 고통의 도가니를 묘사한 부분에서는 차마 책을 덮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이다.
이 책을 읽고 독자는 할 말이 한마디 밖에 없었다. '어떡하지? 우리 엄청 잘못했고 지금도 그러고 있는데...우리 어떡해!!' 우리가 인간이라면 지구상 모든 동물들에게 머리 숙여 1000배를 해도 모자라다. 어느 누구 하나 예외가 아니다. 야만의 역사, 지금 빨.리. 중지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