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이 모르는 개들의 삶
엘리자베스 마셜 토마스 지음, 정영문 옮김 / 해나무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매일 같이 산책하고, 밥을 주며 적어도 1만 년 동안 인간과 함께 살아온 개, '나는 얼마나 개에 대해 알고 있을까?' 이 단순한 물음으로 저자는 이 책의 집필을 시작한다.

대충 7마리 이상의 개와 숲이나 원시림이 아닌 자신의 동네와 집에서 때론 무덤덤하게 때론 가슴 아픈 사건을 겪으며 그들의 삶을 관조한 개 관찰일기는 개를 기르거나,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아주 반가운 글이 아닐 수 없다. 또, 소재가 개이기 때문일까. 기존의 사자, 코끼리를 다뤘던 동물행동학 보고서에 비하면 문체도 내용도 딱딱하지 않고 쉽게 읽혀 더 좋다.

그러나, '개가 먼지묻은 뼈다귀를 인간이 탐낸다고 오해하고 으르렁 대듯, 인간이 다른 동물 종을 해석하는데 자신의 가치와 경험을 적용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며 관찰에 자신의 감정이입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한 까닭인지, 아주 가끔은 보고 내용에 작가의 개입이 지나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독자가 동물행동학을 학문으로 배우려는 게 아니라면 개에 대한 작가의 애정으로 눈감고 넘어가 줄 만 하다. 이는, 중간중간 등장하는 자연스런 개의 스케치도 한 몫을 하는데, 다소 긴장된 내용에서 자연스럽게 기지개를 켜고, 엉덩이 테스트를 하는 개의 그림을 보다 보면 아침에 봤던 우리 개의 모습이 떠올라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때때로 '왜 산책 할 때, 내가 개를 따르면 안되고, 개가 나를 따라야만 한다고 생각했을까?' 같은 아주 당연하나 한번도 의심해보지 않았던 질문들을 던지는데 이 모든 것이 인간이 개를 하나의 독립개체로 생각하지 않고 인간의 부속품 정도로 여겼던 것 아니냐는 나즈막한 꾸짖음으로 들린다.

이런 인간의 오만은 개량 품종 이야기를 하며 좀 더 심각해지는데, 퍼그는 얼굴을 기형적으로 짧게 인위적으로 개량한 품종. 그 개들은 좁아진 얼굴에 기존의 뇌,뼈 등을 수용할 공간이 부족해 모든 기관들이 기형적인 두개골 속에 억지로 밀어넣어지는 꼴이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흥분하면 과도한 발작을 일으킨다던지, 조그만 충격에도 눈알이 튀어나온다든지, 평생 비염을 달고 살아야 하는 부작용을 갖고 있는데, (이는 과도하게 납작한 코를 가진 페르시안 고양이에게도 해당된다.) 이는 작가가 지적한대로 인간이 무릎꿇고 백배 사죄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심각하고 무거운 얘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오랜 관찰 끝에 마침내 개들의 생각과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은총'의 순간을 갖게 되는데, 그 비밀을 누설하는 것은 '식스센스'의 결말을 이야기하는 실례를 범하는 것 같아 밝히지 않겠다. ^^

마지막으로 인상깊었던 것은, 이 책의 내용과 관련해 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지긴 했지만 개한테 우선적으로 감사를 표하고 싶다는 대목이다. 이는 기존의 인류학자들이 조수나, 가족들에게 감사하면서도 정작 관찰의 대상이 되어주고, 생활상을 보여주며, 귀찮은 질문에 대답해준 참을 성있는 토착 주민들에게 감사를 잊고 마는 인류학자들의 오류를 범하고 싶지 않아서라고 한다.

요즘의 애완동물과 같이 과도한 애정표현이 아니라, 무미 건조한 친밀감으로 그들의 삶을 보여준 마리아, 미샤, 빙고...와 같은 그녀의 개들에게 독자로서도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다.

PS. 두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는데 북극 원주민 집에서 온 암캐 코키를 보며 그녀의 과거가 고통의 연속이었다... 고 한 부분은 자칫 북극 원주민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갖게 될 소지가 있을 듯 하며, 암컷 마리아가 짝짓기를 하는 부분에서 '한 마리 이상의 수컷에게 자신을 [허락]하거나 여러 날에 거쳐 다른 개들에게 [자신을 주는]' 이라는 표현은 눈에 좀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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