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늑대의 눈 비룡소의 그림동화 56
조나단 런던 글, 존 반 질 그림, 김세희 옮김 / 비룡소 / 2000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도 그렇다고 어른을 위한 동화도 아니다. 단지 늑대를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고 어루만지기 위한 책인 것이다. 겨울을 나는 늑대가 눈밭에서 추위와 싸우며 먹이를 찾고, 사냥에 실패하고, 싸움을 하다, 제 짝을 찾는 이야기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한번, 아니 여러번은 보아왔던 이야기이다. 그림도 딱히 특이하거나 수준이 높지도 않다. 늑대는 특유의 고독과 사나움, 그에 반하는 가정적인 이미지로 신비한 매력을 일찌감치 알려 달빛아래 울부짖는 당당한 모습이 오래 전부터 많은 화가들의 화폭에 담겨졌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고 이 책이 시시한 책인가 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이 이야기는 이상하게도 그 모든 평범함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찡하게 와닿는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풀한포기 없는 삭막한 겨울 풍경 속에 무뚝뚝하리만치 감정이입을 절제된 이야기 때문에 오히려 생생하게 자연 그대로의 늑대의 감정과 모습이 전해져 오는 것이다. 본디 늑대란, 자연이란 인간이 호들갑 떨며 개입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지켜볼 때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첫장을 넘기는 순간, 이 책은 나를 몇날 며칠 추위에 떨며 늑대를 기다리는 눈덮인 산악의 동물행동학자로 만들어 준다. 이보다 더한 감동이 있을 수 있을까.

PS. 책의 뒷면에 늑대 관련 단체 정보가 나와있는 것도 묘한 재미를 준다. URL이 나와있으면 더 좋을 걸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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