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안경이 더러울 때처럼 눈앞에 뭐가 낀 듯하고 떠다니는 듯한 것들이 보였다. 평상시에는 큰 지장이 없는데 책을 읽을 때는 굉장히 거슬리고 방해가 됐다. 안과를 갔더니 '비문증'이란다. 눈에 약을 넣어서 동공이 커지게 한 뒤에 눈을 사방으로 돌리게 하고 들여다봤다. 망막이 떨어져나가고 그런 건 아니란다. 고도근시인 경우에 생기기도 하고 보통은 노안으로 인해서란다. 따로 치료법은 없고 심해지면 다시 오란다. 흑. 노안이 맞구나. 책을 읽거나 스마트폰 컴퓨터 이런 거 자제해야 되냐고 하니까 아니란다. 심한 운동만 자제하란다. 그런 건 애초에 안하니까.

 

그래도 원인을 아니까 그나마 다행이다. 병도 아니라고 하고. 이제부터 눈의 건강에 좀더 세심한 신경을 써야 하겠다. 시력 회복을 위한 책들도 봐봐야겠다. 시력이 좋아지진 않더라도 눈 운동이라든가 눈의 건강에 대하여 읽어둘 필요가 있다.

 

시야를 방해하는 그것들에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게 우선이다. 노안이려니 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해서 사는 수밖에 없다. 더 심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눈을 피로하게 할 정도로 책을 읽거나 스마트폰 보는 것은 자제해야겠다. 특히 스마트폰! 특히 어두운 데!. 잠도 잘 자야 눈을 덜 피곤하게 한다.

 

비문증은 눈 앞에 먼지나 벌레 같은 뭔가가 떠다니는 것처럼 느끼는 증상으로, 하나 또는 여러 개의 점이 손으로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고, 위를 보면 위에 있고, 우측을 보면 우측에 있는 등 시선의 방향을 바꾸면 이물질의 위치도 따라서 함께 변하는 특성을 지닌다.

*비문증은 대부분 연령의 증가에 따른 유리체의 변화에 의해서 생긴다. 유리체는 눈 속을 채우는 투명한 겔 같은 물질인데, 나이가 들수록 액체로 변하게 되며, 시신경과 단단히 붙어 있는 부분이 떨어지기도 하는데 이를 후유리체박리(posterior vitreous detachment)라고 한다. 이렇게 떨어진 부분은 투명하지 않고 혼탁해지므로 눈으로 들어가는 빛의 일부분을 가리게 되어 환자 스스로 본인의 시야에 검은 점이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비문증을 확인하기 위해
산동(동공을 확대시키는 것) 후 도상검안경으로 망막을 살펴 보는데, 이때 후유리체박리의 경우 시신경 근처에서 시신경과 떨어진 유리체를 볼 수 있으며(Weiss ring), 그 외 작은 유리체 부유물이 보이기도 하지만 육안으로 전혀 관찰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망막박리(retinal detachment)에 의한 비문증이 있을 수 있으므로 망막 주변부까지 관찰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비문증 [vitreous floaters]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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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소라 2016-02-21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렇습니다! 특히 밝은 빛이 있을 때 더더욱 그런거 같아요. 독서할 때 아주 방해되죠 ㅜ
 

이 책을 읽고 있으니 서서히 가슴이 뛰는 느낌이 올라온다.
책이 아직 초반이라 확실하진 않지만 이 느낌을 잘 따라가보자.
그동안 진득하게 따라잡지 못해 놓쳐왔던 이 느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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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올레TV에서 무료 영화를 훑어보다가 이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다.

  이 영화에 대해서 전에 들어본 적은 없었는데, 영화 줄거리가 전에 없이 끌렸다.

  아무래도 요즘 내가 좀 극한 상황에 처해서 그러할 것이다.


 

 

 

현빈, 이보영 둘 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인데 이 영화에서 그들은 여느 드라마에서 보았던 꽃남 꽃녀의 모습이 아니다.

어머니는 치매에 걸렸고, 형은 도박에 빠져 사채를 쓰다 자살을 한다. 이 빚은 고스란히 만수에게 돌아온다.

어머니는 실종되고 사채업자들이 찾아와서 협박을 한다. 결국 과대망상증에 걸려 정신병동에 들어가게 된다.

정신병동에 있는 현재와 그 병에 걸릴 수밖에 없었던 그의 암울한 과거를 영화는 교차로 보여준다.

치매 어머니가 각종 고지서들을 돈이라 생각했던 것처럼, 만수는 종이에 금액을 적고 자기가 사인만 하면 전세계 어디서나

돈을 쓸 수 있다고 믿게 된다.


정신병동 수간호사 수경은 주치의의 연인이었다 버림 받고, 아버지는 직장암 말기에 위태로운 상황이다.

병원비로 이미 빚을 지고 있고 월급에까지 차압이 들어온다.

만수는 그런 수경에게 천만원짜리 종이를 건넨다.

아버지 간호와 돈 걱정에 얼빠진 채 감정없이 병원일을 해오던 수경에게 만수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정신병은 착하고 여린 사람들이 걸리는 것 같다. 남을 해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자기를 해치는 것이다.

그것이 자해나 자살이 아니더라고, 밖으로 표출시켜야 했을 분노와 원망을 자기에게로 돌리다보니 정신이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영화 <화차>도 생각나고, 처참하고 암울한 마음으로 영화를 지켜봤다.


만수가 이 정신병동을 나가고 싶지 않은 마음도 이해가 된다.

(실제로 정신이 돌아왔는데도 나가고 싶지 않아서 안 돌아온 척 한건지 확실하진 않지만, 난 그렇게 보고 있다.)

여기는 친구도 있고 맘편하게 햇볕과 바람을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가면 치매어머니와 사채빚이 기다리고 있다.

그건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나 같아도 외면하고 또 외면하고 싶을 것 같다.

그래도 결국 그는 퇴원을 한다.


그리고 고통스럽게 목숨을 이어가던 수경의 아버지는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이미 병원생활이 의미가 없는 말기암인데도 가족의 미련으로 병원생활을 고집하는 것에 나는 회의를 갖고 있다.

항암치료가 과연 암에 걸린 사람을 더 나은 방향으로 치료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수경은 아마 어머니도 안 계신 것 같고 형제도 없는 것 같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세상 천지에 고아가 될 것이기에 어떻게든 아버지를 보내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이해는 되지만

결국 죽음은 오고야 마는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병원을 그만두고 나가는 수경의 얼굴이 그제서야 조금 편안해 보인다.


가난한 자들에게는 아픈 게 더 아프게 다가온다. 남의 일이 아니니까 이 영화가 더 아프다.

현빈과 이보영. 예쁘고 잘생기게 나오고 싶은 마음 버리고, 힘 빼고, 배역에 충실하게 빠져서 아팠던 것 같다.

이 암울함을 외면하고 싶은 사람들이 훨씬 많았을 것이기에, 평도 별로고 흥행도 안됐겠지만

나는 이 영화를 외면하지 않아서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슬플 때 슬픈 음악이 오히려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처럼, 암울한 상황에서 암울한 영화가 이상하게 주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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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해 학교와 유치원에서 그림책 읽어주기가 12월 방학으로 끝이 났다. 올해 다시 3월이나 4월에 시작할 텐데 나는 더이상 하지 않을 생각이다. 일을 구해지면 일 때문에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테지만, 혹여 일을 못하는 상태일지라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책모임에서 그림책 또는 동화책을 읽고 나누면서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기쁨이 있었다. 하지만 단점도 있었다. 어느새 내 마음속에는 좋은 책, 나쁜 책이 나눠지게 된 것이다. 그 기준이 나에게서 나왔다는 확신이 없다는 것이 더 위험한 일이다. 나는 괜찮네 하며 읽은 책이 모임에 왔더니 형편없는 책으로 다수가 얘기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난 아니라고 할 그릇이 못되어 그 흐름에 아주 자연스럽게 끌려가곤 했다. 그러고 나면 어느새 그 다수의 생각이 그 책에 대한 나의 이미지로 남아 있게 된다. 책에 대한 나의 생각이 없다. 그 책토론에 '나'는 없었다.

 

그러면서 점점 어린이책이 불편해졌다. 내가 자유롭게 집어드는 책은 거진 어린이책이 아니었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읽어줄 그림책을 고르는 일도 재미보다는 의무감에 가까웠다. 이론상으로는, 내가 정말 재밌게 본 책을 나 혼자 보기 아까워 남에게 들려주는 건데, 이 책이 나에게 어떻게 다가왔나를 물으면 솔직히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이건 아이들에게 못할 짓인 것 같다. 구조적인 다른 문제들도 맞물려 있긴 하지만, 일단은 나 자신과 아이들에게 솔직하지 않은, 찜찜한 채로 책을 읽어주고 싶지 않다. 그렇게 결심을 하니 마음이 좀 후련하다. 모임에서 토론해야 할 목적으로, 아이들에게 읽어줘야 할 목적으로 읽지 않아도 되니까, 지극히 개인적으로 그림책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좋다. 읽기 싫으면 안 읽어도 되고, 땡기면(?) 그림책만 진창 몇날 며칠을 읽을 수도 있다.

 

그림책을 생전 처음 만나는 아이처럼, 설레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읽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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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단다. 배우자를 고를 때 자신의 어린 시절의 경험을 다시 재현하려는 무의식이 작동한다고 한다. 뭔가 해결해야 할 숙제가 있으니까 그 일을 다시 겪으려 하는 걸 게다. 해결이 안되면 재연 또 재연...이겠지.

 

그렇다면, 과연 나는 어떤 재연을 하려고 그를 만났을까? 또한 그는?

이미 우리는 선택을 해버린지 오래다. 하지만 그 이유를 찾지 않으면 안된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라고 한다. 나의 어린 시절 경험을.

 

나의 아빠 같은 사람을 고른 것일까? 말이 적고 마르고 책임감은 있을 것 같은 남자. 그런 것 같다. 나는 엄마를 닮았고.

그렇다면 그는? 자신의 엄마 같은 사람을 고른 거겠지? 그는 아버지를 닮았고.

우리는 이미 선택을 했고,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나는 엄마랑 닮은 그 부분을 깨는 것이 중요하다. 말로 사람을 뒤트는 것을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특히 아이들에게. 남편에게는 조심하려고 하는데 아이에게는 너무 쉽게 그 각오가 깨져버린다. 폭포수처럼 분노의 언어를 퍼붓는다.

 

마음만 먹는다고 될 일은 아니다. 몇 년간 저지르고 후회하고의 반성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걸 보면. 이 지긋지긋한 되물림을 어떻게 하면 싹 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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