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나는
최수현 지음 / 가하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누가 인터넷에 영화 <미 비포 유>는 신데렐라 이야기의 전형이라고 하던데. 이 책 역시 그렇게 따지면 신데렐라 이야기의 전형이다. 거의 모든 로맨스소설이 그러하겠지만.

 

제희와 재이는 반장, 부반장을 맡으며 알게 모르게 사랑을 키워간다. 유일하게 두 번의 수능을 보는 93년의 고3. 내가 바로 그랬다. 수능 첫 세대였다. 학창 시절 생각들이 새록새록 돋게 했다. 감질나고 순수하게 사랑하지만 고백은 미뤄뒀다. 함께 같은 대학을 가자는 소망은 재이의 가정 형편으로 인해 깨지고 말았다. 대전으로 가고 연락두절.

 

의대에 들어간 제희는 재이를 기다린다. 담임선생님을 찾아가고, 삐삐에다가 그녀가 듣길 바라며 음성을 남기기도 한다. 그렇게 9년만에 그들은 우연히, 만난다. 재이는 유니폼회사 영업담당 대리가 되어 있었다. 2002년 월드컵의 열기와 함께 그들의 사랑도 이전의 설렘을 되찾는다. 이젠 성인인지라 참을 것도 없다. 하지만, 과거에도 있었던 어머니의 반대가 여전히 장애물로 다가온다. 자신의 가난한 처지를 스스로 잘 아는 재이는 결국은 제희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음을 정리하려 떠난 속초 여행에서 재이는 비로소 제희의 삐삐 음성 7개를 듣게 된다. 8년여를 기다린 제희의 순정, 그 아픔과 고통의 기다림을 알게 된 재이는 그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제희 어머니에게 허락도 받고, 이쁨 받는 며느리가 되어 임신도 하고 해피엔딩.

 

제희의 일편단심 기다림이 비현실적이긴 하다. 순수한 고3 첫사랑을 기다리며 이렇게 자기 정조를 8년여 지킬 남자가 얼마나 있을까? 우리의 학창 시절 첫사랑은 막상 어른이 되어서 보면 내가 왜 그때 그 애를, 그 선생님을 좋아했을까?’ 하곤 하는데. 그리고 막상 만나 보면 그때의 그 추억 속의 아이와 지금 어른이 된 그 아이가 달라서 실망하기도 하는데. 제희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게 놀라운 일이다.

 

로맨스소설에서는 남자주인공들이 일단 한 여자를 사랑하면 아무리 다른 여자가 유혹을 해와도 철벽을 치며 자신의 여자만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면, 이런 모습이 현실속에 드물기 때문에 이런 책들이 나오는 게 아니겠는가. 여성의 환상, 여성의 판타지를 담아. 로맨스소설은 일종의 판타지이다. 올해 들어서야 로맨스소설계에 입문한 나는 이런 류의 책들을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제법 읽었다. 그 지고지순한 그들의 사랑에 가슴이 찌르르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하산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로맨스소설에 푹 빠져 있다가 나오면 현실은 영 다르다. 허무함이 밀려온다.

 

앞으로 로맨스소설을 읽지 않게 되더라도, 사랑에 대한 판타지는 여전히 마음에 품고 싶다. 제희의 그 절절한 사랑이 세상에 절대 없다고만은 생각하지 않으련다. 내 가슴에 아직은 가슴 떨린 사랑의 감성이 존재한다는 게 참 다행이다. 나이는 들고 몸은 노화해 가는데 그마저도 없다면, 삶이 너무 팍팍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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