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이도우 지음 / 시공사 / 2016년 3월
평점 :
품절


남녀가 우연히 만나 불꽃이 튀기고, 종이 울리고, 사랑에 빠지는 경우보다는, 자주 보게 되는 관계 속에서 언제 반했는지 모르게 상대에게 젖어드는 경우의 수가 훨씬 많지 않을까. 학교를 같이 다니거나, 회사의 동료이거나, 거래처 직원이거나, 같은 취미를 가진 동호회 회원 같은 경우 말이다.

 

건과 진솔은 라디오 방송국의 PD와 작가로 만난다. 둘은 자연스럽게 편안한 동료가 되고 자주 만나게 된다. 말이 통하고 같이 있으면 즐겁다. 이게 사랑일까? 아닐까?

 

하지만, 쌍방향이 되지 못하는 사랑은 허다하다. 건에게는 수년을 짝사랑해온 친구 애리가 있다. 그 여자는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고.

 

용기를 내어 먼저 진솔이 사랑을 고백하지만 건은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 진솔은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쉽지 않은 전개로 상황은 굴러간다.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를 계속 보고 있고, 그 여자의 사랑은 쉽지 않고, 그런 그녀가 그 남자에게 심리적으로 기대고 있음을 바라보는 건 아픈 일이다.

 

결국 용기를 낸 마음을 거둬들이려 하지만, 건은 그런 진솔이 너무 조급하다 느끼고 화도 난다. 이미 그 사람으로 꽉차버린 마음을 억지로 접어야 하는 일은 너무 괴로운 일이다. 같은 여자로서 충분히 이해되는 심정으로 진솔에게 감정이 이입된다. 그러면서도 조금 더 기다려주지... 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3자가 봤을 때 건이 진솔을 대하는 태도가 사랑이 맞는데, 건도 자기 마음을 얼른 알아차렸으면 좋겠고. 엇나가는 그들이 안쓰럽다.

 

마음에 없는 말들을 쏟아내고, 원망하고, 속상해하며 이별을 맞이할 것 같은 이 커플들을 구제한 건 건의 할아버지다. 돌아가시면서 그 둘을 맺어주신 것 같다. 건은 그제야 자신의 사랑을 알아차렸고, 이번엔 건이 진솔을 기다리겠다고 한다.

 

사랑이 전부는 아니지만, 사랑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는 게 사랑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이라는 것을 너무 쉽게 규정해버리는 건 아닌지. 이건 사랑이고, 저건 사랑이 아니라고. 조금 기다려야 사랑이 보일 때도 있다.

 

서서히 젖어드는 섬세한 감정들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책이 10년여 동안 꾸준히 팔리고, 자꾸 개정판이 되어 나오는 이유이겠지. 건과 진솔의 예쁜 사랑을 계속 응원한다. 건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진솔을 만나 하신 말씀을, 사랑 때문에 힘든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나에게도. 상대보다 내가 한 뼘만 더 기다리고 헤아려줄 수 있기를.

 

사람이 말이디제 나이 서른을 넘으면, 고쳐서 쓸 수가 없는 거이다. 고쳐지디 않아요.”

보태서 써야 한다. 내래, 저 사람을 보태서 쓴다이렇게 생각하라우. 저눔이 못 갖고 있는 부분을 내래 보태줘서리 쓴다이렇게 말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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