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바다를 지날 때
진주 지음 / 로코코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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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어려서 긍정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면, 부정적인 관심이라도 받으려고 애를 쓰게 된다. 그 관심이 바로 내 존재 이유가 되니까. 수안은 한 가정을 파괴한 여자의 딸이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학대와 수모를 감수하며 자란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 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그곳 이외에는 자신의 존재감을 느낄 곳이 없기 때문이다.

 

주어진 것을 무조건 수용하고, 벌을 받듯 자학 모드로 시키는 대로 해왔던 수안에게 체이스는 구원자처럼 나타난다. 사랑이란 걸 제대로 받아보게 된 수안은 비로소 주변보다 자기를 먼저 생각하고, 욕심을 갖게 된다.

 

좋은 사랑은, 사람을 성장시키는 사랑이다. 나는 그런 사랑 이야기가 좋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내 결핍을 뛰어넘고 무조건 다 품어줄 구원자를 만나기가 어렵다. 체이스 같은 조건과 아량을 가진 사람이 우연히 나타나 나에게 관심을 가질 확률은 현실에서 몇 프로나 될까? 나에게 어떤 결핍이 있으면 또 그만큼 결핍된 사람을 만나기가 훨씬 쉬운 것 같다. 보통은 나의 부족한 인격과 너의 부족한 인격이 얽혀 서로를 할퀴고 상처 입히는 일들이 벌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힘으로 자신과 상대를 성장시키는 일들 또한 현실에서 일어난다. 상처 입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돌아보고 상대를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볍게 생각하고 시작한 연애였지만, 한 사람의 인생이 극적으로 달라졌다. 하지만 나는 수안에게 없는 것을 체이스가 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본래 그녀 안에 들어 있었지만 모르고 있던 그것을, 그가 끄집어낼 수 있게 자극을 줬다고 생각한다. 옛날이야기나 동화책을 보면 조력자들이 나타나 주인공을 돕는다. 그 힘으로 그 혹은 그녀는 고난을 헤치고 어떤 성취를 이루게 된다. 그 힘은 원래 그가 가진 고유의 것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기 안에 들어있던 커다란 에너지, 잠재력... 이런 걸 뿜어져 나오게 하는 동력, 그 중에 사랑이 있는 것이다.

 

상대를 이해하겠다, 당신의 상처를 공감하겠다 하는 것도 어쩌면 욕심이고 강박인지도 모른다.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기다려주는 느긋한 마음도 필요한 듯하다. , 상대에 너무 목숨 걸지 않기를, 평생에 다시 못 만날 운명적인 사랑을 만난 것 같은 의미부여도 조금 미뤘으면 좋겠다. 수안과 체이스가 다른 곳에서 같은 얘기를 했던 것처럼.

 

이수안 없이 못 살 거라 한다면,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지. 그 여자 없이도 나는 전처럼 잘 살아갈 거야. 그런데 그 여자가 있으면, 조금 더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아주 조금은 더 나은 놈이 될 수 있을 것도 같고. 그리고 어쩌면, 그 조금이 내 인생을 바꿔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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