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후반, 20대 초반에 고전 문학을 여러 권 읽었다. 이 책도 그 즈음에 읽었던 책이다. 지금은 책을 읽다가 생각할 거리가 많거나 이해가 잘 안 되면 책장이 잘 안 넘어간다. 독서를 그만두기도 한다. 어렸을 때는 오히려 책장이 잘 넘어갔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다. 물론 읽은 내용은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읽었다는 기억만이 있을 뿐. 경험도 적고 생각도 얕으니 《죄와 벌》이니 《부활》이니 《젊은 베르트르의 슬픔》이니 뭘 알고 읽었겠는가. 그런데도 쭉쭉 읽어나갔다는 건 활자와 겉으로 드러난 것만 읽고 넘겼단 얘기다. 인생을 정말 모르니까, 그게 가능했을지도 모른다.이번에 다시 이 책을 읽으니 역시 어려운 책임을 실감했다. 뒤로 갈수록 버거워서, 얼른 마무리를 지어주면 안되냐고 쿤데라에게 떼를 쓰고 싶었다. 프라하의 역사를 같이 공부하며 읽으려니 점점 더 무거워지는 독서였다. 쿤데라의 철학을 이해하기엔 내 지적 능력이 많이 모자란다. 내 수준에 맞게 단순화해서 해석할 따름이다.나이가 들수록 사랑의 관계에 있어 이것이 정답이다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게 된다. 남의 관계에 함부로 자를 대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사랑의 형태는 존중하지만 당사자들 중 누군가 상처를 받을 수 있음도 고려해야 한다. 지켜보는 구경꾼 말고.토마시는 테레자를 사랑하고, 자신의 여성편력으로 테레자가 상처를 받는 걸 마음아파하면서도 계속 다른 여자들과 자야만 하는 사람이다. 일종의 중독이다. 평소의 연애관을 깨고 테레자를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그는 그 부분은 깨지 못한다. 상대를 내 식대로 변화시키려는 것과 그대로 인정하는 것 사이의 문제를 테레사는 극복했는가? 시골로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된 것 같지만 그들 사이는 뭔가 허전하고 피곤해 보인다. 사비나와 프란츠 얘기까지 하자면 길고 복잡해진다. '비밀독서단'에서 보니까 이동진씨는 딱딱 정리가 된 것 같은데 난, 한참 멀었다.한두 번 읽고 감을 잡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쿤데라의 다른 책들을 읽고, 체코의 역사도 더 들여다보고, 체코의 다른 작가도 접해보고, 나이를 더 먹고 다시 이 책을 만나보면 그땐 어떤 느낌이 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