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제국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책표지의 그림이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이라는 작품인 걸 책을 다 읽고서 검색해보고서야 알았다.

<말하다>를 읽고, 김영하의 소설에 다가서겠다고 생각하고 읽은 책이다.

내용만으로는 되게 심각한 것 같지만, 책은 술술 잘 읽히는 편이다.

 

김기영은 남파 간첩이다.

일정한 교육을 받고 남에 내려와, 대학에 들어가서 주사파 활동을 하고 결혼을 하고 딸을 낳고 영화쪽 일을 한다.

10년 간 아무 지령을 받지 못하다가 갑자기 북으로 귀환하라는 연락을 받게 된다.

하루밖에 남지 않는 시간 동안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지인들을 만난다.

아내에게도 고백을 하니, 북으로 가는 게 자신과 딸을 위한 거라고 한다. 헉.

결국은 자신의 회사 직원이었던 위성곤을 포함한 국정원 직원에게 체포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걸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10년 내내 아무 지령이 없어서 그냥 보통의 대한민국 시민처럼 살게 됐다면, 10년 만의 지령에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간첩으로 발각이 된 이상 그는 더이상 김기영도 아니고 대한민국 국민도 아니다.

그는 남한의 포로가 된 것이다. 감옥에 가는 게 아니라 전자팔찌를 차고 일상생활을 하는 포로.

이제부터 그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까?

어떤 정체성으로 살아가야 할까?

실패한 남파 간첩이라는 정체성을 처절히 느끼면서, 그걸 아는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는 건 어떤 기분일까.

계속 그렇게 오래 살다 보면 무감각해지고 나른해질까?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그 입장이 되어보기 어려운 캐릭터다.

물론 꼭 간첩이 아니더라도 정체성이 나뉘어진 인물들은 많다.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나 혼혈인들, 이민자들 등등.

그런 걸 생각하면 그들의 혼란이 또 먼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나 또한 태어나서 30여년을 자란 곳을 떠나 남편의 고향에서 10여년 째 살고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어느 지방 사람 나누는 게 우스울 수도 있지만, 또 마냥 무시할 수만도 없다.

고향을 거의 인지하지 않고 살고 있는 것 같지만 내 삶의 방식에서 그것들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치는 것 같으니까.

작가 김영하도 초등학교 때 6번을 전학했던 군인의 아이였다.

전국을 떠돌아다녀야 했던 생활이 이런 소설을 쓰게 했을 것이다.

 

쉽게 읽히는 책이지만, 쉬운 책은 아니다.

작가는 많은 이야기를 한다.

김기영만이 아니라 아내 마리, 딸 현미, 대학 동기 소지현, 국정원 직원 박철수는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결국은 '진정 내가 누구인가'를 묻는 소설이 아닐까?

"그는 운명을 잊고 있었지만 운명은 그를 잊지 않고 있었다."

운명에 관한 이야기이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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