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다감 16권 기다리기 지쳐서 박은아 팬 카페까지 가입하고 정보 모으기에 힘쓰던 나날.

      조금 전에 16권을 읽었다는 내용을 보고 달려가  대여점에 꽂혀 있는 16권을 보는 순간 빙고!!

     유혹을 못 참고 이슈에 연재된 내용이 실린 글을 읽어버려 16권에 어떤 이야기가 나오는지 다 알아버린 것이 직접 만화로 보는 즐거움을 조금은 깎아 먹었지만 좋다.

      팔을 베고 잤구나. 난 다리를 베고 잤을 거라 생각했는데......

      팔 보다 훨씬 편하고 높이도 딱 맞은 책상 다리로 앉은 다리베개가 생각나는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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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을 멈추지 못하게 하는 생각들이 늘 부는 헐렁한 나침반 하나


방향을 바꾸어야 할 때를 놓쳐 버리고

멈추어야 할 때 멈추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다.


다리를 생각 없이 떨듯

생각 없어 방향을 잃는다.


없어진 생각은 어디로 가는 중일까

둘이 모여 속닥일 수 없는 곳 이라

현실이 생겨날 수 없는 상상 속으로

말려든 것일까


집이라면 다행인데

사람이라서 난감하다

방향감각이 없을 뿐

무심은 아닌 것을

때를 놓쳐 버린 것을 눈치 챘을 때

당황스런 이 마음은

어디에 있는지 조차 잃어버리고

미아로 떠돌 다

익숙해져 가니

다들 살아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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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관 촌년 조선희, 카메라와 질기게 사랑하기 - 조선희사진이야기
조선희 지음 / 민음인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수백장, 수천 장, 수만 장의 찍은 사진들 중에서  수십장의 사진이  골라져 책속에서 눈에 띄길 기다리고,

책을  넘기는 눈동자는 그 수십장의 사진 중 몇 개에 한동안 시선을 맞춘다. 

    사는 일도 셀 수 없는 날들 중에서 기억에 찍혀진 날들 중에 가슴에 파고든 몇몇장의 사진 같은 날들이 있어서 살아온 날들과 남은 날들 사이를 마주보게 하며 이어주겠지. 

   책의 겉표지에 찍혀진 그 모습이 좋다.

   세상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 대며 뭐든 와봐라 내가 다 상대해 주마하는 앞표지와

   앞표지에 자세 그대로 뒷모습을 보여주는 뒷표지의 자세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느낌을 주는 것이 재밌다. 사람을 앞에서 정면으로 보는 느낌과 뒷 모습을 보는 느낌이 아수라백작의 서로 다른 얼굴을 보는 느낌이다. 아니 겉으로 들어난 자아와 속으로 감추어진 자아가 얼마나 다른지 보여준달까?

   책 표지가 주는 감흥만으로도 충분한 만족감을 주는 책이다.

   사진을 찍는 일은 내안의 나를, 나를 둘러싼 세상 모습으로 보여주는 일.

      어떤 표정과 자세, 어떤 옷 차림과 머리 스타일, 화장을 했는지에 따라 사람이 다르게 보이는지 알고 싶다면 새로 옷을 사거나 머리를 바꿀 때마다 사진을 찍어보면 어떨까 싶다. 사잔작가가 모델에게 갖가지 표정과 자세를 주문하듯 내게 주문 하면서...... 내 안에 숨겨진 나를 찾아보게 만들어진다. 사진기는 내 안과 ,내 밖을 진찰하는 청진기가 되어주지 않을까                                                                    
      앞 모습도 찍고 그 때의 뒷모습도 함께 찍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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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쩨쩨한 로맨스
다이도 다마키 지음, 김성기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이렇게 쩨쩨한 로맨스" 라니?  쩨쩨하다는 말은 인색하다는 말과 통한다. 인색하다는 말은 자린고비가 연상된다. 자린고비식 로맨스는 어떨까? 하는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짠 조기 한마리 매달아 놓고 간장 종지 하나 덩그마니 올려진 밥상같은.

    최소한의 반찬과 한가지 미각 짠맛으로 이루어진 한끼같은 로맨스가 차려 있다면 먹겠는가? 거부하겠는가?

    최소한 배고픔은 면할 수 있다. 그럼 된 것인가? 배고프더라도 난 피터팬 처럼 환상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재주를 믿고 꿈꾸던 사랑이 현실로 나타날 때까지 기다릴 것인가?

    아주 쩨쩨한 로맨스의 여주인공은  꿈꾸는 사랑을 실현시킬 재주도 없고 혼자 살 재주는 더더욱 없고 자신을 아껴주는 삼십년 넘게 알아온  아버지같은 식구들이 다 아는 친척같은 친절한 아저씨는 하나있다.

    그 하나도 없는 것 보다는 있는 것이 훨씬 훨씬 살아가는 일에 도움이 된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꽤 많은 이들이 그가 왜 좋아?

     왜 결혼 했어? 하는 질문을 해보면 많이 듣는 소리 중 하나가 "나한테 잘해줘" 였다.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 로맨스라 붙일 수 있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이 될 수 있을까?  비록 60대이지만 일흔 살로 보이는 남자와 삼십대인 여자가 인연을 맺는 이야기엔  사랑에 배고프며 지내는 것 보단 낫다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듯 보여서 끝까지 읽은 후에도 그래도 배고파 죽는 것 보단 낫나 싶다.

    적어도 남자는 함께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하니까.....

     갑자기 어제 읽은 신문 칼럼이 생각난다. 한 방송인이 말하는 전설이 된 후배의 이혼 이야기. 남편은 전문가적인 일을 하는, 회사와 집 밖에 모르는 성실한 사람이었고 돈도 잘버는 사람이었는데 이혼당한 이유유는 "당신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해" 였다. 이 이야기를 밤늦게까지 일이 있고 주말도 쉬는 날이 별로 없어도 돈 많이 벌어다 줘서 좋다는 아내들이 있다는 직원 얘기를 하는 한 벤처기업 사장에게 해 준 이야기를 실은 칼럼이다.       

   또 하나 생각나는 기사는 결혼을 앞 둔 예비신부의 결혼 조건이 부엌을 없애자는 것이었다는 기사다. 둘 다 일이 있고, 밥해 먹을 시간도 없고, 요리도 못하니 별로 사용할 일 없을 것 같은 부엌을 거실로 만들어 활용하고 간단히 음식을 데울 수 있는 전자 레인지같은 것만 놓으면 된다는 얘기다. (새색시가 되어 부엌 없는 신혼집에서 잘 살고 있다.)

   능력있는 여자들, 자신의 생각을 실현 할 수 있는 여자들에게는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편안하게 사는 쩨쩨한 로맨스의 주인공은 이 세상에 없는 생물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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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발명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제목만 보고는 소설인 줄 알았다. 그리고 책을 펼쳐보고는 왜 고독의 발명은 목차에 없지? 하고 궁금해 했다. 흑백 사진 두장은 또 뭐야? 이 책 내용이 영화로 만들어졌나? 그 영화 속 한 장면인가? 하고 잠깐 추측을 해보았다. 그러다가 이 책이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읽다 보니까 소설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남자의 초상화를 단숨에 읽어내렸다. 첫 몇장을 넘길 때는 존 그리샴의 "소환장"이 떠올랐다. 아버지의 부고 앞에서 보이는 행동이나 감상에서 비슷한 점들 때문일 것이다. 다정하지 않은 아버지를 둔 아들들이 아버지에 가지는 원망? 혹은 서운함 같은.

    보이지 않는 남자는 작가가 느끼는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다. 아들이 보기에 아버지는 자신과 함께 기쁨이나 슬픔같은 감정을 나누어 본 적이 거의 없는 아버지다.  아들이 바라는 아버지와의 공감대.  아버지와 아들 뿐일까? 세상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공감대가  없으면 그는 바로 옆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니다. 남이니까 그냥 지나가지만 가족이라면 상처가 된다. 그 상처는 그 누구도 채울 수 없는 구멍이 되어서 가끔 다른 사람과의  공감대마저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살아있는 아버지는 그 구멍의 존재를 자꾸만 떠올리게하며 안타까움과 어쩔 수 없는 분노와 인정받지 못한 사랑받지 못한 기억들에 때문에 존재감마저 흔들거리게 만든다. 아버지는 나뿐이 아니라 누구와도 그런 사람이니까 괜찮아. 괜찮아하면서   누구와도 공감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남자일 뿐이야하고 자위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그 아버지가 진짜 보이지 않는 남자가 되어버렸다. 그러자 보이기 시작하고 느껴지기 시작한다. 아주 없지는 않았다. 하나 둘씩 그 소중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재미난 이야기를 해주었던 기억, 아픈 자신을 간호해주었던 기억, 이웃에게 친절했던 아버지, 사촌에게 아버지 같은 염려을 보였던 아버지.....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인정 받고 싶었던 욕망을 채울 수 없음을 알고 보이지 않는 남자로 만들어 버렸던 아버지가 이젠  사라져버리자 그 욕망도 매듭지어져버리자.  떠오른다. 아버지의 모습들이. 잠깐, 순간 함께 공감했던 기쁨들. 아버지의 가족사를 알게 되면서 왜 보이지 않는 남자였는지 까지 조금 이해가 되는 아들.

    살아있는 아버지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공감의 기억들이 돌아가신 아버지에게는 새록새록 솟아난다.

   가족이란 그런것이겠지. 살아서 아무리 원망을 했던 원수같았던 다시는 볼 수 없는 길로 떠나버리면 왜 그리 좋은 기억들만 나는 것인지..........

  살아있을 땐 걸리는 것들과 원망이 생생해서 함께 있는 것조차 고통이던것이 죽음과 함께 사라져버린다.

  하느님께서 언제까지고 자식들과 소원한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을 축복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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