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잠깐의 빈틈이었을 테지.
사람의 눈은 한 곳 밖에 볼 수 없으니.
노려지는 빈틈투성이 아닌가
태풍이 물러간 햇살이 금빛 찬란한 날이었는데 햇살이 물러난 자리에 찾아온 밤이라서 인지 가을로 가느라 서늘해진 기운 탓인지 조금 멍해있긴 했다.
나쁜일 투성이인 날은 아니었다.
먹을 복은 있는 날이었다.
누가 껍질까지 까서 먹으라고 가져온 찐밤에, 크림치즈가 발라진 빵까지 먹으라고 주고, 음료는 매실,오렌지, 알로에 쥬스까지 배부르게 마셨다.
집에 오는 길에 배도 부르고 마침 동네에서 첫 개장 세일을 하는 마트가 있어서 마침 떨어진
물건을 사러 들어갔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마트에서 필요한 물건을 고르고 계산을 하려고 가방을 보는데 자크가 열려있다.
어떻게 된거지?
지갑이 보이지 않는다. 버스에서 내리면서 단말기에 지갑을 대었기에 어디가 지갑을 두고 올 일이 없다.
마트 지점장이나 카운터나 오늘 지갑 분실한 사람이 없다는 얘기를 내게 한다.
도대체 그래서 어쩌라구. 나만 당했으니까 책임없다는 건가? 누가 책임지라고 했나?
개장 첫날 재수없는 사건이 터져 미안하게 됐네요.
속으로 울화가 터졌지만 겉으로는 지갑이라도 찾게 되면 알려달라고 연락처를 남길 뿐이었다.
혹시나 마트 어딘가에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방송도 해보고 갔던 곳을 가봤지만 없다.
3년전 쯤인가. 그 땐 버스에서 소매치기를 당했는데 지갑이 없어진 것을 버스에 내려서도 몰랐다.
어쩜 내가 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눈치도 없고 주변에 별 관심도 없이 경계심도 없이 풀어져서 살고 있었나.
자크를 열어서 지갑을 꺼내고 다시 닫아주는 노련함까지. 당하고 나면 그 감쪽같은 솜씨에 감탄만 나온다.
소매치기를 당했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언제 당했는지 추측 가능한 순간이 떠오를 뿐.
버스에서 내리려고 문쪽으로 다가갔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워낙 사람들이 많이 타 있기도 해서 내리려는 사람들인가 싶었다. 내리는 순간 잠까니 어깨에 걸쳐진 가방을 누가 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내리는 사람들 틈에 가방이 끼인 탓이라 여겼는데 그 순간이었던 것 같다.
지갑이 없어진 때가...
오늘 마트에서는 언제 지갑이 없어졌는지 자크가 열렸었는지 감도 안잡힌다.
물건을 사람들 틈새에서 장바구니에 집어 넣느라 어깨에 걸친 가방을 등뒤로 보내놓은 자세를 잡았으니 얼마든지 때는 많았겠지.
평소에는 만원정도만 있었는데 오늘은 십만원 수표에 동전 몇개... 각종 카드에 신분증 등등 새로 만들어야 할 것 투성이인데...
3년전에는 경찰서에서 지갑을 소포로 보내왔다. 현금만 빼고 고스란히 다 들어있었다.
누가 버려진 지갑을 주워서 경찰서에 가져다 준 것이다.
정말 고마운 사람이다.
요번에도 돈만 빼고 나머지는 다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다.
낙하천 천으로 만들어서 가볍고 질기고 프린트도 다양하고 실용적이라 몇개 가지고 있는같은 회사의 숄더백 형태의 가방이었는데 소매치기 당한 두번 다 그 가방이다.
사용자가 자크 열고 닫기 편리한 만큼 소매치기도 예외일 수 없는 가방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 많이 모인 곳에서 무조건 지갑 조심을.
사람들은 말한다. 더 큰일 날 뻔 한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것은 지갑 잃은 것으로 때우는 거라고.
내게 생길지도 몰랐을 나쁜 일을 소매치기가 가져 간건가?
삼일 전 한 낮에 아파트 관리실을 차가 들이 박아서 와장창 한쪽 벽면이 박살나고 지붕이 틀어져버린 모습을 보기도 한 날이었으니 무언가 좋지 못한 기운이 주변을 감돈 날이었는지도.
샤워하다가 갈아 입을 옷을 가져다 놓은 것이 물에 떨어져 입지도 못하기도 했다.
마루 바닥에 떨어진 물기에 넘어질 뻔 하기도 하고.
꿈자리가 어수선하기도 했다.(여자들 투성이의 수다스럽고 소란스러웠던 분위기였다는 )
나쁜일이 생기는 이유는 더 나쁜일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방비 하라는 신호일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