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고양이들은 어느 동네나 다 있다.

우리집 마당을 주요 무대로 삼은 고양이 가족이 있다.

장마철에 손질을 하지 않아 잡초가 무성해 바닥이 보이지 않는 마당에   손바닥만한 아기 고양이 네마리를 데리고 와서 풀들 아래서 비를 피하고 있기도 한다. 털들이 비에 젖어 삐죽삐죽 일어선 아기고양이가 사람이 보이자  털을 곤두세우며 야옹거린다.

 눈빛이 제법 사납다. 태어난지 일주일정도가 고작일 것 같아 보이는데도 자기 보다 훨씬 큰 사람에게 경고를 보내는 아기 고양이의 모습이 대견스럽다. 그래, 호랑이도 새끼였을 땐 야옹거리더라.혹시 자라면 어흥도 가능할지 모르겠는 걸.

 볕이 좋은 날엔 베란다에 널어놓은 마른 걸레를 끌어다가 깔고 앉아 사람이 기척을 내어 보아도 여유롭게 졸고있다.

 대놓고 무시를 한다. 무시 받는 사람이 열받아서 내쫓으면 어느새 다시 와서 시침 뚝 떼고 배 쭈욱 깔고 뜅굴거린다.

베란다와 마당은 고양이 영역이 된지 오래다.

오늘은 빨래를 널다가 이젠 제법 자란 아기 고양이 한마리가 잡초 틈새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을 보고 뭐가 있나 싶어서 살펴보니 오백원짜리 동전 만한 자갈돌 같은 것이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뭐지? 커다란 벌레라도 발견한 건가? 잡초들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게 숨은 것을 고양이는 노리고 있다. 아직 어려서 조금은 겁먹은 듯 조심스럽게 고양이는 앞발로 접근을 하고 있자 짧은 줄 같은 것이 파닥이는 것이 보인다.

  도대체 무슨 벌레지? 혹시 꼬리....ㄴ가? 그렇다면 쥐?

고양이의 공격에 쪼르르 달아나며 잡초사이로 전부을 들어낸 것은 아주 작은 생쥐였다.

 몇일 전 처음 세상구경을 한  쥐가 한달 정도 된 고양이에게 사냥당하고 있는 중이다.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논다더니 목숨을 걸고 달아나는 쥐를 놀이처럼 쫓는 고양이.

"찌이익"하면서 고양이 앞발 공격을 살짝 스치우고 담쟁이 넝쿨이 우거진 쪽으로 들어가 버려 결과가 어떻게 된 것인지 보이지 않고 소리만 들리다 잠잠해진다.

조금 후에 나온 깨끗한 얼굴의 고양이가 빤히 사람을 쳐다본다. 마치 너 때문에 놓쳤잖아 하는 원망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

고양이는 사람이 겁을 주면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한 동안 쏘아보다가 사라진다.

"너 기억해 둘거야, 지금은 그냥가지만 조심해" 라는 의미인가?

고양이까지는 봐줄만한데 잡초 우거진 마당에 쥐소굴까지 있는 건 아니겠지?

물론 고양이 영역인 마당에 둥지를 튼 간큰 쥐는 없겠지만 마당의 잡초 제거를 해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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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본다.

 어린이아이 손바닥만한 동그란 거울 한가득  얼굴로 채워진다.

코끝으로 클로즈업. 압술로 클로즈업. 눈동자로 클로즈업을 해본다.

거울은 필름없는 카메라.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지난날처럼 냉정하다. 지나가면 그 뿐.

매일 똑 같은 얼굴을 뭘 그리 보냐구한다면

입술에 어떤 립스틱을 발랐는지, 어제 밤에 라면을 먹고 잤는지, 불면의 밤을 보냈는지, 머리 가르마를 어떻게 냈는지, 세수하기전인지 후인지, 눈썹을 그렸는지 안그렸는지, 화장으로 딴 사람이 되고 표정으로 하루의 기분이 달라지는 묘미를 알게 되면 거울속에서 지나날의 흔적까지 찾아낸다.

사진을 보고야 아는 까마득한 어린시절의 얼굴이 어떻게 어른의 모습으로 달라졌는지.

스스로에 대한 탐구에 꼭 필수품인 거울,

스스로에 대해 알고 싶다면 거울을 보면서  태어날때부터 지금까지의 모습을 찾아보고, 스스로 지줄 아는 표정이 몇개인지 알아 보는 것도 방법 중 하나이지 않을까?

눈과 머릿속 기억과 거울 속에  비치는 모습이 어긋날 때 눈을 감는 것이 나을까?

어긋남에 익숙해 지는 것이 나을까?

어긋남을 바로 잡는 것이 나을까?

언제나 거울 속 모습과 스스로의 모습이 일치할 때면 스스로를 일이나 내가 아닌 다름 무언가에 떠맡기고 있어 자신에 대한 관심이 떠나있을 때였던 적이었던 것 같다.

스스로에 대한 관심은 거울과의 만남에 있다.

자신이 아닌 다른 것을 향해져 있는 눈을 자신에게 맞추어 주는 거울.

보이지 않아도 그 속을 알 수 있는 어린왕자라면 양이 있다는 구멍이 뚫린 상자가 아니라 거울을 줘도 양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눈을 감으면 거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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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기만 한 뱀이 아니었다.

함께 살아가는 이웃의 뱀을 만났다.

동물원이나 텔레비젼 속의 뱀이 아니라 길가다가 마주쳐 버린 뱀이었다. 스스로 생존을 위해 꿈틀거리는 뱀의 일상과 만난 것이다.

아파트 숲과 4차선도로가 있는 도심을 흐르는 하천은 한강고수부지의 산책로나 양재천 비슷하지만 규모는 작다.

하천 따라 이어진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만난 뱀한마리에 순간 덜컥 겁먹어버려 몇초간  움직이지도 못하다가 조심스럽게 산책로를 빠져 나와 뱀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사람만 사는 곳인 줄 알았는데 뱀도 살고 있었다. 얼마전에는 밤에 언뜻 까만 족제비 비슷한 것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래 사람만 사는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지금 있는 방만해도 개미가 부지런히 기어가고 있을 것이고 철지나 힘빠진 모기가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이고  집 밖에는 도둑 고양이가 먹이를 찾아 사뿐히 움직이고 있을 것이고 새들도 눈에 잘 뛰지 않는 둥지에 잠잘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평소에는 사람만 느껴진다. 애완동물이야 동물의 습성을 잃고 독립적인지 못하니 제외하고라도 함께 생존을 해가는 생물은 의외로 많다. 끈질긴 바퀴벌레와 쥐같이 끊임없이 박멸을 해도 살아남는 생명체까지도.

뱀을 봤다고 호들갑 떨것도 겁먹을 것도 없는 세상이라면 물론 독사는 주의해야 겠지만.

사람이 편안하게 살 자리를 위해 바뀌어가고만  있기는 하지만 도시 아파트 촌 한가운데을 흐르는 하천에서 뱀도 만나고 튀어오르는 은빛 물고기도 구경하고 비온 다음날에 쏟아져 나온 달팽이도 보고 부리로 살아서 펄떡이는 물고기를 집어올려 꿀꺽 삼키는 백로도 보면서 살아가는 기운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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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커스다.

  구경꾼은 지나가는 신호에 멈춘 지나가는 버스 안에 앉아 있는 승객 한명.

   장소는 애완동물가게 앞에 내놓은 동물 우리.

   가느다란 연두빛 철창으로된 우리 안에서 다람쥐가 동물로 보이는 조그마한 녀석들이 

   허공에 완벽한 동그리미를 그리면서 -너무빨라서 원의  잔상이 남을 정도-  공중제비를

  쇼를 앞다투어 보여주고있다.

  구경꾼은 눈이 팽긍팽글 돌아갈정도로 다람쥐들의 쇼에 마음에 흥이 돋는다.

  버스에서 당장 내려 무슨 동물인지 알고도 싶고 한 번 길러 보고 싶은 마음도 든다.

  애완동물 가게를 지나가는 아줌마  한명이 서커스에 발길을 멈춘다.

  버스가 움직인다.

  구경꾼은  승객이 되어 빈 앞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시선이 간다.

  다람쥐 서커스도 난생 처음 보는 진풍경이었는데

  앞에 앉은 사람의 귀도 장난이 아니다.

  당나귀 귀를 가진 임금님은 들어 봤지만 귓바퀴에 새끼를 막 낳은 개의 젖같은 것이 삐죽나와

 있는 귀는 무어라 불러야 할까? 색깔은 점처럼 거무튀튀하다.

 없어야 할 것이 달려 있는 귀까지는 괜찮다.

 가슴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간질거리까지 하게 만드는 것은 귀에 붙은 젖꼭지 같은 덤을

나이 지긋한 귀의 주인 아저씨가 계속해서 만지작거린는 행동이다.

가슴이 간질거리는 것이 진정이 안된다.  

 보지 말자하면서 어느새 뒷자리 승객은 자신의 귓볼을 만지작거린다.

조금 진정이 된다.

 찰칵하고 카메라 필름에 찍히듯  각인된  눈요기.

 멋진 것과 보기 민망스러운 것이  이어졌던 버스 안과 밖 사이를 오간 구경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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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뢰찾기을 처음에 할 때 언제 99개의 깃발을 꽂을 수 있을까? 정말 가능 하긴 할까 싶은 마음에도 포기가 안되었다.셀수 없을 만큼 터지는 지뢰에 한심해 하면서 계속 게임을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조금이라도 어려워 보이는 일은 은근슬쩍 피하고 몇 번 하다가 안되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던 그는 지뢰찾기에 빠져 들었고 몇일 후에 처음으로 99개를 다 찾았다. 그 다음에도 심심풀이로 보다 빠른 시간에 찾는 재미와 온라인 게임 죄뢰찾기의 영웅단계에 까지 올라갔다.무슨일이든 무한 반복하며 자기만의 요령을 터득하면 달인이 된다.

   윈도우에 깔려 있는 프리셀은 기본이요 롤플레잉게임도 한 번 하기 시작하면 마지막단계까지 끝장을 볼 때까지 놀라운 집중력과 열의를 보낸다. 왜 사는일은 그렇게 하지 못할까? 만사가 시큰둥한 담벼락 위에서 낮잠을 즐기는 배부른 도둑고양이같다.

 한 번 하기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다른 일에 신경도 못쓰고  나이가 드니 게임도 힘들어. 체력이 딸려서 안되겠어라며 한동안 게임을 안하던 그가 심심했던지 윈도우에 들어있는 스파이더카드게임을 발견했다. 프리셀보다 한 단계 더 어렵게 만든 카드게임이다. 초급,중급은 프리셀과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고급단계는 지뢰찾기 처음 할 때보다 더 막막하다.

  풀릴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어려움에 그는 고급단계에 다시 빠져든다. 고급단계를 성공한다고 해서 먹고사는 일에 씨알만큼도 보탬이 되긴 커녕 하루밤을 낼름 잡아먹을 뿐이다.하루 이틀 집중하면 도저히 안될 것 같은 스파이더카드게임도 끝을 쉽게 보리라. 무한반복의 힘은 속도를 빠르게한다. 점점 잘하게 된다. 누군가 자연스럽게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은 많이 해봤다는 증거다.

  살아가는 일에서 부딛히는 문제는 딱 한가지 해답만 있는 것도 해결 방법이 한가지만 있는 것도 아니다. 문제을 해결했다고 끝도 아니다.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 갈 수도 없고 또다른 문제가 엮어들고 가지쳐나가고 돌풍처럼 새로운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든다. 게임은 얼마나 많이 죽었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되살아나는가? 삶은 죽으면 끝난다. 만약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길고 긴 게임이라서 잘 할 때까지 계속이어지는 되살아나는 삶을 살고 있다면. 마치 사랑의 불랙홀이라는 영화처럼. 끔찍해!

     잉태되는 그 순간부터 인생에서는는 어떤 실수도  깨끗하게 시작점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할 수 없다. 잉태되는 순간이 실수라면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꼬리표를 하나 달고 시작하는 것이다.

  잘못할 때 마다 새롭게 시작해서 잘 할 수 있을 때까지 하면 되는 게임에는 쏟아부을 수 있는

시간과 끈기만 필요하고 개인적이다. 짝사랑처럼 은밀하고 아무도 모른다. 

 그는 사는 일에서 실수를 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실수의 두려움이 없는 게임에 빠져드는 이유다.

그가 삶에서도 게임처럼 실수를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않고 잘 할 수 있을 때까지 일을 하는 사람이었으면 게임보다 삶의 완성에 몰두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소심한 그대여 그래봤자

 게임은 만든이의 재간에 놀아나고 세상은 인간무리의 욕망에 덜컥걸려 숨이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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