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너도 피터 레이놀즈 시리즈 2
앨리슨 맥기 지음, 김경연 옮김, 피터 레이놀즈 그림 / 문학동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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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너도』라는 그림책을 봤다.

맨 처음 눈에 들어오는 첫구절은 이랬다.

어느 날 네 손가락을 세어 보던 날

그만 손가락 하나하나에 입맞추고 말았단다..

이유 없는 뜨거움이 목구멍을 올라오는 듯 하다 말았다.

나의 엄마를 떠올린다. 과연 당신도 내게 그러셨을까.

 

당신은, 동네방네 알아주는 부잣집에서 엄한 가정 교육을 받으며 자라셨지요.

자수성가한 -전형적인 경상도식- 가부장적 아버지와 고운 외모에 걸맞는 수줍은 몸가짐을 가진 어머니를 가지셨습니다.

줄줄이 자라나던 수두룩한 딸들 사이에서 당신께선 곰살맞음이 특출나다거나,

제 밥그릇을 알아서 챙기던 약삭빠른 딸이 아니셨을 테지요.

남편과 아들, 딸들, 그리고 시어머니를 봉양해야 했던

수더분한 당신의 어머니에게서 특별한 스킨쉽이나 사랑어린 속삭임을 듣기에,

1남 6녀 사이 당신의 ‘다섯째’라는 자리는 꽤나 미미했을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외할머니께선 보이지 않는 짝사랑으로 당신을 키우셨을런지도 모릅니다,

그 시대의 대부분 어미들이 그러하셨듯이.

시집을 오면서 당신께서는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살림을 시작하셨고

더욱 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간절해지셨을 테지요.

시집온 지 십여년 정도가 되었을 때 당신의 어머니이자 저의 외할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못다 나눈 사랑만 남기고, 당신께선 외사랑을 접어야 하셨던 것은 아닐까요.

그렇게 당신이 기억하는 ‘엄마’의 자리는 조금 성글고도 헐거울 겁니다.

적어도 제게 비친 당신과 당신 어머니 사이의 사랑은 그렇습니다.

 

 

 

엄마는 마흔이 안되는 나이에 ‘심장병’을 선고받고 겁을 덜컥 먹으셔서

일찍 운명을 달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손을 잡고 가자고 칭얼대는

어린 딸에게 ‘홀로서기’라는 어려운 단어를 써가며 ‘새끼 손가락 하나만’ 내어주셨던 분이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조금 수줍고 나약한 소녀같기만 하다.

 

“솔직히... 오빠 태교할 때는 이것저것 신경 썼지만, 너한테는 일부러 안한 것도 있어.

여자가 너무 똑똑하면 힘들기만 하지.” 이런 양심 고백을 듣고 충격을 받을 만도 했지만,

사실 이것도 내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덕분에 얻어낸 대답이다.

엄마가 자라온 환경과 삶이 오묘하게 응축된 한 마디 말이라

나는 엄마가 미우면서도 이해가 된다.

 

 

 

이런 엄마을 잘 알면서도 난 요즘 대뜸 포옹을 시도하곤 한다.

“나 시집가면 엄마가 포옹하고 싶어도 못해”.

스킨쉽을 어색해하지 않는 엄마와 딸이 되고 싶어 달려들면 엄마는 질색팔색하신다.

“에이, 엄마는 왜 진작에 이렇게 (살갑게) 안했데?”하며 멋쩍게 두 팔을 풀어 드린다.

‘엄마는 능글맞은 나 덕분에라도 사랑 보여주는 것에 익숙해져야 해’, 나는 마음으로 말을 잇는다.

 

언젠가 느끼게 될 거야

네 등에 온몸을 맡긴 너의 작은 아이를

 

언젠가 나는

네가 네 아이의 머리를 빗겨 주는 걸 보게 되겠지

 

언젠가, 지금으로부터 아주아주 먼훗날

너의 머리가 은빛으로 빛나는 날

그날이 오면, 사랑하는 딸아

넌 나를 기억하겠지

어머니가 딸에게 전하는 편지같은 책-『언젠가 너도』라는 책을 읽으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난 이 책을 엄마께 보여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마음이 아주 여린 나의 엄마께 이 책을 선물하면서,

보이지 않는 엄마의 빈 마음을 ‘위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위로’ 받았기 때문이란 걸.

 

 

 

엄마는 사랑을 보여주시는 것에 서툴겠지만,

그래서 늘 거리를 두고 나를 지켜보시는 거 알지만 나도 엄마의 마음 알아요.

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 꼭꼭 숨기지만 말고 나한테 ‘사랑한다’는 말 좀 자주 해요.

나도 엄마한테 받은 사랑 그대로 미래의 ‘내 아이’에게 주고 싶단 말예요.

난 내 아이에게 내가 받았고 줬던 ‘엄마와 자식 간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다 전해서 키울 거야.

사랑하는 내 아이가 자라나, 그 언젠가 나를 기억하고 내 ‘엄마’인 엄마까지 떠올리면서 자라도록.

그 아이가 ‘내리사랑’에 감사할 수 있게, 풍족한 사랑을 다 보여주면서 키울 거예요. 

 

엄마, 그러니까 나한테 사랑한단 말 잘 해요.

나도 가끔이라도 집에 가서 몸을 부비면서 엄마가 제때에 못 내어준 사랑 받아내곤 할 거야.

내 아이에게마저 이런 수줍은 사랑을 그대로 물려주고 싶진 않단 말이예요.

 

 

 

수채화 같은 그림 속, 따사로운 모녀가 유난히 마음으로 전해지는 책이다.

하얀 여백이 온통 사랑으로만 가득찬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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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가 온 첫날 밤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26
에이미 헤스트 글, 헬린 옥슨버리 그림, 홍연미 옮김 / 시공주니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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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강아지와 소년, 그리고 눈이 쌓인 광경이 따뜻하게 느껴지던 그림동화책입니다.

지난 크리스마스 즈음에, 꼬마 아이가 자라는 집에 선물을 하려고 샀던 책이예요.

^^헬린 옥슨버리의 그림을 보면서 ‘아, 갖고 싶다’는 기분과 ‘포근하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눈길이 갔던 것도 사실입니다.

(표지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굉장히 섬세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이 들어요.)

 

헨리 콘이란 아이는 눈이 내리던 날, 작은 강아지 한 마리를 만납니다.

보는 즉시 자기와 함께 집에 가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몸과 마음으로 느낍니다.

그리고 품에 안고 집으로 가는 길, 자신의 이름을 쏙 빼닮은 ‘찰리 콘’이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부모님께선 헨리가 데려온 찰리를 보곤 놀라십니다.

부모님께선 찰리와 함께 살기 위해선, 헨리가 산책이며 먹이주기를 책임져야 한다고 설명해주시죠.

놀랍게도 헨리는 그 모든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찰리가 함께 지내는 동안, 영원토록 늘 보살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죠.

꽤나 의젓한 꼬마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마도 ‘찰리 콘’이 집에 들어온 순간부터 우리의 헨리는 어른이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헨리는 낯선 잠자리에 적응하지 못하는 찰리에게, 헨리가 지금껏 부모님께서 해주신 모든 것들을 그대로 해줘요.

무서울까봐 배려해주고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말들도 속삭여줘요.

그 부분을 읽으면서 전 감탄을 하였답니다.

아이는 부모님께 받은 ‘사랑’을 의식하건 의식하지 못했건 이미 알고 있고,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긴다는 게 얼마나 놀라웠던지요.

돌이켜보면 인형놀이를 하던 꼬마시절, 저도 인형에게 말을 걸고 놀아주는 방식 모두가 결국은

‘부모님으로부터 배운 사랑’의 또 다른 얼굴이 아니었던가 생각합니다.

 

끙끙거리며 잠을 청할 수 없어하던 찰리를 살피러 뛰어온 헨리를 보셨나요?

헨리는 찰리를 품에 안고 창가에 가만히 서 있어요.

“달님이 너를 위해서 달빛을 비춰주는 거야.” 라고 헨리는 속삭이죠. 

따뜻한 체온이 서로에게 전해진다는 걸, 멀리서 바라보면서 느낄 수 있어요.

그리고 헨리의 뒷모습엔 무대의 조명처럼 달빛이 드리워져 있어요.

두 사람이 속삭이는 소리를 잘 들어보세요.

사랑을 받고 자란 헨리는. 사랑을 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줄 수 있는 아이랍니다.

둘의 공감이 그림 속에서도 들리는 듯 했어요.

 

외로워 보이던 찰리를 헨리는 자기의 침대에 누이고, 서로의 눈빛을 맞춥니다.

나란히 누운 두 사람을 아주 편안하게 잠들죠.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기억 속에 있는 ‘똘이’가 떠올랐습니다.

세상에 나온지 오래되지 않았던 강아지- ‘똘이’가 처음 왔을 때, 전 꽤나 서툴렀거든요.

엄마가 데려왔던 그 꼬마와 단둘이 있게 된 날, 저는 이 어린 강아지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몰라 했었죠.

마음을 다해 보듬으려고... 친해지려고... 굉장히 많은 노력을 했었거든요.

아기처럼 재우려고 곁에 두었다가 저도 똘이도 이불 위에 나란히 잠이 들었던 그 날,

아마도 똘이와 저는 진짜 친구가 되지 않았을까 해요.

폴짝폴짝 저만 보면 반기던 똘이도, 아마 그날 마음을 처음 열었을 거예요.

그리고 사랑을 서툴지 않게 표현하는 방법도, 조금씩 깨우쳐가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요, 그 시절의 저는 늦은 밤까지도 자료를 준비하고도 이른 아침이면 멀리 출근하던 '교생실습'중이었죠.)

 

어린 아이들과 동물이 함께 지내면,

부모님의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상대방에게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지...

하나씩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저는 이 책을 보면서 생각해봤습니다.

나란히 잠든 꼬마와, 강아지를 보는 제 마음은 그랬어요.

 

제가 선물한 이 책을 보고 자라날, 그 꼬마도 그렇게 마음만은 '든든하고 의젓한' 아이가 되어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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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생각하면 모든 것이 정리된다
무라이 미즈에 지음, 박정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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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필기의 달인’까지는 아니지만 강연을 들으면서 정리하는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비밀은 그림!

대학생 시절에 교양강의로 의학상식에 관한 수업을 들을 때엔 노트가 그림책과도 같았다.

같이 수업을 듣던 선배들이 내 공책을 탐을 낼 정도였다.

하지만 어느 샌가 그 필기 노하우는 별다른 장점이 되지 못하였다.

많은 사람 앞에서 발표를 하거나 전달하는 말하기는 기회가 많아졌고,

짧은 시간 내에 ‘메모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손쉽게 전달하기’가 필요가 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리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 책을 선택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고 싶어졌던 것은 제목에서부터 나의 생각과 통하는 면이 있어서였다.

<그림으로 생각하면 모든 것이 정리된다>! 하지만 책을 펼쳤다가 며칠 동안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책의 초반에 ‘그림으로 생각하면 이렇게 이렇게 좋다’는 걸 저자가 ‘너무’ 친절히 설명을 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의 독특한 이력에서 나온 뜻깊은 실용의 예였겠지만

이미 그림의 필요성을, 그리고 소중함을 알고 있는 독자에게는 구태의연한 동어 반복으로만 보였다.

나처럼 이미 제목에서 ‘공감’을 하면서 책을 선택한 독자라면

책의 순서대로 읽기보다는 목차에 따라 간단하게 넘어가도 되는 부분이 있다는 걸 염두해둘 것.

(사실 이런 독서가 올바른 독서라는 건 알고 계시겠지만! ^^)

 

그림을 활용한 정리법에 대한 내용은 대략- 책 69페이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크고 복잡한 문제는 인수분해 그림으로, 먼저 집중할 것은 매트릭스 그림으로,

선택과 결정이 중요한 논제에는 비교 그림으로, 복잡한 실행은 표 그림,

각각의 특색을 정리하고 싶으면 벤다이어그램이나 도형 그림으로(이 책에선 컨셉트 그림으로도 설명한다),

실행의 절차를 계획할 때는 세로가로선 그림으로,

절차와 결과 모두를 단계별로 고려하고 싶으면 프로세스 그림으로 접근하라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이 노하우는 책의 뒷표지에도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다.)

책 속에서는 이 각자의 내용에 대해 실용적인 예를 들어 설명을 하고 있다.

그리고 책의 노른자 내용은 163페이지부터 등장한다.

파워포인트 같은 프레젠테이션 자료에서 적용할 수 있는 ‘1퍼센트’의 차이를 만들어주는 좋은 조언들.

 

 

 

책을 따라 직접 적용해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

덕분에 지금 내가 겪고 있던 몇가지 고민을 떠올리면서 따라해보기도 했다.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들을 경우에 따라 분류해보기도 했고,

해결 방안을 어떻게 떠올려볼지 갈피를 잡았다.

 

 

직접 적용하기에 좋은 노하우를 배운 것 같다.

물론, 나의 경우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트를 펼친 상태에서

책을 함께 읽느라 책에 소홀한 것도 같지만, 제법 유용했다.

(내 고민을 위한 시간이 따로 필요했기에 책을 빨리 덮어버렸다.)

 

 

 

저자는 직접 체험한 노하우를 정말 손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작은 차이라도 놓치지 않고 PT자료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라면 얼른 이 책부터 넘겨보길.

아, 물론 PT 자료를 제법 많이 만들어보았거나, 만들면서 많은 참고서적을 통독했던 분이라면

이 책이 '조금은' 싱거울 수도 있다.

이 책의 저자나 ‘당신’이나 결국 체험에서 얻은 교훈은 비슷한 면이 많을  테니까.

+물론, PT에 관한 많은 책들을 ‘아직’ 섭렵하지 않은 분들이라면 이 책을 추천한다. 짧은 시간 내로 꽤나 많은 노하우를 쉽게 전수받을 수 있다!

 

 

 

p.s. 앞서 밝혔다시피, 책의 초반 68페이지를 할애해가면서 ‘그림의 중요성’을 피력한 만큼,

PART5의 ‘1퍼센트 다른 프리젠테이션을 위하여’ 부분을 보강하였더라면,

더 중요하고 강렬한 책으로 남았지 않았을까 싶다. 과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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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
가스통 르루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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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어장관리녀 크리스틴과 음악의 신 에릭, 그것이 알고 싶다!-

 

내가 처음 만난 ‘오페라의 유령’은 적당한 그림과 큼지막한 글씨가 함께 들어있는 얇은 학생용 책이었다. 화려하고 큰 무대 위에 서 있는 단역 배우에서 프리 마돈나로 거듭난 크리스틴의 운명은 얼마나 부럽기만 했는지. ‘유령’이라는 신비한 존재 덕분에 음악적으로 더 많이 성장했고 성공을 쉽게 얻을 수 있었던 멋진 운명을 가진 여인이라니! ‘유령’은 그녀에게 음악적 스승이고 헌신적인 사랑인데, 그가 선사한 성공에 감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크리스틴을 시기하는 어린 소녀였다.

내 생애 최초로 만난 ‘어장관리녀’ 크리스틴이 왜 사람들에겐 비판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지, 웨버의 뮤지컬 속에서 25년이 넘게 아름답게 기록되는 그녀의 진실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 <오페라의 유령>을 집어들었다. 가스통 르루의 원작을 완역한 2012년 영문 버전을 참고로 하였으니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녀의 진짜 매력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 나는 기대했다.

 

 

크리스틴은 내가 알던 것 이상으로 맑고 순수한 여인이었다. 로테의 곁에 와주었다던 음악 천사에 대한 환상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가난했지만 발레리우스 부인의 호의 덕분에 어려움 없이 음악에 대한 꿈을 펼쳐보일 수 있었던 행복한 여자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녀가 동화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음악의 천사만을 기다리며 자랐다는 것은 행복인 동시에 불행이었을 지도 모를 일이지만.) 관객 중에서 한눈에 들어오던 어린 시절의 친구, 라울을 발견했을 때 그녀는 애써 숨겨왔던 아름다운 목소리를 자신도 모르게 꺼낼 수 밖에 없었다. 사랑을 속일 수 있는 건 없었으니까. 한바탕의 소동으로 인해 정신을 잃었던 그 날, 불쑥 분장실에 나타난 라울이 “당신의 스카프를 건지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었던 그 어린 소년입니다.(p.55)”하고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에 키스를 바쳤을 때 그녀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오페라 하우스의 어디든 제집처럼 드나들며 그녀를 감시하는 ‘음악의 천사’가 자신에게 얼마나 큰 조약을 걸었던 것인지 그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온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고 있는 진실한 연인을 눈앞에 두고도 장난처럼 웃어 버릴 수 밖에 없었던 운명은,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보여줄 수 없어 ‘약혼 놀이’를 흉내낸 며칠만을 허락하던 그녀의 마음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녀를 지켜주는 존재라고 믿었던 그 ‘완벽한’ 음악의 신은 무엇이었지, 나는 그 시절에 무얼 보았던 걸까? 책 속에 빠져들수록 나는 크리스틴의 사랑에 흠뻑 빠졌고 에릭의 그림자는 커져만 갔다.

 

어릴 적에 내가 기억하는 ‘오페라의 유령’-에릭은 신성할 정도로 완벽한 음악의 천사였다. 크리스틴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하는 순진한 남자였고 그녀를 위해 노래하고 사랑을 바치는, 낭만적이고 비극적인 남자였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다시 만난 그는 달랐다. 기예와 마술에 능하고, 건축에도 재주를 가지고 있었으며 탁월한 성악가요 작곡가였다. 내가 아는 그의 모습 이상이었다. 더불어 ‘추악한 외모를 가진 자신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도덕적 의무도 지킬 필요가 없다고 믿는 것처럼 보였다(p.420~421)'는 페르시아인의 말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껏 허상을 보았던 것이 분명하다.

 

소설 속에서 찾아간 오페라 하우스는 샹들리에가 빛나는 무대만이 존재하는 건축물이 아니었다. 밝고 어두운 면이 공존하는 또 다른 세계였다. 무대 아래로 펼쳐지는 지하는, 어둠으로 지어진 에릭만의 세상이자 그가 사랑하는 크리스틴 외의 존재들에겐 허락되지 않는 무시무시한 공간이다. 고문실에 존재하는 숲과 사막 그리고 오아시스의 환상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두려움’이었다. 크리스틴이 느끼는 ‘공포(p.266)' 그대로였다. 크리스틴을 구하기 위해 들어온 라울과 페르시아인이, 에릭에게 발각되었을 때 나는 지금껏 속아온 나를 원망하며 에릭을 저주하고 있었다. ’음악의 천사‘라 믿었던 에릭에게서 배신당한 -크리스틴이 아닌-또 한 명의 소녀는 그렇게 ’유령‘을 두려워하면서도 미워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유령’에게 입맞추고 눈물흘릴 수 밖에 없다. 마치 크리스틴이 그했던 것처럼. ‘그녀는, 크리스틴은 공포에 떨지 않았어! 내가 그녀의 이마에 입 맞춘 후에도 그녀는 계속 내 곁에 있어주었어. 마치 그게 아주 자연스러운 일처럼 말이야. 아! 다로가. 그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지! 누군가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는 것 말이야! 당신은 이해할 수 없을 거야. 하지만 나는...... 나는...... 나의 어머니는, 나의 불쌍한 어머니는 절대로...... 절대로 내가 입 맞추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어(p.509)' 라고 고백하는 그의 목소리를 들었기에. 온갖 재주로 술탄의 사랑을 받아 멋진 궁전을 선사하였지만 그 왕으로부터 두 눈을 뺏기고 아무도 모르게 제거되어야 할 왕의 과오의 존재가 되어버린 그의 과거가 내게 아픔으로 전해졌기에.

 

자신의 추악한 외모 때문에 모두에게서 외면당한 남자이면서도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이 되었노라고(p.421)' 말할 수 있던 남자, 사랑하는 연인을 아끼는 마음에 그로부터 도망쳐야 하고 ’유령‘을 두려워하면서도 그를 가엾어 할 수 밖에 없는 여자.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지 않게 흔들리는 이 두 주인공은, 에릭이 가진 신비로운 건축물 안에서 마치 빛과 그림자 같은 한 쌍이 되어 살아 움직인다. 소설이 이렇게 환상적인 인물과 배경을 만들어내는데 그 어떤 창작자가 다른 방식으로 재창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를 스물 다섯 해동안 키운 건 분명, 팔할이 소설이다.

 

 

쉴새 없이 크리스틴이 되었다가 라울이 되었다가 때로는 에릭, 페르시아인, 혹은 ‘나’라는 화자의 자리를 바꾸어가면서 오페라의 유령을 만나고 나니 세상이 달라진 것 같다. 질투어린 꼬마가 저지른, 크리스틴과 에릭에 대한 어줍잖은 오해가 모두 풀려 다행이다. 모쪼록 더 자주 보고 더 깊이 알아갈수록 진심을 알 수 있다는 진실을 믿자. 우선, 나부터도 그러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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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교실 - 2012 뉴베리 아너 상 마음이 자라는 나무 32
유진 옐친 지음, 김영선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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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교실>, 이 제목만 듣고서

나는 ‘가장 완벽한 모델’을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학생들과 선생님은 서로를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의 학생을 이해할 줄 아는 교사가 있는 교실,

제목만으로도 그런 완벽한 교실에 다가온 듯 했다.

표지에 있는, 얼굴이 채 그려지지 않은 아이가 밟은 듯한 안경과

널브러진 의자도 학교 폭력이나 교우관계에 대한

창작동화가 나올 것이란 내 기대감을 부풀려 주었다.

 

 

그러나 본문의 첫페이지인 7페이지를 펼치다 나는 멈칫했다.

우리 아빠는 영웅이자 공산주의자다. 나는 커서 꼭 아빠처럼 되고 싶다. 사실 내가 가장 닮고 싶은 사람은 스탈린 동지다. 하지만 내가 스탈린 동지처럼 될 수는 없다. 그분은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이자 스승이니까.(p.7)

교육적으로도 의미심장하다는 스푸투닉이

우주로 올려지던 시대, 스탈린이 살던 시대는 ‘냉전시대’다.

그리고 내가 받은 교육은 냉전시대에서 ‘미국은 우리편(?)’에 가깝다.

그런 내가 동화책에서 갑작스레 만난 ‘영웅’과 ‘스탈린’이란 단어는 꽤나 무겁기만 했다.

 

잠깐의 심호흡, 그리고 작가 유진 옐친의 이력을 살핀다.

구소련에서 자라고 교육을 받았고 지금은 미국에 산다. 전국 유대인 도서상을 받았다.

그리고 책에 둘러진 띠지를 다시 한 번 본다. 2012년 뉴베리 아너 상 수상작.

그래, 내 편견을 놓고 다가가 보자고-책장을 다시 펼쳐 들었다. 편

견없이 다가가자 이야기 안으로만 들어가는 거야 가장 완벽한 교실을 알아야 하니까 ,그렇게 나를 달래며.

 

 

 

내용은 간단하다.

공산주의자로 스탈린의 총애를 받던 아빠가 자랑스럽던 사샤.

내일이면 소년단원이 되는 날이다.

아빠가 학교에 직접 오셔서 소년단의 빨간 스카프를 매주시기로 하셨다.

자랑스러운 나의 아빠, 그런데 갑자기 KGB에 의해 아빠가 잡혀가셨다.

스탈린동지가 뭔가 잘못아신 것이 분명하다.

실수를 바로 잡아야 하는데 날은 밝았고

나는 학교에서 실수로 스탈린 동상의 코를 깨부수기까지 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아야기 속에 등장하는 교실은 ‘너무’ 안정적인 교실이다.

니나 페트로브나 선생님의 총애를 받는 학생은 가장 앞에,

사상적으로 불손한 아이들은 교실 뒤편으로 갈라져 있다.

민주적인 다수결(!)에 따라 언제나 의심이 되는 아이들을 마음껏 신고할 수 있고

소년단원이 되는 명예를 얻을 자격이 되는지는 스탈린에 대한 충성도로 결정된다.

무슨 일이건 흑과 백의 기준은 하나뿐이다.

큰 변화가 예측될 수 없는 교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교실인지도 모른다.

 

사샤가 실수로 망가뜨린 스탈린의 코는 사샤의 마음 속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다.

불손한 아이로 낙인찍혀 교실 뒷자리에 갈 수는 없다.

하지만 사샤는 불손하지 않은 걸.

니나 선생님의 기준에 따르면 스탈린 동상을 훼손한 사람은 사상이 이상한 문제아다.

선생님 책상 바로 앞에 앉던 사샤가 이상한 아이였던 적이 있던가?

 

스탈린의 ‘코’ 때문에 여러 변화를 겪는 사샤에게 고골의 단편소설 <코>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늘 이상하게 보이기만 했던 기간제 국어 선생님의 수업의 일부를 엿들어보자.

<코>가 우리에게 전하려 하는 것은, 우리가 옳고 그름에 대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맹목적으로 따르다 보면, 나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다간 나라 전체가, 심지어 세계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예요.(p.126)

 

 

이미 돌아가신 엄마는 그리고 잡혀가신 아빠는 어떻게 되시는 걸까.

눈깔 네 개로 불리던 유대인 보르카는 지금 행복할까.

문제아 보브카와 사샤가 다른 건 뭐지?

 

 

사샤가 그 짧은 시간에 숨겨진 진실들을 추측하고 깨달아가는 만큼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은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어떤 아이들에게 권해야 이야기에 담긴 모든 흐름을 온전히 알아챌 수 있을까.

-초등학교 교육과정은 잘 모르겠지만-추측컨대 3학년 이상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권하면 좋겠다.

국제 정세와 역사에 대해 배우면서 곁가지 보조교재로 활용되면 훨씬 더 유용하게 와 닿을 듯 하다.

 

 

 

 

세상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

우리가 가보지 않았기에 알 수 없는 길도 있게 마련이다.

사샤는 교실에만 앉아 있는 다른 아이들이 겪을 수 없는 일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성장하기 위해선 직접적으로건 간접적으로건 많이 겪어야 한다.

무작정 옳으니 옳고 그르니 그르다고 설명부터 하지 말자.

어쩌면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완벽한 교실을 ‘만들어 주는’ 것 자체는 섣부른 욕심 아닐까.

아이들이 가장 완벽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가장 좋은 방법을 생각해보자.

짧은 시간에 우리보다 더 많이 성장할 수 있는 게 아이들이니까.

자, 가장 완벽한 교실이 어떤 건지 깨달았는가. :)

 

 

p.s. 실제로 이 책의 원어제목은 [ Breaking Stalin's nose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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