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너도 피터 레이놀즈 시리즈 2
앨리슨 맥기 지음, 김경연 옮김, 피터 레이놀즈 그림 / 문학동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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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너도』라는 그림책을 봤다.

맨 처음 눈에 들어오는 첫구절은 이랬다.

어느 날 네 손가락을 세어 보던 날

그만 손가락 하나하나에 입맞추고 말았단다..

이유 없는 뜨거움이 목구멍을 올라오는 듯 하다 말았다.

나의 엄마를 떠올린다. 과연 당신도 내게 그러셨을까.

 

당신은, 동네방네 알아주는 부잣집에서 엄한 가정 교육을 받으며 자라셨지요.

자수성가한 -전형적인 경상도식- 가부장적 아버지와 고운 외모에 걸맞는 수줍은 몸가짐을 가진 어머니를 가지셨습니다.

줄줄이 자라나던 수두룩한 딸들 사이에서 당신께선 곰살맞음이 특출나다거나,

제 밥그릇을 알아서 챙기던 약삭빠른 딸이 아니셨을 테지요.

남편과 아들, 딸들, 그리고 시어머니를 봉양해야 했던

수더분한 당신의 어머니에게서 특별한 스킨쉽이나 사랑어린 속삭임을 듣기에,

1남 6녀 사이 당신의 ‘다섯째’라는 자리는 꽤나 미미했을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외할머니께선 보이지 않는 짝사랑으로 당신을 키우셨을런지도 모릅니다,

그 시대의 대부분 어미들이 그러하셨듯이.

시집을 오면서 당신께서는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살림을 시작하셨고

더욱 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간절해지셨을 테지요.

시집온 지 십여년 정도가 되었을 때 당신의 어머니이자 저의 외할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못다 나눈 사랑만 남기고, 당신께선 외사랑을 접어야 하셨던 것은 아닐까요.

그렇게 당신이 기억하는 ‘엄마’의 자리는 조금 성글고도 헐거울 겁니다.

적어도 제게 비친 당신과 당신 어머니 사이의 사랑은 그렇습니다.

 

 

 

엄마는 마흔이 안되는 나이에 ‘심장병’을 선고받고 겁을 덜컥 먹으셔서

일찍 운명을 달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손을 잡고 가자고 칭얼대는

어린 딸에게 ‘홀로서기’라는 어려운 단어를 써가며 ‘새끼 손가락 하나만’ 내어주셨던 분이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조금 수줍고 나약한 소녀같기만 하다.

 

“솔직히... 오빠 태교할 때는 이것저것 신경 썼지만, 너한테는 일부러 안한 것도 있어.

여자가 너무 똑똑하면 힘들기만 하지.” 이런 양심 고백을 듣고 충격을 받을 만도 했지만,

사실 이것도 내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덕분에 얻어낸 대답이다.

엄마가 자라온 환경과 삶이 오묘하게 응축된 한 마디 말이라

나는 엄마가 미우면서도 이해가 된다.

 

 

 

이런 엄마을 잘 알면서도 난 요즘 대뜸 포옹을 시도하곤 한다.

“나 시집가면 엄마가 포옹하고 싶어도 못해”.

스킨쉽을 어색해하지 않는 엄마와 딸이 되고 싶어 달려들면 엄마는 질색팔색하신다.

“에이, 엄마는 왜 진작에 이렇게 (살갑게) 안했데?”하며 멋쩍게 두 팔을 풀어 드린다.

‘엄마는 능글맞은 나 덕분에라도 사랑 보여주는 것에 익숙해져야 해’, 나는 마음으로 말을 잇는다.

 

언젠가 느끼게 될 거야

네 등에 온몸을 맡긴 너의 작은 아이를

 

언젠가 나는

네가 네 아이의 머리를 빗겨 주는 걸 보게 되겠지

 

언젠가, 지금으로부터 아주아주 먼훗날

너의 머리가 은빛으로 빛나는 날

그날이 오면, 사랑하는 딸아

넌 나를 기억하겠지

어머니가 딸에게 전하는 편지같은 책-『언젠가 너도』라는 책을 읽으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난 이 책을 엄마께 보여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마음이 아주 여린 나의 엄마께 이 책을 선물하면서,

보이지 않는 엄마의 빈 마음을 ‘위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위로’ 받았기 때문이란 걸.

 

 

 

엄마는 사랑을 보여주시는 것에 서툴겠지만,

그래서 늘 거리를 두고 나를 지켜보시는 거 알지만 나도 엄마의 마음 알아요.

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 꼭꼭 숨기지만 말고 나한테 ‘사랑한다’는 말 좀 자주 해요.

나도 엄마한테 받은 사랑 그대로 미래의 ‘내 아이’에게 주고 싶단 말예요.

난 내 아이에게 내가 받았고 줬던 ‘엄마와 자식 간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다 전해서 키울 거야.

사랑하는 내 아이가 자라나, 그 언젠가 나를 기억하고 내 ‘엄마’인 엄마까지 떠올리면서 자라도록.

그 아이가 ‘내리사랑’에 감사할 수 있게, 풍족한 사랑을 다 보여주면서 키울 거예요. 

 

엄마, 그러니까 나한테 사랑한단 말 잘 해요.

나도 가끔이라도 집에 가서 몸을 부비면서 엄마가 제때에 못 내어준 사랑 받아내곤 할 거야.

내 아이에게마저 이런 수줍은 사랑을 그대로 물려주고 싶진 않단 말이예요.

 

 

 

수채화 같은 그림 속, 따사로운 모녀가 유난히 마음으로 전해지는 책이다.

하얀 여백이 온통 사랑으로만 가득찬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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