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 영혼이 향기로웠던 날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으로 안내하는 마법
필립 클로델 지음, 심하은 옮김 / 샘터사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누구에게나 오감(五感)이 있다.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 외부의 것을 느끼는(感) 다섯 가지 감각.

누구에게나 오감은 주어져 있지만 

사람마다 각자 주로 사용하는 감각은 따로 있다 한다. 

다른 감각보다 예민하거나 더 발달한 감각, 당신에겐 무엇인가?





작가이자 영화감독 필립 클로델에게 그 감각은 후각이 아닐까. 

제목 『향기』를 마주하고 제일 처음 든 생각이었다. 

(황금색에 가까운)노란 색과 검은 색이 조화롭게 펼쳐진 

프랑스 거리가 담긴 표지를 보면서 

빵 굽는 냄새, 프로방스 지방의 허브 향기, 

때로는 지하철에서 풍겨오는 특유의 지린내 

같은 걸 떠올리며, ‘좀 뻔한데?‘ 생각해보기도 했다. ^^;;;


게다가 조금 있다가 만난 ‘차례’ 속 글자들엔 향기라 부르기 민망한 것들이 있었으니...

증류기, 대마초, 호텔 방, 사체, 새 시트, 

잠든 아이, 장밋빛 사암, 체육관, 깨어남, 여자 성기, 여행. 

이것들이 갖는 향기는 도대체 어떤 것이길래 굳이 쓰려 했을까 의아하기도 했다.




다섯 살 때, 일곱 살 때, 열 살 때. 호텔 방은 방학을 의미했다. 방은 넓고 온통 낯설었다. 집에서 나는 냄새와 전혀 달랐다.

똑똑히 기억난다. 티를 산맥 외츠탈Ötztl* 계옥의 호텔 방문턱을 넘을 때부터 나를 반긴 것은 화장실 비누와 수건의 향기였다. (p.53)

‘호텔 방’ 부분을 읽다 말고, 공간이 갖는 특유의 냄새에 대해 잠시 떠올려 보았다. 

오빠가 몇 달을 입원해 있어 자주 오갔던 (병원) 병실의 냄새, 

명절이면 내려오던 부산의 냄새, 할머니 할아버지 댁으로 가던 골목의 냄새, 

동네 아이들의 집에 놀러갔을 때 느꼈던 특별한 냄새들도

(우리집에선 나지 않던 냄새가 다른 집에선 부각되곤 했다. 

가령 어떤 집은 장(간장?된장?)의 냄새가 미묘하게 어린 공기의 냄새가 난다거나, 

어떤 집에선 바짝 마른 섬유유연제 같은 냄새가 나기도 했다).


새로 씌운 모켓, 모두 똑같이 무향이고 실용적인 제품을 쓰는 세탁업체에 맡겨 깨끗이 빨아 다린 침구(이 무취도 결국 하나의 냄새다), 살균소독한 욕실, 향기 없는 옷장. 때때로 꽃병에는 꽃이 꽂혀 있다. 물론 대개는 향기 없고 소박한 난초다. 목욕 용품만이 향기를 낸다. 샤워 젤, 수분 크림, 비누. 그 향이 다시 기억난다. 어린 시절의 인상도. 호텔 방은 집과 똑같은 비누를 쓰지 않는 곳이다.(p.53~54)

외국의 호텔에 갔을 때 느끼는 이상 미묘한 냄새도 한번 떠올려 보았다. 

우리나라의 제품에선 맡아 본 적 없는 냄새가 샴푸와 비누 모두에서 똑같이 났던 것도 같다. 

(어쩌다 내가 이 작가님의 이야기에 편승해서 ‘냄새’ 찾기에 빠져 있는 거지? ^^;)




꼬마 니꼴라가 소년의 눈에서 본 세상의 이야기라면 

이 책은 그 귀엽던 꼬마가 적당히 예민하고 꼬장꼬장하고 괴팍한, 

그런데 다소 솔직하기까지 한 남자가 되어 과거의 시간들을 풀어 놓은 이야기라 할까. 

어린 아이의 눈에는 새롭고 반짝이고 특별한 것들이 

크게 과장되어 즐겁고 활기찬 세상을 이루어가곤 하지만, 

머리가 너무 커버린 어른이 되고 나면 그 특별했던 것들에조차 냉소적인 눈길로 다시 보게 되니까.


작가는 다소 엉뚱한 냄새로 시작해서 자기 고백을 하기도 한다.

가령 다섯 살 때 처음 만져본 볼록하고 부드러운 부분에 대해서라던가 

기욤 아폴리네르나 빅토르 위고의 시를 빌어 오글거리는 고백의 시를 써내려가던 기억들까지. 


이 남사스러운 고백들을 읽으며 주책이네 생각하다가도 달리 보이는 순간이 왔다. 

향기를 쫓는 남자의 코끝에서 점차 

살아 움직이는 사물들이 보이고, 

표정을 짓거나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다, 작가가 불러온 냄새 끝에는 그 시절의 순간과 그리운 사람들이 있었다. 

지하실의 냉기 어린 곰팡내 끝에는 

작가를 쏘아보는 표정의 세 이모할머니가 있고, 

시가의 냄새 속에는 마시고 춤추고 피워대는 청춘의 한자락이,

땀과 가죽 냄새와 모피 냄새와 부식토와 구운 빵의 냄새를 풍기는 

또래의 친구들과 여자와 가구, 그리고 음식들이 가득한 파티의 순간이 보인다. 

에프터 세이브의 푸른 냄새 속에는 남자에서 아기로 돌아온 아버지가 있고, 

아버지보다 다정하고 편안하게 지낸 삼촌의 이야기는 곳곳에서 여러 향기와 함께 불쑥 떠오른다.



사람마다 오감이 있고, 

그 중에서도 주로 발달하는 감각이 하나뿐이라고 단정지어 말은 못하겠다. 

필립 클로델의 글을 읽으면서 코가 열렸고,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눈이 트이고 그리움의 온기를 -살며시- 느꼈으니까. 


게다가 그가 움직이게 만드는 영화 속 그림들, 혹은 책 속의 그림들에서 

보이지 않는 여섯 번째 감각을 하나 불러 일으키게도 되었으니까.


작가의 다른 책이, 다른 영화가 더 보고 싶다.





p.s.

여기서 문득 내고 싶은 퀴즈, 달콤한 식물성 잼 같은 것, 사탕과 과자, 풀줄기와 대초원의 향기, 그리고 무어라 이름 붙일 수 없지만, 작가를 덮쳐왔던 그 향기는 어떤 추억과 마주하고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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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해서 비슷한 사람 - 양양 에세이
양양 지음 / 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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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에 앉아 머그컵에 따끈한 물을 채운다. 

가만히 베란다 창으로 밖을 본다. 

낮은 층, 넓은 창,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까지 읽을 수 있는 공간. 

어느 높은 원룸에 살 땐 누리지 못하던 것. 사치 아닌 사치. 

좁은 공간 책상 앞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던 세상 ‘안’....그리고 그걸 보는 나.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나가면 그 풍경이 될 수 있는 거리. 

문득 지금이 고마워진 건, 양양이 소개한 자기 방의 창문 이야기 때문.

5층 건물에서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도시 풍경과 얕은 하늘이 보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이토록 창문에 연연하는 까닭은 안의 내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바로 창문이기 때문이에요. 가만히 앉아서 나는 저 건너편 집의 살림살이를 상상하기도 하고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지, 밥은 뭘 먹었는지를 궁금해하기도 합니다. 오늘의 별을 보면서 내일의 날씨를 가늠해보기도 하고, 낮은 저편에 앉아 있던 새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그러고 보니 새들의 집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하고요. 그렇게 홀로 앉아서 바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거지요. 창은 나에게 멋진 화면이자 공상소설이자 ‘이상한 나라의 폴’이 사차원 세상으로 들어가는 구멍인 셈입니다. (p.023) 

넓은 창 앞에 함께 앉아 아무 것도 하지 않고도 어색하지 않을 수 있겠다, 싶었다.




가수 양양의 노래를 찾아 듣는다, 글을 읽다 말고. 

머릿 속에 양양이란 이름처럼 순하고 예쁜-다정하고 상냥한 가상의 목소리를 

하나 만드느니 진짜 이 사람의 목소리로 에세이들을 만나고 싶어서. 

<우린 참 비슷한 사람>을 노래하는 목소리가 말한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 한 건 아닌지  (<우린 참 비슷한 사람> 가사 중에서)

아닐 거예요, 아마도. 싱긋 미소지어 주고 싶다.

그녀가 은지에게 '선물'하고 향초와 오렌지를 내민 것처럼.


『쓸쓸해서 비슷한 사람』을 읽으면 읽을수록 ‘여행’이 그리워지곤 했다. 

검은 봉지와 장미 한 송이를 쥔 채 걸어가는 남자를 보면서도, 

부산이 그리워서 ‘부산오뎅’이란 가게를 향하는 양양을 상상하면서도, 

통영의 시장 어귀의 국밥집 소녀와 이모님들의 몸짓을 멀뚱히 바라보면서도, 

대학로 패스트푸드 가게의 엄마와 딸의 대화를 엿들으면서도, 

하다못해 쓸모있는 헌 물건들을 만나 골목에 쭈그려 앉은 작가를 떠올리면서도 

내내 바깥의 공기를 느낀다. 

몇 개월 자유로운 시간들 제대로 갖지도 못한 내 처지가 좀 억울해서 그런가, 

바깥의 공간 ‘안’에 자연스레 어우러지고 노래하고 글을 쓰는 작가가 부럽기도 하다.




창가에 앉아 심드렁하게 기타를 만지작거리면서, 

딱히 내게 눈을 맞추며 이야기하진 않아도 

살며시 기댈 수 있을 정도의 힘을 등에 싣고 있을 것 같은 그녀.


또 어딘가 떠났으려나 또 무얼 챙겨 집으로 들어왔으려나.

그녀의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과 사물의 이야기를 들으면... 문득 떠나고 싶어진다.


기차는 떠나네 정해진 시간에

나는 떠나왔고 너는 돌아가네

처음 만난 풍경 안 적 없던 사람들

각자의 침묵과 창문 하나의 통로를 나누며

달려가네 기차는 종착역을 향하여 (<기차는 떠나네> 가사 중에서)






 *출판사 이봄이 마련한, 책 선물.*

기차를 타고 떠나고 싶게 만들었다.

그 언젠가 가봐야지 했던, 통영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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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생각하며 살 것인가 판미동 영성 클래식 시리즈
제임스 앨런 지음, 장순용 옮김 / 판미동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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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하게 간을 한 음식을 먹는다. 더불어 채소나 과일을 따로 조리하지 않고 먹어 본다. 이런 식으로 한 며칠을 먹으면 입맛이 변한다. 평소에는 아주 매콤하고 달짝지근하던 음식이었는데 정갈한 음식에 길들여진 후엔 맵고 짜고 너무 달아 자극적이라 느낄 지도 모른다.

우리 부부는 어쩌다가 사먹는 바깥 음식들을 맛보며 자극을 느끼곤 한다. 우리도 모르게 익숙해져 온 그 맛에 대해!



이 책 『무엇을 생각하며 살 것인가』는 단순하다. 조금 덤덤해보이기도 한다. 눈길을 끄는 멋진 제목을 단 것도 아니고, ‘제임스 앨런’이란 지은이의 이름도 평범하다. 게다가 책의 표지에 걸린 ‘지속적인 성장과 행복의 비밀’이나 ‘인생철학의 아버지’라는 문구를 보라. 아! 조금은 답답할 정도로 매력적이지 않다. (게다가 어떤 리뷰는 이 책이 별로라고까지 한다.)


글쎄, 내가 읽은 『무엇을 생각하며 살 것인가』이란 책은 좀 다르다. 천천히 읽고 한 박자씩 쉬어 가며 생각해보고, 산책을 하다 문득문득 펼쳐 보아도 가만히 마음에 내려 앉는 글귀들 뿐이다.


어쩌면 이 책은 딱히 조미료를 치지 않고 오래 조리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음식에 비유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예순 개의 부제만 살짝 훑어 보아도 무덤덤해 보인다. 가령,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세상에 바라는 바를 먼저 실천하라, 뿌린 대로 거두리라, 성공을 탐하기 전에 미덕을 먼저 갖추라, 선한 생각을 하라, 평화의 마음을 발견하라 등만 보아도 그렇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종교단체에서 수없이 들어온 지극히 ‘뻔한 말’이다. 이런 책을 보느니 차라리 ‘직장에서의 상사의 눈 밖에 들지 않는 법’같은 책을 읽고 싶다며 코웃음을 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책을 쓴 남자가 1864년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우리가 그렇게도 ‘당연한 얘기’라고 취급하는 그 말들이 삼십대의 사내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2000년대를 사는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게 할 만큼의 명징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유명한 ‘ ’시크릿‘의 기본철학이 사실 이 책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면? 어떨까, 널리고 널린 너무 뻔한 책 같진 않을 텐데? ㅎㅎ





당신은 환경의 희생자가 아니다. 만약 우리를 축복하기도 하고 고통스럽게도 하는 파워가 환경에 있다면 그 환경은 우리 모두를 똑같이 축복하거나 고통스럽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겐 고통을 주는 환경이 다른 사람에겐 축복의 손길을 내밀 수도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선이나 악이 환경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맞닥뜨리는 인간의 마음속에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 준다.(p.47)

물이 반 들어찬 물컵을 보고도 ‘물이 반 밖에 없네’라 반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 이나 있구나’라 반응하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바깥의 사물은 그대로이지만 그걸 읽어내는 것은 내 마음이 하는 것이다. (너무 흔한 말이라고? 그런 반응도 당신 마음에 달린 일.^^)


당신은 지금 생각하고 공부할 시간도 더 갖고 싶다. 또 자신의 노동 시간이 너무나 힘들고 길다고 느낄 수도 있다. 정말 그렇다면, 자신이 사소한 시간을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이용하고 있는지 지금 살펴보라. 사소한 시간을 쓸데없이 보내고 있다면, 설사 그 시간이 더 늘어난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그때 당신은 더욱더 게으르고 나태한 자가 될 테니까! (p.76)

삼일 후에 시험을 치나, 일주일 후에 시험을 치나 공부하기 싫어하는 학생이 공부하는 양은 거기서 거기다. 아무리 긴 시간을 준다 해도 마음을 빼앗기는 것들은 공부 바깥에 얼마든지 있는 법이니까. 그런 것이다.


사소한 호오(好惡), 변덕스러운 애증, 분노, 의심, 질투 등 얼마간은 어쩔 수 없이 복종해야 하는 온갖 변화의 기분들을 정복하는 일이야말로 행복과 번영의 황금 실로 인생이라는 직물을 짜고 싶은 당신이 가장 먼저 해야 할 과제이다. (p.119)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동료 저 사람이 자꾸 나를 힘들게 한다, 내가 한 성과를 낮게 평가한다거나 다 되어 가는 일을 그르친다. 그래서 하기가 싫다. 아니, 변명은 그만하고 우선은 내 마음부터 다스리고 봐야 한다. 사소한 감정에 그르쳐 그 사람이나 해야 할 일의 본질을 잘못 파악하면 안되니까. 차라리 내 마음부터 다스리자.





책을 통하는 가장 기본의 이야기는- 그리고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그 결론은- 내게 달린 문제라는 것이다. 내가 마음 먹은 것에 의해 일들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생각하는 나쁜 것, 오만한 것, 불평스러운 것을 해결하는 첫 번째 단계는 그것들을 불러 일으키는 내게 집중하기, 그리고 그런 것들에 생기를 주는 이기적인 내 마음을 극복해내는 것이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약 200페이지에 불과한 이 책을 한참이 걸려 읽었다. 단순한 말 속에서 자꾸 내 마음을 돌아보게 되고, 내 하루를 반성하게 하는 바람에. 펼쳤던 곳을 읽고 다른 부분을 읽다가도 다시 펼치게 되었다.


멋진 글귀들 뿐이다. 물론 너무 심심해서 난감할 수도 있겠지만, 조용한 저녁 혹은 잠자리에 들기 전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며 읽어내니 내겐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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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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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사람이 부럽다.

아니 있는 그대로의 느낌을 있는 그대로 되살릴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

그것이 내가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이유 중 하나다.


사고가 있었다, 그리고 사건이 벌어졌다.

온 나라가 모두 보았고 들었다.

커다란 배가 천천히 기울었고 천천히 침몰했다.

그 짧지 않은 시간 속에 누군가의 아빠, 엄마, 딸, 아들...

그들이 속수무책으로 사라져버렸다.

그 시간들을 실시간으로 담아내던 수많은 렌즈들과, 수많은 목소리 중에

어느 하나 그들에게 손 내밀지 못했다.

도움이 되는 어떤 한 마디도 지시하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는 사고를 보았고, 사건에 맞딱뜨리게 되었다.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이제 이 두 장의 필름을 분리해야 한다. 겹쳐진 필름이 이대로 떡이 질 경우 우리는 이것을 하나의 프레임, 즉 ‘세월호 침몰사고’로 기억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언론이 아직도 이 타이틀을 쓰고 있다. 별다른 오류가 없어 보이지만 여기엔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함정이 있다. 명사는 모든 것을 아우른다. 그리고 인간의 무의식은 시간이 흐를수록 이를 ‘사고’로 인지하기 마련이다. 사소한 문제인 듯하나 이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p.56, 박민규 -‘눈먼 자들의 국가‘ 중에서)


작가 박민규는 책 속에서 사고와 사건을 떼어 보라고 말한다.

사고에는 의도가 없지만, 사건에는 의도가 있다며 그 둘의 차이를 논하며 우리에게 되묻는다.

국가가 국민을 지켜야 하는 의무를 저버렸을 때/국가는 어떤 처벌을 받아야(p.59)하냐고.

그리고 다시 내 가슴을 두드리는 말을 한다.


단 한 번도 진실이 밝혀진 적 없는 나라에서 이 글을 쓴다. 아프다. 너무 아프다. 한 아이의 아버지이기 때문이고 이곳에 발붙인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모두 한 배를 탔기 때문이다(p.63).

일본이 몰았던 배, 자발적으로 배에 실을 수 있는 화물의 양을 늘렸고

적재물로 붐비는 배 안에서도

‘잘 살아보자’는 방송 하나만을 들었다는 비유적인 표현이,

실제 세월호가 어디서 왔는지

불법임을 알면서도 얼마만큼의 적재물을 과하게 실었는지

급박한 순간에도 상위의 지시를 받았음직한 선원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내보내기만 했다는 사실과 묘하게 겹친다.

그래서 더 비통하기만 하다.

내가 있는 곳이 어느 호(號) 위인지 헷갈릴 수 밖에 없다.





모든 힘의 관계를 시혜의 관계로 표상하도록 하는 언설들이 난무하는 순간, 우리는 베푸는 지배자, 약자들이 가여워 눈물 흘리는 인정 많은 권력자를 받드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자비로운 지배자의 표상 반대편에는 무력하고 보호받아야 할, 그리고 그것에 감사할 수 있을 뿐인 우리의 표상이 존재한다.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그와 같은 표상을 가진 이상, 심판자의 위치는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자리의 역전은 가능하다. 가령 우리는 유권자로서 선거기간 동안 우세할 수 있다. 그러나 모처럼 주어진 우세함은 합리적인 선택의 자리가 아니라 베풂을 받았던 자의 반대 표상, 즉 베푸는 자의 자리가 된다. (p.77~78, 진은영 -‘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 우리의 수치심은 자정의 그림자처럼 길다‘ 중에서)


애도와 구조의 대열을 이룬 많은 남녀의 모습을 비추며 조난자와 그 가족을 마치 한가족처럼 돕고 있는 한국인 집단 이미지를 제시한 그 프로그램은 최종적으로 동정과 협력이 한국인의 국민적 동일성임을 믿도록, 나아가 그 동일성에 따라 자신을 정의하고 자긍自矜하도록 시청자를 유인한다. 한마음 한국인 이미지의 시퀀스 이후 화면에는 장중한 선언의 템포로 분절된 한 줄의 문장이 뜬다. “아픔을 함께하는 당신, 당신이 대한민국입니다.” 이 국민의식 고취를 위한 호명은 모든 노골적인 이데올로기적 고작이 그렇듯이 혐오스럽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인이라는 존재가 추악한 인류학적 사실이 돼버린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p.124, 황종연 -‘국가재난시대의 민주적 상상력’ 중에서)


무작정 감성에 홀려 마음을 빼앗기고 있던 과거의 한 순간도 다시 본다.

아무 행동 없이 노란 리본을 장식물처럼 달고 다니던 수 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스스로의 아픔에 잠기면서도 한 걸음 물러나는 사람들을 본다.

무엇을 위한 눈물인가, 어떤 것을 향한 아픔인가.

문학인들의 글들은 다 낫지 않은 상처로 스며드는 짠 바닷물 같다.


그러나 정부 수반만 바뀌면 세월호 참사와 같은 재난이 재발하지 않으리라고 믿기는 어렵다. 우리는 특정 정권의 정당성에 대해 의심해야 한다. 국가는 과연 민주정치의 요구를 충족시키기에 적합한 형식인가. 국가의 권위는 과연 아무 특권 없는 사람들의 공생과 양립이 가능한가. 국가는 과연 다른 모든 유형의 공동체보다 높은 충성을 요구할 자격이 있는가. 우리 사회는 물질적 자원의 태반을 국구가 통제하는 상태 속에 오랜 기간 머물렀던 까닭에 국가의 권위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제도와 관행을 만들었으며 국가 이데올로기에 의존하여 사회의 열망과 이상을 정의하는 습성을 길렀다. (p.129, 황종연-‘국가재난시대의 민주적 상상력’ 중에서)





책을 빨리 읽을 수 없었다.

줄을 넘어가고 단락을 넘어가며 페이지를 넘어가면서

그때 그 순간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순간순간의 충격과 기억,

잊을 래야 잊을 수도 없는 시간으로 되돌아 가는 기이한 체험을 했어야 했다.

그 체험은 내가 느낀,

묵직한 그 무언가가 어떤 이름을 가진 감정인지

하나씩 밝혀지는 순간이었기도 했다.

작가들의 목소리를 빌어

그 형체와 구성과 근본을 알 수 있어서

다음 장으로 쉽게 넘어갈 수 없었다.


아직도 이 책에 대한 내 감정에 더 솔직하지 못하는,

있는 그대로의 마음과 감정을 꼬집어 표현하지 못하는 내가 가엾다.

그래서 수많은 인용으로 내 마음을 대신할 뿐이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아홉 구의 시신을 바다에 둔 채,

수색 중단 요청을... 유가족이 울음을 삼켜가며 마음을 전했다.


수색 중단에 대한 요청일 뿐이지

세월호를 세월 속에 방치하겠다는 말은 아닌데

어떤 이들이 곡해할까 두렵다.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 일어나고

이백 여 일이 훨씬 지난 지금,

국가는 무엇을 했으며

국민은 무엇을 요구했는가 무엇을 받아냈는가 무엇을 보았는가.


세월호 승객 희생 사건을 ‘영구미제사건’으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된다.







 *한우리 북카페에서 도서를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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껌 좀 떼지 뭐 - 제3회 정채봉 문학상 대상 수상작
양인자 지음, 박정인 그림 / 샘터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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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어른들로부터 자주 들었던 말 중에 하나는 ‘애어른’ 같다는 말이었다. 

언젠가부터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조용히 관찰하거나 헤아린다며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 생각들을 들키는 건 거의 어른들 앞이었다. 

 

엉뚱한 질문을 던지고 내 대답을 듣고 싶어 캐묻곤 하던 어른들은

내 대답을 듣고는 칭찬의 뜻으로 ‘애어른’이라며 감탄 아닌 감탄을 했다. 

그리곤 도로 어른들끼리 대화를 이어가곤 했다. 

남겨진 나는 늘 어른들이 지기 싫어 팽개친 

묵직한 짐을 넘겨받은 기분이 들어 슬그머니 다른 생각을 하곤 했다.

'도대체 애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애어른은 뭐에 쓰는 거야? '

 

 

 

여기, 8시 5분까지 교장실로 가야 하는 아이-미나가 있다. 

6학년 오빠에게 껌을 씹다가 걸린 죄로 아침 봉사 활동을 해야 한다. 

이름 뿐인 '봉사활동'-이 벌을 끝내기 위해서는 껌을 씹는 아이 둘만 잡아가면 된다.

 

마치 내가 액션 영화 속 주인공이라도 되는 것처럼 눈에 힘을 팍 주고 복도를 걸었다. 임무를 완성하지 못하면, 다시는 안락한 내 기지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p.23)

 

껌을 씹는 게 왜 잘못일까, 

교장 선생님은 껌 때문에 학교가 더러워졌다고 믿는 모양이다. 

미나는 껌을 씹으면서 수학 문제를 풀면 문제가 오히려 더 잘 풀리는데 

교장 선생님은 이런 껌의 비밀(!) 따위는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청소하고 아이들을 잡아내면 학교가 깨끗할 거라고 믿으신다. 

껌을 씹는 아이, 껌 종이를 버리는 아이, 죄다 교장 선생님께는 문제 학생들인 것이다.

 

아이는 혀를 길게 내밀고는 입 주변에 붙은 껌을 긁어 모았다. 증거가 사라지고 있다, 안 돼!(p.24)

미나는 어린 아이들의 뒤를 밟으며 증거를 잡아내고 싶었지만, 

덜미를 잡아 채려는 순간마다 엉엉 울어 제끼는 후배들 앞에서 마음이 답답하기만 하다. 

무조건 2명만 데리고 가면 고생 끝인데. 

 

그러다 생각한다.

한 명이 두 명을 잡으면 두 명이 네 명을 잡아야 하고, 다시 여덟 명을……. 이러다가는 우리 학교 아이들 모두 봉사 활동을 하며 서로 잡고 잡아야 할지 모른다. 이런 걸, 계속해야 하는 걸까.(p.28)

 

 

 

학교가 더러워지기 때문에 

껌을 씹는 아이들이 없어져야 한다는 교장 선생님이 더 어른스러운 걸까, 

졸업할 때까지의 봉사 활동을 각오하고 

“껌은 휴지에 싸서 버리고, 수업 시간에는 뱉어라!”며 

껌씹는 친구들에게 충고를 하는 미나가 더 어른스러운 걸까.

북이 좋아서 치는 승학이에게서 

자꾸 부모님의 어두운 그림자만 보는 할머니는 어른다운 모습일까, 

작은 소음 하나에도 날카롭게 반응하는 최명섭 선생님은?

 

 

가만히 생각해본다, 

누군가가 내 잘못을 목격했는데 

다른 사람의 더 큰 잘못 혹은 여러 사람의 잘못을 말해준다면 

내 잘못 따위 못 본 걸로 해준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누군가는 그런 꼬임에 빠져 범죄를 저지르고 더 큰 잘못을 만들곤 한다지만, 나는 왜 '고민'을 하고 있는 거지?ㅋㅋ)

미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그냥 제가 벌 받고 말래요, 고생 좀 하지 뭐”라고 대답하는 초롱초롱한 눈빛의 아이가 보이는 듯 하다.

 

 

동화작가 양인자의 『껌 좀 떼지 뭐』는 

‘어른스럽다’는 말이 늘 바른 표현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준다. 

철없고 모자란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애 같다’는 핀잔 대신에, 

듬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아이에게 ‘애어른같다, 어른스럽다’는 감탄 대신에 

더 나은 표현이 없을까-하고 멈추어 생각하게 해주는 동화들.^^

 

 

 

 

 

 

미나는 ‘애 다워서’ 좋다. 

껌 좀 떼지 뭐,하고 생각하는 그 올곧은 모습이 애 다운 거지, 뭐. ㅎㅎ

 

 

 

 

* 위 도서는 샘터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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