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교실 - 2012 뉴베리 아너 상 ㅣ 마음이 자라는 나무 32
유진 옐친 지음, 김영선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2년 11월
평점 :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교실>, 이 제목만 듣고서
나는 ‘가장 완벽한 모델’을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학생들과 선생님은 서로를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의 학생을 이해할 줄 아는 교사가 있는 교실,
제목만으로도 그런 완벽한 교실에 다가온 듯 했다.
표지에 있는, 얼굴이 채 그려지지 않은 아이가 밟은 듯한 안경과
널브러진 의자도 학교 폭력이나 교우관계에 대한
창작동화가 나올 것이란 내 기대감을 부풀려 주었다.
그러나 본문의 첫페이지인 7페이지를 펼치다 나는 멈칫했다.
우리 아빠는 영웅이자 공산주의자다. 나는 커서 꼭 아빠처럼 되고 싶다. 사실 내가 가장 닮고 싶은 사람은 스탈린 동지다. 하지만 내가 스탈린 동지처럼 될 수는 없다. 그분은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이자 스승이니까.(p.7)
교육적으로도 의미심장하다는 스푸투닉이
우주로 올려지던 시대, 스탈린이 살던 시대는 ‘냉전시대’다.
그리고 내가 받은 교육은 냉전시대에서 ‘미국은 우리편(?)’에 가깝다.
그런 내가 동화책에서 갑작스레 만난 ‘영웅’과 ‘스탈린’이란 단어는 꽤나 무겁기만 했다.
잠깐의 심호흡, 그리고 작가 유진 옐친의 이력을 살핀다.
구소련에서 자라고 교육을 받았고 지금은 미국에 산다. 전국 유대인 도서상을 받았다.
그리고 책에 둘러진 띠지를 다시 한 번 본다. 2012년 뉴베리 아너 상 수상작.
그래, 내 편견을 놓고 다가가 보자고-책장을 다시 펼쳐 들었다. 편
견없이 다가가자 이야기 안으로만 들어가는 거야 가장 완벽한 교실을 알아야 하니까 ,그렇게 나를 달래며.
내용은 간단하다.
공산주의자로 스탈린의 총애를 받던 아빠가 자랑스럽던 사샤.
내일이면 소년단원이 되는 날이다.
아빠가 학교에 직접 오셔서 소년단의 빨간 스카프를 매주시기로 하셨다.
자랑스러운 나의 아빠, 그런데 갑자기 KGB에 의해 아빠가 잡혀가셨다.
스탈린동지가 뭔가 잘못아신 것이 분명하다.
실수를 바로 잡아야 하는데 날은 밝았고
나는 학교에서 실수로 스탈린 동상의 코를 깨부수기까지 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아야기 속에 등장하는 교실은 ‘너무’ 안정적인 교실이다.
니나 페트로브나 선생님의 총애를 받는 학생은 가장 앞에,
사상적으로 불손한 아이들은 교실 뒤편으로 갈라져 있다.
민주적인 다수결(!)에 따라 언제나 의심이 되는 아이들을 마음껏 신고할 수 있고
소년단원이 되는 명예를 얻을 자격이 되는지는 스탈린에 대한 충성도로 결정된다.
무슨 일이건 흑과 백의 기준은 하나뿐이다.
큰 변화가 예측될 수 없는 교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교실인지도 모른다.
사샤가 실수로 망가뜨린 스탈린의 코는 사샤의 마음 속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다.
불손한 아이로 낙인찍혀 교실 뒷자리에 갈 수는 없다.
하지만 사샤는 불손하지 않은 걸.
니나 선생님의 기준에 따르면 스탈린 동상을 훼손한 사람은 사상이 이상한 문제아다.
선생님 책상 바로 앞에 앉던 사샤가 이상한 아이였던 적이 있던가?
스탈린의 ‘코’ 때문에 여러 변화를 겪는 사샤에게 고골의 단편소설 <코>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늘 이상하게 보이기만 했던 기간제 국어 선생님의 수업의 일부를 엿들어보자.
<코>가 우리에게 전하려 하는 것은, 우리가 옳고 그름에 대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맹목적으로 따르다 보면, 나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다간 나라 전체가, 심지어 세계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예요.(p.126)
이미 돌아가신 엄마는 그리고 잡혀가신 아빠는 어떻게 되시는 걸까.
눈깔 네 개로 불리던 유대인 보르카는 지금 행복할까.
문제아 보브카와 사샤가 다른 건 뭐지?
사샤가 그 짧은 시간에 숨겨진 진실들을 추측하고 깨달아가는 만큼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은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어떤 아이들에게 권해야 이야기에 담긴 모든 흐름을 온전히 알아챌 수 있을까.
-초등학교 교육과정은 잘 모르겠지만-추측컨대 3학년 이상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권하면 좋겠다.
국제 정세와 역사에 대해 배우면서 곁가지 보조교재로 활용되면 훨씬 더 유용하게 와 닿을 듯 하다.
세상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
우리가 가보지 않았기에 알 수 없는 길도 있게 마련이다.
사샤는 교실에만 앉아 있는 다른 아이들이 겪을 수 없는 일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성장하기 위해선 직접적으로건 간접적으로건 많이 겪어야 한다.
무작정 옳으니 옳고 그르니 그르다고 설명부터 하지 말자.
어쩌면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완벽한 교실을 ‘만들어 주는’ 것 자체는 섣부른 욕심 아닐까.
아이들이 가장 완벽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가장 좋은 방법을 생각해보자.
짧은 시간에 우리보다 더 많이 성장할 수 있는 게 아이들이니까.
자, 가장 완벽한 교실이 어떤 건지 깨달았는가. :)
p.s. 실제로 이 책의 원어제목은 [ Breaking Stalin's nose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