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럼이랑 집에서 쉽게 허브 키우기 - 베란다 텃밭에서도 즐기는 홈 가드닝
오하나 지음 / 서교출판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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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일 흔하게 볼 수 있는 허브가 뭐게? 깻잎.”

‘허브‘라면 ’섬유유연제에 추출물로 들어간 식물’이라고 낯설게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난 이렇게 자문자답하곤 한다.

 

허브의 매력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약 십여년 전 ‘에센셜오일‘이라는 걸 통해서였다.

화학성분이나 특정 음식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내 몸을 다스리고 싶어서

자연적인 것 알아보던 중에 알게 되었는데 시작은 아로마테라피(향기치료)였고, 그 다음은 허브차였다.

그 외에 허브를 활용한 다양한 제품들을 부러 찾아보기도 했다.

화장품과 방향제, 향신료에 이르기까지 ’선물용‘으로 따로 분류될 법한 좋은 제품엔 어김없이 ’허브 성분 함유‘라는 문구가 꼭 들어 있었다.

그러나 ’허브‘라고 뭉뚱그려 설명만 하고 그 허브의 이름이 뭔지 표시되지 않은 제품들이 많이 있었다.

특정한 허브마다 효과는 다른데 내가 찾는 허브 찾기가 쉽지 않았던 거였다.

문득 생각했다.

‘각자의 허브가 효과를 발휘하게 준비된 제품들은 많지 않구나. 정말 자연 그대로의 상태인 허브를 접하는 건 효과가 어떨까?’ 그렇게 나는 허브식물들을 키워보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허브 종류의 식물을 키우게 된 것은 마음으로 허브를 사랑하기 시작한 후 꽤 시간이 흘러서였다.

정확히 말하면 1~2년 전, 당시에 살던 원룸이 오후 시간 동안 햇살이 잘 든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멋모르고 들이게 된 화분을 보면서 햇빛과 호흡하는 녀석을 몰래몰래 훔쳐보며 일상이 즐거워졌다.

그러나 몇 개월이 지나니 마냥 즐겁지만은 못했다.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면서 화분의 상태가 변해가는 것을 보았으니까.

날씨나 습도에 따라, 혹은 다른 잎의 빛깔이나 줄기의 상태에 따라 많은 것을 배워야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거의 모든 것을 ‘찾아 공부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삽목이나 물꽂이, 전정 같은 어려운 원예 용어들까지 하나씩 배워나갔다.

흙은 어떤 것을 써야 하는지, 화분은 아무거나 써도 될지 인터넷을 쥐잡듯이 뒤지고 다니면서 정보들을 모았다.

(사실 그 시절에 저자(=블로그 닉네임: 퀘럼)의 블로그를 처음 알게 되었다.)

 

아, 이 책이 그때의 내게 있었더라면!

『퀘럼이랑 집에서 쉽게 허브 키우기』는 허브를 직접 기르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58개의 허브들의 주요 특색이 보기 쉽게 정리되어 있다.

한 허브 당 두 페이지 혹은 그 이상을 할애하여 구성하였는데, 찾아보기도 쉽고 정리도 깔끔하다.

허브를 키우는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할 정보를,

재미있는 소제목과 큰 사진을 함께 넣어 간략한 소개를 하고

그 다음 페이지에는 작은 ‘과정 사진들’이 하나하나 실려 있다.

씨앗으로 키웠는지 모종으로 키웠는지, 과정 중에 무얼 챙겨야 했는지

저자의 경험이 묻어나는 친절하고 꼼꼼한 조언들이 가득하다.

물주기는 어떻게 해야 할지, 화분은 어떻게 해야 할지가 한눈에 보이고,

원예 전반에 대한 간단한 메모, 짝꿍 허브나 기타 간단한 허브들의 소개까지 함께 있다.

책에서 거론된 허브들을 합치면 대략 100가지라고 한다. (책을 출간한 이후, 퀘럼 님의 댓글에서 확인했다.)

 

그 시절, 퀘럼 님의 블로그에서 제일 좋아했던 ‘수형 잡기’ 설명 그림이 책에도 실렸다. (왼쪽 위)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 이해가 잘 되었다. 그래서 캡쳐해서 저장해두고 허브들 가지치기 할 때마다 다시 보곤 했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뭘?

허브만을 위한 책은 아니라는 것을!

병충해에 대한 주의 사항이나 흙 종류에 대한 간략한 설명 등

원예 기초 상식도 앞 부분엔 언급되어 있다.

또 우리가 잊을 뻔한 사실은 양파나 고구마, 마늘, 고추나, 봉선화 해바라기, 커피나무 등등도 허브라는 것.

그러니 이 책 하나면 우리가 욕심내어 봄직한 초록이들을 키우는 노하우도 함께 배울 수 있다.

게다가 스페셜 페이지 같은 것이 들어 있어 '새싹채소나 콩나물 키우는 요령' 등도 들어 있다.

 

저자 오하나(퀘럼)님이 손꼽아 준, 일상 속의 허브들

:로즈마리, 라벤더, 레몬밤, 레몬버베나, 세이지 종류, 민트 종류, 바질, 캐모마일, 양파, 감자, 고추, 고구마, 참깨, 마늘, 옥수수, 미나리, 오이, 수세미, 포도, 레몬, 오렌지, 무화과, 석류, 대추, 구아바, 모과, 율무, 보리, 둥글레, 오미자, 생강, 결명자, 매화, 연꽃, 옥잠화, 봉선화, 해바라기, 나리꽃, 창포, 범부채, 질경이, 부레옥잠, 꽈리, 할미꽃, 복분자, 마, 인삼, 어성초, 은행나무, 소나무, 차나무, 측백나무, 커피나무 등 (p.21~22)

 

어디선가 허브 향기가 난다. 고개를 돌려보니 테이크 아웃 커피집이 보인다.

가게의 분위기를 살리려고 놓아둔 건것인지 선반에 어린 로즈마리가 놓여 있다.

‘허브의 대중화’가 반갑다. 그러나 난 말랑말랑한 갈색 포트를 보고 질겁을 하곤 한다.

‘아, 저 아이 금방 죽을 건데. 더 큰 곳으로 옮겨줘야 할텐데.’하면서.

어쩌면 『퀘럼이랑 집에서 쉽게 허브 키우기』가 필요한 곳이 아닐까.

며칠을 두고도 저 포트 그대로라면 참견쟁이 아가씨가 되어야겠다. 친해지면 또 모르지 이 책을 권할런지도.

^^흙과 식물은 몰라도 허브는 무턱대고 좋아하는 분들께 꼭 선물해드려야 할 책이다.

아니, 그 초록이들을 위해서 꼭 읽히자!

 

 

 

 

p.s.

참. 이 책을 읽고 새로 알게 된 허브 모종을 새로 질렀다는 건 비밀.

(책 속에 등장한 녀석들 중에 둘, 원래부터 키우고 싶었던 녀석 하나로 들였다. )

이번 지름의 목표는 오래도록 키우면서 예쁜 수형 잡기!!

새 허브들과 도란도란 사이가 좋아지면 모두 퀘럼 님과 이 책 덕분이리라. ^-^꼭 잘 키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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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를 어떻게 쓸 것인가
이오덕 지음 / 삼인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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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동화와 우리 사이의 징검다리 찾기, 『동화를 어떻게 쓸 것인가』

 
몇 달 전에 엄마께서 노트를 내미셨다.
먼훗날(어쩌면 오빠 때문에 ‘먼훗날’까지는 아니려나)의 손주들을 위해 이야기를 쓰고 계신다며.
책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엿한 한권의 프린트물로 편집하여 오빠에게 한권, 내게 한권 선물로 주실 것이라 하셨다.
대략 내용들은 엄마께서 할머니로부터 전해들었던 이야기나 어머니의 어린 시절을 차지하는 꼬마들의 놀이나 노래들이었다.
 
엄마는 뿌듯해하셨다, 그리고 그 기록을 계속하시는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시는 것 같았다.
먼훗날 내 아이들은 할머니의 마음을 알아볼 수 있을까?
 
 
이오덕 선생님의 『동화를 어떻게 쓸 것인가』에 따르면, 동심은 ‘삐뚤어진 마음이 없는 마음’이다.
동화를 쓰고 싶어하는 독자들에게 아동문학개론이나 창작법의 책보다, 동심을 강조하신다.
동심을 표현하고 그리워 하는 문학을 써야한다고 그것을 어떻게 담아야 하는지 설명해주신다.
또 선생님은 어른들이 읽는 소설보다 쉽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동화에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꾸지람을 하신다.
무작정 단순하고 재미나며 덜 어려운 소설을 쓰려는 마음보다는, 아이들의 마음을 알고 그들에게 맞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무엇보다 깊게 생각하시는 주제는 따로 있으신 듯 했다.
‘동심을 닮은 글’을 쓰는 사람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었으니까.
그것이 무얼까, 예상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자랄 때 마르고 닳도록 봤던 안데르센 동화를 생각해보라.
우리의 산과 들이 배경이던가. 내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과 닮아 있던가.
 
우리 아동문학의 전통 단절(내림이 끊어짐)은 역사의 급격한 변동에 따른 우리 정신의 몰락, 주체성의 상실에서 온 것이다. 사회의 급속한 변화에 따라 천박한 물질 만능의 문명이 우리 민족의 정신을 전반으로 지배하기에 이르렀는데, 이것을 달리 말하면 서구 문명에 우리가 압도 당하고 정복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도 도시의 책방에 가 보면 외국 아동 문학의 상품 시장이란 것을 너무 잘 깨닫게 된다. 물론 엉터리 줄임판으로 된 외국 작품들이고 그런 것이 또 크게 문제되어야 하겠지만, 설사 성실한 번역으로 되어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서유럽의 문학 작품을 위주로 해서 문학 교육이 이뤄진다면 그것은 중대한 문제가 된다. 그 까닭은 서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우리 민족은 서로 매우 다른, 상반되거나 대립되는 역사를 이어 왔기 때문이다. (p.84.....였던 것으로 기억)
 
유럽에서 유명한, 우리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동화를 아이들에게 무작정 전해주는 것보다는
우리네들이 겪어왔고 보아온 진짜 ‘우리 동화’를 들려줘야 하는 것이 옳지 않겠냐고 작가 선생님은 문제를 던진다.
깊고도 강한 울림이 남았다.
흔한 예로, 나 역시도 어여쁜 공주들이 나오는 동화책을 많이 읽고 자주 읽었지만 그
 어디에도 ‘하얀 얼굴’, ‘금발머리’로 묘사되지 않은 주인공은 없었다.
그리고 그런 동화들 덕분에 나는
주변에서 늘 만날 수 있던 개나리나 진달래보다, 엄지공주가 태어났던 ‘튤립’을 먼저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릴 때면 꼭 꽃밭에는 튤립을 그렸고 그림 속의 나는 공주처럼 드레스를 입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어릴 적에 베갯머리에 누워서 듣던 엄마 혹은 아빠의 목소리와 냄새가 묻어나는 ‘햇님 달님’ 이야기가 더 그립다. (그 이야기가 그리워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에 우리 전래 동화를 찾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꼬부랑 할머니’나 ‘봄이 되면 날아오는 제비’, 고갯길에서 불쑥불쑥 나타난다던 ‘도깨비 이야기’가 나오는 동화들을 찾아 읽고 나면,
내가 걷는 산길 어디에서나, 혹은 동네 구석구석 어디에선가 내가 모르고 놓쳐버린 이야기들이 툭툭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늘 동화가 내 곁에 살아 숨 쉬는 기분이었다.
 
이 책은 전문적으로 동화를 쓰려고 하는 ’전업작가’에게
긴하게 전하는 말들과 좋은 예가 되는 이야기들, 그리고 선배이자 스승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다.
아마도 간혹 공공 도서관에 가면 만날 수 있는 분들
-어린이실에 앉아 여러 권의 책을 쌓아두고
메모를 해가며 그 많은 책 전체에 몰두하는 그 어떤 분들에게(실제로 자주 본다)- 필요한 책일 것이다.
 
이오덕 선생님이나 이원수 선생님 같은 동화작가 선생님들은
반가우면서도 쉬이 다가갈 수 없는 ‘동화’의 강을 어떻게 건너오셨을까,
그분들의 마음을 헤아려 ‘아이들’과 ‘우리동화’ 사이의 징검다리가 되어주실 분이라면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면, 엄마의 기록들은 내 아이들의 동심을 살리는 기록이 되어줄 것이다.
이 못된 딸의 욕심 같아선 문학소녀 출신인 엄마께 이책을 슬쩍 권해서
‘꼭 멋진 동화를 만들어주세요’하는 응원의 뜻을 전하고 싶지만,
우리 엄마께서는 다른 사람의 간섭을 싫어하시니.^^;;
먼훗날의 손주들을 위한 엄마의 ‘옛날 이야기 주머니’가 진짜 멋진 동화가 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 할까.
아니 엄마께 ‘동화작가로서의 어려운 과제와 숙명’을 안겨드리는 것이 오히려 짐이려나.
이 어려운 숙제를 짊어지는 사람이 누구이건, 우리의 동화가 더 재미있고 유쾌하며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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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밤 꿈에, 나는 새학기를 맞이한 서점에 서 있었다.

많고 많은 책들 중에 '읽지 않았던 분야의 책'이나

'어렵지 않은 책'들을 고르고 싶어했다.

 

그리고 때마침 등장한 친구 덕분에 좋은 책 몇권을 추천받았고 잠이 깼다.

(.............꿈인데? 세상에, 책을 추천받아;;ㅋ)

 

 

 

아래의 그림은

2013년 3월 말까지 읽었던 책들 목록이다.

 

물론 어쩌다 보니

아직 리뷰 따위를 남기지 않은 것이 아쉬워

작년 12월에 급하게 읽은 몇 권도 포함시켜놓기도 했고,

따로 표시를 해뒀지만 (캡쳐하면서 그 부분은 빠짐)

마음 먹고 완독한 것, 마음 먹고 발췌독한 책도 있고

'다 읽어야지'하고 아심차게 시작했다가 내려놓은 책도 아직 몇 권 섞여 있다.

 

아직 읽는 중인 책은 리스트에 아직 올려놓기 전.ㅎㅎ

(다행히, 더 이상의 거짓말은 하기 전?! ㅎㅎ)

 

 

 

 

많이 읽는 것과 또 무관하게, 많이 생각하고,

그것을 가지고 더 창조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것.

그게 내 숙제라고 생각한다.  ^^;;

 

 

 

 

뒷부분으로 갈수록 책들이....

조금(?) 가벼워지는 경향이 있다.ㅋ

 

그래도 내 '생각의 흐름'이 엿보이는 목록이라 의미있는 것이라고! ^^ㅋ

 

 

 

조만간에 '자연과학/예술' 분야의 책을 지원받아 읽을 수 있게 될 듯.

^^폭 넓은 독서를 할 수 있겠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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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다르게 살아야 한다 - 이시형 박사의 산에서 배운 지혜
이시형 지음, 김양수 그림 / 이지북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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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결코 요란하지 않은 책,  『이젠, 다르게 살아야 한다』

 

빈수레가 요란하다, 나는 늘 이 말이 참 무섭다. 진부한 속담에 지나지 않은 말이지만, 어느 하나 생활에서 어긋나는 법이 없는 말이다. 머릿 속에 들어있는 것들을 설명하다가 혹은 의미를 되짚다가도 나를 돌아보곤 할 수 있는, 일종의 제어장치다.  

 

 

대학 재학시절에도 나는 저 말을 간혹 떠올리곤 했다. 그 교과목이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는 학생들 앞에서 자신의 배경과 실력에 대해 한참을 자랑을 늘어놓던 어떤 교수가 있었다. 그분은 첫 수업 시간에 영어로 수업을 하겠노라는 파격제안을 했고 우리는 보이지 않는 벽을 만난 기분이었다. 전공과목이 과목이니만큼 외국어를 한글로 번역한 한문투의 기술용어들보다야 낫겠지, 생각하면서 잔뜩 긴장했지만 정말 간단한 영어, 외국용어, 그 사이 사이 짧은 질문들은 얕은 영어였으니 우리는 모두 쇼를 보는 기분으로 수업을 들었다. 수업의 내용 역시 알찼다기 보다는 교재를 사라, 그 그림이 이거다, 부분을 그려서 보여주고는 알겠는지를 확인하는 영어 몇 마디로 이어지는 수업이었다. 한편 전공과목 중에서 ‘열심히 하고 싶다’는 마음이 마구 일었던 과목도 있다. 담당 교수님은 첫 수업에 들어오셔서 그 과목이 현실에서 쓰이는 가장 단적인 예를 영상으로 보여주셨고, 그것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접근하는 것인지를 차분하게 설명해주시고 나가셨다. 본격적인 수업에선 어려운 기술용어들에 쉬운 비유를 들어주시기도 하셨고, 친절하고도 깔끔한 설명, 적절한 학습동기를 부여해주셨던 과제가 있었다. (후자에 해당하는 교수님이 많으셨다면 나는 전공에 더 열중했을 지도 모른다. 전자에서 예를 든 ‘날로 먹는 수업을 하는 교육자’를 보면서 전공이 싫어졌던 속도엔 가속도가 붙었고 나는 참교육자에 대한 목마름이 더 커졌다는, 운명적 뒷이야기도 숨어 있다.)

 

 

 

이시형 박사의 『이젠, 다르게 살아야 한다』의 첫인상은 심심했다. 너무 심심해서 놀라울 정도였다. ‘나 혼자 간직하기엔 아까운 체험들이라 함께 나누고자 쓴 책입니다. 『윌든 호수』를 쓴 소로에 비하긴 외람스럽지만 그런 뜻으로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는 겸손한 첫 마디로 나를 감화시키셨다.

이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도시와 일상, 바쁜 것이 당연한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장닭이 울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마을과, 그 어디에선가 쪼그리고 앉아 풀들을 살피는 사람들, 자신이 머금을 수 있을 만큼의 물을 머금었다가 금세 털어버리는 연꽃잎이 떠있는 연못, 석양빛을 받으며 흔들리는 억새가 있는 곳이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잠시 여유를 갖고 자기를 돌아봐야 하겠습니다’하며 빙긋 웃는 박사님을 만난 것 같았다.

산은 바쁘지 않습니다. 그렇게 바삐 달리듯 다녀오면 한이 주는 그윽한 맛이며 계절의 아취를 느낄 수도 없습니다. (p.144)

어릴 때부터 인왕산, 북한산, 설악산 온갖 산을 다니면서 산깨나 탄다고 으쓱거렸던 내게, 산을 좋아한 것인지 산에 오르는 행위 자체만을 좋아한 것인지를 묻고 마는 박사님. 나는 순간 선문답을 처음 접한 어린 동자승마냥 멍하니 눈을 굴리고 있어야 했다. 지하철 문이 열리면 땅-하고 달리기 시합을 하듯이, 산행이 시작되면 으쌰쌰-하면서 날다람쥐처럼 빠르게 오르기만 했던 것은 아닌지. 어느 순간 잊혀졌던 ‘산 냄새’와 ‘산의 경치’가 그리워졌다.

그러나 심신 수련은 이와는 다릅니다. 힐링이 목적이기 때문에 싫은 걸 억지로 하지 않습니다. 하다 싫거나 힘들면 그만두는 게 수련입니다. 전 과정이 대체로 차분합니다. 물론 걸을 때는 놀아드레날린, 의욕적인 도파민 분비가 되긴 합니다만 어디까지나 세로토닌 우위의 활동입니다. 단련에서처럼 격정적인 환희나 감동 대신 수련은 잔잔한 감동입니다. (p.158)

그러고보면 우리는 늘 ‘자연’으로 돌아가면서 그럴싸한 이름을 붙인다. 자연이 마치 ‘단련’이나 ’훈련’ 같은 이름을 붙이고 마음과 몸을 바짝 조여야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공간이라도 되는 듯이. ‘저절로 그러한 듯(自然)’ 가만히 있으면 꼬옥 안아주는 곳이 바로 자연인데, 우리가 자연을 해쳤건 보호했던 그 어떤 것도 따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것이 자연인데.

보호는 강자가 약자를 보호하는 겁니다. 한낱 미물인 인간이 어찌 이 위대한 대자연을 보호한단 말입니까. 가당치도 않은 망상입니다. 자연은 보호대상이 아닙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로서, 함께 사는 겁니다. (p.262)

 

 

이 책은 사실, 아쉬운 부분이 많다. 분명 에세이 한편마다 등장한 것들을 담은 그림 좋은 사진들을 몇장씩 끼워놓고, 간간히 여백의 공간도 그럴싸하게 꾸미면 지금보다 더 비싸고 멋지면서 소장가치가 높은-일명 선물용- 책으로 팔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박사님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닌 듯 하다. 너무 허울좋고 그럴싸한 책이 아니라, 그래서 요란하기만 한 책이 아니라 진짜 마음을 담은 책을, 저절로 깨달은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내놓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그렇기에 덤덤하고 편안한 기분을 있는 그대로 글로 옮겨 차분하고 알아듣기 쉬운 말로 책을 채우셨으리라. 좀 심심한 듯 보여도, 읽는 이에게 깨달을 기회와 시간을 주는 것이 이 책을 쓰신 의도라고 나는 생각한다.

 

결코 요란하지 않은 이 책은, 빈수레는 아니다. 보이는 만큼 많은 자연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고 고마운 책. 조만간 책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산을 있는 그대로 즐기러 가봐야겠다.

 

 

p.s. 박사님에게서 진짜 삶의 지혜를 엿본 듯 해서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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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배꼽, 그리스 - 인간의 탁월함, 그 근원을 찾아서 박경철 그리스 기행 1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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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넓고 깊게 그리스 여행하기, 『문명의 배꼽, 그리스』

 

 

 

아는 만큼 보인다, 이 말이 정말이라면 나는 이 책 『문명의 배꼽, 그리스』을 처음 접하면서 나는 눈뜬 장님이 된 기분이었다. 두꺼운 두께, 적당히 묵직한 책의 무게감은 ‘니코스 카잔차키스’라는 낯선 이름과 함께 나의 눈을 멀게 했던 것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그 니코스 카잔차키스라니. 늘 피해왔던 그 작가와 그 책을 여기에서 만나는 구나, 나는 탄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스·로마 신화와, 별자리 이야기, 그리고 꽃들의 전설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어려있는 신들의 발자취를 나는 늘 동경해왔다. 어릴 때에 즐겨듣던 교육방송 라디오에서 별자리 이야기를 하면 늘 등장하던 것이 신들의 이야기였다. 포세이돈은 얼마나 강렬하고도 멋진 존재로 내게 다가왔는지. 나르시시즘은 왜 또 꽃 이야기 속에 숨어있었지. 작가 이윤기 선생님이 직접 해설을 하신 책들도 두루 읽으면서도 나는 막상 그리스를, 그리고 그 부르기도 낯선 꼬부랑 외국어로 적힌 신들의 이름을 어려워 했던 것 같다.

9개의 장으로 크게 구분되어진 이 그리스 여행기는 역시나 처음부터 말썽을 일으켰다. 저자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관문, 코린토스를 향해 기운차게 걸어가고 있었지만, 나는 ‘코린토스’라는 지명이 낯설기만 했다.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서 버린 채 즐거이 떠나는 그와 박경철 선생님을 원망스럽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제가 카잔차키스 선생님과 안친하다고 안챙기고 그냥 가시는 거죠?’하면서. (그리고 슬프게도 이 ‘코린토스’ 이야기는 9개 중 4개 장에 걸쳐 펼쳐진다. 맙소사.)

카잔차키스와 저자가 나란히 문답을 하면서 즐거이 걷는 그 길을, 한참을 쉬었다 걷다 뒤처진 걸음을 따라잡다 보니 그리스의 이야기가 하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는 만큼 볼 수 있다는 것이 정설이라면, 나는 이 여행을 함께 걸으면서 ‘내가 아는 한국’을 통해 ‘그리스’를 알아가기로 마음먹었으므로 가능한 일이었다.

 

"로마인들과 그리스인들의 관계는 애증의 관계였다네. 하지만 그들이 코린토스에 대해 가진 집착은 유별난 데가 있었어.“

그는 그것을 ‘집착’이라고 표현했지만, 애당초 로마는 코린토스를 적대시하지 않았다. (p.49)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민족은 노예의 신세를 면할 수가 없지, 아무렴. 분열은 반드시 역사의 대가를 치르는 법이야.” (p.55)

로마가 세력을 확장하면서 자신들을 괴롭히던 마케도니아의 힘이 약해지자 코린토스인들은 로마에게 기대기 시작했다. 외세를 이용하여 해방을 이루겠다는 기대는 짐짓 삼국 시대의 말기의 신라와 고구려의 힘싸움, 그리고 당나라의 지원이 떠올랐다. (혹은 어렴풋이 광복 이후의 조선이 떠오르기도 했다.)

 

페리안드로스는 운하건설을 꾀하였지만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큰 배는 지나지 못하고 작은 배들만 오가는 한가로운 관광지가 되어버린 코린토스를 바라보며 저자는 무엇을 떠올렸을까. 그리고 나는 무엇을 떠올려야 했을까. 지도자로서의 역량이 얼마나 되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건 정말 많은 요인이 있을 것이다. 저자와 내가 가만히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운하를 바라보자 카잔차키스가 말한다.

“각 시대는 그 시대가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 이상을 의식하지 못하는 법이지. 각 시대는 지나간 시간 속의 사상과 사건들 중에서 오늘의 시대에 동화하고 변화시켜 행동화할 수 있는 것만을 적절히 선택할 뿐이거든.” (p.125)

저자는 시대가 바라는 것을 찾아야 한다고 그의 말을 내게 풀어 설명해주었다. 또 대중의 일부로서 내가 깨달아야 하는 것을 이야기해주었다.

지도자는 역사를 두려워해야 한다. 더군다나 무모하게도 역사와 직접 대화하려는 지도자는 위험하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겠다는 지도자의 욕심은 눈을 멀게 하고 이성을 마비시켜 반드시 무모한 결정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지도자가 역사에 남겨야 할 것은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동시대에 대한 평가일 것이다. ‘역사상 최초로 어떤 일을 한 지도자’ 혹은 ‘이 엄청난 구조물을 건설한 지도자’ 혹은 ‘이런 제도를 만든 지도자’처럼, ‘최초로’라는 이름을 만기는 것에 집착하는 유아적 도취에 빠진 지도자를 둔 국민은 불행할 수 밖에 없다. (p.126)

시골의사 박경철을, 그 누가 ‘시골’의사라고 얕잡아 볼 것인가. 그의 눈은 한낱 그리스의 낡은 운하를 바라보면서도 시대와 역사와 우리의 이야기를 함께 바라보고 있는데. 나는 멋모르고 쫄레쫄레 떠나온 그 길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코린토스의 지리한 역사를 길게 늘어놓는 것도 어쩌면 저자의 계획의 일부일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다른 지역의 문화재의 속성을 꿰뚫어 보는 심미안 또한 가졌다. 이름은 달리 불리우고, 시대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각자가 가진 조각상, 그리고 신전의 기둥하나까지 그는 속속들이 파악하고 우리에게 설명해준다. 폐허가 된 신전의 공터 혹은 바윗돌 하나까지도 그는 샅샅이 살피는 매의 눈을 가졌다. 그의 말을 빌어 그리스를 둘러볼 수 있게 된 것이 참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 때쯤 저자는 또 ‘행운이 따라다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게 한다. 낯선 유럽의 여행지에 나타난 동양인에게 여러 행운이 따랐으므로. 아침 개장에 맞추어 방문한 저자에게 혹자는 입장료를 받지 않고, 그를 미행하기 위해 따라 붙었던 사람은 그의 좋은 유물 가이드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리다가 카잔차키스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행운을 만나기도 한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나에게도 영웅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친구입니다.”

그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스인들에게 우정이란 이런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같이 사랑하고, 내가 살아가는 곳에 같이 살아가고, 내가 아끼는 것을 같이 아끼는 사람. 그것이 친구이고, 친구에게는 모든 선의를 베풀어야 하는 것. 그것이 그리스인들의 명예의 한 축을 담당하는 ‘우정’이란 말의 의미다. 이 우정은 곧 명예고, 거기에 용맹을 더하면 탁월함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 명예를 누구보다 드높인 사람을, 그들은 ‘영웅’이라 부른다. (p.321)

저자에게 카잔차키스가 영웅이라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우정을 보여준 어떤 택시 운전사의 미소. 나는 그 안에서 경주나 제주도 같은 관광지에서 생활하고 있을 법한 우리의 택시 운전사 아저씨들을 떠올려보았다. 그들 앞에 나타난 ‘멀리서 온 서양인’은 우정을 보여줘도 될 친구로 받아들여질까, 아니면 한국 실정 모르니 마음껏 뜯어내도 될 돈줄로 보일까. 아마도 전자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적지 않을까. (역사 유적지를 방문하는 외국인에게 마음이 열린, 우정이 가득한 택시 운전사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아, 우리에게 ‘우정’은 어떤 의미일까.

 

 

 

저자는 마음 속에 코잔차키스를 품고 그렇게 여유롭게 그리스를 걷는다. 그리스의 종교와 사람들과 유적지와 사상, 그리고 역사를 차근차근 곱씹으며 천천히 걷는다. 그래서 앞으로 이 그리스 기행 시리즈는 아홉권 정도의 책이 더 나올 것이라 한다. 처음에 멋도 모르고 따라나선 나마저, 이 찬찬한 걸음 걸음에 동화되어 버리고 만다. 남은 아홉권의 분량에서 또 얼마나 깊은 이야기가 오고갈지 궁금해지기까지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헤로도토스의 『역사』, 이윤기 선생님이나 천병희 선생님이 번역하신 온갖 책들의 목록을 따로 챙겨 적었다. 분명 함께 그리스를 여행하면서 더 많이 보기 위해서는 ‘이 책들’을 읽어놓는 편이 더 행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욕심일 뿐, 책은 참 친절하게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간다. 쉬엄쉬엄 간다면 저자의 목소리만으로도 그리스는 잘 보인다.)

 

한편으로는 우리 ‘한국’을 찾아 오는 낯선 이방인의 모습도 떠올려봤다. 저 멀리에 사는 낯선 이방인 하나는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을 읽고 혹은 삼국유사를 읽고 혹은 고은 시인의 시나, 백석 혹은 이육사의 시를 읽고 한국을 방문하는 일은 없을까. 그들의 글 속에서 ‘한국인’을 가장 잘 알아봐줄 독자는 어디 없을까. 나는 그 설레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가 누구이건 한국에서 한국의 역사와 사상과 종교, 그리고 우리 민족을 꿰뚫어 ‘한국 기행’을 책으로 써주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의 책을 사고 또 사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선물하리라 생각해봤다.

 

엉뚱한 생각에 빠져 있다 보니 카잔차키스와 저자가 다음 여정으로 얼른 오라며 내게 손짓해준다. 아, 조금 어렵지만 즐거운 여행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그리스는 참 넓고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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