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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를 어떻게 쓸 것인가
이오덕 지음 / 삼인 / 2011년 9월
평점 :
제목: 동화와 우리 사이의 징검다리 찾기, 『동화를 어떻게 쓸 것인가』
몇 달 전에 엄마께서 노트를 내미셨다.
먼훗날(어쩌면 오빠 때문에 ‘먼훗날’까지는 아니려나)의 손주들을 위해 이야기를 쓰고 계신다며.
책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엿한 한권의 프린트물로 편집하여 오빠에게 한권, 내게 한권 선물로 주실 것이라 하셨다.
대략 내용들은 엄마께서 할머니로부터 전해들었던 이야기나 어머니의 어린 시절을 차지하는 꼬마들의 놀이나 노래들이었다.
엄마는 뿌듯해하셨다, 그리고 그 기록을 계속하시는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시는 것 같았다.
먼훗날 내 아이들은 할머니의 마음을 알아볼 수 있을까?
이오덕 선생님의 『동화를 어떻게 쓸 것인가』에 따르면, 동심은 ‘삐뚤어진 마음이 없는 마음’이다.
동화를 쓰고 싶어하는 독자들에게 아동문학개론이나 창작법의 책보다, 동심을 강조하신다.
동심을 표현하고 그리워 하는 문학을 써야한다고 그것을 어떻게 담아야 하는지 설명해주신다.
또 선생님은 어른들이 읽는 소설보다 쉽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동화에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꾸지람을 하신다.
무작정 단순하고 재미나며 덜 어려운 소설을 쓰려는 마음보다는, 아이들의 마음을 알고 그들에게 맞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무엇보다 깊게 생각하시는 주제는 따로 있으신 듯 했다.
‘동심을 닮은 글’을 쓰는 사람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었으니까.
그것이 무얼까, 예상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자랄 때 마르고 닳도록 봤던 안데르센 동화를 생각해보라.
우리의 산과 들이 배경이던가. 내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과 닮아 있던가.
우리 아동문학의 전통 단절(내림이 끊어짐)은 역사의 급격한 변동에 따른 우리 정신의 몰락, 주체성의 상실에서 온 것이다. 사회의 급속한 변화에 따라 천박한 물질 만능의 문명이 우리 민족의 정신을 전반으로 지배하기에 이르렀는데, 이것을 달리 말하면 서구 문명에 우리가 압도 당하고 정복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도 도시의 책방에 가 보면 외국 아동 문학의 상품 시장이란 것을 너무 잘 깨닫게 된다. 물론 엉터리 줄임판으로 된 외국 작품들이고 그런 것이 또 크게 문제되어야 하겠지만, 설사 성실한 번역으로 되어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서유럽의 문학 작품을 위주로 해서 문학 교육이 이뤄진다면 그것은 중대한 문제가 된다. 그 까닭은 서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우리 민족은 서로 매우 다른, 상반되거나 대립되는 역사를 이어 왔기 때문이다. (p.84.....였던 것으로 기억)
유럽에서 유명한, 우리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동화를 아이들에게 무작정 전해주는 것보다는
우리네들이 겪어왔고 보아온 진짜 ‘우리 동화’를 들려줘야 하는 것이 옳지 않겠냐고 작가 선생님은 문제를 던진다.
깊고도 강한 울림이 남았다.
흔한 예로, 나 역시도 어여쁜 공주들이 나오는 동화책을 많이 읽고 자주 읽었지만 그
어디에도 ‘하얀 얼굴’, ‘금발머리’로 묘사되지 않은 주인공은 없었다.
그리고 그런 동화들 덕분에 나는
주변에서 늘 만날 수 있던 개나리나 진달래보다, 엄지공주가 태어났던 ‘튤립’을 먼저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릴 때면 꼭 꽃밭에는 튤립을 그렸고 그림 속의 나는 공주처럼 드레스를 입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어릴 적에 베갯머리에 누워서 듣던 엄마 혹은 아빠의 목소리와 냄새가 묻어나는 ‘햇님 달님’ 이야기가 더 그립다. (그 이야기가 그리워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에 우리 전래 동화를 찾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꼬부랑 할머니’나 ‘봄이 되면 날아오는 제비’, 고갯길에서 불쑥불쑥 나타난다던 ‘도깨비 이야기’가 나오는 동화들을 찾아 읽고 나면,
내가 걷는 산길 어디에서나, 혹은 동네 구석구석 어디에선가 내가 모르고 놓쳐버린 이야기들이 툭툭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늘 동화가 내 곁에 살아 숨 쉬는 기분이었다.
이 책은 전문적으로 동화를 쓰려고 하는 ’전업작가’에게
긴하게 전하는 말들과 좋은 예가 되는 이야기들, 그리고 선배이자 스승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다.
아마도 간혹 공공 도서관에 가면 만날 수 있는 분들
-어린이실에 앉아 여러 권의 책을 쌓아두고
메모를 해가며 그 많은 책 전체에 몰두하는 그 어떤 분들에게(실제로 자주 본다)- 필요한 책일 것이다.
이오덕 선생님이나 이원수 선생님 같은 동화작가 선생님들은
반가우면서도 쉬이 다가갈 수 없는 ‘동화’의 강을 어떻게 건너오셨을까,
그분들의 마음을 헤아려 ‘아이들’과 ‘우리동화’ 사이의 징검다리가 되어주실 분이라면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면, 엄마의 기록들은 내 아이들의 동심을 살리는 기록이 되어줄 것이다.
이 못된 딸의 욕심 같아선 문학소녀 출신인 엄마께 이책을 슬쩍 권해서
‘꼭 멋진 동화를 만들어주세요’하는 응원의 뜻을 전하고 싶지만,
우리 엄마께서는 다른 사람의 간섭을 싫어하시니.^^;;
먼훗날의 손주들을 위한 엄마의 ‘옛날 이야기 주머니’가 진짜 멋진 동화가 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 할까.
아니 엄마께 ‘동화작가로서의 어려운 과제와 숙명’을 안겨드리는 것이 오히려 짐이려나.
이 어려운 숙제를 짊어지는 사람이 누구이건, 우리의 동화가 더 재미있고 유쾌하며 아름다웠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