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예언 - 그리고 모험 천상 시리즈
제임스 레드펠드 지음, 주혜경 옮김 / 판미동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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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네 스타일의 신비함이거든.” 어느 날 문득 연락을 해온 샬린의 한 마디에 주인공 ‘나’는 ‘들썩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필사본의 존재에 알게 된지 하루 만에 페루로 떠난다. 모든 것은 갑작스러웠지만 또한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두서없이 빠른 호흡으로 시작된 이 소설의 첫 인상은 별로였다. 주인공인 ‘나’는 누구인지도 제대로 밝혀진 바 없었고 갑자기 나타난 샬린이라는 여자는 매력적인 사람일지를 판단하기도 전에 훌쩍 사라져 버렸다. 게다가 그녀가 처음 말을 꺼낸 ‘필사본’의 존재도 그렇게 흥미롭게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쁜 첫인상은 곧 씻겨 내려갔다, 삶 속에서 겹쳐서 일어나는 우연들을 의식하면 그때 첫 번째 통찰이 일어난다(p.21)는 구절을 만나는 순간. 그것은 필사본에서 말을 하고 있는 아홉 가지 예언 중에 첫 번째 통찰에 관한 것이었다. 내가 늘 의식하곤 하는 바로 그것.

 

 

 

일련의 사건들이 하나의 흐름을 이루고 있다는 걸 알아챌 때가 있다. 무작정 찾아본 책들 속에 어떤 공통점이 존재할 때, 무심코 흘려들었던 단어나 개념이 티비나 라디오 혹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내 귀를 훑고 지나갈 때, 나는 그걸 ‘운명’처럼 느끼곤 했다. 우연이라고 가볍게 넘기기엔 진중한 그것과 나의 ‘인연’같은 것, 그리고 나는 그런 스타일의 신비함에 매료되곤 한다.

 

소설의 신비한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필사본은 기원전 600년 전에 ‘아람어’라는 당시의 언어로 쓰여진 것으로 추측되는 일종의 예언서다. 먼 옛날에 쓰여진 이 책은 미래에 대해 예언했고 인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아홉 가지의 통찰에 대해 차례대로 접근하고 있다. 철학적이며 신비한 영적 개념들이 많이 들어 있지만(그리고 나는 그런 것 때문에 더더욱 마음에 들었지만) 부분을 하나하나 헤쳐 보면 이 ‘신비로운 영적 현상’에 대해 가능한 한 논리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려고 한 작가의 손길이 보인다.

 

필사본을 찾아 페루로 떠난 주인공은 자연스럽게 다양한 분야의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만나는 사람들은 각각의 ‘통찰’에 대해 자신의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작가의 깊은 배려가 엿보인다는 느낌은 여기에서 온다. 가령 과학자들의 입을 빌어 과학 원리의 핵심원리를, 역사학자들의 시선을 빌어 인류 진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심리학 분야의 이론과 맞닿은 대인관계의 올바른 의사소통 방식을, 수도자의 입을 빌어 종교와 과학과 영적인 힘의 차이 등을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했다. 

‘페루에서 만난 모험 이야기’에 관한 소설이라기 보다는 ‘의식을 바라보는 철학적 이야기’에 가깝게 느껴지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종교적인 혹은 영적인 논의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사람이라도 편안하게 읽어볼 수 있지 않을까.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과학이론이나 사회 심리학적 이론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숨어 있는 편이니까, 게다가 거슬릴 정도의 신비주의라고 생각되면 ‘소설이잖아’하고 편안하게 웃어 넘길 수도 있을 테니까.

 

통찰에 대한 이론들은 제각각 신비하고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물론 내가 심리적인 소재나 종교들이 공통으로 논하는 ‘지혜’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일 수도 있지만.^^;) 특히 ‘통제 드라마’라는 새로운 용어는 굉장히 재미있게 와닿았다. 드라마처럼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순서로 진행되는 대인관계 대응방식인데,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일종의 ‘잘못된 습관’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논하고 있다. 다른 사람을 조종하려는 습관은 어린 시절 주위의 관심을 얻거나 다른 사람의 에너지를 끌어오려고 학습한 것인데 지금까지 그것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습관을 수없이 되풀이하고 있죠. 나는 이런 습관을 무의식적인 ‘통제 드라마’라고 부릅니다.(p.201~202)

위의 인용구는 한정된 에너지를 두고 갈등을 벌이게 된 상황과 그 해결책이 들어 있는 네 번째 통찰에 대한 부분이다. 이 이론을 읽으며 인지심리학에서 말하는 (Ellis의) ABC이론-비합리적 신념을 없애 나가는 상담기법이 생각나기도 했다.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얻거나 에너지를 받는 과정이 어떻게 발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Adler의 성격이론이 떠오르기도 한다.

상담 치료사로 활동해온 저자, 제임스 레드필드의 이력이 빛이 나는 부분이었다.

 

 

처음 읽을 때는 ‘뭐 이런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어’하고 넘길 뻔한 부분이 다소 있었다. 그러다 문득 저작권 항목표를 들춰보니 1993년 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말하는 머지 않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이 지금과 비슷해서 나도 모르게 당연하게 느꼈던 모양이다.

궁금해졌다. 발표 후 3년간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였기에-그만큼 미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책이 읽혀지다 보니 무의식 중에 그 다수의 사람이 그렇게 이루어놓은 건지, 아니면 소설의 예언이 정말 신비하게 맞아떨어진 건지 잘 모르겠다.

책의 끝 머리에선 ‘열 번째 예언’이 존재한다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말만 흘리고 사람들이 모두 흩어진다.) 존재성에 대한 이야기만 남기고 끝나 버린 모험을 보며 아쉬움이 일었다. 작가는 이 책을 펴낸 후에 열 번째 예언에 대해서도 책을 냈을까?

 

 

 

 

 

답을 얻지 못하는 게 인생의 문제점은 아닙니다. 자신이 가진 현재의 문제들을 알아내는 게 문제죠. 일단 의문이 올바르면 답은 언제나 찾아옵니다.(p.255)

이 소설을 읽기 전, 아주 사소한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그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힌트를 얻은 것 같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몇 번이고 다시 들춰봤다, 내가 답을 잘못 알아챈 건 아닌지 책 속의 통찰들을 따라가면서 내게 집중했다. 틀린 건 없겠지, 그리고 그 해답은 몇 년 후에 드러나겠지. 문제가 명확하게 나를 짓누르고 있었던 덕분(?)에, 책을 통해 자연스럽게 답을 만난 것 같다. ^^의문이 크고 어려웠던 만큼 답도 꽤나 명쾌했다는 건 슬픈 아이러니지만 해답을 발견해서 다행이다.

내겐 고맙고도 신비한 책, 운명 같고도 감사한 책.

 

이런 스타일의 신비함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편안하게 읽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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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마디 말로도 박수 받는 힘 - 사람들 앞에 홀로 선 당신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
강헌구 지음 / 예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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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시절, 나는 ‘듣는 이를 바꿀 수 있다’는 관점에서 ‘교사’와 ‘강사’를 비슷한 집단으로 분류했다.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학교와 학원에서 직간접의 경험을 쌓고 난 지금은 그 둘의 차이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둘을 함께 해내고 싶어 한다. 아, 이건 개인적인 이야기니 차후에 따로 거론하기로 하자. ) 이 책은 ‘한 마디 말로도’ 듣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끌려서 선택하게 된 책이다. 20대에 가진 의문과 비슷한 것을 가지고 접근한 것이다, ‘어떤 모습으로 아이들 앞에 서야 할까?’ 하지만 이 책은 ‘강연자/스피커/강사’로서의 스킬에 초점이 맞추어진 책이었다. 그래서 예측이 조금 벗어난 까닭에 책에 차근차근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책은 읽어볼 가치가 있었다.

 

01 선제기습: 초반 3분에 대세를 장악한다

02 집중: 숨 돌릴 틈도 주지 않는다

03 핑퐁: 주고받는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04 대변인: 청중의 가슴으로 말한다

05 결행: 무언가를 시작하거나 그만두게 한다

06 CEO와 직장인을 위한 토크파워 공식

07 백문·백독·백습, 프로 강사의 조건

 

제목과 비슷한 방식으로, 단 한마디 말로 이 책을 표현하자면 훌륭한 스피커가 되고 싶은 사람을 위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더 확실하게 책의 핵심을 정리하자면 완벽히 준비하고 충분히 연습하라?! 그렇지만 이 한마디로 ‘책은 다 알겠군’하고 넘기지 말기를 바란다. 한 마디 말로 요약하기에는 중요한 나머지 부분들이 들어찬 책이니까. 한 줄의 제목이 책 안의 깊은 이야기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이 책이 필요할 것 같은 사람들을 명확하게 분류해서 추천해야 할 것 같다. 친절한 ‘책 안내자’가 되어 볼까. 이 책이 필요한 사람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겠다.

첫째, 정말 급하게 ‘발표’를 준비해야 하는 직장인, 그대는 바로 6장을 보는 것이 옳다. 토크파워 공식이 따로 소개되어 있고 적당한 프리젠테이션 스킬이 단계별로 제시되어 있기 때문에 간편하게 활용해볼 수 있다. 스피커로서의 자질을 높이고 싶다면 6장만 보면 된다.

둘째, 당신이 강사로서의 삶을 살고 싶고, 그것을 준비해야 한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찬찬히 읽어야 한다. 목적이 분명한 강연 기회를 갖추었고 ‘효율적 전달’이 시급한 사람이 아닌 사람, 강사로서의 자신의 역량을 키우고 싶은 사람은 책을 다 읽어야 한다. 강사로서 어떤 말을 담고 생각하고 구성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면 찬찬히 책을 통독하는 사이, 좋은 교육을 받고 있다는 기분일 들 것이다. 프로강사이자 전문강사인 저자의 책을 통해서 흐름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그대는 어떤 사람인가?『가슴 뛰는 삶』,『아들아 머뭇거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라는 책을 썼고 끝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강연을 펼쳐온 강헌구라는 사람을 알고 싶은가? 20년 가까이 사람들을 움직여 온 ‘비전’의 힘이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과감하게 7장부터 읽어야 한다. 7장의 소제목은 ‘프로 강사의 조건’이라고 쓰여 있지만 분명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갈 길이 분명치 않은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권하여도 무방할 만큼 알차다. 흔히 말하는 ‘자기 계발서’에서 말하는 핵심과 같은 ‘비전’에 대한 것을 엿볼 수 있다. 물론 책의 언어는 어디까지나 ‘강사’의 언어에 가깝게 쓰여졌다. 그 안에 담긴 ‘자기 계발’의 핵심을 -자기에게 맞는 언어로 통역하여?-알아볼 수 있는 것은 각자에게 달린 몫이다.

 

나는 평생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길을 꿈꾼다. 또 다른 삶으로 ‘강사’로서의 삶 또한 그려보고 있다. 둘은 분명 차이가 있는 활동인데도 둘을 잘 병행할 수 있다고 믿는 나는 대체 무엇에 홀려 바다로 다가서는 나비란 말인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감화시키는 것이 어떤 경험인지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보았거나 들었거나 읽은 교육자들은 늘 그런 활동을 해왔다. 나를 기대하게 만들었고 행동하게 만들었으며 과감히 ‘맹랑한 도전’을 꿈꾸게 만들기도 했으니. 아마도 저자 강헌구가 표현한 강연의 느낌이 내가 가진 그 무엇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실의에 빠진 사람은 새로운 소망을 발견하도록 돕고, 닫힌 사람은 열리게 돕고, 긍정적인 사람은 적극적인 사람으로 성숙하게 돕는 강연이야말로 내게 세상에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슴 벅찬 일이다. 감동을 창조하는 예술로 이만한 것이 없다.p.184

아무래도 이 책은 한 동안 잊고 있던 또 다른 꿈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책은 아닐까.

 

p.s.프리젠테이션 스킬이 필요한 분은 서점에서 PPT 제작에 관련된 책을 참고하세요. 이 책은 당신의 ‘태도와 자세’에 더 힘을 실어 돕는 책입니다.^-^

 




오타

p.194 위에서 일곱 번째 줄: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조건을 -> 다음과 같은 가지 조건을

p.207 아래에서 여덟 번째 줄: 프로다운 끈기를 기르는 세 가지 방법-> 가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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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여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림 - 애인, 아내, 엄마딸 그리고 나의 이야기
김진희 지음 / 이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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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플롯을 이야기할 때 ‘성숙’을 꼽기도 한다. 주인공의 심적 변화를 담을 수 있으면 어떤 형태의 이야기이건 괜찮은 플롯이라고 한다. 예를 들자면 도로시에게 집은, 아무렇지 않은 일상 속의 집과 회오리 바람을 타고 오즈를 다녀 돌아온 집은 같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도로시는 여행의 과정을 통해 한뼘 더 자랐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은 일종의 여행기다.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를 만났다, 연애를 한다. <비포 선라이즈>에서 제시와 셀린이 서로에게 끌렸듯이 꿈같은 시간들이 펼쳐진다. 곧 결혼을 한다. 두근거리는 시작과 달리 현실 속에서 여자는 직업을 잊고 아내의 자리에 앉아  '엄마'란 옷을 입고 어린 아이를 바라보며 친정 엄마를 떠올린다. 집에 있는 남자가 고릴라처럼 보이다가 거울 속에서 악어를 마주하고 여자는 당황하기도 한다. 어느 샌가 늘어가는 찻잔을 보며 그 얼마나 많은 감정이 어떻게 고였고 끓었고 내려졌으며 삼켜졌는지를 기억한다. 여자가 변하는 과정을 나는 바라본다. 소설을 읽듯 다른 사람의 일상을 보듯 무심하게 흘러가면 좋으련만, 자주 멈칫멈칫한다.


책은 무척이나 편안하다. ‘결혼한 여자에게 보여 주고 싶은’ 이야기와 그림이 잘 어우러져 있다. 작가가 골라둔 그림들은 한결같이 마음으로 감상하기 쉽다. 인용해놓은 소설 속의 주인공 혹은 영화 속의 주인공도 낯설지 않아 이해하기 쉽다. 다만 이 책을 마냥 흐르듯이 읽을 수 없는 건 그녀의 이야기가 내 어머니가 걸었을 길이며 내가 걸을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언제나 치열한 연애 감정을 찾아 헤매는 친구가 있다. 남자들은 많아도 어느 누군가에게도 만족하지 못하는 그녀는 불안해 보인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감정’이 다 사라지고 나면 다음의 물길을 찾아 연못도 시내도 개천도 기웃거리는 것이 얼마나 소용없는 짓인지를 왜 모를까. 편안하게 항상 함께 흘러오는 것도 괜찮은데, 폭포수가 되어 짧고 굵게 흐를 필요는 없을 텐데. 핑크빛 세상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친구는 깜깜한 밤의 어둠을 외면하려 하는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걸 알면 편할 건데, 모든 걸 갖춘 다른 이를 찾아야만 할까, 난 가끔 그녀가 안쓰럽다.

그날 오후 나는 늘 뭔가 석연치 않았던 남편과 함께 흠뻑 비를 맞았다는 사실이 못내 즐거워 신이 났다. 영혼 깊숙이 통하는 사이가 아니면 어떠랴. 부부란 어차피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가느다란 물줄기 같은 감정의 반복 속에서 인연의 겹을 하나하나 쌓아가는 사람들이다. 아마도 남편은 깨끗하게 빨아놓은 빨래나 정돈된 부엌을 보며 나를 기억할 것 같다. 현관에 벗어둔 검은색 구두를 보면서 내가 남편을 생각하듯 말이다. (p.51)

그 언제가 되면 그녀는 알게 될까. 내가 만나고 있는 이 남자, 혹은 작가가 살고 있는 남편이 눈부신 환상 속에 사랑을 고백하는 왕자님에 가깝다기 보다는 하얀 빨래를 개키는 여자와 두런두런 살아가는 ‘검은 구두’로 기억되는 좋은 친구라는 것을.

‘삶이란 공들이지 않아도 저절로 쌓이는 생활의 무한한 층’이라는 작가의 글을 읽는 순간, 나와 내 연인 사이에 쌓여온 삶의 자락은 얼마나 많은 층을 쌓았을지를 떠올려 본다. 몇 십 억만년 동안 만들어졌을 지구의 지층을 잠시 상상하며 ‘아직 멀었네’하고 피식 웃고 말았지만, 우리는 꽤나 많은 시간을 행복했다.


 

이십대의 나는 엄마가 되면 ‘얼마나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를 상상하곤 했다, 길가에서 바락바락 신경전을 벌이는 엄마와 아기를 보면서 타산지석의 교훈을 발견한 듯 자신만만했다. 삼십대가 되고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나는 이제 ‘과연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를 의심해보곤 한다. 아이의 마음을 다치지 않으면서도 내 감정도 다치지 않으면서 지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변해버린 자신과 연애때와는 다른 남편 그 틈 바구니 안에서 아이에게 나는 ‘온전하게’ 내 사랑을 전할 수 있기는 할까 두렵기도 하다.

시간이 지나 생명에 대한 강박증은 가셨지만 엄마로서 행복해지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이를 보살피는 것에 먼저 지쳤고, 개인으로서만 살던 삶의 부피를 키우는 것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때까지 보고 들었던 엄마로서의 기쁨은 남의 이야기이거나 거짓말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엄마를 보며 옹알옹알 웃다가 잠든 아이를 다독이며 언제 키워서 나 없이도 걷고 먹고 말하게 할 수 있을까 푸념하는 것은 다반사였고, 아기 띠를 두르고 장바구니에 열두 롤짜리 욕실용 휴지를 든 헝클어진 내 모습이 거울에 비쳤을 때는 심지어 ‘이제 내 인생에는 종말이 고해졌구나’하고 스스로 사형선고까지 내렸다.

좌절이라니, 그것은 생각해본 적도, 생각해서도 안 되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왜 엄마들은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던 것일까. 현실의 맛과 모양은 겉모습만 화려한 케이크 같다고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것일까. (p.122)

현실의 진짜 실상을, 작가는 자신이 겪은 일화들을 보여주면서 알려주었다. 어느 페이지에서 읽었던 작가의 표현-‘말을 할 줄 아는 생명체라면 동화 속에 나오는 토끼나 곰일지언정 붙잡고 대화를 하고 싶은’ 감정을 보며 어떤 기분인지 처음으로 그 막막함을 마주했다. 그 어떤 곳에서도 읽어본 적이 없었기에 육아 블로거들이 사랑스런 아이의 사진과 그 일상을 기록하는 자체가 낯설어 보이기도 했다. 찬란한 빛 그 이면에는 깜깜한 어둠이 분명 자리하고 있을 것이란 걸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생각해봤다.



걸어서 지구를 한 바퀴 돌아온 것처럼 이제 나는 삶의 어느 지점을 한 바퀴 빼곡하게 돌아 다시 내 자리에 섰다. 믿었던 자신이 날카로운 좌절의 칼날로 삶과 생활을 재단했던 시간을 거쳐 새로운 시간 앞에 다시 섰다. 그런 의미에서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 견고한 집을 짓듯 차곡차곡 거르지 않고 쌓아온 나의 삶 앞에서 나는 기꺼이 그것의 뮤즈가 되려 한다. 있는 힘을 다해 끌어온, 무엇 하나 내 것이 아닌 것 없는 내 삶의 온전한 뮤즈가 되려 한다. 비록 초라한 차림으로 마주했어도 화가들의 그림에 나오는 아름다운 그들처럼 뮤즈이고 싶다. (p.238~239)

작가가 보여주는 일상은 힘겨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답답함, 어두움, 시련, 결혼에 대한 회의감을 불러일으키진 않는다. 새로운 시간 앞에서 기꺼이 웃어 보일 수 있는 작가의 마음을 헤아려볼 수 있었기 때문에. 진정으로 놓을 수 없었던 것이 자신이었음을 깨닫고 스스로 뮤즈의 자리를 만들어보이겠노라 결심하는 작가의 모습이 비장해보이면서도 희망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아, 나도 결혼한 후, 뮤즈가 되어 보이는 여자가 되어야지’하는 자신감을 찾았다고 할까. 해피엔딩의 소설을 읽은 것 마냥 뿌듯했다.



 

작가 김진희의 그림과 이야기를 읽는 동안 호수가 되어, 바람이 일어 수면이 일렁이고 때론 쏟아지는 폭우에 들썩이는 걸 겪은 것 같다. 그렇지만 그 시간동안 호수는 더 깊어지고 맑아졌다는 걸 알아챘다면, 이상한 감상평이 될까.


뒷표지 날개 작가 소개 중에 쓰인 몇 마디가 이 책의 성격을 대신할 것 같다.

‘이 책은 런던 유학 시절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 아트숍에서 언젠가는 꼭 기쁜 마음으로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보내리라 하며 사모은 엽서들의 이야기이다. 그때 그리워했던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때는 다 그럴 수 있다고 친절하게 또박또박 적어 엽서를 띄운다.’

이 책은 분명, ‘결혼’의 여정에 먼저 오른 사람이 곱게 써내려간 여행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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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파리에 간다면 - 혼자 조용히, 그녀의 여행법
모모미 지음 / 이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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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가본 적 없는 프랑스를 동경한다. 책이나 영화를 통해 엿본 프랑스는 독특했으니까. 유머, 말소리, 프랑스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옛사람에서부터 지금의 사람들까지 특별해 보였다. 파리의 분위기를 알아갈수록 사랑하게 되었다. 어쩌면 가본 적이 없기에 동경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나날이 그 동경은 커져갔다. 하지만 이제 내가 꿈꾸는 파리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여행기로는 채울 수가 없다. 프랑스어 교과서에서 만났던 에펠탑이나 루브르 박물관을 거니는 상상이 아니라, 파리의 공기를 상상하니까. 하늘과 나무, 꽃시장을 거닐 때의 냄새(어떤 소설에서 주인공이 프랑스에서 꽃집을 하는 여자였는데 소설의 줄거리와는 별개로 등장한 그 ‘꽃집’의 생생한 일상에 매료되었다)와 식료품 시장의 공기, 골목 어귀를 거니며 만날 수 있는 음식 냄새가 난 너무도 궁금하다. 유명한 사람이 죽고 없는 기념관이나 무덤 따위가 아니라 그 사람이 보고 듣고 느꼈을 무언가가 내게도 왔으면 좋겠다.

『다시 파리에 간다면』은 다른 책에서 얻을 수 없었던 내 갈증을 해소해주는 책이었다. 휘황찬란한 에펠탑을 보기 위해 시간을 맞춰 경관 좋은 장소를 찾는 것 보다는 ‘그냥 걷다가 발견하는’ 에펠탑을 눈에 담는 작가 모모미의 동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녀가 뽑아낸 사진과 이야기는 내가 꿈꾸던 자연스러움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다시 파리에 간다면 파리에서 하고 싶은 것 40가지’라는 부제를 달고 모모미 작가는 ‘호텔이 아니라 집에 머무르기(p.018)'나 ’무자야 구 ‘고양이 마을’ 등산하기(p.142)‘나 ’벼룩시장에서 산 물건에 의미 부여하기(p.176)' 같은 파리 즐기기 팁을 알려준다. 우연히 가게 된 골목길을 설명해두었고 그곳에서 만난 빛과 공기가 사진을 통해 오롯이 전해진다.

  






 

처음 책을 만나자마자 사진들부터 쭈욱 훑어봤다. 미니엽서로 쓰여도 손색이 없을 포근한 사진들은 그 언젠가 일본을 다녀온 다음 샀던 엽서를 떠올리게 해줬다. ‘함께’ 일본이란 곳을 다녀왔기에 ‘함께’ 나눌 것이 많았던 제자들을 생각하며 하나하나 메시지를 써내려갔던 시간이 있었지-하고. 모모미 작가의 사진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런 미니엽서가 나온다면 꼭 좋은 사람들과 또 다시 ‘파리’에 대한 일상을 나누겠다고.

‘함께 파리에 갈 사람들이 될까? ‘파리’에서 만나게 될 사람들이 될까? 아니 상상은 그만해야지, 모모미 작가 님이 엽서같은 걸 상품으로 내실 생각이 없으실지도 모르는데.‘







 

생마르탱 운하를 찾아간 것은 순전히 영화 <아멜리에>(2001)에서 주인공 오드리 토투가 물수제비를 뜨던 장면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실제로 본 운하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잘 연출된 여상 속의 감흥을 편집되지 않은 현실에서 찾으려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으리라. 이처럼 여행에서는 실망의 순간들이 종종, 아니 꽤 자주 찾아온다. 마음속에 혼자 품고 있던 완벽한 이미지와 전혀 다른 현실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바로 낙심한다. 그 누구도 환상을 품으라고 강요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에 대한 책임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 그래서 그날 나는 생마르탱 운하를 따라 계속 걸어가기로 했다.

...(중략)... 목적지가 없으면 시야가 오히려 점점 넓어져 예상 밖의 풍경을 건져낼 수 있다. (p.60)

여행자로서 파리를 찾아갈 때는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으리라 결심하기도 했었다. 내가 아는 광화문 거리도 외국인의 뷰파인더 안에서는 좀 더 특별하게 바뀌는 것을 나는 아니까. 사랑스러운 아멜리에가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일상이 끝끝내 그대로일 거라는 상상은 안한다. 나도 모르게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일찌감치 나는 ‘파리 사람들의 파리’를 동경했었는지도 모른다. 환상은 깨어질지도 모르니까 함부로 하지 않는 법!

 

파리 중심부에 있는 묘지들 중 페르 라셰즈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곳이다. 오노레 드 발자크, 마르셀 프루스트, 오스카 와일드 등의 작가들, 프랑스의 대표적인 가수 에디트 피아프, 록그룹 도어즈의 멤버 짐 모리슨, 피아노의 시인 쇼팽, 죽어서야 함께할 수 있었던 모딜리아니와 그의 아내 잔 등 수많은 유명인들이 여기 잠들어 있다.

하늘에서 빛의 소나기를 뿌려대는 맑은 날, 짙은 녹음으로 둘러쌓인 묘지에는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아마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떠난 자들을 쉼 없이 애도하기 때문일 것이다. 먼저 떠난 가족들을 찾아온 사람들, 그저 산책하러 나온 사람들, 좋아하는 유명인의 묘지를 찾는 관광객들이 조용조용 서로를 스쳐가는 그곳은 슬픔과 기쁨, 일상과 비일상이 뒤섞인 공간이었다. (p.160)

일상에서 독특함을 만나는 것은 프랑스 파리나 한국 부산이나 비슷할런지도 모른다. 가끔 찾아가는 도서관 중에 공동묘지에 가는 길에 있는 도서관이 있다. 도서관에 오르는 초입에서부터 조화를 파는 상점들이 즐비해있고, 간혹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사람 중엔 슬픔이 고스란히 담긴 분들도 계신다. 도서관을 둘러싼 초록내음이나 마당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과 떠나간 분들이 만들어 놓은 엄숙한 일상이 독특하게 섞이곤 한다. 파리의 ‘페르 라셰즈’의 느낌은 어떨까, 가게 되면 제일 먼저 숨을 크게 한번 들이 쉬어 보리라.





 

 

이책을 들고 파리에 간다해도 ‘똑같은’ 일상을 만날 수는 없을 것이다. “동네가 참 아름다워요!”하는 말 한마디에 따가운 시선을 접고 동네 안내를 해주신 친절한 할머니나, 책을 찾고 있다고 문의하자 이 가게 저 가게 아저씨들을 불러 모아 찾게 하고 끝끝내 메일을 물어 나중에라도 연락을 주겠다고 하신 헌책방 아저씨를 우연하게 만날 수는 없을 것이니까. 하지만 책에서 일러준, 파리를 알아가는 또 다른 방법을 따라하면서 우리는 ‘우리만의 파리’를 새로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참! 『다시 파리에 간다면』엔 두 가지의 길이 있다. 하나는 파리의 골목 골목을 찾아가는 길, 또 하나는 띠지에 숨겨진 가수 이아립의 음원<a Paris>를 찾아가는 길. “넌 빨강 난 노랑, 난 산책 넌 벤치..”하고 시작하는 작은 목소리에 익숙해지다 ‘a Paris’하는 발음에 멈칫-하면서 슬며시 웃게 된다. 모모미 작가의 사진과 너무도 잘 어우러지는 음원, 긴장 가득한 ‘처음’과는 다른 파리를 어떻게 만났는지 작가의 기분을 알아가는 기분이 든다.



두번째 파리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 책과 함께 보들레르가 여행에 대해 했던 말을 들려주고 싶다.

 

“그렇다. 가서 숨 쉬고, 꿈꾸며, 무한의 감각들로 시간을 늘려야 할 곳이다. 그렇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살면 좋으리라- 그곳, 시간들조차 더욱 느리며, 시간은 더 많은 생각을 함유하고, 시계조차 더욱 깊고, 더욱 의미 있는 엄숙함 속에 행복을 올려주는 그곳에서.” -샤를 보들레르, 「여행으로의 초대」중에서

 

나에겐 파리가 바로 그런 곳이다.  (p.5)

 

 

 

 책 속의 사진이 잘 담긴, 북트레일러. 

 

height=315 src="//www.youtube.com/embed/_GfWw1VdQG4" frameBorder=0 width=420 allowfullscreen>
http://youtu.be/_GfWw1VdQG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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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사소한 감정에 흐트러지지 않으려고

어딘가 내 기분과 감정을 메모해두고 잊는 연습 중이다.






굉장히 작은 일인데 

메모해놓고 싶은 감정이 있어서

일기에 몇 줄 끄적였다. 


그러다가 빈 공간에 그린 녀석이 

저 검은 고양이의 뒷태다.

고양이가 쪼그려 앉았을 때 엉덩이 옆 부분이 빵실하게 올려오는 걸 덧칠로 살려냈다.

(검게 덧칠한 디테일을 알아 보셨습니까.)








(평소엔 하지 않는 짓인데)

낙서삼아 뭔가를 그린 김에 

괴상한 짓도 마저 했다.


1) 마스다 미리(miri masuda)스러운 그림이 가능할까 시도.


딴에는 나와 비슷한 느낌이 나는 캐릭터로 그려야지 했는데

볼펜 선이 몇번 더 가다 보니 그림이 산으로 갔다.

완성하고 보니 '나는 금년 여섯 살 난 처녀애입니다'라고 말을 할 것 같은 

옥희같은 처녀 애가 떡 하니 나와 있다.



-_ -난감한....처녀애의 탄생!

(마스다 미리 여사에게 심하게 홀릭 중인 설정샷과 비교해볼까나;;;)


2) 지금의 내 기분을 잊지 말자며, 일기와는 별도로 따로 편지를 끄적.




이 편지(?)는 아끼는 '미니 사진첩' 사이에 끼워둘 요량.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라 열심히 쓱쓱쓱 가리기 덧칠.








마스다 미리의 만화는 

엉성체(?)인데 한컷한컷 마음에 와닿는다. 

그림이 단순해서 부담스럽지 않은데

그 글귀마저 공감을 자아내니까. 



마스다 미리의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중에서



-꼴불견인 인간으로 변한 게 아니라 '나'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 거야.-




마스다 미리의 『아무래도 싫은 사람』 중에서



-슬슬 자신의 감을 믿을 나이가 됐지.

(그리고 모녀가 주고 받는 침묵과 눈빛)-






오늘 내가 느낀 감정이나, 그것을 일으킨 사건들...

그 어딘가에는 위의 만화에서 핵심을 찔러준 것과 맞닿은 것이 많다.

훗날, 블로그 공간을 뒤적이다가 '오늘'의 기분과 감정, 그리고 다짐같은 것을 꼭 다시 만나봤으면 좋겠다.


'여러 가지의 나'와 '자신의 감'이 키워드가 되어

넝쿨째 머릿 속에서 떠오를 기억들?



p.s.

마스다 미리 여사 그림은 보기엔 쉽지, 내 스타일은 아니야.

역시 내겐 이런 스타일이 진리?!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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