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예언 - 그리고 모험 천상 시리즈
제임스 레드펠드 지음, 주혜경 옮김 / 판미동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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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네 스타일의 신비함이거든.” 어느 날 문득 연락을 해온 샬린의 한 마디에 주인공 ‘나’는 ‘들썩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필사본의 존재에 알게 된지 하루 만에 페루로 떠난다. 모든 것은 갑작스러웠지만 또한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두서없이 빠른 호흡으로 시작된 이 소설의 첫 인상은 별로였다. 주인공인 ‘나’는 누구인지도 제대로 밝혀진 바 없었고 갑자기 나타난 샬린이라는 여자는 매력적인 사람일지를 판단하기도 전에 훌쩍 사라져 버렸다. 게다가 그녀가 처음 말을 꺼낸 ‘필사본’의 존재도 그렇게 흥미롭게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쁜 첫인상은 곧 씻겨 내려갔다, 삶 속에서 겹쳐서 일어나는 우연들을 의식하면 그때 첫 번째 통찰이 일어난다(p.21)는 구절을 만나는 순간. 그것은 필사본에서 말을 하고 있는 아홉 가지 예언 중에 첫 번째 통찰에 관한 것이었다. 내가 늘 의식하곤 하는 바로 그것.

 

 

 

일련의 사건들이 하나의 흐름을 이루고 있다는 걸 알아챌 때가 있다. 무작정 찾아본 책들 속에 어떤 공통점이 존재할 때, 무심코 흘려들었던 단어나 개념이 티비나 라디오 혹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내 귀를 훑고 지나갈 때, 나는 그걸 ‘운명’처럼 느끼곤 했다. 우연이라고 가볍게 넘기기엔 진중한 그것과 나의 ‘인연’같은 것, 그리고 나는 그런 스타일의 신비함에 매료되곤 한다.

 

소설의 신비한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필사본은 기원전 600년 전에 ‘아람어’라는 당시의 언어로 쓰여진 것으로 추측되는 일종의 예언서다. 먼 옛날에 쓰여진 이 책은 미래에 대해 예언했고 인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아홉 가지의 통찰에 대해 차례대로 접근하고 있다. 철학적이며 신비한 영적 개념들이 많이 들어 있지만(그리고 나는 그런 것 때문에 더더욱 마음에 들었지만) 부분을 하나하나 헤쳐 보면 이 ‘신비로운 영적 현상’에 대해 가능한 한 논리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려고 한 작가의 손길이 보인다.

 

필사본을 찾아 페루로 떠난 주인공은 자연스럽게 다양한 분야의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만나는 사람들은 각각의 ‘통찰’에 대해 자신의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작가의 깊은 배려가 엿보인다는 느낌은 여기에서 온다. 가령 과학자들의 입을 빌어 과학 원리의 핵심원리를, 역사학자들의 시선을 빌어 인류 진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심리학 분야의 이론과 맞닿은 대인관계의 올바른 의사소통 방식을, 수도자의 입을 빌어 종교와 과학과 영적인 힘의 차이 등을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했다. 

‘페루에서 만난 모험 이야기’에 관한 소설이라기 보다는 ‘의식을 바라보는 철학적 이야기’에 가깝게 느껴지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종교적인 혹은 영적인 논의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사람이라도 편안하게 읽어볼 수 있지 않을까.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과학이론이나 사회 심리학적 이론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숨어 있는 편이니까, 게다가 거슬릴 정도의 신비주의라고 생각되면 ‘소설이잖아’하고 편안하게 웃어 넘길 수도 있을 테니까.

 

통찰에 대한 이론들은 제각각 신비하고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물론 내가 심리적인 소재나 종교들이 공통으로 논하는 ‘지혜’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일 수도 있지만.^^;) 특히 ‘통제 드라마’라는 새로운 용어는 굉장히 재미있게 와닿았다. 드라마처럼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순서로 진행되는 대인관계 대응방식인데,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일종의 ‘잘못된 습관’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논하고 있다. 다른 사람을 조종하려는 습관은 어린 시절 주위의 관심을 얻거나 다른 사람의 에너지를 끌어오려고 학습한 것인데 지금까지 그것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습관을 수없이 되풀이하고 있죠. 나는 이런 습관을 무의식적인 ‘통제 드라마’라고 부릅니다.(p.201~202)

위의 인용구는 한정된 에너지를 두고 갈등을 벌이게 된 상황과 그 해결책이 들어 있는 네 번째 통찰에 대한 부분이다. 이 이론을 읽으며 인지심리학에서 말하는 (Ellis의) ABC이론-비합리적 신념을 없애 나가는 상담기법이 생각나기도 했다.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얻거나 에너지를 받는 과정이 어떻게 발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Adler의 성격이론이 떠오르기도 한다.

상담 치료사로 활동해온 저자, 제임스 레드필드의 이력이 빛이 나는 부분이었다.

 

 

처음 읽을 때는 ‘뭐 이런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어’하고 넘길 뻔한 부분이 다소 있었다. 그러다 문득 저작권 항목표를 들춰보니 1993년 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말하는 머지 않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이 지금과 비슷해서 나도 모르게 당연하게 느꼈던 모양이다.

궁금해졌다. 발표 후 3년간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였기에-그만큼 미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책이 읽혀지다 보니 무의식 중에 그 다수의 사람이 그렇게 이루어놓은 건지, 아니면 소설의 예언이 정말 신비하게 맞아떨어진 건지 잘 모르겠다.

책의 끝 머리에선 ‘열 번째 예언’이 존재한다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말만 흘리고 사람들이 모두 흩어진다.) 존재성에 대한 이야기만 남기고 끝나 버린 모험을 보며 아쉬움이 일었다. 작가는 이 책을 펴낸 후에 열 번째 예언에 대해서도 책을 냈을까?

 

 

 

 

 

답을 얻지 못하는 게 인생의 문제점은 아닙니다. 자신이 가진 현재의 문제들을 알아내는 게 문제죠. 일단 의문이 올바르면 답은 언제나 찾아옵니다.(p.255)

이 소설을 읽기 전, 아주 사소한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그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힌트를 얻은 것 같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몇 번이고 다시 들춰봤다, 내가 답을 잘못 알아챈 건 아닌지 책 속의 통찰들을 따라가면서 내게 집중했다. 틀린 건 없겠지, 그리고 그 해답은 몇 년 후에 드러나겠지. 문제가 명확하게 나를 짓누르고 있었던 덕분(?)에, 책을 통해 자연스럽게 답을 만난 것 같다. ^^의문이 크고 어려웠던 만큼 답도 꽤나 명쾌했다는 건 슬픈 아이러니지만 해답을 발견해서 다행이다.

내겐 고맙고도 신비한 책, 운명 같고도 감사한 책.

 

이런 스타일의 신비함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편안하게 읽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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