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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11년 9월
평점 :
우리 동네엔 돼지고기집이 하나 있는데 간판엔 ‘한판하자’며 아기돼지가 호기롭게 웃고 있다. 고기를 맛있게 먹으라며 돼지는 웃을 수 있을까.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의 표지에도 돼지가 한 마리 그려져 있다. 커다란 포크 아래에 고개를 떨군 돼지 한 마리. 책속엔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는 나와, 숙명 앞에 고개를 조아리는 많은 동물들의 현실이 그려져 있다.
저자는 식단에 올라오는 ‘물고기’와 ‘개’가 다를 게 무어냐고 묻는다. 일상의 대화를 떠올려보자. “주말에 좋은 거라도 먹고 왔어? 얼굴이 좋은데?”, “어, 외식했어”, “뭐 먹고 왔는데? 한우라도 먹었어?”, “아니, 개고기”, “으. 너무한다.” 너무한 건가? 친교의 범위에 따라 식육의 기준을 정할 수 있을까. 한우는 부러워할 외식이고 개고기는 괴상한 기호인가. 우리가 먹는 육고기의 기준은 굉장히 애매모호하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고기’를 먹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눈살을 찌푸린다. 다른 사람의 먹거리에 훈수를 두면서 우리는 왜 동물을 ‘먹는다는 것’ 자체에 대해 의문은 갖지 않는가.
회나 초밥으로 만나는 생선류는 어떤 기분이 드는 음식인가? 정갈하고 깔끔한 상차림에 대접받는 자리라고 생각하게 되는가? 김치를 휘감고 보글보글 끓고 있는 고등어 조림은? 따끈한 밥과 함께 먹을 수 있는 든든한 엄마의 밥상 같아서 좋은가? 혹시 그 한 마리의 생선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생각을 해 본 일이 있는가. 길고 긴 인내의 시간을 견뎌 어부가 낚시로 잡아 온다고는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어업분야는 이미 ‘기계화’되고 ‘공장화’된지 오래라, 우리가 먹는 거의 대부분의 바다 생물들은 거대 장비를 통해 바다에서부터 쓸어담겨 온다. 그리고 새우 0.5킬로그램당 12킬로그램만큼의 다른 동물들이 죽어서 다시 바다로 던져지곤 한다. 우리가 멸치를 먹기 위해선, 멸치잡이 배의 그물에 걸린 멸치 이외의 생물들은 모두 쓰레기가 되는 셈이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계란을 떠올려보자. 닭들이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며 모이를 쪼아먹는 아늑한 농장의 풍경 떠올렸는가, 오산이다. 우리가 먹는 계란은 그런 여유로운 풍경 속에서 나오지 않는다. 1인용 독방 같은 공간이 한 마리의 닭에게 주어진 전부이다. 그리고 독방이 빽빽이 들어찬 아파트단지 같은 거대한 양계장에서, 닭들은 공장의 부품처럼 알을 낳고 있을 뿐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냉소적이다시피 말한다. 이제는 공장식 축산 농장이란 말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공장식 축산 농장이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되거나, 아니면 이것과 비교할 가족농이 사라지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기 때문에.
도축하는 곳에 대한 부분은 무엇을 상상하건 그 이상으로 잔혹하다. 동물들은 생물로서가 아닌 상품으로서 취급된다. 혼란과 오물, 병균들이 가득한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책 속의 생생한 이야기들이 영상으로 다가온다면 아마 그 누구도 ‘나는 육식을 좋아해’라고 입맛을 다시며 즐겁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환경 서적을 읽으면서 울음이 터졌다는 사람을 본 적 있는가. 상상도 못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그런데 내가 그랬다. 헬스장에서 틈틈이 책을 읽곤 했는데 이 책은 매번 몇 페이지 지나지 않아 고개를 조악거리며 눈물이 터져나오는 것을 삼켜야했다. 내가 ‘동물을 먹게 되기까지’ 너무 많은 아픔들이 있었다는 것을 상상하며 어지럽기도 했다.
턱 아래를 후비고 들어온 어퍼컷처럼 아릿하게 다가온 이 책, 처음엔 도대체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어떤 소리를 하겠다는 말일까 하는 의구심이 났다. 찬성이란 말도, 반대란 말도 내비치지 않고 있으니까.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허하다. 우리가 잊고 살 법한 ‘식생활 습관’에 대해 전반적으로 그리고 철저하게 분석하며 현실을 논하고 있다.
‘채식주의자’가 되겠다는 말을 입 밖에 꺼낸다는 건. 아마 ‘대한독립선언문’을 낭독하는 것에 견줄만 할지도 모른다. 주변의 눈초리는 감시의 시선으로 바뀌고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너 방금도 ** 먹었잖아?”라고 적발당하고, 잠시라도 틈을 늦추면 대뜸 계란을 넣어 반죽한 빵을 내밀지도 모른다. 혹은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아 챙겼노라며 초밥을 대접할지도 모른다.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읽고도 아무런 ‘선언’을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시작하려고 한다. 우리에게 고기 한 점이 오기까지 만들어지는 고통이나 부차적인 오염물질들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으므로. 몇 개월 동안 준비를 했다.
채식 식당을 찾고 육식을 대체할 식품들을 공부했다. 채식의 비중을 높이겠다는 결심을 주변에 알리기도 했다. 우리가 덜 찾으면 동물들이 의미 없이 버려지지도 않을 것이고 생산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물질들이 환경을 오염시키는 일도 줄어들거란 믿음을 가져본다. 당신이 누구이건 이 책을 읽고, 당장 행동으로 옮기진 못하더라도 동물들이 처한 진짜 현실을 바로 볼 수 있기를. 정말 간절히... 바란다.
-시원찮은 리뷰를 왜 지금껏 묵혀뒀을까.
수정하고 바꾼 것도 없으면서 왜 이제서야 등록을 할까.
그건 잘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