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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 성석제 장편소설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4월
평점 :
처음에는 작가 성석제만의 문체에 적응을 못했다.
산만하다고 생각하면서 힘겹게 몇 페이지를 넘겼는데
어느 순간 익숙해졌고 곧 빠져들었다.
뭐랄까,..
천연덕스레 익살을 늘어놓는 이야기꾼을 만난 기분이었다.
채 아물지 못한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흘러들어 온 이야기는 신비했고
가족처럼 서로에게 기대고 있는 -실상 그 경계는 애매했지만- '지금'은 즐거웠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다들 애틋했지만
그 중에서도
날 것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는 여산과
풀과 나무와 동질감을 느끼며 '생명'을 불어넣는 소희에게 끌렸고,
특별한 아이-준호에게 빠져들었다.
+깡패들의 모습을 보면서는 나도 모르게 영화 <시실리 2km>가 떠올랐다.
(리더로서의 '정묵'이 갖는 고민이 뭔지 새삼스레 공감해볼 수도 있었다, 신기하게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성석제 표, 짜릿하고 신명나는 이야기 한 마당.
인상깊은 구절.
:새미는 말하고 나서 잠이 들었다. 깨고 나니 웬 남자가 떠오르는 해를 등지고 장대를 든 채 걸어오고 있었다. 남매가 타고 있던 배가 강변의 나무에 걸려 있던 참이었다.
"준호야! 일어나봐. 아버지다. 아버지다. 아버지 왔다!"
새미는 그런 말로 동생을 깨웠다. 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같은 그 남자를 아버지라고 생각했을까. 왜 네안데르탈인 같은 남자를 아버지 같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모를 일이었다. 운명이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p.163)
:"아우웅 부우우앙......"
뜻을 알 수 없는 외침이 준호의 입에서 터져나온다. 상처입은 야생동물이 울부짖는 소리 같다. 새미가 준호의 등을 친다. 그만하라구우. 그만해! 그만해, 제발. 새미의 눈에서도 눈물이 그칠 줄 모른다. 모두들 울고 있다. 정묵은 양복을 집어들고 툭툭 턴다. 이제 끝났군. 끝.
"우와앙 우와앙 우와앙!"
준호가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른다. 용가리 통뼈를 삶아먹었는지 시끄럽기 짝이 없다. 정묵은 몰론 조직원들도 준호를 바라본다. 모두 어이가 없어한다. 준호, 혼자서 입으로 나팔을 불고 있다. 뿌왕 뿌아앙 부우아앙.
"저 새끼가 아가리는 당나발을 해가지고 코끼리 방귀 소리를 내고 있네. 완전히 동물의 왕국이잖아."(p.217~218)
:여산은 어디선가 "아부지 아부지 아부지"하고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소년이다. 소년인 그가 아버지를 부르고 있다. 아부지, 아부지, 아부지. 이제 일어나요. 잠 그만 자고 일어나요. 아부지. 나 혼자 두고 죽으면 안 돼요. 아부지, 아부지. 여산은 눈꺼풀을 떤다. 아부지, 아부지, 아부지 하는 소리를 그치지 않고 들려온다. 누가 나를 부를까? 내게는 아버지라고 부를 자식이 없는데. 내가 아버지일까, 죽어가는 아버지를 외쳐 부르던 어린 소년일까. 여산은 운다. 울며 눈을 뜬다.
"우웡 우웡 우워어어!"(p.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