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비전’이며, 무엇을 위한 계획인가?
- <비전 2020>에 대한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학생회의 입장
2010년 5월 27일, 학교 당국은 졸속으로 진행된 ‘학생 설명회’를 통해 <비전 2020>이라고 이름붙인 성균관대학교 중장기 발전 계획안을 발표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작성한 이 계획안의 핵심은 ‘대학 구성원간의 무한경쟁’을 기반으로 한 사실상의 ‘학제간 통폐합’이다. “혁신”과 “파워”, “TOP”과 “GLOBAL” 등의 과잉된 수사로 덧칠된 <비전 2020>은 결국 ‘잘 팔리는 것’만을 남기고 그렇지 않은 것은 모두 ‘없애거나 줄여버리자’라고 말한다. 이는 전형적인 ‘후진’ 콤플렉스가 반영된 발전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비전 2010>의 실패는, 충분한 비판과 반성을 허용하지 않은 채 맹목적으로 추진한 허울 좋은 계획이 얼마나 공허한 것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같은 <비전 2020>의 절차상․내용상의 문제점은 앞서 발표된 문과대 및 사회대 교수들의 성명서에도 명확하게 지적되어 있는 바, 우리는 이를 적극 지지한다. 우리는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관철되고 있는 학교 당국의 ‘불균형 발전 계획안’인 <비전 2020>에 강력하게 반대하며, 학교 당국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비전 2010>의 평가 및 <비전 2020> 계획 수립 근거를 학내 구성원들에게 전면 공개하라.
학교당국은 <비전 2020>의 비민주적 추진을 중단하고 지난 <비전 2010>부터 평가받아야 한다. <비전 2010>의 성과와 과오에 대한 충분한 평가와 반성이 이루어진 후에야 비로소 <비전 2020>의 계획 수립은 가능하다. <비전 2010>에서 제시된 “세계 100대 대학 진입”이라는 휘황찬란한 목표는 충분한 비판과 성찰 없이 <비전 2020>에 그대로 도용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자기 자신보다는 남들이 인정해주는 대학”을 향한 “기러기떼의 안향형 비행”을 계속 추구하겠다는 학교당국의 방식인가? 구체적인 기준과 자료 제시 없이 ‘장밋빛 환상’만을 조장하는 계획안은 헛된 공약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2. <비전 2020> 계획 입안 과정에 있어 절차적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켜라.
지난 5월 27일 열린 <비전 2020>에 대한 ‘외부 비공개’ 설명회는 ‘졸속’과 ‘파행’으로 진행되었다. 처장과 교수가 학생을 ‘계몽’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설명회는 합리적인 소통을 외면한 채, 학교당국이 발표한 계획의 일방적인 홍보에 집중했다. 우리 학교의 발전 계획은 학교의 주체인 학생-교수-직원 간의 충분한 합의와 토론의 과정을 통해 마련되어야 한다. ‘삼성경제연구소’라는 외부업체로 하여금 우리 대학의 미래를 구상하게 한다는 것은 대학 당국의 능력 부재를 자인하는 꼴이다. 학교 운영의 주체를 소외시킨 채 만들어진 계획안은 당장 폐기되어야 한다. 학교 당국은 학교 구성원들과의 민주적인 소통을 통해 성균관대학교의 ‘비전’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라.
3.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몰상식한 이해와 차별을 중단하라.
우리는 ‘미래지향적 비전’이라는 명목 하에 학교 당국이 자행하고 있는 인문·사회과학의 매장과 학살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비전 2020>은 의대, 경영대, 법대 및 소수 이공계 학과를 제외한 다른 기초 학문 학과들의 중요성을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 그것은 이제 본격적으로 ‘상업 대학’을 추구하겠다고 대놓고 선언하는 일이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모든 가치에 우선할 만큼 고상하지도 않지만, 학교의 판단처럼 전적으로 무능하지도 않다. 대학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은 인문학을 통해 상상되며 사회과학을 통해 증명된다. 특정 학과에 대한 배타적인 육성 전략은 삼성 재단과 성균관대학교 간의 불투명한 공모 관계를 연상시킨다. 타 학과의 일방적인 희생과 소멸, 통폐합을 담보로 하는 <비전 2020>의 불균형한 발전 전략은 당장 중지되어야 한다.
<비전 2020>이 지금과 같은 내용과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대학의 기업화’와 ‘인문사회과학 말살 행태’는 훨씬 더 폭력적으로 확산될 것이다. 학교 당국의 굳건한 목표인 “세계 100대 대학” 그 어느 곳에서 이러한 비민주적 의사 진행과 인문사회과학 경시 풍토가 횡행한단 말인가. 이에 대한 대학 당국의 조속하고 성실한 답변을 요구한다.
2010. 5. 31.
성균관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학생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