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병동
가키야 미우 지음, 송경원 옮김 / 왼쪽주머니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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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문학 시간 때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책에 나왔다.

단어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분석해야 되는 다른 시와는 달리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은 쉬운 편이었다.

시를 가르치는 문학 선생님도 이 시는 읽어만 봐도 무엇을 얘기하는지 알 수 있다고 하며

이 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다.

선택에 대한 당연한 얘기를 그럴 듯이 적은 시를 보며 별 얘기도 아닌 걸 거창하게 적었다고 생각했는데,

선택의 순간과 선택 후에 남겨진 시간에 그 시가 문득문득 떠오르는 순간이 참 많았다.

10여 년이 넘도록 내 머릿속에서 그 시를 배우던 상황과 그 시가 생각나는 걸 보면

선택의 순간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건 분명하다.

가키야 미우의 소설 '후회병동'에도 가지 않은 길에 아쉬워하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리고 이들이 후회하는 순간을 같이 들여다보는 의사 루미코가 있다.

본래 루미코는 본인의 의도와는 달리 환자의 가족을 기분 상하게 하는 언어의 마술사로

주치의를 바꿔달라는 요청을 심심찮게 듣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 없는 청진기를 줍게 되었고

그 청진기로 진료를 보던 중에 환청처럼 환자의 속마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청진기가 심상치 않다?

청진기를 환자에게 대고 있을 때면 속마음뿐만 아니라 환자의 생각과 상상,

그리고 후회로 남겨진 과거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하는 모습까지 공유할 수 있다.

둔감한 성격의 소유자인 루미코는 이 청진기로 환자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책의 제목만 보고 삶의 끝에서 후회로 얼룩진 인생을 되돌아보는 내용인 줄 알았는데,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과 아쉬움을 풀어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책을 읽어갈수록 후회로 여기고 있는 그 당시의 선택이 다른 선택보다 나았음을,

선택에 있어 나의 생각이 맞았음을 응원받는 느낌이랄까.

후회로 가득한 인생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이 더 나은 인생이라고 깨닫게 만드는 '후회병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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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나오키 1 - 당한 만큼 갚아준다 한자와 나오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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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한 만큼 갚아준다. 배로 갚아준다.

책임을 전가하고 자신을 깎아내리려는 상사를 향해 위와 같은 마음을 먹고 계획을 짜는 부하가 어디 있을까.

2014년, 그만뒀던 회사에 다시 재입사하여 다니던 시기에 드라마로 한자와 나오키를 접하게 되었다.

2013년에 방송되어 최고 인기를 누렸다고 익히 들었지만 관심 1도 생기지 않는 드라마 포스터에 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봤는데,

상사를 향해 깨부술 듯이 소리치고 반박을 하며 복수를 계획하는 한자와 나오키의 모습은

생각만 해도 골치 아팠던 회사일의 깔끔한 마무리가 되어주었다.

드라마가 흥행한 이유에는 아마도 상사를 향해 주인공과 같은 마음은 먹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회사인들을 대신하여

주인공이 시원한 한 방을 먹여줬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랬던 드라마의 원작이 이제서야 한국에서 출간되다니. 나는 5년 만에 한자와 나오키를 다시 마주했다.

5억 엔의 대출 사건.

'한자와 나오키. 1: 당한 만큼 갚아준다'라는 5억 엔의 대출을 받고 계획 도산해버린 서부 오사카 철강,

대출 실행에 숨겨진 은행 지점장 아사노의 비밀,

그리고 이에 맞서 5억 엔의 회수는 물론 책임 전가하는 상사에게 배로 갚아주려는 한자와 나오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당하면 갚아주는 게 자신의 방식이라는 한자의 나오키의 이글거리는 복수심과 행동에 같이 불이 붙기도 하다가

화력이 엄청난 모습이 나오면 마치 가해자가 돼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책 속의 한자와 나오키를 보면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속담도 시시하게 느껴질 정도이니 말이다.

드라마를 먼저 봤기에 책에 몰입이 안 되거나 두꺼운 두께에 지레 겁먹고 지루함을 느낄 줄 알았는데,

부드럽게 읽히는 문장과 강력한 내용에 한 시간은 기본으로 훌쩍 지나갔다.

책을 늦게 읽는 편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속도감 있게 읽는다는 게 어떤 건지 느낄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 뭐.

5년 만에 마주해도 여전히 통쾌하고, 여전히 경이로울 정도의 말발과 복수심을 갖고 있어

보는 사람 시원하게 만드는 '한자와 나오키'였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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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심원들
이인철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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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는 잘 챙겨 보진 않지만 배심원에 대한 소설이 나왔다기에 구미가 당겨 책을 집었다.

직업도 나이도 연관성 없는, 이른바 사건과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이 모여

죄의 유무를 판단한다는 것에 대해 평소 흥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배심원으로 선정되는 과정도 자의적 신청이 아닌 대한민국의 20세 이상 국민 가운데 무작위로 선택되는 것이기에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이 흥미롭게만 느껴진다.

 

초등학교 동창인 백도진과 설상태. 상태는 도진의 강제적인 요구에 같이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게 된다.

그러다 상태의 운전이 답답해진 도진의 윽박에 도진에게 운전대를 넘기게 되었는데,,

눈을 떠보니 교통사고가 발생했고, 상태가 운전대를 잡고 있다.

운전하지 않았음을 주장하는 상태와 상태가 운전했다고 주장하는 도진, 그리고 상태에게 불리하게 적용되는 증언과 증거들.

이 사이에는 도진을 비호하는 도원 그룹과 대형 로펌이 있다. 도원 그룹의 자제인 도진에 맞서 상태는 무죄를 받아낼 수 있을까?

 

국민참여재판제도. 우리나라의 배심원 제도로 2008년부터 실시되었다고 한다.

법적인 구속력은 없지만 재판장이 배심원의 평결을 따르지 않을 때는 그 이유에 대해 확실히 설명해야 한다니

언뜻 보면 다른 재판보다 중립적이고 민주적이며 법 아래 평등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하지만 죄의 유무와 형량을 결정하는 재판장과 배심원이 누군가의 계략으로 매수된다면 어떻게 될까?

진실은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는 작가의 말에서

막연한 상상이 아닌 무게가 실린 사실에 가까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집중도가 높고 막힘없이 술술 읽히는 문장에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재미있었지만 헐거운 나사가 몇 개 있는 것 같아 살짝 아쉬웠다.

인물의 성격과 유착관계가 뻔하기도 했고, '배심원들'이라는 제목에 비해 배심원들의 이야기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사건의 해결과 진실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내용에 초점을 맞춘 느낌.

아쉽긴 했지만 흐트러짐 없이 빠르게 흘러가는 스토리와 박진감 있는 장면들이 드라마 보는 것처럼 재미를 준 '배심원들'이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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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나무집 아이들
김대영 지음 / 좋은땅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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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모여서 함께 했던 시절을 되새기며 꺼내는 옛 추억들의 이야기로 지금의 시간을 채워간다.

지금의 시간을 공유하지 않기에 대화의 주제가 그 시절에 한정되어 있는 이유도 있지만,

함께 했던 시절을 얘기할 때만큼 웃음과 공감이 큰 주제도 없기 때문이다.

그 시절과 지금의 연결점에 우리만 있을 뿐, 그 시절로부터 지금까지 얼마의 시간이 흘렀고 얼마나 변했는지는 전혀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그땐 그랬지,라며 이야기의 끝을 맺을 때면 그 시절보다 더 나은 시절이 있을 것 같지 않을 거란 생각에 씁쓸함이 맴돈다.

포도나무집 아이들은 작가의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적은 소설이다.

작가의 말에 적힌 것처럼 어린 시절의 기억은 변화하고 순서도 바뀌며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조차 서로 다른 말을 하게 한다.

그렇기에 작가는 소설의 주체를 '나'로 정하지 않고 흩어지고 남은 추억들을 모아 '강진'이라는 인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강진', 그리고 그의 동생 '강민'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인데,

내가 그 시절에 있지 않음에도 같이 웃을 수 있던 건 이 형제들의 만들어내는 사건사고들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의 사건마다 그들을 방해하지 않는 위치에서 지켜봤던, 이른바 동년배의 공감을 느낄 정도였다.

그래서 아쉬웠던 건 무궁무진할 것 같은 포도나무집 아이들의 이야기가 금세 끝났기 때문이다.

본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듣는 이의 재미와 흥미를 끌어올리다가 문득 걸려온 전화에 자리를 떠나버린 아빠 같았다.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를 접하거나 갑자기 떠오르는 추억들을 하나씩 끌어모으면 더 많은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데,

급한 일이 있다며 서둘러 이야기를 마무리한 느낌에 왜 이렇게 아쉽기만 한지.

어느 날 갑자기 포도나무집 아이들2라고 나와도 반갑게 귀를 기울이며 듣고 싶은 '포도나무집 아이들'이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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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내가 남자를 죽였어
오인칸 브레이스웨이트 지음, 강승희 옮김 / 천문장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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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죽인 게 별일 아니라는 듯 무덤덤하게 말하는 여자의 표정. 그리고 책의 제목은 '언니, 내가 남자를 죽였어'이다.

책이 발간되기 전에 출판사에서 진행한 표지 투표로 인해

책 소개와 함께 표지를 봐서인지 이 책이 발간되었다는 소식이 남 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

내가 선택한 표지로 발간되어서 그런지 더 관심이 생겼던 '언니, 내가 남자를 죽였어'.

내가 느꼈던 대로 살인을 대수롭지 않게 느끼는 끝맺음의 말일지,

다음은 언니야라며 스릴러로 바뀌는 시작의 말일지 그 내용이 궁금해 책을 펼치게 되었다.

이야기의 화자는 나, 코레데. 동생으로부터 '언니, 내가 그를 죽였어'라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이런 전화, 상황이 처음이 아니라는 듯 코레데는 표백제를 챙겨들고 동생이 있는 곳으로 간다.

낯선 이의 집이지만 동생이 저지른 상황을 수습하는 코레데의 손길은 익숙하기만 하다.

수습하는 코레데 뒤에서 아율라는 정당방위였다고 말하지만 아율라의 말이 석연치 않은 건 벌써 이런 상황이 세 번째이기 때문이다.

연애의 끝을 살인으로 마무리하는 동생, 아율라. 그리고 그 마무리에 항상 같이 있는 언니, 코리데.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 살인은 계속 용납될 수 있을까?

짧게 명시된 단어를 필두로 간단하고 빠르게 진행되는 챕터로 인해 속도감 있게 글이 읽혔다.

살인과 시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책에서는 잘 볼 수 없었던 진행인지라

이렇게 간단명료하게 이야기를 진행해도 괜찮은 걸까?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 한 번 책을 펼치면 이 챕터까지만 읽어야지, 했다가 목표를 훌쩍 넘어 읽기도 했다.

아쉬웠던 건 아율라의 습관적인 살인에 별다른 해석이나 원인이 나오지 않은 것.

코레데의 생각과 행동에는 현재는 물론 과거까지 나오면서 짐작할 수 있었는데,

아율라의 행동거지는 나와는 다른 성격의 동생으로 취부해버리기에는 짐작조차 안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짧고 간단명료하게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서

이 이야기의 끝은 무엇일지 기대하면서 읽게 되는 '언니, 내가 남자를 죽였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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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나 2019-04-09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