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 - 아내폭력에서 탈출한 여성들의 이야기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30
한국여성의전화 지음 / 오월의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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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중반, 일하다 친해진 언니네 집에 자주 놀러간적이 있다. 언니는 남자친구랑 같이 살고 있었다. 무슨 얘기 끝엔가 언니가 자신과 남자친구는 자주 싸우며 가끔 남자가 자길 때릴 때도 있다고 했다. '때린다'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장난으로 그러는거야'라고 되물었다. 언니는 남자가 자기를 어떻게 때리고 어느 순간 폭발하는지 얘기해줬다. 어떤 느낌인지 상상이 안 갔다. 일찍 집을 나와 혼자 살던 언니가 유일하게 의지한 사람이 폭력을 행사하고 언니는 그걸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다. 나는 폭발할 때까지 남자를 밀어부치진 말아야 한다는 콩인지 된장인지 모를 말을 내뱉었다. 언니는 심상한 분위기로 자신의 성격도 그렇지 못해서 결국 사단이 난다고 했다. 나는 그때 '아, 남자를 밀어부치면 안 되겠구나. 폭력적인 놈을 만나면 안 되겠구나, 언니 불쌍해서 어쩌지.'라고 생각했다.

 

 너무 심하게 때려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죽은 듯 매질을 견뎠다는 고모. 아빠의 폭력을 피해 맨발로 도망친 엄마. 열 손가락을 다 채울 정도로 도처에 매맞는 여성들이 있었지만 나는 그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혼하면 되는거 아냐? 아이 핑계로 왜 사는건데, 경제적으로 자립할 능력이 안 돼서 그러는거 아냐. 왜 그런 남자를 만났대. 도처에 뿌리내린 가정폭력보다 내 시각이 더 폭력적이었다. 엄마에게 그렇게 살지 말고 이혼하라고 했지만 엄마가 그 시기를 견딘 덕분에 화목한 가정까지는 아니어도 여전히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다. 둘 사이를 가로막는 모순에 맘 한켠이 싸해진다. 가정폭력은 신체적 폭력뿐 아니라 관계와 편견의 폭력이라 다시 새롭게 살겠다고 선을 그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란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여자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살기에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도 이제서야 알게 됐다.

 

 가정폭력 생존자들의 '여성 살해의 현장에서 탈출한 여성들'은- 본 제목보다 정희진 선생의 개인적 의견이 더 나아 리뷰에서는 이 제목으로 책을 지칭한다- 가정폭력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수기이다. 가정폭력에는 이유가 없다. 그저 그래도 되니까 하는 것 뿐이다. 집 밖이었다면 당장 고소 당하고 형사 입건 할 사건을 집 안에서는 집안일이라며 쉬쉬하고 넘긴다. 가정폭력에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제해결을 하고 가해자를 구속한다면 어떨까. 구속을 넘어 무조건 감옥에 가야하고 사회적으로 매장당한다면? 아마 엄청난 분노조절장애 배우자도 상대방을 손끝 하나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타인에게라면 어떻게 저러나 싶을 행동들을 나는 a에게 한다. 했던 말을 다시 되물으면 불같이 짜증을 내고 얘기한대로 하지 않으면 눈을 부라리며 a를 공격한다. a의 유일한 낙은 술 먹는 것이고 자신도 나처럼 화내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는 같이 살지 못하니까 참는다고 했다. 나는 아빠를 꼭 닮았다. 아빠가 일하고 와서 쉬는 편안한 집, 내키면 가끔 청소 한번씩 하면서 생색내는 집에서 12시가 넘도록 열무김치를 담그는 엄마가 꼴보기 싫어 집에 잘 가지 않는다. 나와 가정폭력 가해자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무엇이 내가 그래도 된다는 생각을 갖게 했을까.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고 마냥 거리를 두면서 성찰할 수가 없었다. 나 역시 관계를 무기로 다른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으니까.

 

 언니를 다시 만난다면 언니와 그 남자를 떼어놓고 싶다. 언니 잘못으로 그놈이 도발하는게 아니고 그놈은 원래 그런 놈이라고  이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a를 비난하는 대신 나부터 잘해야겠다. 집안일 개미지옥에서 벗어나 유연한 시선으로 타인을 대하고 싶다.

경험은 겪은 것이 아니다. 선택적인 기억이다. 경험은 철저히 정치적인 것이다. 무엇을 잊고, 무엇을 의미화하는가, 내가 겪은 일은 어떤 것인가. 경험은 저절로 기억되지 않는다. 자신의 경험을 인식할 수 있는 시각이 생길 때, 비로소 ‘떠오르고‘ 인지되고 해석된다. 남성 사회에서 여성에게는 자기 경험을 바라볼 수 있는 렌즈가 주어지지 않는다. 남성의 언어가 여성의 삶을 장악하는 사회에서, 여성들은 자기 경험을 믿지 못한다. 자기가 겪은 일을 남 이야기하듯 말한다. 나도 그랬다. 가부장제는 모든 인간을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한다. 가해 남성들과 상당하다보면, 자기가 저지른 일을 남의 얘기인 양 비웃고 ‘동료‘를 비난한다. 어떤 여성들은 자신이 겪은 폭력이 훨씬 심각한데도 ‘덜 맞은‘ 여성들을 보며 놀라고 걱정한다. 경험, 몸, 인식의 분리 속에서 우리는 생각할 능력을 상실했다.

8p

여기 실린 여성들의 글을 유심히 읽으면, 문장과 문장 사이가 떠 있음을 깨닫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하면, ‘연결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글이 ‘비논리적‘으로 보인다. 이런 문장은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 데 일조한다. 왜일까. 내 해석은 이렇다. 녹취록처럼 가해 남성의 행동을 상세히 묘사해도 문장들 사이가 연결되지 않고 ‘뭔가 말이 안 된다‘. 그것은 남성들의 행동이 정말 그렇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들을 이해하려고 해도, 도무지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의 고민은 여기서 끝나야 한다. 왜 때리는가? 이런 질문이 바로 폭력이다. 그들을 이해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때릴 수 있으니 때리는 것뿐이다.thdy do because they can. 단지 그 뿐이다. 대신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왜 사회는 여성의 경험을 믿지 않는가? 왜 국가는 이 문제를 사소하게 다루는가? 왜 우리는 언제나 이 문제가 ‘사소하지 않다‘고 외쳐야 하는가?

9p

나를 사로잡고 있던 두려움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나에게도 가정성공신화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고 이혼을 내 인생의 실패라고 생각했다. 겉으로 보기에 아름다운 나의 유리거울이 깨져서 내 모습이 찌그러져 보이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남편이 마치 장애를 앓고 있는 자식처럼 여겨져 차마 버릴 수 없었다는 것도 알았다.

88p

지난 상처는 음식물 쓰레기 같은 것이라고. 묶어두기만 하면 언젠가는 빵 하고 터지는데 터지고 나면 수습하기가 더 힘들다고 말이다. 나 역시 그랬다. 남편의 끊임없는 강박적 요구에 내 마음속은 미움과 두려움이 쌓였는데, 그런 감정들을 표출하지 못하고 억압하고만 있었으니 속에서 그것들이 상하기 시작했다. 얼굴은 웃고 있어도 늘 어두웠고 가슴은 항상 답답했다. 나는 쉼터에서 그것들을 하나씩 열어보았다. 압력을 빼듯이 내 속에 무엇이 있는가를 알고 이해하면서 상처를 치유했다. 차츰 마음이 시원해짐을 느겼다.

8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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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9 03: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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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3 21: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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