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은 두 부류의 인간형이 있다. 가치와 이상을 우위에 두고 살지만 생활에선 살짝씩 마이너한 사람들(a)과 고정관념을 온몸으로 재현하지만 관계에서는 편하고 너그러운 사람들(b). 명확하게 구분되는 기준은 아니다. 분류하고 규정하기 좋아하는 성격상 나눠본거지 두 부류에 걸쳐 있는 사람도 있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도 있다. 기준 자체가 똑 떨어지는 건 아니다.

 

 아이가 머리카락을 잘랐다. 아이는 갓난아이때부터 머리카락이 잘 안 자랐다. 그동안은 별로 없는 머리카락을 위로 하나, 양쪽으로 하나씩 세개로 섹션을 나눠서 묶어줬다. 꾸미기 좋아하는 이모들 영향이었는데 나도 아이가 이렇게 머리를 묶는게 좀 더 예뻐보여서 계속 고수했다. 그런데 어린이집 적응 기간이라 같이 있으며 아이의 풀린 머리를 다시 묶어줄 때 이상한걸 느꼈다. 아이 머리를 묶어주자 남자 아이가 자기도 묶어주라며 머리카락을 손으로 쥐고 내게 왔다. 남자아이의 머리를 묶는데 어느 순간 놀이방에 있는 아기들의 머리가 보였다. 여자아이들은 길든 짧든 머리를 묶고 있는데 남자아이들은 짧은 머리였다.

 

 왜 성별을 구분짓는데 여자아이들이 수고를 하는걸까. 안 그래도 분홍분홍하고 거추장스러운 레이스 스커트를 입는데 머리까지 묶고 여자란걸 드러내야할까. 간단하고 깔끔한 짧은 머리는 왜 남자들에게만 허용될까. 언젠가 페북에서 본 글도 생각났다. 신생아의 여남 구분을 위해 머리카락도 없는 여자아이의 머리통에 리본을 꽂는게 크리피하는 글. 맞아, 진짜 뭐지? 아침마다 머리를 묶겠다는 실랑이며 연약하고 보호받아야하는 공주 여성상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기의 머리카락을 잘라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b그룹은 아이 머리 스타일을 두고 남자같다, 왜 잘랐대, 숱이 더 없어보인다며 뇌에 떠오르는 생각을 바로 말했다. a그룹은 아치와 아이 머리 스타일이 멋지다고 칭찬한다. 그래서 하소연처럼 얘기했다.

 

- 다른 사람들은 이러저러한 말을 해요.

- 그런걸 왜 신경써. 나만 아니면 되지.

 

 통찰을 담고 있는 뉘앙스였지만 말인지 된장인지 모르겠다. 신경 안 쓰면 되는데 왜 그 많은 명절증후군이 생겼으며 사람들이 관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단 말인가. 그분의 단언이 헛헛해서 웃었는데 긍정의 의미로 느꼈나보다. 계속 얘기하려고 해서 슬쩍 자리를 옮겼다.

 

 아이가  머리카락을 자른 후 보인 반응은 두 그룹의 성향차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두 사회의 교차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a그룹에서 내가 사는 모습은 너무 당연하데 b그룹에서는 특이한 경우가 된다. b그룹중 한명은 a그룹이 너무 개성이 강해 사람에게 배려하는데 서툴다고 단언을 한다. 대화를 할 때는 가치관이 맞는 사람이, 생활할 때는 고정관념에 충실한 사람이 좋다. 영혼과 세속, 분별할 수 없는 언어들이 튀어나온다.

 

 어쩌면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청개구리 습성과 여전히 특별하고 싶은 욕망? 같은걸 버리지 못한 내 존재가 두 세계를 구분하는 가장 큰 지표인지도 모르겠다. 신경쓰지말라니, 진짜 그게 말이야 된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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