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몇달만에 일기장을 펴서 아기의 기행을 기록했다. 기행도 아니다. 전날 열이 있어 좀 피곤한 상태고  내가 자기 맘을 잘 읽지 못해 짜증이 났고 짜증이 났는데 잘 달래지를 못하니 부아가 난 것일 뿐. 기행이라 할만한 것도 없었다. 계속 짜증내고 칭얼대고 드러눕고 내 얼굴을 때렸을 뿐이다. 간신히 밥을 먹는데 계속 매달려서 방에 데려다 놓고 나오는데 난리가 났다. 서로 맘이 잘 맞으면 좋은데 이렇게 한번씩 핀트가 어긋나면 걷잡을 수 없어진다. 이럴 때는 엄하게 얘기하는 것도 달래기도 안 통하고 그저 감기가 오려고 신호를 보낼 때 납작 엎드려야 감기가 순하게 지나가듯 나 죽었소 해야한다.

 

 사실 그동안 아기 돌보는걸 거저 했다. 아기는 작년에 열이 심해 병원에 간적이 있다. 열로 기운이 떨어질만도 한데 의사 양반 책상을 땅땅 두드리며 장난을 칠 정도로 유쾌했다. 아기는 장염에 걸려서 엉덩이가 짓물러도 가타부타 불편한 기색을 부리지 않는 무던한 성격이다. 우유병 떼기 힘들다고 하는데 어제는 우유병, 오늘은 빨대컵에 줘도 꿀꺽꿀꺽 잘 먹었다. 엄마만 찾는 아기도 아니어서 누구한테 잠깐 맡기도 화장실 가거나 볼일을 봐도 문제가 없었다. 배고프거나 잠 올 때 빼고는 대체로 잘 놀고 잘 웃고 잘 먹었다. 물론 잘 싸기도 한다. 그래서 엄마들이 밥 먹기와 응가 문제로 고민을 할 때면 주저하면서 우리 아기는 안 그런데, 란 말을 내뱉곤 했다. 그땐 얄미운지 몰랐지.

 

 15개월 무렵부터 자기 의지가 생기고 의사표현을 하면서 '우리 아기가 달라졌다'. 무엇을 주든 잘 먹던 아기는 밥은 쏙 빼놓고 반찬만 골라먹는다. 자기 기호가 생겨 나가고 싶은 날은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나가야만 하고 하고자 하는 건 꼭 해야만 한다. 하고자 하는게 거창한 것도 아니고 아기 바람을 들어준다고 당장 습관에 문제가 생긱는 것도 아니다. 큰 범위를 정해주고 그것에 반할 때만 선을 긋는다거나 원칙에 입각해 적절하게 타협해야 한다. 하지만 역시, 그게 쉽지 않다. 밥을 잘 안 먹다보니 다른걸 주고 배가 충분히 부르지 않으니 칭얼대고 그래서 다른걸 주니 또 밥을 안 먹고, 조금씩만 먹으니 응가도 안 하는, 계속 이 과정.

 

 처음부터 하나씩 풀어나갔다. 밥을 안 먹으면 치웠고 배가 허전해서 칭얼거리면 신나게 놀아줬다. 일은 잠시 미뤄두고 아기한테 집중해 반응하고 기운을 북돋아주었다. 아기 머릿속엔 스위치가 있는 듯 방금까지 떼를 쓰다가도 번쩍 안아 목마를 태우면 방긋방긋 웃는다. 실컷 놀고 푹 자고나서 먹는 점심은 얼마나 꿀맛이겠는가. 자기 먹을 양을 다 먹고 기분이 좋아진 아기랑 꽃구경을 나갔다. 고양이를 보고 미끄럼틀도 탔다. 다시, 봄이다. 언제 다시 찬바람이 몰아칠지 모르지만 오늘 햇볕은 무척 따사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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