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의 정기검진을 따라갔다.  a 혼자 와도 되건만 수면 내시경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a는 아프고 난 후 이런저런 짜증과 잔소리가 많아졌다. a가 꾹 누르고 있던 성격의 결함은 아프기 시작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튀어나왔다. 가족들은 a의 눈치를 봤고 a는 너무 당연하게 아픈 사람의 특권을 누렸다. 간간히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다는걸 토로하는 방식으로 투정을 합리화했다. 24시간 가까이 굶은 a는 추어탕을 먹자고 했다. 뚝배기에 밥이 나와서 누룽지를 먹을 수 있는 남원 추어탕집이었다. a는 위를 절제했기 때문에 식단과 식습관을 조절해야한다. 더군다나 금식을 한 후인데 욕심껏 많이 먹는다. 나는 묵묵히 a의 하는 양을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a의 고정관념과 습성, 고집을 그대로 물려받은 나는 a와 단둘이 있을 때 조심스럽다. 완충제 역할을 할 다른 사람이 없기 때문에 서로 양보없이 끝까지 밀어부치는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난히 긴장하고 있었나보다.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쪽 테이블 옆을 지나가던 사람이 휴지통을 엎질렀다. 쓰레기들이 내가 앉아있는 자리로 굴러왔다. 평소 때라면 아이구 하면서 같이 수습했을텐데 아이씨가 나와버렸다. 빵모자를 눌러쓴 무표정한 아줌마는 맨손으로 휴지를 휴지통에 집어넣었다. 당황해서 어버버하는 사이 아줌마는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 앉아버렸다. 죄송하다는 말을 하거나 휴지를 같이 주울 틈도 없이 황망하게 쓱 지나가버렸다. 이게 다 a 때문이야라고 생각하다가 a랑 부딪히지 않으려고 말을 아낀 내탓 같기도 해서 맘이 엉켜버렸다.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 화자가 '나'가 아니라 3인칭 시점이면 좋았겠다 싶을 정도로 복잡다단한 주인공과 작가가 겹쳐져 읽힌다. 두권을 연달아 읽으며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 많던 싱아~'의 주인공의 맘처럼 적어보고 싶다란 생각을 했는데, 졸속이 되고 말았다. 엄마와의 애증과 가족들을 객관적이다 못해 이거 나중에 당사자들이 읽으면 어쩌나 할 정도로 집요하게 사람의 다양한 면들을 징그러울 정도로 보여주는 글. 모처럼 미소지니가 드물었던 소설. 박적골의 뒷간 풍경과 자연의 싱그러운 묘사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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