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머리 위에 꼿꼿이 박히고 시선이 닿는 곳마다 마술처럼 풍경이 색을 입는다.
밤길을 산책하며 부드러운 공기 속을 거닐다 갑자기 진공 상태로 던져진 것처럼 눈이 뻑뻑하다.
서울 하늘엔 스모그만 가득하단 얘기가 무색할 정도로 하늘은 맑고 전날 내린 비로 나무들은 싱그럽게 반짝인다.
싱그러움은 내 몸까지 전염시켜 나도 덩달아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연못 주위를 한 바퀴 돌고 나자 무릎이 당겼다.
녹색 타일이 깔린 인라인 운동장 가장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가족 단위로 나온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제법 서늘해진 바람
손바닥한 나무 그늘 아래서 가만히 눈을 감았다.
모든 것에서 놓여나고 모든 것과 상관없어진 기분
눈을 뜨자 세상은 다시금 환해졌다.
느닷없이 밝아진 세상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장면이 있었다.
분홍색 옷차림에 분홍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소녀와 아빠
여자 아인 몇번 인라인을 타봤는지 제법 자세가 나왔지만 영 불안한지 제 체중을 아빠에게 실었다.
허리를 굽히고 딸의 손을 잡아주는 아빠.
격려를 하다 약 올리다 한발짝 움직일 때면 칭찬을 해주다, 그 둘의 모습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내쪽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쉬던 꼬마가 날 힐끔거리며 쳐다보다 절대로 나 때문에 그런건 아니란 포즈로 엉거주춤 일어나 자리를 떴다.
여자 아이는 덥석 아빠를 끌어안고 더는 못하겠다며 투정을 부린다.
가끔 나도 덥석 네 시선을 붙잡고 투정을 부리고 싶다.
2008년 가을 즈음